도박 중독은 다른 중독계 정신 질환과 달리 약물 등의 물질에 의해 유발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자제력을 상실함으로써 도박 행동에 지나치게 탐닉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도박 중독자는 자신이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감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을 'hidden addiction(숨겨진 또는 은밀한 중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도박 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그 개인의 성격이나 평소의 행동 양식, 가정환경, 때로는 양심에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도박 중독이 정신 질환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정작 도박 중독자들도 이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치료 장면에 들어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치료 현장의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자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50%는 치료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도박 중독자는 병에 대한 인식과 심각성이 없으며,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도박 중독은 어느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저라고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암 환자를 탓하지 않듯이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물론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책임감을 강조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럼 가족 구성원이나 지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간단한 대처 방법을 몇 가지 알아보겠습니다.
1. 대리 변제 절대 불가
'대리 변제'란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말인데, 도박 중독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면 절대로 안됩니다. 물론 도박에 빠진 상태임을 모르고 빌려주었다면 모르겠지만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빚을 대신 갚아주면 도박 중독이 악화합니다. 신용 불량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채권자에게 시달리는 것이 안쓰러워서, 등등의 이유로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도박 중독자를 돕고 싶다면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 합니다(오히려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것을 권합니다). 흔히 도박 중독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서 도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빚만 해결되면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도박에 대한 환상과 미신적인 착각에 사로잡혀 도박 충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빚을 대신 갚아주면 일시적으로는 도박을 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므로 다시금 도박 충동이 일어나 도박을 시작하게 됩니다. 도박 중독자의 빚을 갚아주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실 겁니다.
2. 재정 관리 대신하기
어떠한 이유에서든 도박 중독자에게는 필요 이상의 돈을 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마약 중독자의 손에 마약을 쥐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도박 중독은 재정 관리 능력이 상실되는 병이니만큼 도박 중독자의 소유로 된 재산의 명의를 보호자에게 돌려놓거나 공동 명의로 등재해서 도박 중독자가 멋대로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급여나 재산의 관리도 당연히 보호자가 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도박 중독자가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3. 소문 내기
우리가 담배를 끊을 때 주변 사람에게 금연을 선포하고 도움을 청하듯이 도박 중독의 경우도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감시자 겸 지지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이 도박 중독임을(혹은 도박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창피해서 이것을 못한다면 도박 중독의 무서움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도박 중독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오해를 하고 있다면 이들에게도 도박 중독의 정확한 실상을 알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관심이 없으며 이는 도박 중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소문을 내는 것은 도박 중독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음(또는 못함)으로써 대인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도박 중독의 치료에는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가 필수적인데 도박 중독은 대인 관계에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단절시키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바로 이 정서적 지지를 고갈시키고 중독자를 고립시킵니다. 실로 무서운 병입니다.
4. 일상 생활의 대처
이것은 치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는 대처 방법이기도 합니다만 우선적으로 도박 중독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바꿉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목적이 있는데 채권자의 무분별한 추심 행위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짐으로써 치료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목적이 하나이고, 도박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끊음으로써 도박 충동을 감소시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때 번호를 바꾸면서 휴대전화에 보호자가 위치 추적(이통사에서는 친구 찾기 서비스라고 합니다)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보호자가 수시로 도박 중독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의심을 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는 효과와 함께 도박 중독자에게는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보호자가 자신을 감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함으로써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도박 중독자에게는 일체 현금화 할 수 있는 물건(금붙이, 신용카드 등)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현금 출납부를 쓰게 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도박 중독자는 재정 관리 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모든 지출은 영수증 등 관련 근거를 보호자에게 제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5. 궁극적인 방법
무엇보다도 도박 중독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 질환인 만큼 도박 행동을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뿌리를 뽑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단도박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재발합니다. GA모임(단도박을 위한 커뮤니티 모임)을 아무리 오래 다녀도 재발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전문적인 치료 기관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부부 중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치료를 받을 거냐, 아니면 이혼을 할 거냐"고 요구하고 치료 장면에 도박 중독자를 끌고 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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