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행을 가면 시차 문제도 있지만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지 항상 새벽에 깨곤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wake up call의 도움을 받죠. 그런데 이번 미국 출장에는 정신 없이 잠들어 로밍을 한 휴대폰 알람이 울릴 때까지 푹 잤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2시간을 더 잤는데도 많이 피곤한 것을 보면 시차 적응 문제가 만만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내일 정도가 되어야 생체 시계가 적응을 할 것 같네요.
Hyatt Regency 호텔에서 아침 식사가 7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7시 20분에 길을 나섰습니다. 보통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만 오늘은 짐이 있어 밴 택시를 불러서 타고 함께 이동했습니다.
아침을 먹기 전에 가져간 홍보 leaflet과 소책자를 테이블에 셋팅했습니다.
본격적으로 booth를 만들어 온 몇몇 팀이 보였는데 대부분 유료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과 출판사이더군요. 공개 테이블에 자료를 올리고 난 뒤 한 바퀴 돌면서 무료로 주는 brochure 등을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챙겼습니다. 가져간 자료 올려놓으랴, 동영상과 사진 찍으랴, 경황이 없는 중에도 들어야 할 session은 챙겨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차근차근 살펴봐야겠습니다.
아침 식사는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뜨거운 음식이 하나도 없더군요. 머핀 케익과 빵, 그리고 약간의 과일, 그리고 쥬스가 전부입니다. 샐러드마저 없네요. 보통 서양식 아침이라면 소시지와 감자, 스크램블 에그 정도는 주는데 말이죠. 내일 아침도 이렇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회장 중 가장 큰 규모였던 Ballroom입니다. 아침 강의를 주로 여기에서 시작했죠.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 유명한 대가인 Ladouceur의 Keynote를 들으러 갔습니다. 고수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고수의 필수 자질 중 하나는 유머 감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좌중을 힘있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좌지우지하는 Ladouceur의 강의는 정말 발군이었습니다.
강의의 핵심은 'Controlled Gambling'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가의 최근 관심이 control인가 봅니다. 강의 초반에는 아직까지 치료자간에 확실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다양한 영역의 문제, 예를 들어 ‘도박 중독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도박 자체를 금지해야 하는가’ 등의 민감한 issue를 던져 주위를 환기한 후 ‘control vs. abstinence'에 대한 주제를 꺼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도박을 끊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대략 전 인구의 1%가 도박 중독이 되고 치료를 찾는 도박 중독자가 채 10%가 되지 않으며 그나마 최대 50%에 달하는 drop out 비율까지 감안해 볼 때, 비용 효과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abstinence가 아닌 controlled gambling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양가감정을 느끼는 도박 중독자를 치료 장면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Ladouceur는 13주의 CBT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최대 12개월 follow up 결과에서 drop out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drop out된 사람들도 최소한 controlled gambling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확인해 봐야 할 부분이 몇 가지 있어 보였습니다. 첫째, 많은 연구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인데 도박을 하지 않고 있는지의 여부를 전화로 조사한 것은 아닌 지(그렇다면 재발한 사람의 경우 사실을 이야기 할 리가 만무합니다. 보호자나 가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무엇보다도 6, 12개월 정도의 interval로 재발율을 점검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13주의 치료 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환경 조성이 가능하고 기본적인 재정 관리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면 새로운 경제적 타격 등의 악화된 재발 요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대부분의 도박자들이 버틸 수 있으니까요. 기간이 2년이라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소 회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Ladouceur의 연구에서 사용한 In vivo exposure 기법도 치료 회기 중이라서 가능한 것은 아닌 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치료를 종결하고 나면 치료자가 더 이상 자기 곁에 없다는 것 만으로도 도박자가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받기 때문에 치료 중의 In vivo exposure 기법이 치료 종결 후 치료자가 곁에 없을 때에도 효과를 유지할 지는 상당히 의문시되거든요.
어쨌거나 Landouceur는 'impaired control'이 핵심이라고 주장하더군요. 다만 조작적 정의, 측정 방법 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했습니다. 알코올 문제와 달리 도박은 ‘양’으로 측정하는 것이 어려우니까요. 대신 도박의 결과에 의해서 loss of control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Landouceur의 생각입니다.
아주 인상적인 강의 잘 들었습니다. abstinence에서 controlled gambling으로 연구의 주제가 이동하게 된 계기도 듣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못 들었네요. 아마도 managed care로 인한 영향을 반영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료 치료를 제공하는 캐나다를 비롯한 우리나라에는 다소 맞지 않는 trend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두 번째 강의는 10시부터 45분 간 진행된 'Prevention on a Shoestring Budget'이었습니다. 세 명의 program manager가 나와서 자기가 일하는 지역에서 어떻게 예방 사업을 하고 있는 지 설명하고 질의 응답을 했습니다. 사용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습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별로 없었고요. 사실 상 이 session이 첫 본격적인 강의였는데 이걸 들으면서부터 NCPG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강의 중에는 community based approach를 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실적에 의존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설명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강의보다 오히려 질의 응답을 할 때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예산이 적을 때에는 어떻게 우선 분배 순위를 결정하고 사업을 집중하느냐는 것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정리를 좀 해 보자면, 1.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효과적일지 현장에서 직접 survey를 해 보라. 2. trainer를 훈련시켜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education을 현장에 적용하도록 하라. 3. 부모에 대한 교육을 통해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4. 학교 수업에 도박 관련 커리큘럼을 포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5. 웹사이트와 이메일을 통한 사업이 효과적이다. 등이 기억이 나네요. 제 생각에는 온라인 인프라 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블로그와 emailzine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30분을 휴식하고 11시 15분부터 12시까지 진행된 clinical supervision에서는 도박 중독 분야의 supervisor가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consultation과 supervision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case discussion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도박과 관련된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습니다. 특히 법적 문제,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들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이 되더군요. 회계사, 변호사에게 의뢰하자니 비용이 너무 비싸고 자격이 없는 치료자가 함부로 조언을 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규정이 있는 미국에서는 더 고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upervision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하려고 다양한 form을 이용한 system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나라도 도박 중독 치료자의 자격과 양성, 관리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점심 식사는 앞에서 보신 가장 큰 강의장에서 했는데 테이블 셋팅이 되어 있더군요.
저민 쇠고기가 올려진 샐러드가 메인 요리이고 차가운 홍차에 초컬릿 케익이 디저트로 주어지더군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 가뜩이나 선선한데 차가운 음식을 계속 먹으려니 좀 그렇더군요.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기운이 있어야 오후 강의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점심을 먹고는 오후에 들을 session을 점검했습니다. 에어컨을 너무 심하게 틀어서 몸에 열이 많은 제가 춥다고 느낄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상당히 추울 것 같았습니다. 학회가 열리는 내내 날씨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간혹 쉬는 시간마다 나가서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혔습니다.
1시 30분부터 3시까지 열린 'Preliminary Examination of the Pathway Model'은 Gupta 박사가 자신의 탐색적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3종류의 도박 중독자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순수하게(?) 조건화된 도박자로 impaired control문제가 아니며 premorbid psychopathology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정서적으로 vulnerable한 도박자로 depression이나 anxiety와 같은 premorbid psychopathology가 있는 도박자이며 마지막으로 antisocial impulsive type의 도박 중독자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impulsive한 문제가 주를 이루며 neurological dysfunction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어른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다만 아직 data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언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인 ADHD와 연관성이 궁금했습니다. 성인 ADHD와 상관이 있다면 성인 ADHD를 detect & diagnose하는 tool이 나오게 되면 sub type별로 도박 중독을 접근할 수 있을테니까요.
사실 이미 국내에서도 그런 감은 갖고 있습니다. 성격, 정서 상에 문제가 없는 조건화된 도박자가 있는 반면에 우울, 불안이 깔려 있는 도박자도 있고 많지는 않지만 B군 성격장애에 해당하는 도박 중독자도 있으니까요. 자극 추구형 도박자와 스트레스 회피형 도박자의 관계도 함께 생각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날의 마지막 강의는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열렸습니다. 제목이 ‘Family Treatment Panel’로 ICBT가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case management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왔고(이것도 이미 체계적으로 하고 있죠) ICBT도 Brief Psychotherapy를 해야 하는 미국의 특성 상 짧게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용된 것 같았습니다. ICBT에서는 ‘외재화(externalization)'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는데 이제야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은 자신의 문제를 가족에게 감추려는 도박자를 다루는 법과 아들의 신용카드 빚을 부모가 해결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미 국내의 치료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주제이죠. 이미 너무 당연한 질의응답이 진행되어 김이 빠졌습니다.
NCPG는 매일 학회가 끝난 후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더군요. 다저스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있고 아쿠아리움 견학도 있는데 오늘은 ‘퀸 메리’호 투어였습니다. 워낙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이들 신청했습니다. 비용은 35불이었고요. 왕복 버스 제공과 Ghost쇼, 퀸 메리호 입장료, 그리고 간단한 저녁 식사가 포함된 금액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인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버스는 15분 마다 오는데 대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와 상관 없습니다. 첫 차를 놓치면 여지없이 15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버스를 타고 한 10분 정도 가면 엄청난 크기의 퀸 메리호가 보이는데 일부는 호텔로 개조해서 투숙객을 받고 있고 일부는 관람객을 받아서 투어를 하고 또 일부는 개조해서 유령쇼를 합니다.
호텔 숙박은 오래된 배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는 좋을 것 같더군요. 보시다시피 옛날 배를 개조해서 호텔로 운영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유령쇼는 썰렁했습니다. 폴터가이스트를 두려워하는 미국인에게는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재미없었습니다. 차라리 인간 유령을 배치해서 발목을 붙잡게 하는 것이 낫지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불이 꺼지는 식의 유치한 장난으로는 한국인을 무섭게 만들기가 쉽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녁으로는 간단한 스넥을 먹을 수 있는데 쿠폰 2장으로는 맥주나 와인 등을 마실 수 있습니다. 닭꼬치, 딤섬 등이 있는데 조금 짜기는 하지만 먹을만 합니다. 홀의 중앙에는 가라오케가 마련되어 있어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흥이 나면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보니 일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라오케 문화를 침투시켰네요.
퀸 메리호는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풍스러운 배입니다. 게다가 엄청 크기까지 하지요. 배 안을 거닐면 역사가 느껴집니다.
알아서 돌아다니다가 버스 시간에 맞추어 내려가면 되는데 배 안이 워낙 넓어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호텔로 돌아왔지만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내일 들을 session을 점검하고 늦게서야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