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보다는 좀 덜 피곤하네요. 도저히 머핀과 쥬스로만 아침을 때울 수가 없어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정도의 더운 음식을 하루에 한 번은 먹어야 힘을 내서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요. 둘이서 17불이 조금 넘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거스름돈은 팁으로 줬습니다.
아침을 호텔에서 먹으니 아침을 먹기 위해 7시 20분에 학회장으로 출발하는 팀에 끼지 않고도 여유있게 갈 수 있어서 좋군요. 첫날에는 걸어가는 것이 귀찮을 것 같았는데 아침을 먹고 산책도 할 겸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소화도 되고 좋습니다.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진행된 첫 session은 인터넷 도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넷 도박과 법안에 대하여, 인터넷 도박의 전망에 대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고등학교 커리큘럼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죠.
이미 한게임 등 사이버 머니를 이용한 인터넷 도박과 해외에 서버를 둔 도박 사이트가 성행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NCPG에서 이제야 인터넷 도박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질의 응답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솔직히 매우 실망했습니다. 인터넷 도박 중독을 접한 경험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온라인 도박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가, 인터넷 도박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가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빠르게 공론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줘야겠지요. 고민만 있고 구체적인 행보는 느린 우리나라에서 정신을 차려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실태 조사를 비롯한 본격적인 연구를 해야겠습니다. 미국에서 세컨드 라이프 게임 상에서 카지노를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 중독과 인터넷 도박 중독의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11시부터 12시까지는 Toneatto의 session이 있었습니다.
Toneatto는 도박 중독 분야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연구자이죠. 진행된 session의 주된 내용은 인지 치료, 행동 치료, 동기 강화 상담, 그리고 Minimal Intervention(MI)의 치료 효과를 비교한 것이었습니다. MI는 다양한 advice를 일종의 manual의 형태로 제공하는 치료적 기술인데 이 4개의 치료를 8∼10주 동안 각각 6 session 제공하고 12주 F/U을 거쳤습니다. 결과는 치료 간 효과 차이가 별로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MI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제 억측일 수 있지만 managed care system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결과를 유추해 낸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Toneatto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PPT 자료만 참고해서 이 연구에 대해 개인적으로 코멘트하자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confounding variable이 있는데 우선 모든 대상자들이 연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매 session 당 20달러에 해당하는 댓가를 받았으며, 치료자 변인 통제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등 design이 너무 엉성하더군요. Toneatto의 명성이 허명이 아닌가 의심되는 강의였습니다. 기존의 article도 다시 점검을 해야겠더군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적용하기 어려운 연구결과네요. 무엇보다도 치료 장면에서 치료를 하려면 아무리 효과적인 것으로 공인 받은 기법이라고 해도 case by case로 적용을 해야 하는데 치료 자율성이 없는 미국이 오히려 불쌍해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abstinence가 비교적 적다고 했는데 그래서 controlled gambling으로 가려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비용 효과적인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abstinence를 보장할 때까지 장기간을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MI는 이미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환경 조성 전략을 시스템으로 조금 더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치료 방법이랍니까? 쩝...
오늘 점심은 닭가슴살 요리였습니다. 다행히 더운 음식이네요. ^^;;; 아주 맛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인디언 커뮤니티의 대표가 나와서 인사말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노래(?)를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시골 촌장님이 갑자기 인사말 도중에 창을 하시는 격이었죠. 게다가 노래 풍이 우리나라 장례의 '곡'과 비슷해서 매우 낯설었습니다. -_-;;;;
1시 15분에서 2시 15분 사이에는 'Increases Engagement and Retention'이라는 주제로 session이 진행되었습니다.
도박 중독자들의 치료 참여율과 지속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핵심인데 첫 연자는 무슨 회사에서 나와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소개했는데 무슨 경영 컨설팅 회사의 설명회를 듣는 듯 했습니다. 추상적인 미사 여구만 나열했지 알맹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연자는 1999년부터 현장에서 일한 사람이라서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강조한 retention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확실한 응답, 2. 확실한 비밀 보장, 3. 희망을 줄 것 4. 빚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 5. 치료자가 GA 모임에 나갈 것, 6. 도박에 대해 잘 알아야 함.
확실한 응답을 위해 강조한 것은 Help Line이었는데 이 사람의 말대로라면 전문가가 24시간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신의 사생활이 침범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전문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도 궁금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도박자들이 과연 늦은 시간에 이 서비스를 이용할 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치료자가 GA에 나가는 것은 도박자 이외의 참석자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GA 분위기 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한 치료자가 도박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과연 잘 알아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치료자가 도박에 대해 잘 알면 좋겠지만 잘못하면 도박자의 도박 이야기에 말려 urge surfing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도박에 대해 빠삭하게 몰라도 치료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세 번째로 나온 UCLA 대학의 동양인 박사(Timothy Fong)가 소개한 UCLA의 프로그램도 가족을 참여시켜라, 교재를 제공하라, 질문지로 피드백하라 등등 이미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모두 사용하고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초기 등록에 400불이나 내야 하더군요. 게다가 매 session마다 200불을 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기를 바랍니다. 정말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도박이 아니더라도 client를 파산시킬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숙제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만큼의 돈을 냈으니 뭐라도 줘야 client가 안심을 하겠지요. 역시 문화적인 배경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제 경험 상 숙제가 효과적인 도박자도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오는 도박자도 있거든요.
캐나다에서 온 전문가도 지적했지만 이번 session에서 미국의 보험 제도가 아주 제대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왜 치료를 받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내야 하냐, 도박자가 치료를 받을 돈이 어디 있냐고 하니 아무 말도 못하더군요. 물론 도박 중독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특성 상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시 15분에 시작해서 1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는 escape gambler(EG)와 action gambler(AG)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이지요. 성차와도 연결해서 보면 좋고요. 초반에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 EG는 여자가 많고 성격을 포함한 다른 문제가 없고, 대박 경험이 없는 대신 trauma history가 있는 경우가 많고요. AG는 이와 반대이죠. 내용을 들어보니 action이 미국 문화에서 긍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고 escape는 그 반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누는 것이 과연 어떨지 알아보기 위해 한 것 같더군요. 두 단어가 반대의 뜻이라기보다는 그저 구분에만 사용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참 쓸데없는(?) 연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군요.
질문지를 받은 뒤 7명의 치료자가 평정을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도박 동기 질문지(GMS)로 평가하는 것이 훨씬 나을텐데 말이죠. 실제로 치료자의 치료 성향이 bias였던 것으로 나왔습니다. 쯧쯧...
이 사람은 이 session의 좌장을 맡은 사람인데 Custer라고 하더군요. 도박 중독계의 선구자인 그 Custer? @.@ 제가 알고 있는 Custer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찌된 일인 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잘못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워낙 영어 실력이 얕다보니...
4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강의의 주제는 'Caring for the Caretakers'였습니다. 치료자가 burnout되지 않기 위한 방안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일종의 건강한 상담자 되기에 대한 것이네요. 이전에
제가 책으로 리뷰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상당히 추상적이네요. wholeness가 나오고, soul이 나오고 난리입니다.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의 freedom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네요. 어이가 없어서리.... 길거리에서 느닷없이 총을 맞아 죽을 수 있는 나라에서, 밤이 되면 혼자서 걸어서 외출하면 안 되는 나라에서 freedom을 논하다니 참 어이가 집을 나가네요. 아마도 안 들어올 듯 합니다. -_-;;;
대부분의 session은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끝나지만 그 시간이면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쯤 되는지라 일과를 마치면 꼭 밤을 센 것처럼 파김치가 되네요. 에고 힘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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