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9월 4일 토론회에서 사감위가 제시한 '해외에서도 문제성 도박자와 중위험 도박자를 합쳐 도박 중독 유병률을 산정한다'는 반박 논리 중 일부입니다.
'영국 포함, 해외에서도 도박 중독 유병률 조사 시, 문제성 도박자(Problem Gambler)와 함께 중위험 도박자(Pathological Gambler)를 포함하여 도박 중독 유병률을 측정한다'
'문제성 도박자와 중위험 도박자를 포함하여 CPGI로 유병률 측정 사례
- 영국 콜롬비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2003)
- 브리티쉬 콜롬비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2003,2008)
- 캐나다 도박문제 전 국민조사(2005)
- 온타리오 문제성 도박 조사(2005)
-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2006)'
여기에서 첫 단락의 Pathological Gambler(병적 도박자, DSM-IV에서 사용하는 분류 기준)를 Moderate Risk Gambler(중위험 도박자)와 헷갈리는 것은 차라리 애교 수준입니다. 뭐 정신줄을 놓으면 스펠링을 틀릴 수도 있죠(웃음).
사소한 실수를 하나 더 지적하면 CPGI를 사용했다면서 CPGI 분류에서는 사용하지도 않는 '도박 중독 유병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군요. 엄밀하게 말하면 문제성 도박 유병률이라고 해야죠. 자기네들이 사용하는 측정 도구의 사용법도 모르나요?
위의 실수들은 제한된 시간에 날림으로 자료를 작성하느라고 생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래의 실수는 더 어이가 없습니다.
문제성 도박자와 중위험 도박자를 포함하여 유병률을 측정한 사례로 든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영국 콜롬비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2003)'가 가장 압권인데 영국의 경우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를 199년과 2007년 2차례에 걸쳐 실시한 바 있습니다. 2007년의 조사에서 1999년 조사 결과와 비교한 자료도 함께 내놓았죠. 2003년에는 조사를 실시한 바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영국 콜롬비아? 영국에 그런 지명이 없을텐데요. 알고보니 이 사람들이 캐나다 British Columbia 주에서 2003년에 실시한 유병률 조사를 British라는 말이 들어가니까 영국인 줄 알고 영국 콜롬비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바보 아냐?).
그렇다면 캐나다 British Columbia주의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 결과는 과연 어떨까요? 얼핏 보면 문제성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을 합한 수치를 사용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문제성 도박 유병률을 '고위험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7p의 표에서 'Moderate/Severe Problem Gambler'라는 범주로 구분을 하고 있고 본문에서도 대다수의 문제성 도박자가 중위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2003, 2008년 자료 어디에도 두 유병률을 합한 수치만을 제시한 곳이 없습니다. 아주 지 마음대로 인용했네요.
다음으로 캐나다 도박문제 전 국민 조사(2005)입니다. 여기에서도 표면적으로는 두 유병률을 합쳐 제시했습니만 역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1990년대에 캐나다에 급속하게 번진 VLTs(Video Lottery Terminals)의 영향에 따른 캐나다 각 주의 유병률 비교를 목적으로 실시한 조사이기 때문에 연구 편의 상 두 유병률을 합쳐 제시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215p Table 2). 그러면서 연구자들은 두 범주를 하나로 합쳐 제시한 것이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CPGI 범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종단 연구와 population-based study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한점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문제성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을 각각 구분해서 표로 제시(215p Table 1)하고 있죠. 그러니 두 유병률을 합쳐서 제시한다고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문제성 도박 유병률 조사(2006)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2001년 SOGS를 사용해 수행된 유병률 조사 결과와 비교(114p)하기 위해 임상 집단에 사용하는 SOGS와 일반 인구 집단에 사용하는 CPGI를 수평 비교할 목적으로 임의로 문제성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을 합쳐서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측정 척도와 비교하기 위해 표준 점수로 변환하는 것과 유사하게 비교를 위해 임의로 유병률을 합쳐 제시한 것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비교 목적이 없는 경우 CPGI를 사용한 세계 어느 유병률 조사에서도 두 유병률을 합쳐 하나의 수치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이 연구에서도 SOGS와 비교가 필요없는 부분에서는 두 유병률을 분명히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114p Table 4.3, 115p Table 4.4 등).
마지막으로 밑에서 두 번째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문제성 도박 조사(2005)는 확인해보니 문제성 도박 유병률(0.8%)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2.6%)을 각각 구분해서 기술하고 있더군요(8p & 45p table 4.1.0).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발표했네요. 무식하면 이렇게 용감해질 수도 있네요. 대단해요~
사감위에서 문제성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을 합쳐서 제시했다고 내놓은 자료는 이처럼 뒤집어 보면 하나도 근거가 없는 것들 뿐입니다.
제가 review해 본 바에 의하면 CPGI가 개발된 이후에 문제성 도박 유병률과 중위험 도박 유병률을 따로 구분하여 제시하는 유병률 조사 연구만 해도 영국(2007), 호주 Tasmania주(2005), 호주 Queensland주(2006~7), 호주 Victoria주(2004), 캐나다 Quebec주(2002), 캐나다 Manitoba주(2006), 캐나다 Saskatchewan주(2002), 캐나다 New Brunswick주(2001), 캐나다 Ontario주(2005), 캐나다 Newfoundland & Labrador주(2005)에 이를 정도로 많습니다.
사실
제가 황당해하는 부분은 이 자료를 작성한 실무진의 실수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자료가 그대로 외부로 발표될 정도로 사무처 직원, 사감위원, 사감위 전문위원들 어느 누구도 제대로 검증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정말 문제이죠. 보고도 그대로 발표하게끔 통과시켰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감위는 정말 희망이 없으니까요.
제가 일하는 기관의 경우 외부에 발주한 연구 용역이라고 하더라도 세 명의 전문가가 중간 중간 진행 과정을 검수하여 필요한 부분을 제언하고 중간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 모두를 점검하여 잘못된 부분을 확인, 공유하고 그 윗선에서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박중독문제를 총괄하는 국가 조직이 일개 기관의 검증 시스템만도 못한 모습을 자꾸 보여준다면 그런 어설픈 조직을 누가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좀 더 분발해 주세요.
덧. 지금 하고 있는 꼴을 보면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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