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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죽음의 밥상(제가 카트에만 넣어놓고 아직 구입하지 못한 책. T.T)'으로 유명한 Peter Singer가 2009년에 내놓은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부'와 관련해서 최고의 책이라 평가합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비슷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단순히 우리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전세계의 절대 빈곤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현실감있게 보여줄 뿐 아니라 기부를 하지 않으려고 꺼내는 모든 핑계에 대해 설득력있는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희생해야 윤리적이라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실천윤리학의 쟁점 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인데도 국민 총소득의 0.09퍼센트만 기부하는 나라의 국민이라는게 정말 미치도록 부끄럽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경제 규모에 비례한 원조 규모에서 세계 최하위권에 속하는데도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은 현재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 기부를 생각하고 있으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내가 왜 기부를 해야 하는건데?'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기부가 싫어, 게으르고 자립 의지가 없는 자들을 위해 내가 왜 돈을 내야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 '기부가 대체 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_-;;;
네, 모든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꼭 읽으세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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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은 매일 1.25달러인데 그 이하의 수입 밖에 없는 사람의 수는 14억 명이나 된다. 게다가 1.25달러는 구매력에 따른 조정을 마친 숫자이므로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구매력을 갖는 금액이다. * 스스로를 남의 입장에 놓는 일, 아이의 부모 또는 아이 자신이 되어보는 일이야말로 윤리적인 생각의 전부다*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을 놓고 "내 탓이 아니라 게으른 그자들 탓이다"라고 한다면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내 탓이 아니라 무기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 맹자 - * 뭔가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할 '당위성'이 있다는 것은 다르다. 즉 내가 돈을 물쓰듯이 쓸 권리는 분명 있지만 그런 행동의 당위성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를 인정한다면, 가령 세금을 추징하는 일처럼 부자들에게 돈을 더 내게 하는 일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마련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절대 빈곤 상태의 사람들이지, 이웃에 비하면 가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아니다. * 지금 기부하는 것이 일단 투자하고 나중에 기부하는 것보다 낫다. 왜냐하면 사회 문제란 오래 지속될 수록 더 고약해지기 때문이다. *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6가지 심리적 요인들1. 내 눈에 보여야 불우한 사람이다 : 인식 가능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on effect)에 의해 우리는 '통계적인 생명'을 구하기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희생자를 구하는 쪽에 훨씬 더 열중한다. 2. 그들보다 우리가 먼저다3. 헛수고는 안 한다: 구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4. 책임이 불분명하면 나서기 어렵다.5. 왜 나만 도와야 해?6. 결국 돈이 문제다: 얼핏 지나가는 식으로 돈이나 관련 이미지에 노출시키기만 해도 사람들은 도움을 주거나 받는 일에, 또한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는 일에 관심이 줄어들게 된다. * 구호 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보다 무역 장벽을 없애는 캠페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강력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무역 장벽의 제거에 반대하여 결집해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변화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 문제는 우리가 너무 적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생산한 식량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 가족을 신성시하는 것은 모든 욕망과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내가 담배 회사에서 일하는 건 돈이 좋아서야"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하기 싫어. 하지만 애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게 이런 식으로 변명이 된다. * 다른 사람이 공정한 몫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손쉽게 아이를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는 선택을 정당화하는가? 나는 이 문제의 해답이 명백하다고 본다.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할 몫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의 존재는 그냥 주변에 널린 바위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공정한 몫 이론에 따르면 차라리 그들은 진짜 바위만도 못하다. 주변에 바위 뿐이라면 우리는 한 아이를 구하고 지체 없이 다른 아이를 구하러 다시 뛰어들었을 테니까. 이처럼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할 수도 있는데 제 몫을 다했다며 팔짱만 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물에 빠진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 이제는 거부들이 돈을 쓰는 방식을 어리석지만 무해한 허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남들에 대한 배려를 극단적으로 무시한 짓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윤리 문화를 일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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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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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지기님의 북크로싱으로 받은 책인데 간만에 흐뭇한 독서를 한 듯하다. 예전에 사회단체에서 일하던 친구와 논하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그 때만해도 목적에는 동의하나 방법적인 부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