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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일단 심리치료와 상담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으로 강력 추천부터 한 방 때리고 들어갑니다.
제가 볼 때 우리나라 심리치료 서적 분야에 부족한 게 몇 가지 있는데(사실 엄청 많지만) 제가 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상담 과정의 진실을 가감없이 상세하게 보여주는 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임상 현장에 뼈를 묻은 고수의 수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과 있다고 해도 그런 고수들은 도무지 책을 쓰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출판은 가뭄의 단비와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동 치료 서적 분야에 이보연 선생님이 계시다면 성인 치료 서적 분야에 이흥표 선생님이 새롭게 등장했다고 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머리말에도 밝히고 있듯이 '내담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상담자들이 놓치는 부분 중 하나가 내담자를 객체화해서 자꾸 분석하고 파헤치려는 것인데 이흥표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제목으로 '사람은 왜 아픈가'보다 '상처, 치유 그리고 관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더 어울린다고 보는 편입니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세 명의 내담자와 상담한 내용을 중심으로 그동안 쌓아오신 다양한 분야(진화 심리학, 정서 치료, 인문학 등)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모두 쏟아넣으신 것 같습니다. 들어간 공력과 노력이 절로 느껴지더군요.
저처럼 이흥표 선생님도 어빈 얄롬을 멘토로 생각하고 계셔서 그런지 저는 읽기가 참 편했습니다. 어빈 얄롬의 글쓰기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상담하는 장면을 관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얄롬과 다른 면도 분명히 느껴졌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멋지게 보이려는 겉멋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상담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분노, 당혹감, 짜증, 가슴떨림 등을 날것 그대로 하나도 포장하지 않고 보여주셔서 후학으로서 안심도 되고(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상담자라면 다들 경험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안도감), 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대체 상담이란게, 심리치료란게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단계를 거치고 어떻게 종결을 하는건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입니다. 특히 미래의 심리치료자나 상담자를 꿈꾸고 있는 예비 임상가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덧. 개인적인 궁금증이기도 한데 이 책에 등장하는 내담자는 하나같이 여성이더군요. 이흥표 선생님이 여성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 더 드라마틱한 치료 역동이 전개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케이스를 선별한 것인지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냥 제 느낌입니다만 남성보다 여성을 상담하실 때 더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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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치료는 불평과 비난의 단계를 지나 그런 불평과 비난의 역할과 무용성을 직면하는 데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를 만들었거나 적어도 지속/악화되도록 기여하는 내담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설령 타인이 내담자의 불행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해도, 치료의 목적은 내담자가 그 불행의 사슬을 스스로 끊게 하거나 변화시키도록 하는 데 있다.
*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머릿속의 기억이다. 실제보다 과장되었거나 변형된 기억들이 각인되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 세상은 항상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불행을 극복하려면 불행이 자신의 탓이 아님을 아는 것, 불행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며 하필이면 나였다는 것, 인간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예측이 불가능하고 실패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 그러나 남 탓을 하지 않고 그 불행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애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정직하게 일러 줄 의무가 있었다.
* 때로 내담자의 길은 나보다 항상 혹독해서 미안하다.
* 책은 씹고 씹은 다음 버려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 우리의 사랑에는 사실 항상 조건이 떠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조건없이 사랑한다고? 그건 허위다. 부모조차 자녀가 자기를 따르고 순종하는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사랑한다. 부모들은 이기적이다. 모성은 원래 이기적이다.
* 치료는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며 분석에는 언제나 주지화의 위험성이 있다. <- 이거 진짜 반성되는 말
*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항상 냉정하고 이지적인 자기 분석이나 이해보다 뜨거운 체험이 필요하다.
* 극복하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겨 내는 것보다 버텨 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인생에는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 두려움이 슬픔과 더불어 혹은 슬픔보다 앞선 생의 근원적인 문제임을 이제 안다. 사실 슬픔은 애도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오는 것이다. 슬픔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음을 몸이 비로소 실감할 때, 그 무엇이 자신을 떠나갔음을 알았을 때에야 온다. 그때까지는 고통, 공포와 분노, 수치와 죄책감이 버무려진 온갖 단계를 넘어야 한다.
*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두려움과 죄책감, 분노의 장벽을 넘어서 가슴으로 진정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애도는 가슴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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