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은 종합병원 이상의 3차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즉 개인 의원은 이 글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상을 종합병원 이상으로 한정한 이유는 제 지식의 범위가 개인 의원에 대한 것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사회 공익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조금이라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종합 병원의 경우 실제로 수익을 내는 병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서울 시내 3대 병원 중 하나인 S병원의 경우 동양 최고 수준의 영안실과 장례 시설 때문에 겨우 적자를 모면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S대 부속 병원이 얼마 전 이 병원의 뒤를 따라 VIP를 위한 영안실을 만들었죠.
그렇다면 왜 적자인 병원을 운영할까요? 병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첫째는 병원을 운영함으로써 모기업에 상당한 액수의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병원을 운영함으로써 사회 공익적인 측면을 이미지 마케팅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쨌거나 병원 운영은 기본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장사(?)이기 때문에 머리를 굴려서 돈이 나올 수 있는 구멍을 자꾸 파야 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아는 것만 추려보면...
1. 입원실 문제.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는 다인실에 비해 1인실이나 2인실은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할뿐더러 상대적으로 매우 비쌉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다인실 입원을 꺼리고 이미 입원한 환자를 1~2인실로 옮기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실제 입원할 때부터 얼마동안 1~2인실에서 입원할 것을 조건으로 다인실 입원을 허락하는 일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병상 회전율 문제
병상 가동률도 실적이 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병상이 지나치게 비어 있을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실제로 이미 입원한 환자가 병원에 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은 입원 시 다양한 검사를 받을 때뿐입니다, 이미 입원한 환자는 병원의 수익을 증가시키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기 요양 병원을 제외한 종합 병원에서는 장기 입원하는 환자를 싫어하며 정신과의 경우 한 달 이내에 퇴원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환자의 경과나 재발과 같은 중요한 요인들은 차선으로 밀려나게 마련입니다.
3. 검사 문제
병원에는 Routine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입원하면 진단과 상관없이 무조건 하는 검사죠. 일부 병원에서는 진단과 상관없이 CT나 MRI 같은 검사도 루틴으로 실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병원의 수익은 이 루틴 검사에서 발생합니다. 대부분 고가의 검사이고 입원시에는 보호자들도 경황이 없어서 담당의가 하자는 대로 하게 되니까 받게 됩니다. 웃긴 것은 병원을 옮기면 의무 기록 복사를 신청해 이전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를 그대로 가져오면 되는데 옮기는 병원에서는 똑같은 검사를 다시 하라고 하죠. 지네들 귀찮다고...
제가 일했던 S병원의 경우 최근 Staff들에게도 실적제도를 도입해서 연봉을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요새 S병원의 임상 심리학자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심리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단일 수가 대비 심리검사만큼 정신과에 돈이 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러니 무조건 심리 검사를 refer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점심시간을 2교대로 하면서까지 검사실을 풀 가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Staff들도 예전처럼 뒷짐지고 에헴 하던 버릇대로 일을 해서는 연봉이 깎이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밑의 fellow들을 족치고, 레지던트들을 족치고, 간호사들을 족치고, 임상 심리학자들을 족치고, 돈이 되지 않는 치료 시설은 없애고, 돈이 되는 검사 시설은 만들게 된 것이죠.
4. 진료 시스템 문제
제가 일했던 S병원에서는 예진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병원에는 레지던트가 보는 일반 진료와 Staff이 보는 특진이 있습니다. 당연히 특진 비용이 더 비쌉니다. 그런데 시간과 Staff의 수는 한정이 되어 있어 대체로 오전 일과 시간에 한 사람의 staff이 볼 수 있는 환자의 수는 8명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래서 12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 staff이 보기 전에 staff과 짝지워진 레지던트가 기본적인 병력 조사를 미리 하고 staff은 핵심적인 진단만 내리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것이 예진 시스템입니다. 그렇다면 100% staff 특진이 아니므로 진료비가 특진비에 비해 저렴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진료 시간 때문에 환자들은 불만스러운데 진료 시간도 줄이면서 진료비 할인도 없다고 하니 부당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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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과의 경우는 제가 잘 모르니 정신과에 관한 이야기만 해보면....
1. 얼마 전 제가 아르바이트로 검사를 하는 병원(개인 의원입니다)에 16세의 여자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더랍니다. 마산의 S병원 정신과에서 '정신 분열증'으로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아오던 중에 어머니가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해서 찾아왔다고 하는데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정신 분열증이 아닌 것 같아서 저에게 검사 의뢰를 했고 제가 지난주에 종합 심리 평가를 했는데 정신 분열증은 터무니없는 진단이었고 경한 우울 증상이 있는 적응 장애가 제가 내린 진단이었습니다. 정신과에서 정신 분열증 환자를 자주 보다 보니 무디어져서 그렇지 정신 분열증은 당사자에게는 사실 실질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부작용이 동반되는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 이후로도 재발을 염려하며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게다가 정신 분열증 환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취업, 결혼 등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분열증 진단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남은 경우에 내려져야 하고 매우 신중하게 내려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그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대체 부작용이 동반된 1년 동안의 약물치료와 어머니의 심적 고생은 무엇으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2. 이건 제가 근무하던 S병원 정신과의 소아 정신과장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온 사람인데 이 사람의 지론은 "소아 정신 분열증은 없다"입니다. 그래서 소아 정신 분열증이 의심되는 아동이 입원해도 진단은 대부분 소아 우울증이고 병동 미팅에서 사고 장애니 환청이니 하는 증상 이야기를 하면 레지던트의 경우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나고 임상 심리학자의 경우는 심리 검사 결과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일쑤입니다. 소아에서 정신 분열증이 발병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 분열증에 걸린 사람을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정서적으로도 피폐해집니다. 이를 황폐화되었다고 하는데 제가 1년차 때 입원해서 소아 정신 분열증으로 강력히 의심되던 소아가 우울증 진단 하에 항우울제만 먹고 외래에서 치료를 받다가 2년 뒤 재발하여 병동에 다시 입원했는데 거의 바보가 된 그 아이를 보고 충격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으로는 그 소아 정신과 과장을 옥상에서 밀어버리고 싶더군요. 병원에서 무식한 건 속죄할 수 없는 죄입니다.
3. 이건 제가 있던 병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2호선 H대 부속 병원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 병원 정신과의 과장은 소아 정신과 담당인데 이 의사가 임상 심리학자에게 refer하는 소아 환자의 90% 이상은 예비 진단이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랍니다. 물론 ADHD가 최근 부쩍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아 우울증과 적응 장애 환자들이 많은데 무조건 ADHD 진단을 내린답니다. 알고 보니 ADS라는 주의력 검사를 하려면 ADHD라는 예비 진단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검사가 10만 원이 넘기 때문에 정신과의 실적 및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따라서 나중에 진단이야 다시 내리면 되는 것이고 일단은 무조건 ADS를 실시하도록 하기 위해 예비 진단을 ADHD로 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로 주의력의 문제가 전혀 없는 아동의 경우도 무조건 이 검사를 받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보호자의 등을 쳐먹는 수준 아닙니까?
제 생각에 병원은 더 이상 환자를 치료하는 공익 기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사기꾼들이 설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병원과 의사의 권위에 굴복하고 달라는 대로 지갑을 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공부하고, 부당한 대우의 개선을 요구하고,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도록 감시해야 하는 곳에 불과합니다.
덧말. 도박 중독 환자를 병원에 보내면 십중팔구는 Revia라는 알코올 중독 치료제를 처방받습니다. 이 약은 알코올 중독 환자의 갈망(Craving)을 낮추는 약인데 이 약을 먹으면 술 생각은 나지 않지만 도박에 대한 갈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100mg을 꾸준히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약만 먹고 치료된 환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약이 엄청나게 비싸서 2주분 약값이 거의 10만 원에 육박합니다. 물론 의사들이 도박 중독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약값이 비싸기 때문에 처방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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