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이름이 알려진 모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단 상담의 실상을 최근에 우연히 전해듣고 충격을 받은 김에 제가 생각하는 집단 상담의 조건에 대해 정리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상담자가 느끼는 난도 순으로 단순히 순서를 매겨 보면,
개인 상담 < 커플 상담 < 집단 상담 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회기에 참여하는 내담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역동이 복잡해지고 그만큼 상담자가 다루어야 하는 경우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실 집단 상담은 아무나 하면 안 됩니다. 상담자 중에서도 고수급(?)인 상담자들이 주로 이끌곤 합니다.
저는 그런 고수도 아닐 뿐 아니라 집단 상담보다는 개인 상담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집단 상담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제 경험 상 집단 상담이 잘 돌아가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게 좋습니다.
1.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homogeneity)
: 제 생각에는 이 조건이 가장 중요한데 집단 상담에 참여하는 내담자의 면면이 비슷할수록 집단 상담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물론 저와 견해를 달리하는 상담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건 그런 상이성을 control할만큼 상담자가 고수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는 다음에 설명할 집단 상담의 목적이 무엇이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도박 중독 집단 상담의 예를 들면 20~30대의 미혼 남성 도박자를 집단으로 구성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기혼자가 끼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도박자가 포함되면 누구나 체감할 정도로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더군요. 가능하면 동질성이 높은 내담자들로 집단을 구성해야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학연, 지연 등 통제 불가능 변인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상담 목표 달성을 위해 곧바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2. 상담 목표의 구체성(specificity)
: 1번 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상담 목표가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구체적이고 세밀할수록 집단 상담의 효과가 커집니다. '대인 관계를 잘 맺고 싶다' 류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5명 이상 크기의 모임에서 10분 이상 발표하면서 시선 처리를 잘 하고 싶다'는 식의 목표가 달성하기 쉽습니다. 저는 집단을 구성할 때 상담 목표를 설정하면서도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을 동시에 고려하는데 '부모의 지나친 개입이 도박 중독 치료에 해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는 미혼의 남성 도박자들로만 집단을 구성'하는 식입니다.
3. 능력있는 상담자의 적극적 개입
: 집단 상담을 진행해 본 경험이 풍부한 상담자일수록 유리하지만 최소한 집단 상담을 이끄는 상담자는 적극적인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집단원이 상처받고 있는데 역동 분석을 한답시고 뒤로 물러나 방관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회기 중 내담자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놓이면 안 됩니다.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시자(beholder)의 역할만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위의 조건들이 집단 상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충분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집단 상담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기 위한 필요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정신 병리 문제의 변별
: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많은 집단 상담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건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 충분 조건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반사회성 성격 장애를 가진 내담자와 수동-의존적 성격 장애를 가진 내담자가 동일한 집단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고 폭력 전과가 있는 남성 내담자와 가정 폭력 외상이 있는 여성 내담자가 한 집단에 속하게 된다면요?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집단 상담이 맞지 않는 내담자들이 있습니다. TCI에서 고립된-겁많은 기질의 소유자로 평가되고 평가 불안이 높은 내담자가 직면이 난무하는 집단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집단 상담에 참여하는 모든 내담자는 세심한 심리평가와 사전 선별 절차를 거쳐 이 집단 상담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지와 다른 내담자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를 세심하게 점검받은 뒤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선별 절차가 없는 집단 상담이라면 절대로 제 내담자를 의뢰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집단 상담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조건을 하나 말씀드리면 집단 상담을 받는 모든 내담자는 개인 상담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은 역동이 많이 다르지만 함께 받을 경우 시너지를 내기 쉽습니다. 특히 집단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자가 개인 상담도 담당하면 더욱 좋지요. 예전에 제가 개인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들만 모아서 집단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상담에서 가장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담자들의 만족도 뿐 아니라 치유 정도도 가장 좋았고요. 물론 도박 중독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한 상담이어서 일반 상담 현장에서 저처럼 진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악의 집단 상담이라면 반대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겠지요. 상담자가 집단 상담의 전문가도 아니고, 집단원의 동질성도 희박하여 중구난방이며, 상담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 감정 폭발이나 상호 비방의 전쟁터가 되기 일쑤이고, 정신 병리 문제를 변별하지 못해 내담자들을 보호할 수 조차 없는.... 저는 그런 걸 상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아수라장이고 그걸 방치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라 가해 방조자입니다.
저는 가해 방조자가 되기를 원하는 상담자는 없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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