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경기도 모처에 있는 보육원으로 심리검사 및 상담 자원봉사를 다녀 왔습니다.
9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초행길에 헤매느라고 15분 정도 늦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았는데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인터넷으로 출력한 지도까지 보여줬는데에도 끝까지 모른다고 딱 잡아떼더군요. '마수걸이'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별 말 없이 내리기는 했는데 "아저씨 인생 그렇게 사시면 벌 받습니다" -_-+++
제가 자원봉사를 나간 보육원은 예상보다 시설이 매우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신생아에서부터 18세까지 120여 명 정도 되는 아동이 있고, 18명의 생활 지도원(엄마, 아빠라고 부르는)을 포함해 직원이 34명이나 되는 곳이었죠.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도 그렇고, 식당, 강당, 교육관도 모두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원장님 말씀마따나 입고, 자고, 먹는 것은 어느 가정에도 뒤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아빠 역할로 자원봉사를 하는 생활 지도원들이 자기 집보다 더 낫다고 농담을 할 정도니까요.
그러나 '입성'이 깨끗하다고 해서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배신감, 좌절감, 사랑받지 못하고 큰 마음의 멍까지 치유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심리검사 및 상담을 받기로 사전에 선택을 한 아이들은 모두 36명으로 초등학생 16명, 중학생 10명, 고등학생 10명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심리적인 문제보다는 진로/적성 상담을 하려는 목적이 더 컸고,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오전에는 2시간 동안 아이들을 나누어 질문지형 검사 도구를 집단으로 실시하고 오후에는 세 명의 전문가가 아이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릴레이 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맡은 아이들은 14명(원래 12명인데 나중에 2명 추가되어)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하루종일 상담하였습니다. 최대한 집중해서 진행했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상담을 하였는데에도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아이들의 신상기록카드를 빠르게 읽고 상담을 하였는데, 친모가 가출을 하면서 유기한 후 친부가 데려갔다가 다시 버린 아이, 5명의 형제 자매가 한꺼번에 버려져 뿔뿔이 흩어진 상처를 가진 아이, 친부가 친모, 동거녀, 동거녀의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동거녀의 아이들을 성추행하고, 상습 폭력을 휘두르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다 보호 조치된 아이 등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울컥하는 감정을 통제하면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참 쉽지 않더군요. 꼭 '자녀 출산을 위한 부모 시험'을 치러서 통과한 사람만 아이를 낳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좋은 시설에서 자라는데도 아이들은 사람을 믿지 않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같은 생활관의 형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순응하고 맙니다. 그보다 더한 상습적인 폭력을 당했던 아이들이 많아서 그 정도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기에서 살아가려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형제, 자매, 남매가 함께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경우 나이와 연령에 따라 생활관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생활할 수가 없고 '엄마', '아빠'가 다릅니다. 그래서 형이 '형의 엄마'에게 체벌을 받는 경우에도 동생은 말리지도 못하고 '자신의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지도 못해 그냥 보고 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bonding되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일이 많은데 문장완성검사에서도 "내가 가장 슬픈 것은 형이 우는 것/동생이 엄마에게 혼나는 것"이라고 보고하거나 "앞으로 꼭 둘이서 같이 살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상담을 하면서도 자기 형제에게 불이익이 혹시라도 갈까 전전긍긍하고 상담자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모습이었습니다.
중학생들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라서 그런지 행동의 제약과 간섭에 매우 민감하더군요. 학교 친구들에게 보육원에 산다는 것을 알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서 나가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도 못하고 그냥 막연한 환상만을 붙잡고 있어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여느 또래처럼 당장 취업과 진학의 고비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직업 선택의 기준이 그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고 그 밖의 대안 선택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역할 모델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체계적인 진로/적성 상담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낯선 상담 선생님에게도 쉽게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 웃음 뒤에 숨은 두려움, 불신, 고통, 낯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읽게 되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심리검사와 상담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개별적으로 전달하고 추가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은 일정을 다시 조정하기로 하였는데 돌아오면서 보람보다는 이 정도의 도움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참 막막하고 발걸음이 무겁더군요.
고민이 참 많이 되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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