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초기에 잘 형성한 rapport가 성공적인 상담을 보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첫 발을 잘 떼었을 뿐이죠.
그래서 상담자가 상담을 진행할 때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혼란을 느끼거나 정보가 없을 때 이를 인정한다.
-> 상담자가 상담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내담자가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없을 때는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낫습니다. 거짓말로 일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겠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담자는 생각보다 상담자의 거짓말을 빨리 눈치채기 때문입니다. 첫째도 '진실함', 둘째도 '진실함', 셋째도 '진실함'입니다.
* 내담자의 삶에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예상한다.
-> 아무리 내담자의 개인 신상에 대해 상담자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도 그건 평면적인 자료일 뿐 내담자와 내담자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위기가 닥쳐올 수 있습니다. 상담자는 이런 변화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 내담자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삶을 변화시킨 다른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이론적인 이야기도 좋고, 상담자의 자기 개방도 좋지만, 내담자는 자신과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는 다른 내담자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역할 모델로 삼기도 합니다. 단, 개인적인 정보를 너무 상세하게 노출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어떤 내담자는 자신의 사례도 그렇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 상담을 통해 내담자에게서 얼마나 많이 배우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 내담자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에게서 배우는 것이 없다면 그 상담자는 자신이 의사-환자 모델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의외로 많은 상담자들이 자신의 전지전능함(omnipotence)에 도취된 나머지 본분을 망각합니다.
* 상담자가 가지고 있었던 비슷한 문제들을 생각해본다.
-> 상담자가 비슷한 문제에 대한 해결 경험이 있다면 상담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고,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됩니다.
* 내담자에게 다른 상담자가 더 잘 맞을 것 같다면 의뢰를 고려한다.
-> 가끔 자존심(이게 왜 자존심의 문제인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내담자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상담자를 보게 되는데, 상담의 본질을 잊어버린 행동입니다. 상담은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지 상담자의 자기과시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다른 상담자에게 refer할 때 내담자가 받을 수 있는 충격(거절에 대한 공포라든지...)을 예상하고 다루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 요점을 전달할 때에는 길게 하지 않고 짧게 한다.
-> 요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 자체가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죠. 제 경우는 상담이 끝날 때 쯤에 그 날 상담의 핵심을 몇 마디 또는 더 줄여서 몇 단어로 요약해서 되짚어 줍니다.
* 내담자와 문제 상황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의 깊은 배려는 삼간다.
-> 자칫 잘못하면 내담자가 배려를 동정으로 오해할 위험성도 있고, 가장 중요한 '적절한 거리두기'에 실패하게 됩니다. 상담과 '하소연'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안 됩니다.
* 내담자가 치료적 또래 문화를 형성하도록 격려한다.
-> 상담자가 내담자의 인생 전부를 책임지려는 태도도 위험합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만나는 시간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1시간 남짓이고 6일 23시간 동안 내담자는 상담자 없이 홀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야 합니다. 따라서 치료적 또래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내담자의 생활 안에 쉼터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 원인이 무엇이든 내담자가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 지 확인한다.
-> 많은 경우, 특히 대인 관계 문제의 경우는 상호 작용에 의한 것이 많으므로 내담자가 일방적인 희생자가 아니지만 간혹 내담자가 희생양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 상담의 초점은 내담자가 희생양이 되었는지의 여부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이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 내담자가 주의를 끌고 싶어할 때에는 주목해야 한다. "좋아요. 저는 당신에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요?"
-> 상담자가 '적절한 거리두기'를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attention getting과 고통 호소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주의를 끌고 싶어할 때는 일단 주목해야 합니다.
* 친근하고 공감적인 태도로 직면시킨다.
-> 직면은 내담자가 감추거나 회피하고 싶었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내담자의 심리적 불편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자의 공감적이고 지지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내담자를 취조하듯이, 또는 내담자가 몰랐던 문제를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직면하게 되면 당연히 내담자는 저항하거나 심한 경우 튕겨나가게 됩니다. 특히 심리평가 결과에 대해 해석 상담을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 상처, 다툼, 곤경을 피하기 위한 시도로 무감각할 때에는 직면시킨다.
-> 환부가 썩어들어가게 될 때, 필요한 것은 외과적인 수술이지, 진통 연고를 덕지덕지 바르는 것이 아닙니다.
출처 : 유능한 상담자(Gerard Egan) 중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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