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포스팅의 모든 내용은 5월에 출판될 책에 수록된 내용이므로 절대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하시면 안 됩니다. 필요한 분들도 참고만 해 주세요.
제가 현장에서 도박중독자를 치료하면서 가장 흔히 듣는 질문과 답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Q. 도박을 완전히 끊지 않고 조절하면서 적당히 할 수는 없나?
A. 아직 도박중독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한계선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베팅 액수를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일시적으로 조절을 하는 것이 가능하나 일단 도박중독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선을 넘어서 추격 매수(chasing)를 하게 되어 무리한 베팅을 하게 되고 내성과 금단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만큼 도박중독은 자제력의 상실이 빠른 병이다. 따라서 일단 도박중독자가 되었다면 조절을 하면서 도박을 즐기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도박중독자가 도박을 조절하며 즐기는 것은 완전히 끊는 것보다 더 어렵다.
Q. 도박과 관련된 정보지(예, 경마의 경우 예상지)의 신뢰성은?
A. 정보지가 제공하는 정보가 그렇게 정확하다면 왜 정보 제공업자들은 스스로 도박을 하지 않고 투입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보지를 판매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이미 도박의 속성과 확률의 마술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자는 이들의 봉이나 다름 없다.
Q. 도박 생각이 나지 않는 약이나 뭔가 빠른 해결책은 없나?
A. 안타깝게도 도박 생각이 나지 않는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며 현재 도박중독의 약물 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주로 알코올 중독에 사용하는 날트렉손(Naltraxone)이나 그 밖의 기타 유사 정신 질환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현재 도박중독의 신체 기전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며 약물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도 계속 논쟁이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도 약물 치료를 원하는 도박중독자의 심리는 진정으로 치료를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만족 지연을 하지 못하고 매사에 충동적인 도박중독의 증상이 치료에도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Q.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면 끊을 수 있지 않나?
A. 대리 변제(도박중독자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행위)는 도박중독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도박중독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빚을 청산해 주면 도박중독자가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만 더 나빠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간혹 도박중독자를 금융채무불이행자(과거 신용불량자)로 만들지 않으려고, 또는 법적인 책임이나 채권자의 협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등등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분명 있지만 대리 변제는 도박중독을 악화시킨다는 원칙을 기억하자. 채무는 변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도박중독에 대한 치료가 우선되어야 하고 치료자와 상의하여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특히 빚을 갚아주면 치료를 받겠다고 협상을 하려는 도박중독자들이 의외로 많은데 치료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채무 변제는 치료와 독립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Q. 내가 도박중독자인지 어떻게 아나?
A. 각 치료 기관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자가 진단 테스트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며 도박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전문 치료 기관을 방문하여 전문가에게 1:1의 평가를 받는 것을 권한다.
Q. 도박중독자들은 왜 치료 받기를 거부하는가?
A. 무엇보다도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도박중독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도박중독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첫째, 도박중독을 병이 아니라 개인의 나약한 성격에 귀인하려는 폭넓은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도박중독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들이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셋째, 치료를 받아 도박을 끊고 싶다는 마음과 짜릿한 흥분과 즐거움을 주었던 도박을 계속 즐기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갈등을 빚기 때문이다. 넷째, 병원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언제든 자신이 끊고 싶을 때 끊을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Q. 도박중독을 치료할 때, 정식으로 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A. 회피와 대치 방법을 활용해 볼 수 있다. 회피는 그야말로 도박을 할 수 있는 장소, 시간 등 관련된 자극을 피하는 것이고, 대치는 병행할 수 없는 바람직한 행동을 도박 대신 하는 것이다. 당장 도박을 끊을 수가 없다면 현실적으로는 수입-지출 계획을 세워서 저축, 생활비를 계산하고 남은 여유 금액 중 일부를 떼어 내어 도박 자금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 때 월수입의 최대 5%가 넘지 않도록 한다. 또한 평소에도 외출을 할 때에는 최소 생활비를 제외한 여분의 현금을 소지하고 다녀서는 안 되며 현금화 할 수 있는 신용카드, 금붙이 등도 소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Q. 주변 사람들에게 도박 문제를 알려야 하는가?
A. 자신에게 도박중독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기 때문에 도박중독자는 당연히 자신의 도박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다. 가족 역시 도박에 대한 사회의 좋지 않은 인식 때문에 알리지 않고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도박중독은 반드시 경제적인 손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를 알리지 않다가 도박중독자가 주변의 사람에게 도박 자금을 빌리는 경우, 그 액수와 상관없이 대인 관계가 손상된다. 도박중독 치료에 있어 사회적인 지지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치료의 필수 조건이다.
Q. 도박을 끊는다고 다른 도박에 손을 대는데 괜찮나?
A. 예를 들어 경마를 끊는다고 로또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수익을 바라고 불확실한 사건의 결과에 돈을 거는 행위는 모두 도박이다. 도박중독자가 어떠한 도박을 하던 간에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도박을 끊으려면 도박의 종류를 가리지 말고 도박의 속성이 있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Q. 도박을 끊는 대신 술이 늘었는데 괜찮나?
A. 도박을 끊기 위해 도박을 대치하는 활동을 찾는 것은 중요한 치료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활동이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닌데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다. 첫째, 신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일 것. 도박을 끊기 위해 마시는 술은 최소한 신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권장한다. 둘째,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사실상 도박만큼 짜릿하고 재미난 활동은 거의 없기 때문에 흥미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Q.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A. 현장에서 치료자들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도박중독은 재발이 잦고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병이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신체 기전이 뚜렷하게 밝혀진 병이 아니기 때문에 도박에 대한 탐닉 정도와 기간, 그 밖의 다양한 요인에 따라 치료 기간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빠른 회복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발과 치료를 반복하며 몇 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치료 의지가 가장 중요한 회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