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토리니에서의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미코노스로 떠나는 날입니다. 산토리니가 남성의 섬이라면 미코노스는 여성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아기자기한 풍광으로 유명하죠.
9시에 출항이라서 6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떠나기 전에 산토리니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어 7시쯤 식사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피라 마을 어귀까지 걸어서 다녀왔지요.
냥이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피라 마을에도 인사도 하고
산토리니의 바다와 화산섬에도 인사를 했습니다.
피라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호젓하군요.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주민들이 사는 주택가는 참 조용하고 호젓하답니다.
손잡이가 참 인상적이죠?
뜨는 해가 교회의 첨탑을 비춥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Stani도 지나갔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make up room 비용으로 2 유로 동전을 하나 올려놓고 체크 아웃을 하러 로비로 나왔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한 reception desk지만 나름 다양한 여행 정보지와 책자를 비치하고 있습니다.
벽에 붙은 지도에는 투숙객들이 색깔핀으로 자기 국적을 표시할 수 있는데 유럽과 미국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도 몇 개 붙어 있네요.
직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호텔에서 제공한 픽업 차량을 타고 Athinios항으로 향했습니다. Athinios항으로 가는 길은 한계령 고개처럼 굽이굽이 구절양장 같은 길이더군요. 아찔한만큼 풍광도 근사하고요.
Athinios항구에는 꽤 큰 터미널이 있지만 안내판이나 전광판도 없어서 처음에 좀 헤맸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교통편의 시간이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미아가 되기 쉽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박한 대형 여객선의 선적이 끝나지 않아서 출항이 늦춰졌다고 하더군요(역시나~). 그래도 일정을 확인하고 나니 안심은 되네요.
크루즈에서 산토리니 관광을 위해 내리는 나이 든 여행객들인데 사진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풍랑이 심해서 배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내리고 있습니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저희가 타고 갈 배가 항구로 들어왔습니다. 생긴 것이 어째 미코노스까지 2시간에 주파할 것 같이 생기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역시나 제 육감이 맞았습니다(
참고 포스팅).
티켓에 <D, 123, E>라고 쓰여 있기에 당연히 좌석 번호인 줄 알고 느긋하게 줄을 섰는데 막상 승선을 해 보니 D구역의 맨 뒤에 아무데나 앉는거더군요. 이 때부터 점점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
배 안이 답답해서 옆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에게해는 정말 깊고 푸릅니다. 뱃전에 부딪혀 부서지는 포말을 보고 있으면 빨려들 것 같습니다. 물 속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뛰어들고 싶어진다는 말이 생각이 났어요.
심심해서 상갑판으로 올라가니 태닝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누울 만한 공간만 있으면 어디나 훌렁훌렁 벗고 드러눕네요. -_-;;; 저희 같으면 햇살이 따가워서 오래는 못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발랐는데도 나중에 보니 햇볕에 노출된 부위는 벌겋게 화상을 입었더라고요. 그만큼 지중해의 햇살은 따갑습니다.
1시간 정도 달려 Ios에 도착했습니다.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2시 30분에 Sifnos에 도착했을 때에는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코노스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파노라마 호텔에서 받은 티켓에는 26 유로라고 씌여 있었는데 나중에 일정이 변경되었다고 교환받은 티켓에는 13.6 유로라고 씌여 있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가 타고 갈 고속 페리가 선체 결함으로 결항되면서 일반 페리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호텔 직원들이 왜 그렇게 미안해 하는지 그 이유를 그 때는 짐작도 못했었지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오르네요.
그때부터 지루하고 힘든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2시간에 끝날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마실 것,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선내에 있는 스넥 코너에서 산 인스턴트 커피와 부실한 빵으로 점심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는 희안한 샌드위치(3.5 유로)인데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줍니다. 크기는 맘모스빵만큼 크고 안에는 치즈와 햄이 들어 있습니다. 맛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보니데와 어머니는 별로라고 하시는데 제 입맛에는 맞아서 제가 거의 다 먹었습니다. 오레오 쿠키(1.5 유로), 단팥빵(1.8 유로), 그릭 커피 3잔(1.5*3= 4.5 유로)으로 점심을 대신 했습니다.
각 섬에 들를 때마다 안내 방송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스어로만 나오기 때문에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내려야 할 섬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영어로 녹음된 테이프 하나만 구비해도 해결될 문제인데 여행자들을 참으로 불편하게 하더군요. 머리가 나쁘면 천혜의 관광자원이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얻었습니다.
Naxos에 있는 아폴로 신전의 모습입니다. Naxos를 여행하는 사람들만 들를 것 같이 쓸쓸한 곳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예전에는 참배객들로 붐비는 곳이었을까요?
Naxos에서 탄 영국인 한 명이 우리를 유심히 보고 있더니 급기야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었습니다. 사업 차 서울과 인천에서 산 적이 있다면서 반가워하더군요. 사업 겸 관광 차 이오스에서 3일을 묵고 파로스로 간다고 하는데 갑자기 태권도 시범을 보여달라고 해서 뜨아 했습니다(한국인이 모두 태권도 유단자도 아니고~).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군대에서 단증 딸 때 열심히 연습한 가락으로 몇 가지 기본 동작을 보여 줬습니다. 놀라면서 박수를 치는데 놀리는 건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_-;;; 어쨌거나 그 영국 사업가 때문에 한 구간은 심심하지 않게 잘 왔습니다.
배 밑으로 내려와 짐을 챙기고 나서 배가 접안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탈 때만 티켓 검사를 하기 때문에 내리면 그냥 알아서 각자 목적지로 가면 됩니다.
5개의 섬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미코노스에 도착했습니다. 9시 30분에 출발을 해서 7시 30분에 도착했으니 꼬박 10시간이 걸렸군요. 10시간 동안 바다에서 흔들렸더니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굴뚝 같더군요.
Costa Marina라는 대형 크루즈가 석양을 받으며 서 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큰 크루즈쉽이더군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마다 숙소에서 보내준 픽업 차량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미 예상 밖의 일정 변경으로 하루 종일 배에서 시달렸기에 다른 방도를 생각할 기력도 없이 거의 2시간을 기다렸건만 호텔에서 보내준다는 차량은 오지를 않더군요(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 페리 선착장은 코스에서 빠진다는... ㅠ.ㅠ).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리스 택시는 우리나라 택시와 비슷해서 행선지 물어보고 태우기는 기본이요, 합승도 옵션이거든요. 그리스 택시를 겪고 보니 외국 여행자들이 우리나라 택시를 이용할 때 느낄 분노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그래서 한 포스팅이
이것!!!). 결국 가방을 들고 일단 시내 쪽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걷고 있으려니 정말 비참하더군요.
선착장의 초입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보통 음식점에서는 택시를 불러주기도 하니 저녁을 먹고 불러주는 택시를 이용해 호텔로 가기로 했죠.
레스토랑 이름은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그래도 종업원들은 친절하더군요. 동네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오는 곳인 것 같은데 넓고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휴......
샐러드인데 시금치 데친 것을 페타 치즈와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9 유로나 하는데 시금치를 너무 데쳤는지 물크러져서 식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금치와 페타 치즈의 맛이 잘 어울리지도 않더라고요. 쩝...
샐러드보다 더 심했던 리조쪼(10 유로)입니다. 너무 짤 뿐 아니라 밥이 설 익어서 버적거리더군요. 딱 한 숟가락 먹고 그대로 남겼습니다. ㅠ.ㅠ
그나마 좀 나았던 스파게티(9.5 유로). 맛도 있고 양도 많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후식으로 주문한 그릭 커피(2.5 유로)입니다. 설탕, 프림을 넣지 말라고 주문하느라 신경을 많이 썼는데 '미디엄' 사이즈를 달라고 했더니 우리나라의 에스프레소 잔에 나오더군요. 켁~ 게다가 맛이 너무 텁텁해서 역시 실패했습니다.
계산을 할 때 보니 난데없는 3 유로가 더 포함되어 있기에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 세팅비라고 합니다. 허거덕~ 뭘 한 것이 있다고 테이블 세팅비를 3 유로씩이나 받습니까? 차라리 부가세라고 하지~
울며겨자먹기로 계산을 하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그래도 그건 순순히 들어줍니다. 카운터에 있는 종업원이 그래도 영어를 좀 알아들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식당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타고 온 거리를 보니 도저히 걸어갈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식당 종업원은 6~7백 미터라고 했는데 직선거리를 일러준 모양입니다. ㅠ.ㅠ 택시를 타고 오기를 잘했지요. 그래도 6.5 유로나 달라고 합니다(너무 비싸~). 너무나 지쳤기에 군말없이 줘서 보냈습니다.
로비는 좀 촌스럽지만 생각보다 호텔은 좋았습니다. 객실도 많고 넓은데다 무엇보다도 탁 트인 전망이 훌륭하더군요. 다만 직원이 방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X개 훈련 시키듯이 2번이나 엉뚱한 방으로 안내를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직원 맞남?). 게다가 예약해 둔 방으로 올라가니 세팅을 3인실로 해두지도 않았더군요. 그제서야 부랴부랴 하는 것이 영 어설펐습니다.
그래도 호텔 안에 수영장도 있고 그런대로 괜찮네요. ^^ 대충 호텔 안팎을 둘러보고 가져간 와인을 한 병 마신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정말 힘든 하루였습니다.
덧. 그리스에서는 선상 여행의 낭만을 찾으시다가 저희처럼 낭패를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산토리니에서 미코노스는 일반 페리로 10시간이나 걸리니 하루를 꼬박 잡아 먹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대한 항공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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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ke up room 비용 : 2 유로
* 점심 대용
- 커피 3잔 : 1.5*3 = 4.5 유로
- 오레오 쿠키 : 1.5 유로
- 단팥빵 : 1.8 유로
- 햄 치즈 빵(?) : 3.5 유로
= 11.3 유로
* 저녁 식사
- 리조또 : 10 유로
- 샐러드 : 9 유로
- 스파게티 : 9.5 유로
- 그릭 커피 : 2.5*3 = 7.5 유로
= 39 유로(테이블 세팅비 3유로 포함)
* 택시비 : 6.5 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