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면서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아 나가겠다고 할 때 상담자가 분명히 취해야 할 입장은 이것입니다.
"도박을 그만두지 않고 도박빚을 갚는 것은 처음에는 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치료적 측면에서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력을 통해 도박의 무익함과 도박을 하면서 빚 갚기가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찬성한다"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면서 빚을 갚는다고 할 때 상담자가 제시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박은 도박이고 빚 갚기는 빚 갚기이다. 절대로 도박을 해서 번 돈으로 빚을 갚아서는 안 된다"
즉 도박과 도박 빚을 분리하는 겁니다. 설사 초반에 돈을 따더라도 그건 다른 곳에 써야지 빚을 갚는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잃더라도 더 이상의 빚을 내지 말도록 권고도 해야 하지만 대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도박으로 딴 돈으로 빚을 갚지 않도록만 신경쓰세요. 어차피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지 않으면 빚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딴 돈으로 빚을 갚는 경험을 하게 하면 도박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됩니다. 나중에 도박 빚을 갚기는 커녕 빚의 액수가 더 늘어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조금이지만 어쨌거나 갚았던 적도 있다면서 도박을 하면서 빚을 갚지 못한 이유는 도박 자금이 부족했다거나 운이 안 따랐다거나 하는 등 이전과 동일한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그걸 막으려면 도박과 도박 빚을 분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도박을 계속 하든 말든 빚 만큼은 반드시 일을 해서 갚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도박을 지속하면 지속적인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채무 변제 계획을 세워서 기간과 금액을 정해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돈이 생기는 대로 갚겠다는 도박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도박을 하겠다는 걸 그냥 방치하는 꼴 밖에 안 됩니다. 간헐적인 빚 갚기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도박을 그만둬야 합니다. 도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간헐적으로 빚을 갚을 수가 없거든요.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당장 도박을 끊을 생각은 없으나 상담을 하면서 빚은 갚아나가기를 원하는 도박자가 있을 때 무조건 도박을 끊으라고 강권하지 말고 스스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도박으로 번 돈을 빚 갚는데 사용하면 안 되고 반드시 일해서 번 돈으로만 빚을 갚도록 하는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도박을 계속하는 한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걸 도박자가 깨닫게 되는데 그 기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면서 손실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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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담을 할 때 도박 중독자에게 왜 도박을 끊으려고 하는지 자주 물어보는 편인데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도박 중독자가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도박을 끊으려고 전문적인 상담까지 받는 것이니 왜 도박을 끊으려고 하냐는 질문은 왜 암에서 나으려고 하나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데 도박을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도박자는 도박을 끊어야 할 외부 원인만 찾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가족(아내, 부모님)이 싫어하고 끊으라고 하기 때문에, 도박을 계속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재산도 탕진하게 되니까 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은 상담을 하다보면 도박자가 심각하게 고려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게 금방 밝혀지게 됩니다. 즉,
스스로 도박을 그만둬야 할 이유(그 이유가 무엇이든,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하찮더라도 상관 없습니다)가 분명하지 않다면 외부 요인에 의해 도박을 끊으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을 할 때 역설적으로 상담자가 도박 중독자의 역할을 할테니 상담자의 역할에서 왜 도박을 그만둬야 하는지 나를 설득해보라고 주문합니다. 상담자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건 자신도 설득당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거니까요. 스스로 도박을 그만둬야 할 강력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도박 중독 치유가 어려울 것은 안 봐도 뻔합니다.
이렇게 역할 바꾸기를 해 보면 많은 도박자들이 도박을 계속 하면 재산을 잃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도박을 하면 안된다는 논리로 설득을 시도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믿으세요?"라고 되물으면 대답이 금방 군색해집니다. 왜냐하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돈 문제(도박을 계속 하면 결국은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는 생각)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큰 문제 같고 그것 때문에 도박을 끊으려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돈은 도박을 끊어야 할 이유로는 아주 약한 요인입니다.
그래서 설사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고 해도 도박을 끊어야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상담자를 설득할 수 없다면, 자신에게도 확신을 심어줄 수 없다면 도박을 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특히 그 변화가 중독과 관련된 문제라면 그 변화에는 강력한 계기와 이유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중독자들께서는 내가 도박을 그만둬야 할 돈 문제가 아닌 이유, 상담자가 설득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고 그 과정에서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은 두려움과 당당히 맞서야 하겠지요.
두렵지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 두려움과 맞설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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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박에 중독된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의아했고 지금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 중 하나는 도박을 하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도박을 오래 했다고 해도 도박과 상관 없이 살았던 삶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 때 어떻게 살았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물론 도박 중독이란게 도박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못하게끔 눈을 멀게 만드는 블랙홀 같은 존재이기는 합니다. 일단 도박에 중독된 이후에는 도박으로 돈을 딸 욕심에 사로잡히든, 도박 때문에 생긴 손실을 복구할 마음에 초조해지든, 어떻게든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으려고 혈안이 되든 간에 모든 삶이 도박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도박에 저당잡힌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분들은 도박을 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도박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고, 그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상상하고, 그런 삶이 주는 싱싱한 생명력과 소소한 즐거움을 상상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고 워낙 재발이 잦은 병이니 항상 무서워하고 경계하고 조심하고 다시 도박을 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고만 생각한다면 도박에서 자유로운 삶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도박 중독 치유의 목표는 재발하지 않기 위해 도박이 언제 내 뒤로 다가올지 두려워하며 평생을 곁눈질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언제 도박에 중독되었는지를 잊을만큼 생기에 가득찬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도박을 완전히 그만둔 내 삶이 어떤 모양일지, 어떤 느낌일지, 어떤 냄새일지, 어떤 소리일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도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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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빠지기 쉬운 착각 중의 하나는 모든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러 왔을거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어딘가 고통스러우며(모든 내담자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만), 대개는 그 고통을 덜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곧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담자가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살 맛이 안 나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통 때문에 독립할 필요 없이 부모님 슬하에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안정되게 살 수 있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심리적 고통을 상쇄할 수 있다면 내담자가 우울하다고 상담자를 찾아왔을 때 우울감 자체를 해소하고 싶어할 수는 있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해지는 경우 우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리어 피하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도박 중독의 문제로 끌어오면 그림이 좀 더 분명해지는데 도박 중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자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고 싶어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도박이 야기하는 고통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주관적인 이득이 있다면 결국은 도박을 그만두지 않을테니까요.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도박 중독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득을 계속 누리는 것이지 도박을 끊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말해 도박을 그만둬야지만 그 이득이 역설적으로 충족된다는 것을 도박자가 깨달을 때 비로소 도박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박 중독자가 당연히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전제하지 마세요. 이건 흔히 도박 중독 치료 교재에 나오는 양가 갈등(나는 도박을 그만두고도 계속하고도 싶다)과도 같지 않습니다.
도박을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상담하는 것이 먼저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할 때(상담자가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도박을 끊으러 왔다고 말하는 도박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흥미롭죠) 왜 끊으려고 하는지 꼼꼼히 물어봐야 합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간혹 도박을 계속 하게 만들려는 도박 충동의 입장에 서서 도박을 계속 하라고 유혹하고 정말 그만두고 싶다면 그 유혹에 반박해 보라고 도박자를 push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박 중독자는 당연히 도박은 끊어야 하는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과연 도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상담자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박을 해도 되지 않느냐며 선택의 결정권을 도박자에게 넘길 때 드디어 도박자는 자신의 도박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도박 중독자가 당연히 도박을 끊으러 왔을 거라고 함부로 전제하지 마세요. 도박을 그만두려는 것이 확실한지, 왜 그만두려는지를 충분히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도박을 그만두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을 살펴보는 것은 도박자가 도박을 그만두겠다고 확실히 결정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그 다음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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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뿐 아니라 단순한 행동 습관의 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변화의 다짐을 밖으로 알리는 공표를 하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표하지 않은 다짐은 절대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다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박 중독자들은 대부분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에 도박을 그만 하겠노라며 각서도 쓰고 가족들에게 여러차례 약속을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공표가 아닙니다. 그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둘러댄 핑계, 거짓말일 뿐입니다. 정말로 도박을 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각서를 쓰는 도박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바닥을 치고 가족에 이끌려 상담을 받으러 전문기관에 나온 도박자들은 그 때부터 자신이 도박을 그만둘 것임을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습니다. 상담자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이제부터 도박은 당연히 안 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정작 도박자는 스스로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소리내어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대던 그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교육과 상담을 통해 도박 중독의 폐해와 무서움은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나는 다르다, 통제력만 회복하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달리는데다 도박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고 나면 자신이 도박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지와 다른 행동이라도 일단 행하고 나면 인지 부조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에는 가치관이나 의지를 수정한다는 것이죠. 그 어려운 마음의 변화를 먼저 행동을 저지름으로써 이루어내는겁니다.
도박 중독 치료의 효과는 도박을 끊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공표할 때에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증폭됩니다.
아무리 골방에서 혼자서 머리띠 두르고 혈서를 쓰고 일기장에 각오를 정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탈도박 의지를 밖으로 공표해야만 합니다.
배우자, 부모님, 가족 친지, 친구, 동료에게 탈도박하겠다는 말을 도저히 못 하겠다면 과연 도박을 끊을 준비가 된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아마 아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탈도박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1) 정말 도박을 그만두고 싶은지 내면의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고
2) 도박을 그만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뒤
3) 그 결심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공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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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을 치유할 때 필요한 게 많지만 콕 집어서 두 개만 꼽으라면 '매사에 진실하라는 것'과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것', 이 두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도박 중독 치유 방법이 이 두 가지 기본 원칙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죠.
이 두 가지 원칙은 '거짓말'과 '무책임'이라는 도박 중독의 가장 큰 폐해 또는 증상과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이 중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과도한 도박으로 인해 가족 및 타인에게 재산 상의 손실을 입히고 그들의 믿음을 저버린 책임을 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진솔한 사과와 함께 용서를 구하는 건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도박 중독자는 어떤 순서로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안에서 밖의 순서로 해야 합니다. 감정의 짐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덜어내야만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에 빠져 양심을 속이고 변명을 늘어놓고,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방치한 것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이 배우자나 자녀와 같은 현재 가족 구성원입니다. 그 다음이 원 가족과 친척 순입니다. 그 다음이 친구를 비롯한 지인, 마지막이 함께 일했던 동료입니다.
그런데 도박자는 반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남인 채권자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용서를 빌고, 그 다음은 직장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상사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회적 매장을 당하지 않으려고 돈을 빌린 친척을 찾아가 입막음을 하고, 그 다음이 마음의 빚을 덜겠다며 부모님을 찾아가 사죄합니다. 그러면서도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사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고 언젠가는 받아줄거라고 합리화하면서요.
중독자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건 의외로 자기 자신입니다. 온갖 고초와 마음 고생을 했으면서도 그게 책임을 지는 방법이라고 착각하면서요. 아닙니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위로해야 합니다.
예전에 강북삼성병원의 신영철 선생님이 처음으로 중독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이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박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도박 때문에 고생많았지?, 정말 미안해, 내가 할 말이 없다.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에 대한 사과를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 치유의 힘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잊지 마세요. 사과와 용서는 안에서 밖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 반대 순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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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지 않고 그 돈으로 빚을 갚으려고만 해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도박자들은 도박으로 빚을 갚겠다고 매달리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죠.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설명을 드린 적이 있으니 오늘은 왜 도박으로 도박 빚을 갚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론적인 말씀부터 드리면, 확실성의 차이 때문입니다. 도박 빚은 도박을 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확실성 수준이 높습니다. 바꿔 말해 도박을 하지 않았다면 도박 빚 자체가 생겼을 리 없는거지요. 확률만 생각해도 도박을 계속 한다면 빚이 늘어날 확률이 큽니다. 하지만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하는 도박자가 매달리는 도박은 확실성 수준이 매우 낮습니다. 결과가 매우 불확실하죠. 도박으로 돈을 따기 위해서는(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운도 좋아야 하고, 충분한 판돈도 있어야 하며, 신체적/정신적 컨디션도 양호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충동 조절도 잘 해야 하며 기대한 것보다 많은 돈을 초반에 땄을 때 멈출 수 있어야 하고, 예상보다 손실액이 컸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감정 컨트롤도 잘 해야 하는 등 도박자가 통제해야 하는 불확실 변수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현실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간혹 지금은 버는 돈이 너무 적지만 1,000만 원이 생기게 되면 30%를 도박 빚을 갚는데 쓰겠다고 말하는 도박자가 있습니다(왜 1,000만 원 전액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 1,000만 원을 도박을 해서 마련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1,000만 원을 만들 수 있는 지가 불확실하고, 설사 1,000만 원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때 가서 그 중 30%를 뚝 떼어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며 언젠가는 도박으로 1,000만 원을 딸 수 있을거라고 해도 자신이 빚을 갚아야 할 시점(내 편의에 맞추어 영원히 기다려주는 채권자는 없으니까요) 전에 딸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도박은 불확실의 매력에 기대는 게임이고, 도박 빚은 확실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족쇄입니다.
불확실은 절대로 확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박으로 도박 빚을 갚을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이 냉혹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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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도박 중독자가 이번 한번만 더 자신의 운(또는 기술)을 시험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도박을 끊겠다고 가족이나 보호자(또는 상담자까지)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이번 한번만 하고 그만둔다는 핑계부터 버려라'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조건을 걸고 도박을 그만둘 것을 결정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당장 단도박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 라포가 채 형성되지 않은 도박자가 간곡히 이야기를 할 때 상담자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실패할 것이 뻔한 도박자의 시도를 계속 방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어떤 도박자가 1년 동안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용돈 범위 내에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죠.
이 때 1년 뒤에 점검했을 때 당연히 기대했던 수익을 낼 수 없을 것이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다른 영역을 상담하면 되지 하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유예 기간이 끝난 뒤 결과만 평가하려고 하면 도박자는 당연히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않은 온갖 이유와 핑계를 합리화 기제를 통해 만들어내 유예 기간을 연장하거나 테스트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무력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상담자는 1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최대한 잘게 쪼개서 도박자가 중간 점검을 하도록 촉구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반기 보다는 분기, 분기 보다는 매 달 확인하는 것이 더 좋은데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그만두려고 마음 먹을 때 그만둘 수 있는지, 수익이 얼마나 나고 있는지, 그 추세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수익이 나기는 커녕 계속 손실이 나고 있으니 헛된 노력 그만하고 이제 도박을 그만하라고 중간에 push하면 안 됩니다.
중간중간에 상담자가 도박자의 시험 과정을 확인하는 목적은 도박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기 위해서이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건 당신이 선택한 것이며, 모든 과정을 당신이 통제하고 있으니 결과도 당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묵시적인 다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런다고 도박자의 합리화 기제가 작동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강도가 약해지고 논리의 틈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틈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상담자에게는 반전의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포인트를 잡아 틈을 넓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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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상태인 '단도박'보다 도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탈도박' 상태가 되는 것을 도박 중독 치유의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단도박이라는 용어에 좀 더 익숙한 분들을 위해 이 포스팅에서는 단도박이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도박에 중독된 분들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주변인, 때로는 일반인들까지 도박 중독이 치유되었냐의 여부를 따질 때 도박을 하지 않고 보낸 기간, 즉 단도박 기간을 염두에 두고 단도박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죽을 때까지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박을 계속 하지 않는다면 도박을 하게 됨으로써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재정적 손실을 비롯한 도박 중독의 여타 폐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일견 맞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에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적도 있고 제 책에도 썼지만 재발이 도박에 손을 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 듯(도박에 손을 대는 건 재발의 마지막 확인 행동입니다)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박 중독으로부터 벗어난 게 아닙니다. 좀 더 과격하게 말씀 드린다면 도박을 하지 않는 기간을 연장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건 도박 중독 치유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내가 도박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 있다고 안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사실 단도박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탈도박하지 못한 분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자유롭지 않으며 매사에 안심이 되지 않을 겁니다).
도박에 손을 대지 않는 기간이 그다지 의미없다면 대체 무엇이 중요한 걸까요?
바로
도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감정, 행동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돌려 말하자면 도박장에 앉아서 도박 행위를 하지 않으며 겉보기에 일상 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다고 해도 평소에도 도박과 관련된 생각을 자주 하고 도박을 할 때 느꼈던 감정을 쉽게 다시 느낄 수 있으며, 도박과 연관있는 행동(스포츠 도박을 했던 사람이라면 응원했던 팀의 최근 전적을 뒤져본다든가, 과거에 작성했던 자신의 승률 스크랩을 다시 본다든지, 베팅을 하지는 않지만 경마공원에 놀러간다든지 등등)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시간이 깨어 있는 시간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면 그 사람은 베팅만을 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여전히 도박에 빠져 있는 것이고 도박 중독 상태로 봐야 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실제로 베팅을 하지 않은 단도박 기간이 아니라 도박에 대한 생각, 감정, 행동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기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탈도박으로 가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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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원인 찾기를 그만둬라'라는 포스팅에서 도박 중독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단일 원인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사 모든 원인들을 다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이 도박 중독 재발을 완벽하게 막아낸다는 걸 보장하는 것도 아니므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일단 다음의 게시글을 보시죠.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험으로 밝힌 중독의 진짜 이유.jpg'라는 제목의 이미지입니다.
'실험으로 밝힌 중독의 진짜 이유.jpg'
저 게시글의 내용 중 물질 중독의 신체적 금단 증상이 소통의 재개로 치유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지나친 비약이기 때문에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요점은 좀 다른 겁니다.
같은 내용을 도박 중독에 적용해 보죠. 도박 중독자는 왜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제일 간단한 의학적인 설명은 '내성'과 '금단 증상'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자발적 회복을 하는 걸까요?
위의 예에서 브루스 알렉산더는 소통부재의 위기 때문에 중독이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저는 중독의 시작과 유지, 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결핍'이라고 봅니다. 소통부재도 큰 틀에서 결핍이라고 볼 수 있겠죠.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그 크기도 다릅니다. 누군가는 신체적 어루만짐을 원하고, 또 누군가는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신적인 편안함을 원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정도 또한 제각기 다르죠.
문제는 이러한 욕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강하게, 지속적으로 억압됨으로써 채워지지 못하고, 이로 인해 커다란 결핍의 구멍이 생겼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굶어죽지 않기 위해 그 구멍을 빠르게 채워줄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구멍을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 도박, 섹스, 술, 담배, 마약, 종교, 운동 등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것에 빠지느냐는 내가 어떤 성질의 결핍 구멍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심리학자인 브루스 알렉산더는 소통부재가 해결되면 중독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중독자가 갖고 있는 구멍이 어떤 결핍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찾고 이를 중독적인 물질이나 대상이 아닌 건강한 욕구로 채워줄 때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결핍의 구멍을 찾는 것 역시 중독의 원인을 찾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접근법이 좀 다릅니다. '원인 찾기를 그만둬라'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핍된 구멍을 찾는 건 도박 중독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결 방안을 모색해서 그 구멍을 도박이 아닌 대체제로 메우기 위해서니까요.
사실 저는 이 결핍의 구멍을 제대로 메우지 못하면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탈도박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이 구멍을 제대로 메우기만 한다면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아도, 전문적인 상담을 받지 않아도, 단도박 모임을 다니지 않아도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 7회기 상담을 받고 상담을 종결한 뒤 지금까지 도박에 손을 대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제 내담자는 아마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결핍의 구멍을 발견하고, 그 결핍이 무엇인지 이해한 뒤 그걸 확실하게 메웠기 때문에 그런 짧은 시간 동안에 탈도박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러니 도박에 중독된 분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구멍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이길래 도박으로 메우려고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단도박 모임의 협심자들이나 도박 중독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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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치료를 하는 상담자가 현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유형의 도박자는 아니지만 간혹 자신은 잡기에 능하고, 도박을 잘 하며, 좋아하기도 하니 이참에 아예 프로 도박사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바람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기함하게 만드는 내담자가 있죠.
이들은 대체로 젊고 혈기 왕성하며 머리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도박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수준이 아직까지는 그리 극심하지 않아서 소위 바닥의 쓴 맛을 아직 못 본 분들이 많죠.
이러한 도박자를 상담하는 상담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도박 중독자라는 인식을 하게끔 노력하는 과정에서 프로 도박사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길인지를 강변하는 것입니다.
이는 도박자에게 도박으로 돈을 따는 것이 왜 불가능한 것인지 그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함정입니다.
물론 프로 도박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도박자가 (머리로) 알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도박 중독 상태에 있는지를 도박자가 깨닫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작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이 오면 프로 도박사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아래의 내용들을 먼저 생각해보도록 돕습니다.
1. 프로 도박사가 되는 것처럼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의사 결정은 현재 깨어진 삶의 균형(balance)를 회복한 이후에 즉,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회복한 이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2. 삶의 balance를 회복하고자 노력할 때에는 일시적인 성공만으로 자만하지 말고 몸에 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해보자.
이 두 가지를 먼저 해 보자고 합니다. 물론 당연히 실패하게 마련이죠. 삶의 균형을 그렇게 쉽게 회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도박 중독자가 아닌 겁니다.
실패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이 프로 도박사가 되기 위한 재원이 아니라 단순한 도박 중독 상태에 빠져 착각을 하고 있는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죠.
만에 하나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프로 도박사가 되는 길에 대해 상담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느냐고 우려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프로 도박사가 되겠다고 매달리는 건 진지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도박을 끊고 싶지 않은 갈망과 집착에 의해서 생긴 착각이니까요.
그래서 막상 삶의 균형을 회복하게 되면 프로 도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예전에
'지도가 영토가 아니듯 증상이 원인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다른 포스팅에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도박자가 하는 모든 말이 도박자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상담자는 그 안에 숨겨진 도박자의 양가 갈등과 고민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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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제 책을 읽었다면서 단도박 모임을 다니는 어떤 여자분이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도박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본인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예전에 도박 중독자였나 봅니다.
이 분 말씀은 제 책의 내용 중 대부분을 수긍하지만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것과 도박 중독이 치유되어도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은 틀렸다면서 제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혹시나 여쭈어 보니 역시나 제 책을 다 읽지 않으셨더군요. 제대로 읽으셨다면 제가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고 한 적이 없다는 걸 아셨을텐데요(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은 과연 불치병인가'). 더구나 제 책의 홍보 문구 중 하나가 앞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는 '도박 중독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다'이니 겉표지도 제대로 안 보신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하여간 도박 중독은 완전히 치유된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과연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가에 대한 것인데요.
제게 연락하신 분의 주장으로는 본인이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고 보니 갈망이 사라지고 생각조차 전혀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도박에 중독된 적이 없으니 갈망이 사라지는 완전한 치유 상태를 경험하지 못해 그런 틀린 이야기를 썼다는거지요.
과연 그럴까요?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면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요? 그렇다면 더 이상 도박을 겁낼 필요가 없어지는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에서 치유되어도 갈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평생 주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1년에 포스팅한 글이 있습니다(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도박 충동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격한 운동을 하다가 인대를 다치면 몸이 완전히 나은 뒤에도 인대가 손상된 부위의 기능이 예전처럼 100% 발휘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취약점이 생긴 것이죠. 취약점이 생긴 부위는 또 다시 다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에 한번이라도 중독되었던 사람은 완전히 치유된다고 해도 도박에 한번도 중독된 적이 없는 사람과 달리 중독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갈망을 느끼지 못하는 건 왜 그럴까요? 그건 갈망이 의식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무의식 수준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망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죠. 정말 무의식 수준에서는 갈망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치료자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습니다만).
예전에 본인이 하던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조심스럽게 접해 보는 겁니다. 경마를 하던 분들은 경마공원에 가 보거나, 고스톱을 하던 분들은 화투패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려 보는 것이죠. 그러면 있는지도 몰랐던 갈망이 어느새 불끈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철저히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피하고 열심히 치유의 길을 걸어온 사람일수록 갈망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명심하세요. 도박에 대한 갈망은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오판과 자만심이 재발의 재앙을 불러온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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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센터는 1998년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도박중독 전문치료기관인데 2012년까지 햇수로 15년 간 수많은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의 치유를 위해 힘써오다 2013년 1월 1일 자로 문을 닫았었죠(관련 포스팅
'국내 최초의 도박중독 전문치료기관인 유캔센터가 문을 닫습니다' 참조).
어떤 연유로 문을 닫게 되었는지 구구절절히 설명드릴 수는 없고, 어쩄거나 그동안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작년 7월 말에 사감위 건전화 평가지표의 변화로 인해 부분적으로 문을 열었죠(관련 포스팅
'유캔센터의 문을 다시 엽니다' 참조). 이 때까지만 해도 도박자가 직접 오지 않으면 상담이 불가능했었는데 최근에 그 제한도 풀렸습니다.
평가지표 상으로는 도박자가 1회라도 방문하여 총 7회기 이상 상담을 해야 실적으로 인정되지만 실적과 상관없이 가족들만으로도 상담이 가능합니다.
현재 과천 센터와 용산 센터에서 상담이 가능하며 올해 안으로 영등포, 분당, 대전에 각각 1개소의 센터가 문을 열기 위해 추가로 작업 중이며 그렇게 되면 연내 총 5개소의 상담 센터가 가동되게 됩니다.
용산, 영등포, 분당, 대전 센터는 일종의 상담센터 지소 개념으로 주말에만 운영하는데
용산 센터가 제 담당입니다. 현재는 토, 일요일만 운영하며 곧 금요일이 추가될 예정이고요.
도박중독 치유를 위한 도움을 받고 싶은 도박자와 가족들은 토, 일요일에 아래의 연락처로 전화 주시면 저와 직접 통화가 됩니다.
* 연락처 : 080-500-1190(무료 전화), 02-2199-9929
* 운영일 : 토, 일요일(오전 9시~오후 6시)
* 용산 유캔센터 위치 : 용산 전자랜드 인근
제 개인 이메일 walden3@gmail.com으로 연락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셔도 답변 드립니다. 월덴 3를 방문하시는 임상가들 중 도박중독 문제를 갖고 있는 내담자가 있으면 언제든 제게 연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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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도박자를 만나는 상담자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들 계시겠지만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도박자에게 설명하는 건 대체로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나아진 건 없지만 그야말로 도박중독치료의 불모지였던 10년 전 쯤에 참고할 만한 전문 서적이라고는 미국에서 사용되던 원서밖에 없었던 당시 그런 책을 썼던 전문가들이 강조한 건 대부분 인지행동치료에 입각한 논리적, 합리적 접근법이었죠.
저도 거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통계적, 심리적, 사회적 이유를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안을 만들어서 예방 교육도 하고, 상담을 할 때 도박자에게 상세히 설명도 해 줬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가 굉장히 컸던 것이죠. 미국의 경우에는 굉장히 중요했던 치료 기법이고 실제로 효과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생각만큼의 효과가 없습니다.
사전 예방 체계가 발달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전문기관을 방문하는 도박자들은 이미 많은 재발 경험을 거친 상태여서 논리적인 근거만 몰라서 그렇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담자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걸 학생에게 강의하듯이 알려줘 봐야 반감만 생길 뿐입니다. 자칫하면 쓸데없는 실갱이로 천금같은 상담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지 공부만 조금 더 하면 정말로 돈을 딸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도박 중독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경계하는 건 외국에서 효과적인 치료 기법이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자에게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그다지 효과 없습니다. 한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로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에 짧게 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보다는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면 그 돈으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탐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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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빚을 갚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이 있고 제가 쓴 책에서도 꽤 길게 다루었죠.
채권자가 자신이 빌려준 돈이 도박에 사용될 것을 사전 인지하고 빌려준 경우에는 민법 제 103조에 의거하여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요. 또는
도박 중독자가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돈을 빌려준 경우에 조금이라도 도박과 상관이 있다면 깨끗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오늘은 다른 측면에서 도박 빚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죠.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희박한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만약 도박 자금 또는 도박 빚을 갚으라고 꽤 큰 금액의 돈을 빌려준 부자 친구가 더 이상 신경쓸 필요 없다며 통 크게 나온다면 그 친구 말만 믿고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당연히 그 친구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그 돈을 갚으라고 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경우입니다.
많은 도박자들이 친구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진심어린 우정을 봐서라도 억지로 갚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도박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 봐야 합니다. 도박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생각이 내 내면의 무엇에게서 나왔는지를요.
어차피 도박 중독 치유의 길이란 험난하기 이를 데 없고 오래 걸리는 힘겨운 길인데 굳이 더 멀리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하며 자기 합리화한 결과로 그런 생각에 이른 것은 정말 아닌지요?
빚 갚기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실과 양심의 문제이고 그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중독의 삶에서 치유의 삶으로 옮겨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그것이 도박 빚 갚기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작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훨씬 더 큰 치유의 희망을 포기하는 소탐대실이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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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도박중독 전문치료기관인 유캔센터가 문을 닫는다'는 포스팅을 한 것이 2012년 12월 30일이었으니 어느덧 1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센터에도, 제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걸 모두 말씀드리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본론만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유캔센터가 문을 다시 엽니다. 하지만 욕심껏 활짝 열지는 못하고 살짝 반만 여는 모양새를 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면 2014년 사감위에서 마련한 건전화 평가지표에 '이용자 대상 도박중독 치유협력'이라는 새 지표가 추가되면서 사행산업체에서 사감위 도박문제관리센터로 문제도박자를 상담의뢰한 실적을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걸 도박중독치료를 다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왜냐하면 사감위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의뢰서를 작성하려면 치료에 준하는 지속상담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캔센터가 문을 닫고 직제를 개편할 때 도박중독상담 기능이 업무 분장에서 빠지면서 공식적으로 상담이나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예 용어 자체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거지요.
그래서 내년에는 어떻게 바뀔 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지속 상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사감위 센터로 의뢰하기 전에 2~3회의 초기 개입(용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을 통해 채무 변제 등의 환경 개선과 도박자 및 가족들의 대처 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후에는 의뢰된 사감위 센터에서 상담을 받으셔야 하지만 그래도 경험많은 유캔센터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고 가시면 분명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다만
주의사항을 하나 말씀드리면 사감위에서 요구하는 의뢰 대상이 도박자에 한하기 때문에 도박자 또는 도박자를 동반하지 않고 가족이나 보호자만 단독으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경우는 안타깝게도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분들은 1336으로 연락하셔서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유캔센터 홈페이지에도 공지가 나가지 않은 상태인데 월덴 3를 통해 먼저 공지합니다.
제게 초기 개입 컨설팅을 받고자 하는 분들은 walden3@gmail.com으로 성함, 계시는 곳의 지역,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내년에는 유캔센터가 정식으로 오픈해서 활발히 활동하던 그 때처럼 도박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드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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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에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4 사행산업 건전화 국제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session에 다 참석한 건 아니고 1, 2 session은 전자 카드 관련 정책 포럼이라서 저는 지역사회 기반 치료 서비스 모형과 모니터링 체계에 대해 다루었던 session 3에만 들어갔고 이후 진행된 종합 토론까지는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때 들었던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자면,
첫째, 사감위가 3년 동안 공을 들여 개발한 한국형 판별 도구인 KGBS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경기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상담한 사례 분석 결과를 보니 KGBS만 도박 중독으로 진단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동안 KGBS를 개발만 해 놓고 욕 먹으면서도 여전히 CPGI 결과만 줄창 보여주는 이유는 KGBS로 측정한 유병률이 CPGI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도 KGBS는 K-NODS나 K-MAGS-DSM보다도 오히려 낮은 유병률을 나타내니까요.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고 해도 유병률이 너무 낮게 측정되면 지금까지 9%라고까지 과장하면서 했던 협박이 우습게 되니 KGBS를 이제서야 사용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될 겁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묻어버리는 방향으로 출구 전략이 짜인 것 같았습니다
둘째, 치료 효과 검증을 위한 도구로 GAMTOM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현장의 치료자들로부터 이미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듯이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항이 너무 많아요. 서양에서는 material을 많이 줘야 내담자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선호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내담자들은 숙제 주는 걸 아주 싫어라 합니다. 내담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그 저항에 맞서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보가 포함될 확률도 상당히 증가할 겁니다.
셋째, 한국형 GAMTOMS를 만든다고 해도 Timeline Feedback(TLFB) 만큼은 포함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사용하고 있는 외국 기관의 담당자도 그렇고 국내 교수들도 그렇고 이게 참신하고 기대되는 정보 수집 도구라고 생각하던데 저는 견해가 다릅니다. 제 예상으로는 아무리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도입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우리나라 도박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걸 빠짐없이 작성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못 믿겠으면 한번 해 보세요. 아마 안 될 겁니다.
넷째, GAMTOMS와 같은 치료 효과 평가 도구의 개발이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저는 그보다 조기 종결 비율을 낮추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GAMTOMS에 대한 자료에서도 조기 종결 비율이 굉장히 높게 나왔는데 정작 현지 관계자도 조기 종결 비율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이디어가 전혀 없더군요. 조기 종결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기 전까지는 치료 효과 평가 도구를 도입하더라도 평가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섯째, 토론에서 집단 상담이 개인 상담보다 효과적이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치던데 글쎄요. 100회기 이상 집단 상담을 진행해 본 제 경험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도박 중독자가 굉장히 homogeneous한 집단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같은 연령대, 비슷한 social status, 비슷한 도박 유형까지 맞추고 거기에 개인 상담 20회기 정도 진행해서 변화 단계까지 얼추 비슷하게 matching했는데도 5명 이상의 집단 크기를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반개방형 집단 상담에서도 두 분이나 재발했고요. 도박 중독 상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전문 상담자의 공급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돌파구로 나온 방안이 집단 상담의 활성화 아닌가 싶은데 생각 다시 하셔야 할 겁니다.
여섯째, 발표 자료 중에 내방 상담자의 대부분이 변화 단계 중 준비 단계에 속한다는 말이 있던데 도박자의 보고를 곧이곧대로 믿은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 평가하면 거의 대부분이 전 숙고 단계(Pre-Contemplation Stage)에 속할 겁니다. 준비 단계에 도달한 도박자가 그렇게 많다면 현장의 상담자들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일곱째, GAMTOMS 발표에서도 나왔지만 상담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평가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종결을 하고 난 뒤에는 대부분의 도박자와 가족들이 치료 기관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혼 정보 회사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한 부부들이 결혼 정보 회사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종결 후 6개월(이건 그나마 낫지만), 1년, 2년 정도 되면 연락이 닿지 않는(혹은 피하는) 사례의 수가 급등할텐데 어떻게 접촉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겁니다. 저는 치료 효과 검증을 위해서는 평가 도구보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덟째, 종합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현장의 상담자들이 GA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자 분들이 꽤 많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개인 상담도 받고 GA도 열심히 다니고 종교 생활도 열심히 하면 도박 중독 치유에 더 좋을 것 같지만 제 책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는 자전거 바퀴 수를 늘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안정감은 있을 지 몰라도 마찰력 때문에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게 되죠. 게다가 서로 치유 효과를 상쇄하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 상담과 GA입니다. 제 경험 상 GA와 개인 상담 모두 잘 맞는 도박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릇이 정말 크거나 행운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 특성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인데 아주 기본적인 치유 목표에서 있어서도 개인 상담과 GA는 꽤 다릅니다. GA는 완전한 치유란 없다고 가정하고 죽을 때까지 GA 모임을 빠지지 말고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건 불완전 회복 상태에서 치유를 멈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완전한 탈도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은 가족과 같은 보호자에게 미치는 GA의 영향입니다. 무조건적인 인내와 희생 강요, 알코올과 같은 교차 중독의 간과 등이 과연 가족의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히려 개인 상담자가 GA를 무조건 권장하는 분위기를 다시 한번 재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치유 기법의 장, 단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도박자와 가족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박 중독 치유가 묻지마 관광은 아니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왜 휴일인데도 굳이 참석해서 들으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포럼이었습니다. 휴무 대체로 2시간을 더 쉴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입맛이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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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5일에 (주)나눔로또 임직원을 대상으로 8시간짜리 건전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때 교육 이해도를 사후평가하기 위해 만든 문항입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해 왔지만 평가 문항까지 만들어 달라고 꼼꼼하게 요청한 곳은 (주)나눔로또가 유일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귀찮은 작업이기는 했지만 칭찬 드리고 싶네요~
나눔로또에서 요청한 엑셀 파일 양식에 정리했는데 4지선다 20문항을 난도에 따라 H(High), M(Medium), L(Low)의 3단계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5, 8, 7문항이에요.
도박중독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한번 풀어보세요.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18, 19, 20번 문항은 사행산업 종사자가 고객을 대하는 응대 기술과 관련된 문항이므로 순수한 도박중독 관련 문항은 총 17개입니다.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비롯해 각종 도박중독 관련교육 평가용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필요한 분들은 얼마든지 내려 받아 사용하셔도 됩니다. 출처만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덧. 이 자료는 (주)나눔로또에서 저작권을 갖고 있으므로 요청 시 언제든 삭제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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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카피를 패러디한 제목입니다만... 그 정도로 비장한 건 아니고요.
2009년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참으로 뻔뻔스러운 사감위'라는 포스팅에서 '기관차 효과'와 '풍선 효과'를 대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감위는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규제해야 불법 사행산업을 잡을 수 있다는 기관차 효과를 믿고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때려잡는데 총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완결판이 전자카드제라고 할 수 있고요. 아직 전면 도입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만...
저 위의 포스팅 이후로 4년 반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합법 사행산업을 규제하려고 많이 노력했으니 기관차 효과대로라면 불법 사행산업도 덩달아 많이 줄어 들었어야겠지요?
어림없는 소리죠. 합법 사행산업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에 불법 사행산업은 성장 일로에 있어서 이미 감당을 못할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사감위에서 한번도 불법 도박 시장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시장 규모가 100조는 넘었을 겁니다. 합법 사행산업에 비해 5배 이상으로 커진거지요. 뒤늦게 사감위에서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 발의를 한다는 둥 뒷북을 치고 있지만 제가 볼 때 이미 늦었습니다.
기관차 효과는 불확실한 것에 베팅하는 인간의 도박 본능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합법 사행산업을 이용할 때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면 힘들어서 포기하고 레저 수준에서만 즐기겠지 하는 아메바 수준의 생각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내가 원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불법 도박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건 생각도 안 한거지요.
실제로 도박 중독 치료를 담당하는 일선 센터에서는 경마, 카지노 등 전통적인 도박을 주 도박으로 하는 중독자의 수가 현저히 줄고 불법 스포츠 토토나 불법 온라인 도박을 하는 중독자가 압도적으로 늘었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비율은 대략 20:80 정도나 됩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감위에서 운영하는 치료센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치료자 중 한 사람이니 합법 사행산업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규제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단 그 적정선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해야죠. 도박에 대해 뭣도 모르는 비전문가들 모아놓고 탁상공론으로 결정하지 말고요.
며칠 전에 있었던 공청회에서 참석한 패널들의 면면을 보면 1차 종합계획안보다 질적으로 더 후퇴해서 도박과 도박 중독 분야의 전문가가 한 명도 없더군요. 대체 뭣들 하자는 건지... 누가 제대로 지적을 했던데 그냥 이해 관계의 개싸움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불법도박을 부숴 풍선 효과에 의해 합법 사행산업의 틀 안에서만 도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걸리면 신세 망친다는 신호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엄중한 법 집행과 부당이익의 환수를 일관되게 지속해야 합니다.
불법도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합법 사행산업만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도박 문제 해결 못합니다. 왜냐하면 풍선 효과가 옳으니까요.
설마 도박 문제가 해결되면 사감위의 존립 이유가 없어지니까 조직 생존을 위해 그냥 내버려두고 공존공생하려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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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분야, 특히 도박 중독을 다루는 상담자가 꼭 익혀야 하는 상담 기술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동기 강화 상담을 선택하겠습니다만....(실존 치료는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해 봅니다;;;)
동기 강화 상담은 의외로 현장에서 활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의 특성 중 하나가 문제 부인(denial)인데다 동기 강화 상담을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 맺기조차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동기 강화 상담을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활용해 볼 수 있는 기술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할 바꿔 연기하기란 건데,
보통의 도박 중독 초기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도박자에게 어떤 도박을 얼마나 하셨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냐 등등의 중요하지만 조금은 뻔한 질문들을 하게 마련인데 만약 도박자의 방어가 강하고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은 것 같으면 역할을 바꿔서 연기를 해 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즉, 상담자가 '나는 도박 중독자가 아니다, 도박을 하기는 하지만 언제든 끊을 수 있다, 최근에 잃은 돈이 많아서 흥분했기 때문에 좀 심하게 하기는 했지만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조절할 수 있다'며 도박 중독자의 방어적인 모습을 연기할테니 도박자에게는 상담자의 입장에서 그걸 반박해 보라고 하는 것이죠.
상담자의 도박 중독자 연기에 공감하거나 동화되지 말고 어떻게든 도박을 그만두도록 설득해 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이 방법은 언제나 방어 역할에만 익숙한 도박자를 흔들어서 의외성을 자극함으로써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상담자가 도박 중독 상담 경험이 많아 전형적인 도박 중독자의 방어 논리에 익숙할수록 능숙하게 연기할 수 있고 도박자의 몰입을 이끌어 내기 쉽습니다.
어느 정도 도박 중독 상담에 익숙한 중급 이상의 상담자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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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한다'라는 글에서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모두 달성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며 이것이 치유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까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 가족을 유지할 버팀목이 약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말을 하는 분이 계셔서 추가 포스팅합니다.
가족이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건 도박 중독으로 인해 희망이 없다고 결론내려서이지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을 하고 난 뒤 헤어져야겠다고 결심을 한 가족이 있다면 그건 이미 도박 중독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독립할 자신이 없어 참고 살았을 뿐 이미 마음은 도박 중독자를 떠난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저 먹고 살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는 상태, 몸은 함께 있으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 그것을 과연 진정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가족과 상호의존되어 있으니 도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다가 가족이 독립하게 되면 자신만 버려질 것 같은 불안을 도박자가 느끼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독립만 하고 나면 도박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가족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제적 어려움과 배신의 이중고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이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도박자를 포기하고 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상담까지 받으려고 할까요?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 건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독립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박 중독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헤어질 위험이 있으니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가족을 방해하는 건 가족을 볼모로 잡고 싶다는 도박자의 욕심 때문에 도박 중독 치유에 들여야 할 에너지와 노력을 낭비하는겁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자는 가족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본인부터 먼저 가족을 믿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그러면 가족도 반드시 화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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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위에서 사행산업체에게 강제하는 평가 지표 중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도박중독 예방교육 실적 및 만족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량평가 지표로 6점의 가중치를 갖고 있으며 교육 실적 횟수와 교육 만족도로 평가합니다.
교육 실적은 회당 0.5점, 교육 만족도는 80% 이상 시 만점, 미만 시 5% 단위로 1점을 차감하여 계산합니다.
문제는 교육 만족도인데 이게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을 전혀 모르는 머저리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육 만족도 평가 때문에 예방교육 자체의 질 저하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거나 하다못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예방교육은 어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도박중독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예방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전문가가 조금만 내용에 신경쓰면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행산업체에서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예방교육은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KRA(한국 마사회)에서 실시하는 경마팬 대상 예방교육을 예로 들어보죠. 경마팬들은 기본적으로 중독이라는 말 자체를 재수없다고 터부시하는데다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경마로 인한 도박 중독이 어떻느니, 도박 중독의 피해가 어느 정도로 추산된다느니, 공존 장애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대놓고 얼굴 표정이 싹 바뀌는 건 기본이고 중간에 욕하면서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경마 전문가가 나와 말 고르는 법, 순위 예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인기 강좌와 달리 참석자의 수 자체가 비교도 안 되게 적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참석자 한 사람만 불만족으로 체크해도 전체 만족도가 확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감위는 교육 만족도 기준을 더 높이겠다느니,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이니 좀 더 사업 특성에 맞도록 구체적이고 세분화하여 예방 교육을 실시하라느니 하면서 뭣도 모르고 속 편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아무리 현장 전문가가 사명감을 갖고 프로그램 준비와 강의에 공을 들여도
교육 만족도 평가가 존재하는 한 알게 모르게 80점이라는 점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도박 중독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내용을 순화시키거나 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중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쉽게 쉽게 갈 수 밖에 없는거지요. 그런 부담없이 원래 하고자 했던 방식으로 강하게 예방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면 만족도 점수를 80점 이상으로 맞출 수 없기 때문에 편법(울며겨자먹기로 만족도 점수가 너무 낮은 사례를 제외하는 등)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체 이런 방식의 예방 교육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요?
도박 중독자? 치료 전문가? 사행산업체? 사감위?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제발 현장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기 바랍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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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제가 쓴 첫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왜 우리는 도박에 빠지는 걸까'라는 책입니다. 도박에 중독되신 분들과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름이 들어간 책은 이번 책을 빼고 4권이었는데, (당연히) 모두 도박 중독 관련 책이었지요. 출판된 순서대로 정리하면,
* 도박중독 심리치료(시그마프레스, 2007, 공역)
* 도박에 빠진 가족 구하기(시그마프레스, 2011, 번역)
* 파스칼의 내기, 노름의 유혹(학지사, 2013, 공저)
* 청소년의 도박 문제(시그마프레스, 2013, 공역)
입니다.
그야말로 저는 숟가락만 얹었던
'도박중독 심리치료'만 빼고
'도박에 빠진 가족 구하기',
'파스칼의 내기, 노름의 유혹',
'청소년의 도박 문제'는 모두 월덴 3에 소개 포스팅을 했습니다. 도박에 빠진 가족 구하기를 제외한 두 권은 공저자와 공역자로 참여한 거라 다른 전문가 선생님이 쓰신 내용을 중심으로 큰 부담없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할 수 있었거든요.
도박에 빠진 가족 구하기는 제가 혼자 번역한 책이기는 해도 번역의 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제 책인데도 원서를 읽으라고 혹평하는 소개글을 올리기도 했지요. ^^;;;;
그런데 이번에 나온 '왜 우리는 도박에 빠지는 걸까'는 저 혼자 쓴 책이라서 그런지 도저히 객관적으로 소개 포스팅을 할 수 없겠더군요.
그래서 '서적' 카데고리나 '심리학 서적' 카테고리가 아닌 '도박 중독' 카테고리에 공지글로 포스팅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책들이 심리학 서적 전문 출판사인 시그마프레스나 학지사를 통해 나왔다면 이 책은 인문, 사회, 예술, 실용 전문 브랜드 출판사인 소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출판했습니다. 도박에 중독되신 분들과 그 가족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금은 대중적인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책을 내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다는 걸 새삼 깨닫고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 무거운 책임감이 뒤섞여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 들더군요.
책의 내용은 그동안 월덴 3의 도박 중독 카테고리에 올린 포스팅들이 중심입니다만 흐름에 맞게 재배치하고 읽기 편하게 많이 다듬었으며 사례와 비유도 보강했습니다. 도박 중독자와 가족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시는 게 좋지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으셔도 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께는 그렇게 선별적으로 활용하시는 걸 추천합니다(많이들 읽어주십사 대놓고 하는 읍소?;;;;;).
앞으로도 제게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질지 잘 모르겠지만 항상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먼저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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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의 가족이 쉽게 걸리는 대표적인 '병'으로는 '의심병'과 '조급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도박자에게 자신이 의심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하자'라는 글에서 다룬 바 있죠.
오늘은 가족 중에서도 콕 집어 도박 중독자의 아내에게 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합니다. 남편이 도박에 중독된 주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과도한 귀인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죠. 이는 '당신이 하도 돈 돈 하면서 바가지를 긁어서', '당신이 내조를 엉망으로 하니'와 같은 도박 중독자의 책임 전가로 인해 더욱 악화됩니다. 특히 도박 중독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는 아내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박 중독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서 어느 하나의 원인만 갖고 설명할 수가 없죠. 따라서 아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해서 남편이 도박에 중독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부적절한 죄책감과 적절한 죄책감의 차이는
'적절한 죄책감과 부적절한 죄책감'이라는 글에 정리해 두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지나치게 희생적입니다. 이건 첫 번째 문제인 부적절한 죄책감과 결합하여 나타날 때 더욱 강력해지는데 남편이 도박에 중독된 원인을 자신이 제공했다고 잘못 원인 귀인을 하게 되니 도박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모든 시간, 역량을 쏟아 붓는 겁니다. 도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만 문제는 지나치게 희생적인 아내는 노력 자체에만 치중한 나머지 치유의 원칙들을 지키면서 균형을 잡는 걸 잘 못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책임지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대위 변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러한 대위 변제 절대 금지 원칙과 도박 빚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충돌할 경우 우선 순위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의도와 달리 반치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죠. 특히 지나치게 희생적인 아내는 도박 중독자와 상호의존(co-dependence)된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 또한 꼭 해결해야 합니다.
셋째,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도박에 중독되기 이전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도박에 중독되어 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는지는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의 상태에서 보면 더 이상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그래서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여가 선용은 사치이고, 대인 관계는 끊겼으며 쇼핑이나 외식과 같은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조차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인생에 즐거운 경험이 언제인지, 과연 있기는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당연히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할수록, 지나치게 희생적일수록 자신을 위한 투자나 위안은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이 세 번째 문제가 심할수록 기분 부전 장애(Dythymic Disorder)나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로 진단될 가능성이 커지며 아내 본인 뿐 아니라 도박 중독자와 다른 가족들의 치유도 요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도박 중독 치유와 관련해서 기둥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은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제가
'지금은 각자의 성을 돌볼 때다'라는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하고, 지나치게 희생적이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내는 개인주의자가 되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적어도 이기주의자가 될 정도로 자신의 성에만 온전히 투자해야 겨우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는 수준이죠.
사실 위의 문제들이 있는 아내가 제아무리 이기주의자가 되겠다고 노력해봤자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 마저도 쉽지 않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덧.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에 대해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자신이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분들은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를 구분하는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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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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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상담자가 도박중독치료의 종결 시점을 가늠할 수 있도록 활용해 볼 수 있는 질문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지요.
"당신이 도박중독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이 당신만 남겨두고 보름 동안 해외 여행을 간 사이 아무도 모르는 공돈 1천만 원(액수는 중독자에 따라 변경 가능합니다)이 생겼다면 그동안 그 돈으로 도박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또
2011년에는 상담을 종결할 때에는 도박자가 상담자와 합의한 후 정상 종결했는지 가족들이 꼭 확인해야 한다는 포스팅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도박중독치료를 언제 종결해야 하는가가 중요하기도 하고 상담자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주제이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저도 정확하게 언제, 무엇을 보고 상담을 종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종결해서 안 되는 상황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상담자가 전혀 종결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도 도박자가 '먼저', '자신만만하게' 종결을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도박 중독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깨달은 도박자는 절대로 먼저 상담을 끝내자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담자가 종결을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낼 때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손사레를 치며 상담자를 설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자제력과 조절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 이상 자신만만하게 이를 이야기꺼내는 도박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도박자가 먼저 상담 종결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통제력에 대해 자신있어 한다면 상담자는 종결을 미루고 재발 예방의 측면에서 도박자와 그 문제에 대해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그 도박자는 아직 상담을 종결할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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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도박자는 반드시 자신의 도박 충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도박 충동을 다룰 수 없는데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도박 충동을 인정해야 치유 과정에서 도박 충동이 줄어드는 정도를 알아차릴 수 있고 그 정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치유적인 기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도박 충동의 존재와 정도를 모른다면 제대로 된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도박 충동의 존재는 상담자와 도박자가 이미지를 활용한 간단한 심상화 과정을 통해 외재화함으로서 알 수 있지만 도박 충동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도박 충동 그 자체보다 도박 충동과 결합되어 있는 생각과 감정을 다룰 필요가 있고 또 그것이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도박 충동이라는 용어를 다룰 때 많은 상담자들이 그것을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만 간주하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상담자마저도 도박 충동을 고삐 풀린 괴물로만 인식하고 있으면 도박 충동을 가둬놓으려고만 하지 길들이려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이론과 달리 제 경험으로는
도박 충동과 좀 더 가깝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도박 감정이 아닌 도박 생각입니다. 거의 자동적 사고 수준으로 빠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뿐이지 도박 충동이 일어나자마자 어느새 도박 생각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도박자 고유의 도박을 허락하는 생각을 빠르게 반박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박을 하도록 밀어붙이는 감정이 뒤따라 올라오게 됩니다. 도박 생각은 그나마 합리적인 논박이 가능하지만 도박 감정은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한번 휩쓸리면 인지적인 제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도박 충동의 제어는 결국은 도박 감정보다는 도박 생각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도박 중독자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이는 도박 감정과 그 결과에 몰입된 상태이므로 알코올 중독자가 술 생각이 나는 것이 당연하듯이 도박 중독자에게 도박 생각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박에 대한 생각이 도박 충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고 도박 중독자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상담자가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자는 도박 충동을 다룰 때 관련되어 있는 도박 생각과 도박 감정을 구분하고 도박 생각이 먼저, 도박 감정이 나중에 따라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도박 중독자가 도박에 대한 에피소드(과거에 도박을 했던 추억일 수도 있음)를 이야기할 때 뒤따르는 생각(의 경우 뒤따른다기보다는 동시에 떠오른다는 것에 가까움)과 감정을 구분하고 생각은 자동적 사고를 찾듯이 탐색하여 반박 논리를 개발하고 감정은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으로 나누어 어떤 신체적 증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함께 파악해야 합니다.
도박으로 돈을 땄던 때의 추억을 말할 때 약간은 흥분되고 심장이 빨리 뛰고 온몸이 저릿저릿하는 긍정적인 감정을 보고할 수 있으며 도박으로 돈을 잃었던 때의 경험을 말할 때 가슴이 텅빈 것 같고,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뱃속에 묵직한 돌이 든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도박 충동을 통제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이니 잘 챙겨두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브레이크로, 긍정적인 감정은 경고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글이 중언부언 길어졌는데 간단 요약해 봅니다.
1. 도박 충동은 도박 중독 치유를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핵심 주제이다.
2. 도박 충동을 다룰 때에는 도박 생각과 도박 감정을 구분하되 함께 다루어야 한다.
3. 도박 충동은 대개 도박 생각이 먼저, 도박 감정이 뒤따르지만 파괴력은 도박 감정이 더 크다
4. 도박 감정은 에피소드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감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 분석하여 잘 챙겨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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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어떤 말을 하건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도박 중독자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것도 자신의 잘못이고, 그만하라고 가족들이 말릴 때 귀담아 듣지 않은 것도 자신의 잘못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도박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할테니 제발 도박만 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읍소합니다.
얼핏 보면 자신의 도박 문제를 인정하고 치유가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가 갈등 하나 없이 변화 단계 중 준비 단계나 실행 단계에서 곧바로 출발하는 도박자는 매우 드물거든요.
오히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면 납작 엎드려서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유형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자기 고백에는 잘못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진정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상담자에게 의존하고 자신은 편하게 묻어가려고만 하죠. 의존 대상이 가족에서 상담자로 바뀐 것 뿐입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도박자는 제 시간에 상담에 오고, 상담도 열심히 하지만 재발이 잦으며 재발을 하고 나서는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동시에 다시 열심히 노력할테니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도박 문제에 대한 진지한 수용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도박 결과를 깊이 숙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발이 반복되고 끝내는 지쳐버린 가족이 포기하는 걸로 상담이 끝나고 맙니다.
이런 도박자일수록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치유 초반부터 한계 설정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의사 결정부터 자신이 직접 내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극도의 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담을 아무리 오래 해도 치유의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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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도박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것임을 누차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에 누구든 도박자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 원칙은 너무나 중요해서 어떤 상담자이든 상담 초반에 무엇보다 먼저 도박자와 그 가족에게 특별히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족(특히 원 가족의 부모)이 상담자의 조언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뒤로는 계속 빚을 갚아주면서 앞으로는 도박자를 부탁한다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담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요.
그렇게 강조해서 단속을 해 놨는데 상담자와 상의 한 마디 하지 않고 도박 빚을 냉큼 대신 갚아 주는 겁니다. 당연히 도박자는 가장 큰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 상담에 매진할 동력이 상실되어 유야무야 하다가 상담자와 합의도 없이 상담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재발해서 더 큰 빚이 생기게 되죠. 그러면 다시 그 가족 구성원이 부랴부랴 찾아와서 도박자를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일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혹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첫째,
가족들이 도박자와 상호 의존(co-dependence)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표현을 빌자면 공동 운명체라는 강한 느낌을 갖고 있어서 도박자가 망하면 가족도 망한다는 두려움에 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박자가 망하지 않게끔 빚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둘째,
가족 중 누군가가 도박자의 인생을 좌지우지(enabling)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은 그걸 전혀 모릅니다. 그저 도박자를 사랑해서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enabling을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도박자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닙니다. 계속 무능하고 무기력한 도박자로 남아 있어야만 계속 챙겨줄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빚을 갚아주면 또 다시 구렁텅이로 떨어져 계속 철부지같은 어른애로 살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빚을 갚아줍니다. 물론 이 모든 작용은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가족 중 상호 의존의 덫에 걸려 있거나 enabling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과 조력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족 중 누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죠.
그 다음에는 문제가 되는 그 가족을 도박자와 최대한 거리를 두게 하면서 안전한 가족과만 치유 과정을 협의해야 합니다.
사실 상호 의존의 정도가 심하거나 enabling에 집착하는 가족은 조력자라기보다는 도박자와 마찬가지로 치유가 필요한 병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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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베팅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도박을 즐겨도 좋다고 허락한다 해도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고 수긍할 도박자가 얼마나 될까요. 도박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불확실한 사건에 돈을 거는 것이니 돈 또는 돈에 상응하는 물건을 베팅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도박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도박이 존재하는데 돈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당연히 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서도 돈 관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도박자의 수중에 있는 돈, 도박자에게 주어진 돈, 도박자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돈은 도박 자금으로 유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박에 중독되면 재정 관리 능력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는 수입이 발생하는 일을 하건, 기존에 쌓아둔 재산을 쓰기만 하건 간에 제대로 된 자금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정 관리 능력이 돌아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라도 가족이나 믿을 만한 지인이 자금 관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고 그 전에 신경 써야하는 건 도박자가 도박 자금으로 유용할 수 있는 자금원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 투명성이 핵심인데 도박자는 가계부, 최소한 현금 출납부를 꼼꼼히 써서 지출되는 내역을 누구에게나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야(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하고 도박을 하던 당시에 도박 자금으로 사용하던 금액 이하로만 소지하고, 현금화 할 수 있는 물품 등을 아예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용 카드 대신 체크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필수이고요. 도박 중독이 재발하지 않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박 자금원을 차단하는 것이죠.
도둑을 막으려면 집단속을 위해 도둑이 들어올 수 있는 허점과 구멍을 막아야 하듯이 도박 자금으로 악용될 수 있는 자금원을 차단하는 것은 치유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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