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이 수검자가 정신증인가요?', '병원에 보내 약물 치료를 해야 할까요?'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상담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에게는 주요우울장애와 함께 가장 긴장되는 정신 장애가 정신증(Psychosis)이라는 이야기지요. 정신증이라는 걸 간과하고 상담에만 집중하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약물 치료를 할 시기를 놓치는 것만큼 땅치고 후회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레알 정신증 환자는 병원으로 곧바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담자가 정신증이 발병한 환자를 만날 일은 매우 드물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해 둡니다.
MMPI-2로 국한해 설명하는 이유는 주요우울장애의 전형적인 검사 sign들을 설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에 발병하는 정신증이 성인의 경우보다 더 드물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MMPI-2를 기준으로 정신증(Psychosis)이라면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양상을 따릅니다. 이걸 모두 충족해야 정신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조건들에서 멀어질수록 정신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좋습니다.
* 타당도 척도 : 정상 수준
: 진짜 정신증이라면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므로 고통감을 호소할 겨를이 없습니다. 특히 F척도가 상승한다면 정신증일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F척도는 당연히 임상 척도, 그 중에서도 정신증 4척도(Psychotic Tetrad)인 6, 7, 8, 9척도와 상관이 높으니 6, 7, 8, 9번 척도가 상승했다고 해도 F척도가 상승했다면 정신증이라서가 아니라 수검자가 고통감을 호소해서 F척도가 상승했기 때문에 덩달아 상승한 겁니다. DSM-IV 기준으로 편집성 조현병이라면 오히려 K척도 등의 방어 타당도 척도가 상승했으면 상승했지 F척도가 상승하지는 않습니다.
정신증이 아닌데 정신증처럼 보이려는 의도를 반영하는 F(P)척도나 이차 이득을 반영하는 FBS 척도가 상승했다면 더더욱 정신증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신증을 고려하려면 일단 타당도는 깔끔하게 normal 수준으로 나와야 합니다.
* 임상 척도 : 6-8/8-6, 7-8/8-7, 8-9/9-8 코드 패턴
: 임상 척도에서 정신증을 고려할 수 있는 코드 패턴은 위의 3개 뿐입니다. 8번 척도만 단독 상승하는 정신증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임상 척도는 상승하면 안 됩니다. 특히 1, 2, 3 척도와 같은 신경증 척도가 함께 상승한다면 십중팔구는 정신증이 아닙니다. 5번, 9번 척도만 하강하고 나머지는 모두 65T 이상으로 상승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정신증이 아니라 적응 장애나 PTSD를 고려하셔야 합니다. 또한 위의 코드 패턴은 누가 봐도 확실한 수준으로 상승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코드 패턴에 포함된 척도를 제외한 다른 척도들은 확실히 낮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 재구성 임상 척도 : 임상 척도의 코드 패턴과 동일해야 함
: 예를 들어 6-8 코드 패턴이라면 재구성 임상 척도에서도 당연히 RC6-RC8 코드 패턴이 나와야 합니다. 다른 재구성 임상 척도가 함께 상승하거나 특히 RC8 척도가 유의미하지 않은 경우(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정신증이 아니며 소척도 연결 분석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성격 병리 척도 : 모든 척도 normal
: 성격 병리 척도 해석에서 주의할 사항은 PSYC 척도가 유의미하면 오히려 정신증이 아닐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보통 PSYC 척도는 F척도와 상관이 높아서 수검자가 증상을 심하게 호소할수록 상승합니다. 따라서 F척도가 상승했다면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고 만약 F척도가 상승하지 않았는데 PSYC 척도가 유의미하다면 내용 소척도 중 BIZ2(조현형 성격 특성) 척도가 유의미한지 확인해보세요. 보통 BIZ2 척도가 상승할 때(A군 기질인 경우) PSYC 척도가 동반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상 PSYC는 정신증과 거의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 내용 척도 :∧패턴 + BIZ 척도 유의미
: MMPI-2의 경우 가운데 5개의 내용 척도만 상승하고 양쪽의 10개 척도는 상승하지 않는 패턴을 보입니다. 특히 상승하는 척도 중 BIZ 내용 척도만큼은 반드시 유의미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소척도 연결 분석을 해야하지만 어쨌거나 최소한 BIZ 내용 척도는 유의미해야 합니다. 임상 척도 때와 마찬가지로 FRS, DEP, OBS, HEA와 같은 신경증 관련 척도들이 함께 상승하면 정신증일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 보충 척도 : 물질 중독 척도 미상승
: 임상 소척도에서 설명드리겠지만 지각의 왜곡을 반영하는 Sc6 임상 소척도가 유의미하더라도 MAC-R, AAS와 같은 물질 중독 척도가 상승하면 술이나 마약, 불법 약물 등에 의해 환청, 환시 등이 발생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지각의 왜곡이 물질 중독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물질 중독 척도는 모두 유의미하지 않은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 임상 소척도 : Sc6 소척도 유의미
: 8번 척도에는 6개의 소척도가 있는데 정신증과 가장 상관이 높은 건 Sc6(기태적 감각 경험) 소척도입니다. 환청, 환시처럼 지각의 왜곡을 평가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정신증이려면 반드시 Sc6 소척도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해야 합니다. 거기에 애착 외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Sc1, Sc2 소척도의 점수가 Sc6 소척도 점수보다 높으면 안 됩니다. 전형적인 정신증이라면 Sc3, Sc4, Sc5, Sc6 소척도 위주로 상승하고 특히 Sc5, Sc6 소척도 점수가 가장 높게 나타납니다.
만약 6-8 코드 패턴이라면 Pa3가 아닌 Pa1, Pa2 소척도가 6번 척도의 상승을 견인해야 하고 8-9 코드 패턴이라면 분열정동장애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Ma1, Ma2, Ma4 세 소척도가 9번 척도의 상승을 견인해야 합니다. 이외의 경우라면 6-8, 8-9 코드 패턴이라도 정신증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 내용 소척도 : BIZ1 소척도 유의미
: 전형적인 정신증은 '지각의 왜곡'과 '사고 장애'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각의 왜곡을 측정하는 게 Sc6(기태적 감각 경험) 임상 소척도라면 사고 장애를 측정하는 게 BIZ1(정신증적 증상) 내용 소척도입니다. 그러니까 BIZ1 소척도까지 상승해야 정신증 진단이 완성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정신증이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그대로 충족하는 건 아니지만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수검자는 정신증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조건에서 벗어날수록 정신증일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니 선생님들이 만나는 수검자의 MMPI-2 검사 sign들이 제가 제시한 조건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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