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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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담을 받은 적이 없는 저같은 상담자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과연 제대로 상담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래도 상담 관련 서적을 꽤나 읽고 공부했기 때문에 상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대가들의 상담 시연을 담은 동영상도 열심히 복기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어느정도는 흉내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상담 동안에 내담자 뿐 아니라 상담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낱낱이 알 수는 없는 것이죠. 내담자에게 집중하는 상담자일수록 더 모르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런데 이런 제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것만 같았던(과거형이라는데 주목~) 책을 찾았습니다. 제목부터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 출판부에서 나온 이 책은 임상심리학 박사인 Paul, L. Wachtel이 썼습니다. Wachtel은 특이하게도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의 양쪽 field 모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치료자로 어찌 보면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가지 접근을 접목하여 활용하는 임상가입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심리치료의 원리와 가정들에 대한 이론적인 소개와 함께 이 책에 실린 심리치료 사례를 보는 관점인 two-person perspective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부부터 문제입니다. 1부가 너무 장황하고 산만해요. 비유하자면 양식 코스에서 전채인 샐러드를 계속 리필해주다보니 정작 스테이크를 음미할 식욕이 남지 않는거죠. 2부가 두 명의 내담자와 진행한 3 session의 심리치료를 two-person perspective에 따라 상담 중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하는 main part인데 이걸 읽기도 전에 김이 확 빠져서 동기가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부는 그야말로 각 session의 vebatim을 낱낱이 풀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서문의 거창한 발문과 달리 맥이 빠질 정도로 평범합니다. 일반적인 사례 분석집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정신역동적 접근과 인지-행동적 접근을 모두 취한다길래 얼마나 대단할까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게다가 원서라는 걸 감안하면.... ㅠ.ㅠ
3부에서는 지난 회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부분인데 이 역시 2부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ㅡㅡ;;;;
번역서도 아니고 원서(현재 아마존에서 49.95$)라는 걸 감안하면 그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양가 있는 사례 관련 책을 찾기 위해 계속 try 해 볼 예정이니 찾으면 곧바로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북 크로싱을 할 예정이오니 직접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도저히 추천은 못 드립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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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회는 세부 워크샵 일정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등록하라는 것(이미
2008년에 제가 한바탕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네요)에 이미 빈정상했고 중독심리학회는 학술대회 내용이 별로라서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정신병리연구회 하계학술대회에서 DSM-5 워크샵을 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 하루 휴가를 내어 다녀왔습니다. 이것으로 올해 임상심리전문가 연수 시간은 다 채웠삼~
원래는 DSM-5 워크샵만 들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시간이 1시간 30분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전에 하는 치료 사례 회의까지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장소가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강당이었는데 본관, 별관과 떨어진 별도의 건물이라서 그런지 조용한 게 마음에 들더군요. 워크샵이 열렸던 대형 강의실에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내내 더웠던 것은 빼고요. 하루종일 부채질하느라고 지쳤습니다. ㅠ.ㅠ
우선 치료 사례 회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4개의 강의실에서 각각 연속으로 2개의 사례를 진행했는데 책상을 원형으로 배치한데다 토론자가 일방적으로 comment하지 않고 청중을 사례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효과가 있으려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못해 결론적으로 말하면 완전히 망했습니다. 연수 평점 시간이 아니라면 저만해도 그런 치료 사례 회의에는 참석 안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참석자가 온통 사례 발표를 앞둔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뿐이고 전문가는 가뭄에 콩나듯이 하더군요. 이래 가지고 무슨 발표자에게 도움이 되는 노하우와 comment가 나오겠습니까. 둘째. 여전히 심리치료와 상담을 하지 않는,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토론자로 배치했더군요. 인력 pool이 부족한 건 알지만 그럴바에는 토론자의 수를 줄이고 대형 강의실에서 하더라도 질을 높이는 편이 낫습니다. 발표자와 수준 차이가 거의 없는 토론자는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사례 발표는 그나마 이상한 치료 기법들을 적용하지는 않았더군요. 오히려 현장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 때문에 발표자나 참석자나 참 지루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문가랍시고 참석한 김에 이런저런 생각나는 점을 좀 많이 말했더니 나중에 혼자서 다 떠들더라, 아예 강의를 하더라는 뒷담화가 들려오던데 매우 불쾌합니다. 오죽 엉망이었으면 저같이 낯가림 심한 사람이 나서서 떠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겁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심리치료와 상담 수련을 간과하면 나중에 심리평가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상담심리전문가들이 병원 장면에 진출한 뒤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경고를 해도 귓등으로나 듣고 정신들을 못 차리니 원... 쯧쯧쯧...
오후에는 DSM-5에 대한 워크샵이 있었는데 3시간 30분으로 예정된 시간 내에 8명의 전문가가 20분씩 intensive하게 강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정보다 30분이 더 걸렸지만 8개의 강의 모두 매우 훌륭했습니다. 특히 성격 장애 발표를 담당한 박준영 선생님의 강의는 아주 발군이었습니다. 부러울 정도로 침착하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핵심을 정확하게 짚더군요. 매우 좋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잘 하셨고요. 확실히 junior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니 에너지도 넘쳐서 전반적으로 워크샵에 기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DSM-5에 대한 기대가 듬뿍 생겼습니다. 자료집과 발표 자료의 슬라이드가 차이 나는 강의가 몇 개 있지만 워낙 꼼꼼하게 DSM-IV와의 차이를 잘 정리해 주셔서 자료집만 꼼꼼히 뒤져봐도 DSM-5의 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신병리연구회에서 이번 워크샵 자료를 온라인으로 공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최종 결과가 아니라서 내년 APA 학회가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DSM-5를 공부하느라고 2013년이 정신없이 그러면서도 즐겁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아직 90% 정도만 결정된 상태라서 최종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의 분류와 진단 기준이 임상 현장의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바뀌었고 과잉 진단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진단에 필요한 기간을 대폭 늘리는 등의 깨알같은 노력도 꼼꼼히 기울였더군요. 각 장애의 severity를 평가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아마 병원에서 평가만 담당하는 임상가들은 full battery에 의존해 평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DSM-5에 맞춰 진단하기 위한 새로운 평가 방법의 개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심리치료나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들은 초기 적응기만 잘 넘기면 DSM-IV에 비해 업무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워낙 현장의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해서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거든요.
dementia라는 용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점, MR의 진단에 더 이상 지능 지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점, 도박 중독이 충동 조절 장애 중 유일하게 중독 장애로 이동한 점 등도 새로웠습니다.
빨리 DSM-5로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DSM-IV는 빈틈이 너무 많은 진단 편람이기 때문에 상담을 할 때나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적잖이 짜증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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