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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3를 자주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학회와 교수에 대한 제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학회와 교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건강분야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교육 과정의 체계가 하나도 없어 막상 전문가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학회가 정신을 못 차리고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못하고 있고 교수라는 사람들은 기득권에 취한 나머지 이러한 학회의 무능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 과정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당연히 그보다 더 중요한 임상가의 윤리에 대해서는 두 말 할 것도 없겠죠. 임상심리전문가만 해도 자격을 취득한 뒤에 의무적으로 듣게 되어 있는 윤리 교육 달랑 한 번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요새는 분위기가 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만 제 기준으로는 아직 멀었습니다)입니다. 현장에서 부닥칠 수 있는 수많은 윤리 문제들은? "그건 니가 알아서 해" 수준입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개인적인 문제이니 "니가 알아서 책임지고" 물의를 일으킨 수준이 심하면 학회에서 제명하고 땡입니다.
현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윤리적 문제(내담자와의 사적 관계, 개인 정보 보호의 한계, 비용 문제, 종교적인 문제와 가치관 등)와 만나면서 윤리 문제야말로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이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박터지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 전무합니다. 국내 서적은 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실정에 딱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년 9월에 소개한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Issues and Ethics in The Helping Professionals, 2007)'이 있어서 다행인 수준이죠.
서론이 길었는데 그렇다면 2010년 5월에 나온 이 책은 어떨까요?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별 한개도 아까운 책입니다. 장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풀어서 쓰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1. 2010년에 번역이 되었지만 원서는 1994년에 출판된 것이라서 무려 16년이나 된 책입니다. 당연히 그동안 변화해 온 윤리 규정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의 적절성은 둘째치고 아주 구태의연합니다. 이것만 익혀서는 어림도 없는 수준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위에 링크한 Corey의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중독전문가의 윤리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내용이 온통 알코올과 약물의존 분야에만 치우쳐져 있습니다. 도박 중독, 쇼핑 중독, 섹스 중독 등 행위 중독에 대한 부분은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용어 자체가 거의 안 나옵니다. 이 책의 원 저자인 두 사람 모두 알코올 및 약물의존 분야 전문가이니 당연할 수 밖에 없겠지요. 이 분들의 약력을 보면 행위 중독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습니다.
3. 우리나라와 미국의 현실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에 대해 번역자의 각주 하나 안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예전에 중독자였던 사람이 치료자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우 드물죠. 도박 중독 분야만 따지면 제가 알기로 전국에 단 한 명의 상담자만 있을 뿐 입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는 소송이 난무하는 국가이기때문에 임상가가 윤리 규정을 준수하느냐 법적 소송의 가능성을 줄이느냐의 딜레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법 상 책임을 의사가 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별로 없죠. 그게 다행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안 해놨습니다.
4. 게다가 번역 실력이 뛰어난 신성만 선생님이 역자 중 한 명인데도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번역부터가 엉망입니다. 아무리 공동 번역이라고 해도 대표 역자가 원서와 일일이 번역을 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당연하거늘 그런 작업 자체를 안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번역의 질이 형편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중독전문가 협회의 교육 과정을 위해 급조해 번역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5. 이건 학지사의 잘못인데 138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에 13,000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을 책정해 놓았습니다. 협회의 중독전문가 자격을 따려는 수강생들은 이 책을 반드시 사야할테니 그걸 이용해 장사하시려는 건가요?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가격 책정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알코올, 약물의존 분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도박 중독 분야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수준입니다. 미국 등은 지금 알코올, 마약과 전쟁을 치르느라고 도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SCI 등재 journal에도 도박 관련 논문은 거의 올라오지 않고요. 당연히 현장에서 일하는 도박 중독 전문가가 거의 없고 수준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약물 중독과 행위 중독을 하나로 묶어서 중독 전문가로 다루는 것 자체를 반대합니다만 통합한다고 해도 윤리 규정부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게 안 될까요? 무엇보다도 책을 써야 할 수준의 사람들이 더 이상 현장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네 분의 선생님이 일주일에 중독자를 과연 얼마나 만나고 있을까요?
도박 중독 분야는 더 말 할 것도 없고 알코올, 약물의존 분야에서 일할 전문가들에게도 이 책은 꼭 피하라고 권하고 싶은 수준입니다. 읽으면서 시간이 아깝더군요. 차라리 좀 비싸더라도 '상담 및 심리치료 윤리(2007)'를 읽으세요!
덧. 이 책의 뒷면에는 '중독전문가의 윤리에 관해 가장 인정받고 있는 책'이라는 문구가 선명한데 비웃음 밖에 안 나옵니다. 이 정도의 책이 가장 인정받는 책이라면 미국 중독 분야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덧2. 한국중독전문가협회 회장이신 이미형 선생님이 추천사에서 중독전문가 자격증 보급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고 하셨던데 알코올 약물 상담 분야에서 도박 등의 행위 중독을 포함하려고 협회 명칭을 개정한 것이 제가 알기로 작년인가 재작년입니다. 그 전까지 이 협회에서는 도박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신뢰감을 준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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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신건강과 관련된 현장의 실태는 이렇습니다.
정신과 의사들 이외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 심리치료를 허락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에 발목이 묶여 있는 동안 정작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만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심리치료 및 상담 영역은 퇴보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작금의 실태에 대한 정신의학계 원로들의 개탄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자성의 목소리로 인해 변화의 낌새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회의적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작 중요한 내담자의 권리와 사생활 보호, 상담자의 윤리관, 가치관 문제 등이 소홀하게 취급될 수 밖에 없습니다. 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임상 심리학회만 하더라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session이 한번도 없었으며 최근에서야 겨우 치료자의 직접 윤리에 대해 routine한 교육 과정을 개설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윤리 문제가 적절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임상가들은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필요한 지침서를 읽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척박한 우리나라 임상 윤리 분야의 황무지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제대로 된 윤리 관련 서적이 전무합니다).
심리치료 분야에 발 좀 담궜다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접했을, 그 유명한 Corey 부부가 쓴 이 책은 2007년에 발행된 7판입니다. 그걸 서경현, 정성진 두 분이 번역을 했고요.
그래도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간이기 때문에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윤리적 문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종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이와 역전이 문제 뿐 아니라 상담자의 가치관, 종교관 문제, 다문화적 관점과 다양성의 문제, 비밀 보장 및 사생활 보호 문제, 다중관계 문제, 치료자의 자격과 수련 문제, supervision 문제,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 부부 및 가족 치료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 집단 상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 등 현장에서 심리치료와 상담을 하는 임상가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윤리 문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개 방식이 참 마음에 드는데 우선 각 장의 맨 처음에 Likert 형 척도를 이용한 자기 점검 문항이 제시됩니다. 이 문항에 나름대로 답을 하면서 앞으로 소개될 내용의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예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윤리적 딜레마를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 사례 제시가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무릎을 칠 정도로 안성맞춤입니다. 그리고 말미에는 각 장의 내용 요약과 함께 role playing을 통해 그 장에서 다룬 내용을 실습할 수 있도록 '추천 활동'을 소개해 놓아서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윤리 문제에 대한 맥을 잡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의료관리체계(managed care system)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공개 문제와 다문화적 관점을 다룬 부분은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25,000 원이라는, 학생들은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책값 뿐입니다.
소장까지는 권장하지 않지만 현장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을 담당하는 전문가라면 반드시 최소한 한 번은 읽어보셔야 하는 책입니다. 빌려서라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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