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이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위해 MMPI 결과에서 주로 확인하는 건 2-7-0 code pattern의 유무입니다.
사실 2-7-0 또는 2-7 code pattern이 우울 장애인 경우보다는 PTSD(그 중에서도 Delayed PTSD)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저는 2-7-0, 2-7 code pattern이 의심되면 PTSD를 먼저 변별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실제로
'우울을 호소하나 Delayed PTSD를 의심해야 하는 수검자의 MMPI-2/A 양상' 포스팅에서처럼 알고 봤더니 Delayed PTSD로 진단해야 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로 진단할 수 있는 전형적인 MMPI-2 검사 sign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MMPI-2로 국한해 설명하는 이유는 MMPI-A를 적용해야 하는 건 17세 이하 청소년인데 청소년을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하는 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 상 약물 치료가 동반되어야 하는 주요우울장애의 전형적인 검사 sign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타당도 척도 : 정상 수준
: F 척도군도 전혀 상승하지 않는, 그야말로 normal profile이 나옵니다. F, F(B) 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건 수검자가 적극적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한다는 의미인데 주요우울장애에 속하는 수검자들은 그런 호소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 임상 척도 : 2번 척도 단독 상승(Spike 2)
: 0번 척도가 함께 상승해서 2-0 code pattern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0번 척도의 상승은 기질/성격 때문인 경우가 많고 이는 대부분 TCI 결과로 설명이 됩니다. 또한 2번 척도의 상승폭만큼 9번 척도의 하강폭도 중요합니다. 주요우울장애의 경우 9번 척도가 낮을수록, 정확하게는 2번 척도와 9번 척도의 차이가 클수록 우울 정도가 심한 것이고 9번 척도가 30T에 근접할수록 약물 치료를 해야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 재구성 임상 척도 : RC2 척도 단독 상승
: 2, 9 임상 척도의 관계처럼 RC9 척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간혹 RC2 척도는 유의미하지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2번 척도가 depressed mood(-요인의 상승)를 측정하는 것에 비해 RC2는 low positive emotion(+요인의 하강)을 측정하기 때문에 항상 2번 척도와 함께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격 병리 척도 : INTR 척도 단독 상승
: 2, 9 임상 척도의 차이처럼 AGGR 척도 점수가 30T에 근접하고 INTR척도와 차이가 커질수록 증상이 심한 겁니다.
'INTR, SOD(A-sod), Si 척도를 통한 내향성 이해'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INTR 성격 병리 척도는 우울 취약성을 드러내는 성격 병리 척도이기 때문에 INTR 척도가 상승하면 우울 장애 가능성이 커집니다.
* 내용 척도 : 신경증 척도군에서 ANX, DEP 척도만 상승
: 이 경우에도 ANX 척도보다 DEP 척도 점수가 더 높습니다. 신경증 관련 내용 척도가 상승하는 경우 대개는 ANX 점수가 가장 높기 때문에 DEP 척도가 더 높은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후반부의 척도 중에서는 LSE 척도가 매우 높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우울 정도가 심해집니다. LSE 내용 척도가 인지 삼제(cognitive triad)에 해당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그렇죠. 나머지 내용 척도는 유의미한 척도가 드뭅니다.
* 보충 척도 : R 척도의 상승
* 임상 소척도 : D1, D2, D3 척도 조합의 상승
: D4, D5 소척도까지 모두 65T 이상으로 상승했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도 쉽게 구분이 될 정도로 D1, D2, D3 점수가 D4, D5 점수보다 높은 양상을 보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임상 소척도는 대부분 유의미하지 않은 경향을 보입니다.
* 내용 소척도 : DEP 척도 내 소척도들의 상승
: 특히 DEP1(동기 결여), DEP2(기분 부전) 소척도의 상승이 두드러집니다. 임상 척도에서 0번 척도가 동반 상승한 경우는 SOD 척도 내 소척도들도 함께 상승합니다. LSE 척도에서는 LSE1(자기 회의) 소척도가 유의미합니다. 나머지 내용 소척도들은 대부분 유의미하지 않은 경향을 보입니다.
노파심에서 당부드리자면 위에 소개한 조합은 주요우울장애로 의심할 만한 지극히 전형적인 검사 sign들을 제시한 것이니 이 조합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주요우울장애가 절대로 아닌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한다면 주요우울장애가 아닐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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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MMPI-2 척도(임상, 내용, 보충)의 직관적 이해' 포스팅을 통해 메뉴얼의 해석 기준대로 유의미한 척도만 골라내서 조합하는 것보다 수검자의 심리 구조를 집에 비유하여 임상, 내용, 보충 척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formulation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임상 척도와 내용 척도만 콕 집어서 의미 차이를 통해 수검자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상 척도 : 수검자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사용
내용 척도 : 수검자가 문제를 주관적으로 호소하는데 사용
그러니까 임상 척도는 수검자의 문제가 객관적인 기준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수준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며 내용 척도는 수검자가 주관적으로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답을 말씀드리면 RC2 재구성 임상 척도와 DEP2 기분 부전 소척도가 동시에 유의미한, 드문 경우(이 때 기분 부전 장애 진단 고려)를 제외하고는 우울 장애로 진단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2번 임상 척도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우울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데 데 비해 DEP 내용 척도는 수검자가 우울과 관련하여 호소하는 내용들만 반영하기 때문에 진단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2번 척도가 유의미하고 DEP 척도가 유의미하지 않을 때는 우울 장애 진단이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거의(앞에서 말씀드린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우울 장애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0번 척도는 임상 척도군에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상 성격 척도라고 할 수 있는데 0번 척도의 Si2 소척도(사회적 회피)가 상승할 경우 내향적인 성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SOD1 내용 소척도(내향성)입니다. 이 척도는 수검자가 자신을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측정합니다. 그래서 Si2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고 SOD1 소척도만 유의미하다면 사실은 내향적인 성격이 아닌데 수검자가 자신을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착각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로 Si2 소척도가 유의미하고 SOD1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다면 수검자는 자신이 사실은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쉬운 용어로 다시 정리해보자면,
임상 척도 : 수검자에게 진단이 필요한 병리적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때 사용
내용 척도 :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며 진단과는 (거의) 상관없음
내용 척도가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며 진단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거의'라는 단서를 달았냐하면 예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ANX 내용 척도인데 이 척도는 신체화를 동반한 상태 불안을 측정합니다. 문제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불안 관련 임상 척도가 7(Pt)번 척도인데 이건 상태가 아닌 특성 불안(일종의 기질 불안)을 측정하기 때문에 7번 척도 상승만으로 불안 장애 진단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내용 척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 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ANX 척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MMPI-2/A가 불안 장애 척도군이 부실하기 때문에 생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특이 경우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임상 척도 : 진단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
내용 척도 : 수검자의 주관적 고통 호소
정도로 이해하시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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