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GR 성격 병리 척도는 18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은 점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사전에 계획된 도구적 공격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방어적이거나 반응적인 공격성을 충동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닌 반사회적 의미의 공격성을 측정하는 것이죠.
MMPI-2 뿐 아니라 MMPI-A에서도 AGGR 성격 병리 척도가 상승하는 건 공세적이고(offensive), 도구적인(instrumental) 공격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척도에서 65T 이상의 높은 점수를 얻는 청소년들은 폭행, 공격 등의 비행 행동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AGGR 척도는 Morey 등(1985)이 제작한 성격장애 척도 중에서 자기애성, 연극성, 반사회성 척도와 유의미한 상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모두 TCI에서 자극추구기질이 높은 유형이죠. 특히 Wygant와 Sellbom(2012)에 따르면 AGGR 척도는 반사회성향과 강한 상관을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AGGR 성격 병리 척도는 일반적인 공격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척도인 ANG, TPA, Ho 척도와 상관이 유의미하지 않거나 매우 낮습니다. 즉, 공통 요인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따라서 AGGR 척도는 격렬한 분노보다는 우월감, 주도성, 가학성, 복수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잔인한 분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AGGR 성격 병리 척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해석 전략을 제안합니다.
1. AGGR 척도의 단독 상승
: 타당도, 임상, 재구성 임상, 내용 척도 모두 정상 수준으로 해석할 내용이 거의 없어 보일 때 AGGR 척도만 단독으로 65T 이상 상승했다면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건 반사회성 성격 장애입니다. 타당한 profile이고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심리적 불편감을 전혀 호소하지 않았다는 건 자아 동질적(ego syntonic)이라는 이야기이고 이는 성격 장애를 의심해야 하는 중요한 sign입니다. 실제로 TCI를 추가 실시해 보면 반사회성 성격 장애인 경우가 많습니다.
2. AGGR 척도 이외의 다른 척도도 동반 상승
: 전형적인 반사회성 성격 장애가 아닐 경우에도 AGGR 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할 수 있는데 이 때는 다른 척도도 함께 상승합니다. 해석의 포인트는 어떤 척도가 함께 상승하느냐가 아니라 AGGR 척도가 단독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반사회성 성격 장애가 아닌데 왜 AGGR 척도가 상승하냐인 것이죠. 이는 TCI 자극추구기질이 상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 '자유 분방' 하위차원이 1SD 이상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위에서 AGGR 척도가 ANG, Ho 척도와 상관이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말씀드렸지만 AGGR 척도가 반사회성 성격 장애를 시사하지 않을 때는 ANG, Ho 척도도 함께 상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과가 그저 분노 조절이 어려운 기질 상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당연히 자율성, 연대감도 낮아서 이러한 기질 상의 취약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에 AGGR 척도가 유의미한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AGGR이 DISC 성격 병리 척도와 동반 상승할 경우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이를 굉장히 병리적으로 해석하지만(PSYC 척도까지 상승하면 더더욱) 2번 해석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단지 자극추구기질의 상승(AGGR은 자유분방, DISC는 충동성)을 반영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격이 기질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여러가지 행동화 문제가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니 AGGR 척도만 단독 상승한 것이냐, 다른 척도와 동반 상승한 것이냐에 따라 다른 해석 전략을 적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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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상담을 하게 된 이후 supervisee 선생님들께 지나가는 말처럼 자주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개인 감정대로만 생각하면 시험을 봐서 일정 수준을 통과한 부모만 아이를 낳도록 허용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에서 무슨 망발이냐고 나무라실 수 있지만 그만큼 자격도 능력도 안 되는 부모들이 생각없이 낳은 아이들이 지금도 받고 있는 상처와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아이를 증오하고 노골적으로 학대하는 부모가 분명히 있고 그보다 더 흔하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은밀한 학대 또한 존재하니까요.
아동을 만나는 임상가들은 미묘한 형태의 아동 학대를 탐지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 학대를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하는 심리검사 결과를 정리해 봤습니다.
* 아빠의 MMPI-2 결과
- K척도의 상승(70T 이상 또는 그에 근접하는)
- DISC 성격병리 척도의 상승
- GM, ES 보충척도의 상승
* 엄마의 MMPI-2 결과
- S척도의 상승(70T에 근접하고 K척도의 상승 보다 높은 수준)
- GF, Re 보충 척도의 상승
* 아동의 문장완성검사 결과
- 부정적 내용이 거의 없으며 특히 부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기술로 일관
위와 같은 아빠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방어적이며 가부장적인 성역할에 집착하고 고집이 매우 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는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보일 수 있지만 자기의 가치관을 가족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고 DISC 척도가 상승할 때 분노, 적대감을 측정하는 척도가 동반 상승하지 않아도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발현 가능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배경 정보에 음주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해야 하고요. 대부분의 경우 문제 인식이 없고 치유적인 개입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는 MMPI-2, SCT와 같은 검사 실시 자체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빠처럼 K척도의 상승으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지 않지만 S척도의 상승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경향 때문에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밖으로 노출하지 않으려고 감추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의 도움 호소를 무마하거나 축소하여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남편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역할만 감당하기 쉽고 원가족의 어머니에게 밀착되어 있고 어머니도 자신과 비슷한 경우 이런 성역할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학대와 관련해서는 방관자의 위치를 담당하기 때문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있도록 자아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 됩니다.
학대를 당하는 아동의 경우 부모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지능이 우수한 아이일수록 이런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경향이 일반화되면 아예 부정적인 내용의 이야기 자체를 못하게 되거나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전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신체적인 학대를 주로 당하는 아동은 가해 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드러내고 무섭다는 표현을 하거나 악몽을 꾸는 등의 증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언어적인 공격이나 정서적 방임, 지나친 기대 투사 등의 미묘한 학대를 가하는 부모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랑에 기인하는 것으로 포장하거나 스스로도 자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동을 이중 구속의 덫에 빠뜨립니다. 즉 '내 부모가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이고 부모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나서이다'라는 식으로 자기 귀인하게 만듭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고 어른이 되고 난 이후 성공 경험을 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처받은 학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 나열한 심리검사 결과는 아주 전형적인 profile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여러가지 형태의 변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위의 검사 결과를 모두 충족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부모의 아동 학대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덧.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다룬 훌륭한 참고 서적으로는 수잔 포워드가 쓴
'독이 되는 부모(2002)'가 있죠.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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