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합니다만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선별평가도구로 많이 사용하는 MMPI-2의 D, RC2 척도를 활용해 우울 관련 장애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예전에 MMPI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흔히 2-7-0 또는 2-7 code tyep이 전형적인 우울 장애 프로파일이었습니다. 물론 요새도 이 code type 양상이 분명하면 우울 장애를 고려하기는 합니다만 요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유행하는 진단은 Mixed Anxiety and Depressive Disorder입니다. 아무래도 7번 척도의 상승을 무시하기는 힘드니까요.
하지만 불안까지 함께 고려하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오늘은 임상 척도 D, 재구성 임상 척도 RC2 딱 두 개만 갖고 우울 장애와 관련된 진단 가설을 설정하는 걸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원래 임상 척도의 재구성 임상 척도 모두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해석 기준 점수는 65T이나 편의 상 즉각적인 심리치료 또는 약물 치료를 요하는 수준의 개념적 진단 기준인 70T로 설명하겠습니다.
D 척도 상승 : Depressed Mood 상승
RC2 척도 상승 : Positive Emotion 하강
경우의 수는 크게 3가지입니다.
* D 척도 70T 이하, RC2 척도 70T 이상
* D 척도 70T 이상, RC2 척도 70T 이하
* D 척도 70T 이상, RC2 척도 70T 이상
1. D 척도 70T 이하, RC2 척도 70T 이상 -> 기분 부전 장애(Dysthymic Disorder) 고려
depressed mood는 별로 보고되지 않고 positive emotion만 낮은 경우입니다. 상담이나 구조화된 면담에서 내담자가 '사는 재미가 별로 없고 웃을 일도 별로 없다'고 보고하는 것이 전형적인 양상입니다. 우울해 죽을 지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일도 없는 상태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작은 스트레스에도 취약할 수 있습니다.
2. D 척도 70T 이상, RC2 척도 70T 이하 ->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 고려
1번 경우와 반대로 depressed mood는 높은 수준인데 positive emotion가 하강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수검자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고 cognitive triad에 해당하는 문제도 보고하는데 그래도 삶의 즐거움이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아 buffer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경우는 약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D척도의 하위 척도에서 D2 정신운동지체 소척도가 어느 정도 상승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로샤 같은 투사법 검사를 추가로 실시하는 게 좋습니다. emotional support를 제공하는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울에서 빠져나오는게 쉬워집니다.
3. D 척도 70T 이상, RC2 척도 70T 이상 -> Double Depression(Major Depressive Disorder) 고려
depressed mood도 높은 수준이고 positive emotion까지 하강한 경우로 예후가 가장 좋지 않습니다. 대개는 기분부전 장애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 발병 시점 앞뒤로 강력한 stressor를 만나 한번 더 추락한 형국입니다. 그래서 double depression이라고 하는거죠. depressive해지기 오래 전부터 긍정적인 정서도 고갈되어 온데다 이러한 긍정적 정서의 고갈이 주변의 지지 체계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작 심각한 우울이 찾아왔을 때 도움을 받을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이 경우는 대개 응급실을 통해 종합병원급의 보호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살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주의 관찰을 요합니다.
DSM-5 기준으로는 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가 가장 부합하는 진단명입니다.
덧. 우울 장애의 임상적 진단이 이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정확한 변별 진단을 위해서는 D, RC2 척도의 조합만 믿지 마시고 다른 심리검사결과와 면담, 배경 정보, 치료력 등을 포괄적으로 함께 고려하셔야 합니다. 위의 내용에만 너무 의존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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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현대인의 감기로 불릴 정도로 이제는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신 장애이고 예전에 비해 "나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 받고 있어"라고 드러내도 주변 사람들이 백안시하는 정도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심리평가를 할 때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수검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임상가들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별다른 고민없이 자동적으로 Depressive Disorder(그 중에서도 MDD)를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울하다'라는 말이 수검사/내담자와 임상가에게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우울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보고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추가 질문(probing question)을 통해 확인해 봐야 합니다.
'우울하다'는 말이 수검자와 임상가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도
다음으로 그것이 우울 사고의 문제인지, 우울 정서의 문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많은 임상가들이 우울하다고 하면 무조건 우울 정서를 떠올리는데 의외로 우울 정서가 아닌 우울 사고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수검자도 많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런 임상가는 우울하다는 주 호소만 보고 MMPI-2를 봤는데 우울 관련 척도가 하나도 상승하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고 그래도 거기에서 그치고 다른 검사 sign과 교차 검증하면 되는데 의뢰자의 임상적 인상을 믿고 그냥 우울 장애로 진단을 내린 심리평가보고서를 쓰게 됩니다. 물론 로샤 검사의 DEPI 지표 하나쯤은 달아서 쓰겠지요.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도 영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울 정서의 문제가 아니고 우울 사고의 문제인 것을 우울 장애로 진단을 내려 수검자에게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우울 사고의 문제가 있는 수검자는 MMPI-2에서 우울 관련 척도가 기대만큼 상승하지 않으며(오히려 RC2 척도가 상승), 로샤를 봐도 MOR, C' 등으로 채점할 수 있는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황량하고 건조한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는 Dysthymic Disorder를 의심해 봐야 하는 상황이죠.
물론 Dysthymic Disorder도 우울 장애군에 속하니 우울 장애 진단이 맞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치료적인 접근에서 차이가 납니다. 주요 우울 장애로 우울 정서에 의한 고통감이 심하면 필요에 따라 항우울제를 비롯한 약물 치료가 병행되어야겠지만 우울 사고가 주가 되는 경우 약물 치료보다는 긍정적인 정서를 고갈시키는 우울 사고의 핵심 기제를 찾는 작업이 주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으니 그냥 Depressive Disorder로 애매하게 진단하고 마는데(그것도 R/O 붙여서) 그래서는 안 되죠. 그건 평가자의 직무 유기입니다.
또한
우울하다고 해서 그 이유를 들어보면 온통 신체화 증상만 보고하는 수검자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somatic complaint가 수반된 우울 장애와 신체화 자체가 수검자의 문제 영역 혹은 관심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어 기제인 경우를 구분해야 합니다.
전자는 당연히 내면의 우울 정서와 신체화 증상을 모두 지지하는 검사 sign이 발견될테고 후자는 오히려 대인 관계 영역의 문제를 드러내는 검사 sign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니 수검자가 우울하다 호소한다고 해서 다 같은 우울 장애가 아니라는 걸 알고 꼼꼼히 점검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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