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서 만나는 내담자가 특정한 대상에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특수한 유형의 내담자들을 주로 만나는 상담자라고 해도 이직을 해서 다른 세팅으로 옮기거나 개업을 하게 되거나 하면 다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러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다양한 내담자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요?
제가 사용하는 호칭법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학생 이상 성인의 경우는 ~님으로 통일하고 미성년의 경우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지만 대신 말높임을 합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하려는 노력인데요.
다른 상담자들도 대체로 저처럼 내담자를 호칭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이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EAP 사내 상담을 하는 경우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상담하면 full name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보다는 ~대리님, ~차장님 등의 직책으로 호칭하기 쉽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 상담을 할 때 부모를 함께 상담하는 경우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칭하기 쉽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상담에 임하는 내담자의 마음도, 상담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와 내용 모두 관계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 제약의 틀이 상당히 견고한데 사내 상담에서 ~차장님이라고 계속 불리는 상태에서는 내담자가 중간 관리자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상담의 내용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고 ~어머님으로 불리는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 문제나 원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성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관계지향문화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약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무런 관계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라도 full name으로 호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내담자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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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P 상담은 생각보다 포괄하는 영역이 넓어서 단순히 노동자 본인의 직무 스트레스만 다루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 예를 들어 부부 갈등, 자녀 양육 문제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일반 상담 영역에서 다루는 문제는 모두 다루면서도 조직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과 그로 인한 문제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한층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상담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 상담 현장이나 전통적인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수련을 받은 임상가들은 상담/임상 뿐 아니라 조직 심리학이나 집단 역학 등의 공부를 추가로 더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EAP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건 어느 상담/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최우선되지만 EAP 상담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개인 정보의 노출이 단순한 명예 훼손이나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직업적인 피해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생산성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인적 자원은 가장 손쉽게 손대고 싶은 영역입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내담자의 인적 사항과 상담 내용을 요구하는 가장 노골적인 수준에서부터 상담자와 안면이 있는 직원을 통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은밀한 접근에 이르기까지 EAP 상담을 받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특히 EAP 상담을 진행하는 부서가 독립되어 있지 않아 특정 부서의 감독, 감사를 받을 수 있고 상담 실적 보고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EAP 상담 부서의 독립적 운용이고 그게 어렵다면
실적 보고 시 실적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로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담 내용 입력을 전산화했다면 별도 서버 운용, 접근 권한의 철저한 관리, 이중 시건 장치를 통한 문서 보관은 기본입니다. 특히
상담자 간에도 담당하는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공석 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다중 관계 문제
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라는 글에서도 다중 관계의 문제에 대해 강조했지만 EAP 상담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바로 다중 관계입니다.
EAP 상담자는 상담자이면서 동시에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자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담하는 내담자의 인사 고과 평가를 받는 직원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조직이 작거나 혹은 크더라도 자신이 속한 EAP 상담센터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지원부서의 직원과는 안면을 틀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죠. 이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EAP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잠재적인 내담자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내담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니 가능하면 조직 내의 구성원들과 사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조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조회, 회식, 워크샵, 집체 교육 등)는 가능하면 불참하는 것이 낫고 이런 조치가 조직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요.
3.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문제
조직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가능성은 급격히 커집니다. 인트라넷을 운용하는 회사에서 상담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일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담자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지 몰라도 EAP 상담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자녀 상담을 진행하는데 갑작스레 예약을 바꾸려고 할 때 직원을 통해 상담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직접 연락하는 걸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라면 사소한 불편함 정도일 수 있으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직원을 상담할 때 시시때때로 상담자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으니 의존 문제도 그렇고 상담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
인트라넷에서도 휴대폰 번호나 개인 이메일 주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꼭 필요한 인원에게만 알리는 식으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EAP 전문 상담자가 상담자이자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이런 예상 문제들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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