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미 훌륭한 상담자이거나 그런 상담자가 될 자질이 넘치는 분들도 만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사람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상담자의 윤리를 심하게 어기는 경우를 먼저 떠올리실 수 있지만 그건 상담자의 자질 문제라기보다는 외현화된 행동의 문제이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징계를 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해서 안 되는 것일 뿐 평생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결격 사유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잘 극복한 사람이 훌륭한 상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건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담자를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상담 센터에는 대부분 대기실이 있고 예약 일정 조정을 하거나 기타 도움을 주기 위해 데스크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담 센터의 데스크 직원이라면 상담과 내담자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와 공감적인 배려심이 필요합니다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종종 있죠. 상담을 위해 방문한 내담자의 자녀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는데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데스크 직원이 호되게 야단치는 바람에 내담자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들은 담당 상담자가 내담자를 달래면서 데스크 직원을 나무랐겠지요. 그런데 다른 상담자가 끼어들어 데스크 직원 편을 들며 옹호합니다. 나중에 본인의 입으로 밝힌 이유인즉슨 상담자인 자신도 센터에 속한 직원이고 자신은 내담자보다 같은 조직원과 사이가 좋은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데스크 직원의 편을 들었다고요.
데스크 직원도 감정 노동자이고 부당한 요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약자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문제의 상담자가 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담자를 희생시키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죠?
그래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프랜차이즈 형식의 기업형 상담센터나 기업 소속의 EAP 상담센터는 지역마다 센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파견 형식으로 발령을 받거나 새로운 센터가 세워지게 되면 순환근무 형태로 재배치되기도 합니다. 기존에 없던 지역에 새로운 센터가 세워졌고 새로운 인력을 충원할 여력이 없어 기존 상담자 중 한 명이 담당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상담자 중 한 명이 집에서도 가까운 거리라서 담당하면 딱이지만 공교롭게도 기존에 상담하던 내담자가 많은데 새로 생긴 지역센터와 거리가 멀어 기존 내담자들을 새로 생긴 센터로 연결해서 상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담자를 종결할 시간동안 불편하더라도 상담자들이 한 달씩 순환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상담자는 자신의 집이 멀어서 출퇴근이 불편하고 당신은 집이 가까우니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당신이 맡아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내담자들을 빨리 정리하고 고정 담당을 하라고 압박합니다.
내담자를 착취하는 상담자를 상상하셨다면 이 경우도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이 상담자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의 우선 순위에 내담자가 아예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상담자라면 이득의 유무를 떠나 어떤 결정을 할 때 그게 자신의 내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먼저 고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수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한 그런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직장 동료와의 인간관계, 자신의 출퇴근 거리가 더 중요한거지요.
이런 상담자는 자신의 이득과 내담자가 충돌할 때 언제든 내담자를 먼저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내담자를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착취하는 사람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만 생기면 사소한 자신의 이득마저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믿고 있는 내담자를 내동댕이칠 수 있는 위험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담자가 되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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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나름의 이유로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것이 승진을 위한 전진이든, 마음의 평안을 위한 후퇴이든 간에 말이죠.
EAP 상담을 하다보면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내담자를 꽤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도 불사하고, 눈도장을 찍느라고 퇴근한 후에도 다시 회식 자리에 나가 얼굴을 비추기도 하고요. 웃기지도 않는 상사의 농담에 맞장구도 쳐야하고 일이 돌아가게 하려고 옆 부서의 동기나 후배에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순한 정치 논리, 라인 논리로 승진에서 밀리고 엉뚱한 부서로 발령이라도 나면 이놈의 직장은 왜 내 충성심을 알아주지 않는거냐고 분통을 터뜨리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면 자상한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을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상한 아빠는 기본이니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재워야 합니다. 휴일에는 가족과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하고 그런 가운데 짬짬이 자기 계발을 위해 운동도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지요. 그런데도 가사 분담에 적극적이지 않고 여전히 수동적이라는 배우자의 볼멘 소리를 듣거나 조금만 비위를 못 맞추면 쪼르르 엄마 품으로 달려가 버리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는 수퍼맨, 수퍼우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력과 시간에는 한계란 것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은 아니지만 EAP 상담에서는 이런 역할 갈등 해결을 위해 내담자와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 때 자칫하면 포인트를 잘못 잡기 쉬운데 대표적인 것이 회사와 가정 둘 다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만 택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조절해서 양쪽 모두 적당히 하라는 뻔한 조언을 하는 것이죠.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느 정도로 조절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내담자의 몫이고 상담자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내담자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 볼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나는 왜 외부의 인정에 이렇게까지 목을 매고 있는가'
자신의 진가에 대해 스스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아무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EAP 상담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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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만나는 내담자가 특정한 대상에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특수한 유형의 내담자들을 주로 만나는 상담자라고 해도 이직을 해서 다른 세팅으로 옮기거나 개업을 하게 되거나 하면 다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러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다양한 내담자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요?
제가 사용하는 호칭법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학생 이상 성인의 경우는 ~님으로 통일하고 미성년의 경우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지만 대신 말높임을 합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하려는 노력인데요.
다른 상담자들도 대체로 저처럼 내담자를 호칭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이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EAP 사내 상담을 하는 경우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상담하면 full name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보다는 ~대리님, ~차장님 등의 직책으로 호칭하기 쉽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 상담을 할 때 부모를 함께 상담하는 경우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칭하기 쉽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상담에 임하는 내담자의 마음도, 상담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와 내용 모두 관계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 제약의 틀이 상당히 견고한데 사내 상담에서 ~차장님이라고 계속 불리는 상태에서는 내담자가 중간 관리자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상담의 내용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고 ~어머님으로 불리는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 문제나 원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성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관계지향문화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약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무런 관계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라도 full name으로 호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내담자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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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P 상담을 하다 보면 분노 조절을 못하는 내담자를 의외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장 많이 보고되는 대상은 직장 상사이나 오래된 문제인 경우 가족과 지인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도 분노 조절이 잘 안 되어 대인 관계 문제가 심화된 상태에서 상담실을 찾게 됩니다.
MMPI-2처럼 구조화된 자기 보고형 질문지를 활용하면 Anti-Social Personality Problem이 있는 사람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변별이 되나 성격 문제가 아닌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난감하죠. 그럴 때 점검해야 하는 point를 정리해 봤습니다.
상담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가장 나중으로 미뤄야 하는 건 바로 '분노 조절 프로그램'입니다. 분노를 수용하든, 발산하든 간에 특정한 기술이나 기법을 활용해 접근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상담 초반에는 거의 대부분 효과가 없습니다. 분노 조절 프로그램의 효과는 내담자에게 내재된 혹은 내담자가 느끼는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지고 이를 내담자가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만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분노 조절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상담자라고 해도 맨 뒤로 미루는 것이 낫습니다. 그게 급한 게 아니에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이
내담자의 좌절된 욕구가 무엇인지 찾는 겁니다. 상당수의 분노는 욕구 좌절에서 비롯되거든요. 다만 제발로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을 정도로 오래된 문제라면 상당히 반복적으로 좌절된 욕구일 수 있으니 꽤 먼 과거까지 탐색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 고려할 부분은
아버지와 내담자의 관계 양상 탐색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 상에 대한 동일시 정도와 권위적인 존재에 대한 가치관 탐색입니다. 이건 좌절된 욕구 탐색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데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어 분노가 쌓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이미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았다면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친부와 맺은 관계 양상이 대물림되어 자신의 자식과 동일한 관계 맺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모든 내담자에게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분노 폭발 문제를 호소하는 남성 내담자가 아버지와 따뜻한 애착을 형성한 걸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 폭발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온 남성 내담자의 경우는 일차적으로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 봅니다.
세 번째로 고려할 부분은
paranoid tendency와 행동화 경향성이 모두 강한 사람입니다. paranoid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의도를 오해하고 왜곡해 지각하더라도 분노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수동-공격적으로만 대응하는데 비해 유독 행동화 경향성이 강한 내담자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paranoid한 내담자에 준해서 상담해야 합니다(
'paranoid한 내담자 상담하기' 참고). 물론 paranoid한 내담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MMPI-2와 같은 도구에 의해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paranoid한 경향성이 의심되는 내담자는 미루지 말고 선별 평가를 실시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분노 폭발을 호소하는 내담자의 분노를 발산하겠다고 맹목적으로 분노 조절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건 거의 대부분 효과가 없습니다. 대개는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고 그마저도 한시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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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성컨설팅의 이현주 이사가 쓴 '내 마음이 도대체 왜 이럴까(2013)'를 북 크로싱합니다.
최근 힐링 서적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EAP 상담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는 것 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행동 방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약점입니다만...
EAP 상담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초보 상담자가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신 분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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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임상심리전문가이자 MBA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이현주 한국인성컨설팅 이사가 쓴 책입니다. 지금까지도 불모지에 가까운 상태인 조직 내 EAP 상담 영역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개인적인 문제로 경험하는 우울, 분노, 불안, 소심함을, 2부에서는 가장의 무게, 원더우먼 컴플렉스, 부부 갈등, 아버지의 역할을, 3부에서는 대인 관계 영역에서 상하 관계, 동료 관계, 직장에서의 남녀 관계, 직장에서 만나는 괴짜를, 마지막 4부에서는 직장인들의 고민 중 신입사원의 경력관리, 3년차 직장인의 사춘기, 관리자가 된 후의 역할 변화, 이직 관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만 보면 시중의 여타 힐링 서적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직장인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차이점입니다. 아마도 타겟 독자층을 EAP 상담이 필요한 직장인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그러면서도 뒷날개의 추천사를 제외한 어디에도 직장인을 위한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없습니다. 그걸 부각시켰다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각 장에는 실제 상담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생생한 사례를 전면 배치해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이력(삼성전자 본사 열린상담센터장, 한국인성컨설팅 이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상담 현장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런지(이건 온전히 제 느낌인데), 저자도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내용이 너무 뻔합니다. 속된 말로 야전에서 오래 굴러먹은 전문가에게서 느껴지는 노하우나 포스가 안 느껴집니다.
더구나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은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해야 한다'는 조언을 뒷받침할 행동 방략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 장마다 말미에 '답은 내 안에 이미 다 있다'부분에 핵심 내용을 정리해주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구구절절 옳은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저자도 서문에서 염려했듯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내가 그걸 모르나? 내가 궁금한 건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와 같은 불만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굳이 이 책을 추천하자면 EAP 상담을 시작하려는 초보 상담자가 대상입니다. 치유를 도울 길잡이가 필요한 직장인들이 아니라...
틈새 시장 공략도 좋았고 내용도 좋았는데 뒷심이 부족해 뭔가 용두사미처럼 끝난 느낌입니다. 출판사에서 증정본으로 보내주셔서 읽었는데 아쉽네요. impact를 좀 더 강하게 했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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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P 상담은 생각보다 포괄하는 영역이 넓어서 단순히 노동자 본인의 직무 스트레스만 다루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 예를 들어 부부 갈등, 자녀 양육 문제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일반 상담 영역에서 다루는 문제는 모두 다루면서도 조직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과 그로 인한 문제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한층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상담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 상담 현장이나 전통적인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수련을 받은 임상가들은 상담/임상 뿐 아니라 조직 심리학이나 집단 역학 등의 공부를 추가로 더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EAP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건 어느 상담/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최우선되지만 EAP 상담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개인 정보의 노출이 단순한 명예 훼손이나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직업적인 피해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생산성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인적 자원은 가장 손쉽게 손대고 싶은 영역입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내담자의 인적 사항과 상담 내용을 요구하는 가장 노골적인 수준에서부터 상담자와 안면이 있는 직원을 통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은밀한 접근에 이르기까지 EAP 상담을 받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특히 EAP 상담을 진행하는 부서가 독립되어 있지 않아 특정 부서의 감독, 감사를 받을 수 있고 상담 실적 보고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EAP 상담 부서의 독립적 운용이고 그게 어렵다면
실적 보고 시 실적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로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담 내용 입력을 전산화했다면 별도 서버 운용, 접근 권한의 철저한 관리, 이중 시건 장치를 통한 문서 보관은 기본입니다. 특히
상담자 간에도 담당하는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공석 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다중 관계 문제
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라는 글에서도 다중 관계의 문제에 대해 강조했지만 EAP 상담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바로 다중 관계입니다.
EAP 상담자는 상담자이면서 동시에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자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담하는 내담자의 인사 고과 평가를 받는 직원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조직이 작거나 혹은 크더라도 자신이 속한 EAP 상담센터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지원부서의 직원과는 안면을 틀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죠. 이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EAP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잠재적인 내담자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내담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니 가능하면 조직 내의 구성원들과 사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조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조회, 회식, 워크샵, 집체 교육 등)는 가능하면 불참하는 것이 낫고 이런 조치가 조직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요.
3.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문제
조직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가능성은 급격히 커집니다. 인트라넷을 운용하는 회사에서 상담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일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담자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지 몰라도 EAP 상담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자녀 상담을 진행하는데 갑작스레 예약을 바꾸려고 할 때 직원을 통해 상담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직접 연락하는 걸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라면 사소한 불편함 정도일 수 있으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직원을 상담할 때 시시때때로 상담자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으니 의존 문제도 그렇고 상담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
인트라넷에서도 휴대폰 번호나 개인 이메일 주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꼭 필요한 인원에게만 알리는 식으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EAP 전문 상담자가 상담자이자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이런 예상 문제들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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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EAP를 모르는 분을 위해 짧게 소개드리면 EAP는 Employee Assistance Program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근로자 지원 제도'라고 번역됩니다. 원래는 미국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문제가 되는 근로자들의 회복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시작되었는데 최근에는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를 포함해 근로자들의 후생 복지, 더 나아가서는 인사, 경력 개발 분야까지 아우르는 커다란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P&G와 같은 몇몇 외국계 회사를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최근에 시범적으로 EAP를 도입했습니다. 당연히 주무 부서는 제가 근무하는 기관이 되었고요.
도입의 이유는 과거 미국에서 EAP 도입의 시발점이 된 알코올 문제의 개입을 위해서인데요. 제가 근무하는 직장은 다양한 부속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정 기관의 근로자들이 알코올을 지나치게 섭취함으로써 생산성 저하는 물론이고 안전 사고의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그동안 산재 평가에서도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아왔고요.
결국 최근에 큰 사고가 날 뻔한 일을 계기로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메스를 대기 시작했고, 문제가 된 근로자를 2달 간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입원시키고, 퇴원을 한 후 1개월 전부터 제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심리 치료 및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 근로자를 담당하게 되었고요.
병원에서 근무할 때, 만성 알코올 중독 환자를 경험한 적은 있지만 그다지 많지 않았고 더욱이 체계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없어서 수험생의 마음으로 지금도 관련서적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EAP를 대하는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치료자와 많이 다르더군요. 회사에서 근무 복귀를 위한 필수 조치로 치료를 명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치료자를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거나 감시하기 위해 보낸 사람으로 나름 규정하고 있어 도통 마음을 열지 않고 매우 방어적입니다. 거기에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중독성 질환 환자의 고유한 특성까지 겹쳐 5주째 만나고 있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입니다. 금단 증상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일상 생활이나 근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Rapport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변화 동기가 내면에 생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고무하고 있지만 벽에 가로막힌 느낌입니다. 사실상 회사에서는 이 근로자의 복귀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고 인사팀이나 관련 부서와 저와는 하등의 이해 관계가 없지만 이 근로자가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지요.
물론 EAP 실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전문적인 지식, 노하우 등이겠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privacy의 완벽한 보장과 치료자와 이용자가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의도와 상관없이 EAP는 허울만 좋은, 보여주기 위한 제도로 전락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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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사단법인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에서 산업 카운슬러 양성 과정의 교육 교재로 활용하기 위해 스기다니, 마쓰바라 교수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산업 카운슬링은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근로자와 그 가족의 알코올 의존으로 인한 기업의 손실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EAP)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각종 정신적, 심리적 문제의 치료 및 예방,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 경제적인 문제, 법률적인 자문, 직장 내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 인사 선발, 경력 개발 등의 광범위한 영역까지 포괄하는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산업 카운슬링은 인적 자원 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경력 개발 체계(career development system)의 다양한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60% 이상의 기업에서 산업 카운슬러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활동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실제로 기업에서 산업 카운슬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심리학의 입장에서는 임상 상담 심리학과 산업 조직 심리학의 접목 분야라고 볼 수 있는데 대학원에서 임상 상담 심리학을 전공하고 기업으로 뛰어든 일부 인력을 제외하고는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인력의 수는 매우 적은 편입니다. 임상 상담 수련 과정에 접근하기 어려운 산업 조직 심리학자들보다 임상 상담 심리학자가 상대적으로 노려봄 직한 영역으로 보입니다.
산업 카운슬링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고 심리 검사 도구의 활용, 노동법, 인사 노무 관리와 같은 다양한 지식이 필요해 이 교재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고 일본의 산업 카운슬링 현장에 기초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맥락에 맞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산업 카운슬러를 꿈꾸는 입문자에게는 한번쯤 살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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