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진단명을 남발하는 것에 알러지가 있습니다만 심리평가의 주 의뢰 사유가 진단인 경우 의심되는 공존 장애가 많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R/O을 붙여서 되는대로 나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 의뢰 사유가 치료 계획 수립이나 향후 대처 방법의 모색인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주의집중을 잘 못하는 초등학교 1학년 남아가 심리평가 의뢰 되었는데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면서 등교를 거부하고 밤에는 혼자서 안 잘려고 심하게 떼를 쓰는데다 억지로 혼자 재우면 어김없이 야뇨를 하고, 시험 기간이나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하는 날이 되면 눈을 심하게 깜박이는 문제를 보일 때 어떻게 formulation해야 할까요?
정확한 변별 진단만 필요하다면 ADHD, Transient Tic Disorder, Enuresis, Adjustment Disorder, Separation Anxiety Disorder 등등의 가설을 세운 뒤 검사 sign으로 검증하면 될테지만 아동에게서 관찰되는 증상이 다양하고 여러가지 진단이 동시에 의심될 만큼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검사 sign을 정리하면서 진단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각 장애로 단독 진단을 한다면 어떤 것이 피검자의 심리적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하는지를 특히 염두에 두고 보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아동의 경우 핵심 문제가 평가 불안의 문제인지, 애착의 문제인지, 파괴적 관심 끌기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주의력 문제인지 말이죠.
핵심적인 문제를 찾아내면 거기부터 시작해서 다른 장애의 중복 진단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예상되는 진단 가설이 많을 때에도 좀 더 손쉽게 피검자의 문제를 formulation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연습이 평소에 잘 되어 있지 않으면 핵심적인 문제를 골라내는 눈이 안 생기기 때문에 전에
'임상심리평가보고서 이렇게 쓰면 안 된다 II'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R/O 진단을 남발하게 됩니다.
그러니 다양한 진단이 동시에 의심되는 경우에는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독 진단을 먼저 찾고 그 진단을 통해 피검자의 핵심 문제를 찾는 것을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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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uresis'는 일반적인 용어로 쉽게 말하자면 '오줌싸개'입니다.
DSM-IV-TR에는 '유아기, 소아기, 청소년기에 흔히 처음으로 진단되는 장애' 진단 영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상당히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문제이나 점검해야 할 사항에 의외로 익숙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많아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 일반적 의학적 문제로 인한 소변 지림 배제
: 사실 모든 소아 정신과적 문제는 신체적 문제를 배제한 뒤에야 정신과적 문제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Enuresis 진단만 하더라도 정식 진단명이 'Enuresis Not Due to a General Medical Condition'입니다. 즉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닌 유뇨증이죠. 따라서 오줌싸개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의학적 장애를 먼저 배제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에는 급성 요도 감염과 같은 비뇨기과적 문제와 신경성 방광과 같은 방광 및 신장내과적 문제, 그리고 그 밖에 당요병, 척수 이분증, 경련 질환 등의 일반적 의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환아가 야간에만 소변을 지리는 야간형이거나 주간에만 소변을 지리는 주간형이라면 rough하게나마 신체적 문제는 배제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신체적 문제가 있다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킬테니까요. 어쨌거나 비뇨기과 진료 등을 통해 의학적 장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확진이 있어야 합니다.
* 배변 훈련 점검
: 의학적 문제를 배제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일단 심리적 문제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평가하면 됩니다. 배변 훈련을 점검하는 이유는 배변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계속) 소변을 지리는 환아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배변 훈련이 끝나 대소변을 잘 가리던 아이가 갑자기 소변을 지리기 시작하면 기저에 심리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퇴행(regression)으로 인한 문제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차적 이득(secondary gain) 확인
: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배아픔을 호소하는 아이처럼 소변 지림을 통해 충족되는 나름의 욕구가 있는지 탐색해야 합니다. 야간의 소변 지림 때문에 부모와 함께 잘 수 있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 형제/자매 간 경쟁 관계(sibling rivalry) 점검
: 환아가 형제/자매 간 불형평한 대우를 지각하는 경우 이를 보상하기 위해, 또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 부모의 관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 퇴행 행동의 일환으로 소변 지림을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형제/자매 간 경쟁 관계가 있는 지 확인해야 합니다.
* 부모의 엄격하고 강압적인 훈육 방법 여부 확인
: 특히 심리검사를 할 때 평가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고 눈치를 살피는 등 평가 불안이 높아 보이는 환아의 경우 부모의 훈육 유형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결과 중심적이고 처벌 위주의 훈육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집안의 경우 아동이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되고 이러한 심적 압박이 소변 지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nuresis의 문제는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을 찾았다고 탐색을 멈추면 안 되고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모두 충실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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