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독일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대표작,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입니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처럼 '사랑의 기술 = 연애의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예전 학부 때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할 고전 100선 같은 걸 치기에 의해 섭렵하던 그 당시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제 기억 속의 이 책은 역시나 연애의 기술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이 책을 연애의 기술이라고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황당함과 낯뜨거움마저 느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은 어느 정도 조장된 면이 있습니다. 당장 이 책을 출판한 문예출판사가 띠지에 홍보 문구로 삽입한 내용마저도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젊은이들의 필독서'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당연히) 연애의 기술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문구가 2장. 사랑의 이론 첫 페이지에 나옵니다. 그건 바로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의미, 더 나아가서 삶의 의미, 실존의 의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즉 삶에 대한 책인 것이죠.
이 책의 머리말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위에서 말한 성질들이 희귀한 문화에서는 사랑하려는 능력을 획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목놓아 부르짖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능력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나 봅니다. ㅠ.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냐에 대한 답을 사랑에서, 그것도 심리학적 의미에서 찾는다는 관점에서 이 책을 저는 심리학 서적으로 분류했습니다. 무려 60년이나 된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통찰로 가득찬 책입니다. 굳이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저처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은 분들은 더더욱)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 내용 중에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은 에리히 프롬이 성서를 인용하면서 동성애를 양극화된 결합의 성취에 실패한 일탈로 간주하는 대목 뿐입니다. 에리히 프롬이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적잖이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죠.
닫기
* 사실상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 나는 전에, 프로이트가 성욕을 사랑과 합일의 요구가 나타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 - 혹은 승화 - 만을 보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잘못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의 생리학적 유물론과 일치하는 바, 그는 성적 본능을 몸속에 화학적으로 생긴, 고통스럽게 해방을 갈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본다. 성욕의 목적은 이 고통스러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적 만족은 이러한 제거에 성공하는 것이다.
*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나의 비판은 그가 성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을 충분히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을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자아도취적이고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여자는 어린아이가 연약할 때에만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성공할 수 있다.
* 분리의 체험과, 여기서 생기는 분리 상태의 불안을 합일의 경험에 의해 극복하려는 욕구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욕구의 기반이다.
*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자는 실망을 견디고 퇴보를 무릅쓰고 끈기를 보일 용기가 필요하다
*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타인을 욕망하고 원하고 집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랑은 아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은 책이므로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국민도서관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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