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에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4 사행산업 건전화 국제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모든 session에 다 참석한 건 아니고 1, 2 session은 전자 카드 관련 정책 포럼이라서 저는 지역사회 기반 치료 서비스 모형과 모니터링 체계에 대해 다루었던 session 3에만 들어갔고 이후 진행된 종합 토론까지는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때 들었던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자면,
첫째, 사감위가 3년 동안 공을 들여 개발한 한국형 판별 도구인 KGBS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경기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상담한 사례 분석 결과를 보니 KGBS만 도박 중독으로 진단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동안 KGBS를 개발만 해 놓고 욕 먹으면서도 여전히 CPGI 결과만 줄창 보여주는 이유는 KGBS로 측정한 유병률이 CPGI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도 KGBS는 K-NODS나 K-MAGS-DSM보다도 오히려 낮은 유병률을 나타내니까요.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고 해도 유병률이 너무 낮게 측정되면 지금까지 9%라고까지 과장하면서 했던 협박이 우습게 되니 KGBS를 이제서야 사용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될 겁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묻어버리는 방향으로 출구 전략이 짜인 것 같았습니다
둘째, 치료 효과 검증을 위한 도구로 GAMTOM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현장의 치료자들로부터 이미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듯이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항이 너무 많아요. 서양에서는 material을 많이 줘야 내담자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선호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내담자들은 숙제 주는 걸 아주 싫어라 합니다. 내담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그 저항에 맞서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보가 포함될 확률도 상당히 증가할 겁니다.
셋째, 한국형 GAMTOMS를 만든다고 해도 Timeline Feedback(TLFB) 만큼은 포함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사용하고 있는 외국 기관의 담당자도 그렇고 국내 교수들도 그렇고 이게 참신하고 기대되는 정보 수집 도구라고 생각하던데 저는 견해가 다릅니다. 제 예상으로는 아무리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도입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우리나라 도박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걸 빠짐없이 작성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못 믿겠으면 한번 해 보세요. 아마 안 될 겁니다.
넷째, GAMTOMS와 같은 치료 효과 평가 도구의 개발이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저는 그보다 조기 종결 비율을 낮추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GAMTOMS에 대한 자료에서도 조기 종결 비율이 굉장히 높게 나왔는데 정작 현지 관계자도 조기 종결 비율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이디어가 전혀 없더군요. 조기 종결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기 전까지는 치료 효과 평가 도구를 도입하더라도 평가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섯째, 토론에서 집단 상담이 개인 상담보다 효과적이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치던데 글쎄요. 100회기 이상 집단 상담을 진행해 본 제 경험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도박 중독자가 굉장히 homogeneous한 집단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같은 연령대, 비슷한 social status, 비슷한 도박 유형까지 맞추고 거기에 개인 상담 20회기 정도 진행해서 변화 단계까지 얼추 비슷하게 matching했는데도 5명 이상의 집단 크기를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반개방형 집단 상담에서도 두 분이나 재발했고요. 도박 중독 상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전문 상담자의 공급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돌파구로 나온 방안이 집단 상담의 활성화 아닌가 싶은데 생각 다시 하셔야 할 겁니다.
여섯째, 발표 자료 중에 내방 상담자의 대부분이 변화 단계 중 준비 단계에 속한다는 말이 있던데 도박자의 보고를 곧이곧대로 믿은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 평가하면 거의 대부분이 전 숙고 단계(Pre-Contemplation Stage)에 속할 겁니다. 준비 단계에 도달한 도박자가 그렇게 많다면 현장의 상담자들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일곱째, GAMTOMS 발표에서도 나왔지만 상담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평가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종결을 하고 난 뒤에는 대부분의 도박자와 가족들이 치료 기관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혼 정보 회사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한 부부들이 결혼 정보 회사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종결 후 6개월(이건 그나마 낫지만), 1년, 2년 정도 되면 연락이 닿지 않는(혹은 피하는) 사례의 수가 급등할텐데 어떻게 접촉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겁니다. 저는 치료 효과 검증을 위해서는 평가 도구보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덟째, 종합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현장의 상담자들이 GA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자 분들이 꽤 많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개인 상담도 받고 GA도 열심히 다니고 종교 생활도 열심히 하면 도박 중독 치유에 더 좋을 것 같지만 제 책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는 자전거 바퀴 수를 늘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안정감은 있을 지 몰라도 마찰력 때문에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게 되죠. 게다가 서로 치유 효과를 상쇄하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 상담과 GA입니다. 제 경험 상 GA와 개인 상담 모두 잘 맞는 도박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릇이 정말 크거나 행운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 특성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인데 아주 기본적인 치유 목표에서 있어서도 개인 상담과 GA는 꽤 다릅니다. GA는 완전한 치유란 없다고 가정하고 죽을 때까지 GA 모임을 빠지지 말고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건 불완전 회복 상태에서 치유를 멈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완전한 탈도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은 가족과 같은 보호자에게 미치는 GA의 영향입니다. 무조건적인 인내와 희생 강요, 알코올과 같은 교차 중독의 간과 등이 과연 가족의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히려 개인 상담자가 GA를 무조건 권장하는 분위기를 다시 한번 재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치유 기법의 장, 단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도박자와 가족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박 중독 치유가 묻지마 관광은 아니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왜 휴일인데도 굳이 참석해서 들으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포럼이었습니다. 휴무 대체로 2시간을 더 쉴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입맛이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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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은밀한 중독'이라 불리듯이 도박 중독은 모든 걸 감추고 숨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치유 과정에서 가족들이 대위 변제를 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뒤로 숨어서 남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고 무조건 의지하는 도박자를 책임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박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문제를 감추고 자신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고자 하는 도박자의 시도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치유의 모든 것은 도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투명하고 떳떳하게 드러내는 것에 방향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박자가 자신의 도박 문제를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부끄럽더라도 꿋꿋하게 이겨내겠다는 자세로 버티기 시작할 때 전환점이 생깁니다.
단도박 모임(GA)에 나가고 전문기관에서 상담을 받는 건 도박자에게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어둠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 있는데 시간만 되면 억지로 햇볕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박 중독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기미를 보이면 도박자는 상담 기관이든 단도박 모임이든 나가는 것이 꺼려집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런 꺼림칙한 마음과 싸울 수 있을까요?
자신의 회복을 자랑하러 나가세요. 자주 나가는 단도박 모임의 협심자를 부러워하게 만드세요. 상담자를 경탄하게 만드세요.
절대로 도박을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내가, 절대로 변화하지 못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못 나올 것 같았던 내가 이렇게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시동을 걸었노라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노라고 자랑하세요.
진정한 치유는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자랑은 진정한 치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거기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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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떤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도박중독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치료법이란 것도 없습니다.
도박중독치료는 아니지만 400여 가지에 이르는 심리치료 기법의 효과를 비교 분석한 연구가 있는데 치료 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발적인 회복의 효과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희망을 주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실 도박중독이 워낙 다양한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는 병이다 보니 다양한 치료적 기법을 절충/통합하여 사용하고 도박자에 따라 적용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심리치료 기법 안에서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은 꼭 사용해야 한다는 기법을 찾아낸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또 그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기법들을 심리치료 또는 상담이라는 큰 하나의 범주로 아우른다면 GA와 같은 경험자 모임을 통한 접근, 신앙생활과 같은 영적인 접근 등 다른 접근법과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도박자에 따라 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약물치료도 병행하고 평일 저녁에는 인근 단도박 모임에 출석하고 쉬는 날에는 신앙생활까지 열심히 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를 자전거의 바퀴에 비유합니다.
심리치료만 받으면 바퀴가 하나 있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약물치료를 같이 받으면 바퀴가 두 개가 되고, 단도박 모임에 출석하면 세 개, 신앙생활까지 열심히 하면 네 개, 취미로 동호회 활동도 하면 다섯 개... 이런 식으로 늘어나게 되겠지요.
당연히 바퀴가 하나일때보다는 두 개 일때 안정적이고 세 개가 되면 더 안정적이겠지요. 하지만 마찰력에 의해 힘이 많이 들고 속도도 나지 않으며 어느 한 바퀴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퀴의 수와 크기 균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면
기어가 물려 있어 동력이 전달되는 주 바퀴(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적 접근법)를 중심으로 안정성과 속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바퀴의 수와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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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박 모임(GA)에서 흔히 하는 말로 도박 중독을 100일 병이라고 합니다.
단도박 기간 100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죠.
금단 증상도 심하고 도박 충동에 의한 유혹도 많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에게는 100일이 참으로 힘든 기간입니다. 그래서 GA에서는 단도박을 한 지 100일이 지나면 백일 잔치를 열어 100일을 넘겼음을 축하하고 다시금 의지를 다지는 행사를 합니다.
묘한 우연의 일치이지만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임상 현장에서도 100일을 의미있는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보통 현장의 치료자들이 치유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기는 상담 10회기입니다. 상담자가 내주는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10회기를 빠짐없이 오면 보통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을 열 번도 오지 못하는 내담자는 대개 재발의 위험성이 높고 조기 종결 가능성도 큽니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한다고 했을 때 10회기는 70일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보통 상담일이 휴일과 겹치거나 내담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상담 일정을 변경하거나 하기 때문에 10회기를 넘어서는 시점을 보면 대략 3개월 남짓 걸리게 됩니다. 거의 100일에 가깝죠. 그래서 도박 중독자에게 100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치료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렵다는 100일만 지나면 도박 중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00일까지는 금단 증상과 유혹에 맞서 자기만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하지만 100일이 넘어서게 되면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자만심과의 한판 대결입니다.
단도박 100일에 성공한 도박자는 일반적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유혹을 당해도 쉽게 이겨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실 100일이 지난 도박자는 이제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병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섭생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고 체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죠. 전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닙니다.
도박 중독을 1년 병이라고도 하는데 100일이 지난 도박자 중에도 1년을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이 꽤 되기 때문입니다.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1년이 되기까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자만심입니다. 나는 이제 도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자만심 말입니다.
특히 초기에 빨리 단도박 환경을 조성하고 자제력을 회복한 도박자가 이 자만심에 의해 재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최소한 1년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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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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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8-Ball'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도박자와 그 가족을 치료한 경험이 있는 social worker 두 사람이 도박자의 가족들을 위한 지침서로 내놓은 책입니다. 부제가 'A Recovery Guide for the Families of Gamblers'입니다. 이미 1992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번이 세 번째 개정판이에요. NCPG(National Conference on Problem Gambling)에서 팍팍 밀어주고 있는 책입니다. ^^
16년이나 개정이 되면서 계속 나오는 책이라면 어느 정도 좋은 책인지는 이미 짐작하시겠지요?
우리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미국만 하더라도 도박 중독자의 가족에 대한 지침서는 딱히 추천할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도박 중독자의 치료에 대한 것만 해도 버거우니까 그렇겠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치료를 하다 보면 도박자보다 정작 가족의 치료와 재활이 더 시급하거나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도박자의 회복을 위해서도 가족의 치료와 재활은 필수적이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책입니다. 몇 가지 미국 문화에만 들어맞는 조언이나 개입 방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만큼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유용하고 쓸모있는 지침들로 가득합니다.
언젠가는 저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이런 좋은 책을 쓰고 싶군요. 언제나 그만큼 내공이 쌓일런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때까지 우리나라 도박자의 가족들이 볼 책이 있어야 하니 출판사에 번역을 요청해 놓았는데 받아들여질 지 모르겠습니다. 받아들여진다면 올해 후반기에는 상당히 바쁘게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덧. 이번 NCPG 학회에서 저자 중 한 명인 Linda Berman을 만나 사인도 받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에서 자신의 책이 번역되어 도박자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니더라도 꼭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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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에 앞서 저는 단도박 모임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오히려 도박중독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기관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8~90년대 불모지에서 단도박 모임이 도박 중독자들의 재활 의지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홀로 감당하였던 것에 경의를 표하고 앞으로도 도박중독 치료에 있어 단도박 모임의 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단도박 모임의 가장 큰 강점은 실제 도박중독을 경험한 도박자와 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문적인 치료 기관의 한계이기도 한, 체험에 입각한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제공함으로써 도박중독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단도박 모임은 도박중독 치료의 방법론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는 단순히 모임의 특성으로만 간주하기가 어려운, 치료를 저해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도박중독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단도박 모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나친 폐쇄성입니다. 단도박 모임은 참석 조건을 도박중독자와 그 가족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전문적인 치료 기관에서 참관, 자문, 자료 제공 등의 도움을 주고자 해도 접근 자체를 불허합니다. 실제로 제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내담자를 통해 단도박 모임에 치료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이러한 폐쇄성은 때로는 내담자의 치료 선택권을 박탈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가능하면 단도박 모임을 참석하도록 권고하고 소개를 하는 반면에, 단도박 모임에서는 사행성 사업자에 속한 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와 관련된 정보 자체를 차단하고 접촉까지 말리는 편입니다. 특히 각 지역 모임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오래된 협심자(단도박 모임에서는 서로를 협심자라고 부릅니다)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단도박 모임 이외의 치료적인 개입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모임의 회원을 강제하기도 한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도박 기간과 상관없이 그들 모두가 환자인데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알아서 정해주는 꼴입니다.
둘째. 도박중독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단도박 모임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도박중독의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문제를 다루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모임에서 도박중독의 폐해와 보호자가 경험하는 어려움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공감을 구하는 것 마저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앞으로 단도박 상태를 잘 유지하기 위한 협심자의 각오와 보호자의 헌신만을 강조합니다. 이는 보호자의 좌절감과 분노를 방치하게 되어 갈등을 조장하고, 재발의 위험요인을 간과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 단도박 모임에서는 도박중독자가 끝까지 치료를 거부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도 보호자가 중독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돕기만을 강요합니다. 이는 단도박 모임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에 일부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역시 치료적으로는 부적절합니다. 부부치료의 목적이 갈등의 봉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결정한 부부가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헤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에도 있는 것처럼 중독자가 끝까지 치료를 거부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 보호자가 자신과 자녀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중독자와 헤어질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는데 이 점이 결여되어 있고 내면의 의도와 달리 보호자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조합니다. 이는 중독자가 완전한 병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는 측면에서도 치료 상 피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며, 다른 강박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특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도록 회복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단도박 모임(GA)이 최소한 제가 위에서 열거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중독자와 보호자는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이르기 어려우며 이는 재발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년 간의 단도박 기간에도 불구하고 재발하는 협심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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