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넘은 포스팅이기는 합니다만 예전에
'H.A.L.T.는 도박 중독에도 해롭다' 라는 포스팅에서 H(Hunger), A(Anger), L(Loneliness), T(Tiredness) 상태에서는 도박 충동이 증가할 수 있으니 즉각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굳이 도박 중독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배고픔, 분노, 외로움, 피로는 합리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신체적, 심리적 상태이므로 최우선해서 다루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여기에도 외로움이 등장할 만큼 현대인은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서러움보다 외로움이 더 뼈에 사무친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그러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 걸까요?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정 반대입니다. 외로움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외로움은 정서적 결핍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외로운데 어머니가 보고 싶고,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어머니가 해 주시는 따뜻한 밥이 먹고 싶다면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향수병일 수 있습니다. 향수병은 그리움을 채우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어떤 대상인지는 상관없고 누구든 만나야지만 외로움이 해결될 것 같다는 강한 갈증을 느낀다면 그건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든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이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이 외로움은 정서적 결핍을 해소해 밑빠진 독의 구멍을 메워야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그러니 왜 밑이 빠졌는지, 왜 이런 정서적 결핍이 생겼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오히려 그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서 들어가기 무섭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고요.
정서적 결핍이 없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리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그리움의 대상을 만나면 곧바로 채워집니다. 하지만 정서적 결핍은 그렇게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라는 건 결국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주고 받는 게 금전이든, 관심이든, 우정이든 말이죠.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면 그 댓가로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줘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결국은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채워주지 못하게 됩니다. 균형이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항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역기능적인 관계를 반복하게 되죠.
만약 외로울 때마다 만날 사람을 절박하게 찾았고, 그렇게 만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어렵다면 외로움의 뿌리에 정서적 결핍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정서적 결핍이 사라지고 나면 설명이 안 되는 외로움은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고 혼자 살아도 편안하고 즐겁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그 때가 사람을 만나도 되는 시기입니다. 나도 편안하고 상대방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상호호혜적인 우정,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시기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처럼 외로울 때 만나지 말고 외롭지 않을 때 만나야 합니다. 외로울 땐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왜 외롭다고 느끼는지 말이죠. 그건 외로움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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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 빠지게 하는 대표적인 정신적 요인들의 영문 앞자를 묶어서 현장의 상담자들은 HALT라고 부릅니다.
바로
Hunger(배고픔),
Anger(분노감),
Loneliness(외로움),
Tiredness(피곤함)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상태에 노출되게 되면 중독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볼 때 H.A.L.T.는 단순히 중독에 빠지는 위험 요인인 것 뿐 아니라 탈도박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게 만드는 재발 요인으로도 작용합니다.
배고픔과 분노감, 외로움, 피곤함은 모두 부정적인 정서 자체이거나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선행 요인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고자 하는 후속 행동을 야기하는데 도박 중독자의 경우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행동이 바로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배가 고프다고 곧바로 도박을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배가 고프면 정서적 허기를 느끼기 쉽고 그러한 정서적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도박을 하고 싶어집니다.
배우자나 부모 등 가족이나 지인과 다툼을 겪고 나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 방식으로 도박을 선택하는 도박 중독자가 많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외로움을 느끼면 위로를 받거나 외로움을 잊기 위해 회피형 도박자(escape gambler)들은 흔히 다시 도박에 손을 대곤 합니다.
피곤함을 느끼면 도박 생각조차도 안 날 것 같지만 육체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하루의 피로를 잊기 위해 한 잔 술을 마시듯이 신체적인 피곤을 잊기 위해 도박을 선택하는 도박 중독자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도박을 할 때 각성되는 느낌이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죠.
따라서 HALT 상태인 도박 중독자는 도박 행동으로 연결되기 전에 각각의 문제를 건강한 방법으로 즉시 해결해야 합니다.
꼭 기억하세요.
배고픔! 분노감! 외로움! 피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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