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Hypochondriasis라는 어려운 용어로 불리던 건강 염려증은 DSM-5로 넘어 오면서 Illness Anxiety Disorder라는 보다 직관적인 용어로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예전의 신체화 장애 진단은 DSM-5에서 Somatic Symptom Disorder로 바뀌었는데요. 이 두 장애는 건강에 대한 염려는 둘 다 있으나 구체적인 신체 증상 호소가 있느냐의 여부(Somatic Symptom Disorder가 있음)로 구분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에 대한 염려는 둘 다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죠.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거나 신체화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 직접적인 신체 증상 호소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는지를 미처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잊지 말고 체크하셔야 합니다.
서론이 길었고요.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건강 염려가 심한 경우, 즉 Illness Anxiety Disorder로 진단할 수 있는 정도의 내담자도 굉장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경우는 관심이나 지원을 받기 위해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하는 내담자입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함으로써 주변 사람의 우려와 걱정을 유발시키고 이렇게 끌어들인 관심을 통해 자신이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는 사람이죠. 주변에 이 내담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특징적이고(특히 희생 정신이 강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의심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주변 사람 누구도 나를 챙겨줄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몸이 중요하고 그러니 큰 병이 걸리거나 하지 않도록 평소에도 조심하고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고 믿는 내담자입니다. 앞의 경우와 반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으며 가족 친지들마저도 냉담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내담자를 챙기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임상적으로 더 흔히 볼 수 있으며 신체화 증상 호소를 동반하는 일이 많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신체화 증상 호소가 드뭅니다. MMPI-2에서 신체증상호소, 신체화 장애 척도가 상승하지 않으며 SCT에서도 건강에 대한 염려는 보고되는 반면 통증을 비롯한 신체 증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로샤 검사에서도 AN 반응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히려 TCI에서 위험회피기질이 상승하거나 MMPI-2에서도 불안 수준이 높은데 비해(특성 불안, 상태 불안 모두 상승) 일반적인 건강 염려 소척도만 단독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장완성검사의 내용도 미래에 대한 불안, 혼자 외롭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고하는 빈도가 높고요.
상담 장면에서도 첫 번째 경우는 끊임없이 상담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는 신체 증상을 그다지 호소하지 않으며 설사 신체 증상이 있다고 해도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trust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 확실한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testing하려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경우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신체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신체 증상으로 얻게 되는 이차적 이득을 탐색하고 이를 건강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낫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경우는 내담자의 건강 염려에 일부러라도 초점을 맞추고 무조건적인 수용과 공감적인 경청,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 경우의 내담자는 아무도 자신의 걱정과 염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상담자 또한 그럴 것으로 생각하기에 초기에는 상담자의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동일한 Illness Anxiety Disorder 내담자라고 해도 양상에 따라 초기 접근법이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양상의 내담자인지 심리평가 결과를 통해 어느 정도 규명하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달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후자의 경우는 드문 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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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화를 이해하는 접근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증상'으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즉, Somatization Disorder나 Hypochondriasis와 같은 신체화 관련 장애의 진단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 때 신체 증상은 피검자가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이며 면담에서도 특정한 신체 증상이 부각됩니다. 이 경우 심리평가에서도 문장 완성 검사, MMPI, 로샤 검사 등에서 신체화 반응과 관련된 sign이 일관되게 관찰됩니다.
다른 하나는
대처 기제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즉, 우울 장애나 적응 장애처럼 주된 문제는 따로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loading을 회피하기 위해 신체화를 사용하는 것(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입니다. 이 경우 신체화 증상이 주가 되는 신체화 장애와 달리 다양한 정서적 불편감이 주관적으로 보고 또는 객관적으로 관찰되며 신체화 증상은 부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평가에서도 MMPI에서는 SOD, HEA 등의 척도 상승이 관찰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며 문장 완성 검사에서는 오히려 대인 관계 갈등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기술 등 신체 증상과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로샤 검사에서도 신체화 반응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을 위한 formulation에서 헷갈리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본 것이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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