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
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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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들을 위한 맞춤형 글입니다.
대형 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으면서 상담이라고는 수련 요구 조건을 충족할 정도의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접했는데 전문가가 되자마자 덜렁 중독 상담이라는 하드코어 영역으로 떨어져 맨 땅에 헤딩하면서 상담을 몸으로 익힌 제가 상담, 심리치료를 익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같잖게 보일 수 있지만 병원 장면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가들은 사실 상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본격적인 supervision이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매우 부족하기에 제 경험이라도 도움이 되실까 하여 정리해 봅니다.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기본적인 방법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이 상담 내지는 개인 분석을 받는다. 이건 상담 전공을 하신 임상가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데 정작 임상 전공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본인이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상태가 아니라면 경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게슈탈트 집단상담을 30시간 받았지만 개인 상담이나 교육 분석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집단 상담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당시에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련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담자가 반드시 상담을 받을 필요는 없겠다는 선입견만 잔뜩 생긴 것이 아닌가 후회합니다.
2)
supervisor의 지도 하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내담자를 상담한다. 이것 역시 상담 전공자라면 당연한 수련 과정이겠지만 임상 영역에 계신 분들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임상의 supervisor들도 대부분 임상 전공자라서 본인이 상담 supervision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무엇보다 상담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담 supervision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저도 제 supervisor가 상담 supervision을 해 줄 능력이 안 되기에 외부 상담 기관의 supervisor를 찾아가 supervision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었지만 제가 상담한 케이스의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죠.
3)
관심 분야를 찾아서 좀 더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 기법이나 상담 접근법의 자격을 취득하거나 학회, 연구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EMDR, ACT, MBSR, MBCT, 사이코드라마 등이 있는데 전문성을 배가하고 자신의 상담/심리치료 내공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죠. 저는 단체나 조직, 집단으로 뭘 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병리연구회에 회비를 냄으로써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관심과 여력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면 좋습니다.
문제는 임상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순서와 방식으로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환경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국 저처럼 self-help training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했냐 하면,
우선 상담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을 읽었습니다. 임상 전공은 상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없기 때문에 춤으로 말하자면 소위 기본 스텝을 익히는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이 때 대학원 등에서 주로 보는 상담 이론서, 치료 이론서를 읽으면 안 됩니다. 그건 나중에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추가로 읽어도 됩니다. 지금은 춤의 원리와 이론을 익힐 때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책은 클라라 힐과 캐런 오브라이언이 공저한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스캇 마이어와 수잔 데이비스가 공저한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김환,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상담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Interview)'입니다. 이 3권의 책만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반대로 이 3권의 책만큼은 꼭 읽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도 안 읽고 상담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약간은 무식하게도 무조건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본 스텝을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보지 않으면 춤을 익힐 수 없듯이 어설프고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어도 내담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못할 짓 하는게 아니냐고 비판하실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경우는 supervisor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상담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내담자의 치유가 최우선이죠. 하지만 임상도 그렇고 상담도 그렇고 수련 과정의 특성 상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상태란 건 노선이 바뀌어 더 이상 오지 않는 버스와 같은 겁니다. 어찌 되었든 상담을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내담자부터 상담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임상 전공자라면 이 때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익숙한 심리평가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상담을 하다보면 당연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중요한 건 실수에서 배우는 겁니다. 모든 상담을 철저히 복기하고, 놓친 부분을 챙기고,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좌절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밀려드는 내담자를 기계적으로 만나는 것만큼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안무가는 없으니까 좌절할 시간에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세요.
예약한 상담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내담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상담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중요한 건 깊이를 추구하는 겁니다. 춤으로 따지자면 익히기 쉬운 스윙으로 시작했지만 탭 댄스로 갈 것인지, 탱고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상담에서도 generalist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문제에 좀 더 전문적으로, 좀 더 깊이,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로 상담하는 내담자의 유형이 대상 관계 이론의 틀로 접근할 때 잘 보인다면, 그리고 그러한 틀이 본인에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본격적으로 대상관계이론과 그에 따른 기술을 공부하는 겁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회나 모임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제가 드린 설명이 임상 전공이면서 상담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선험자 입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조언이니 가끔은 유용한 조언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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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기법에는 일종의 유행이 있습니다. 요새는 EMDR, ACT, MBSR(or MBCT)에 이어 긍정심리학을 활용한 치료적 접근이 하나 둘씩 국내에 소개되고 있죠. 중독 분야에서 효과적인 기법으로 알려져 있는 동기 강화 상담(MET or MI)도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고요.
실제로 학회 게시판을 보면 관련 워크샵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곤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정작 그 치료 기법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장애와 심리적 문제에 적용하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워크샵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를 소개하는 치료자/상담자마저도 자신의 임상 경험을 녹여내어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저 그 치료기법에 대한 원론적인 소개와 시연 뿐이라서 큰 돈과 어려운 시간을 들여 힘들게 워크샵을 듣고 나서도 뭘 어떻게 활용하라는 것인지 난감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워크샵을 시행하는 임상가가 단기 코스로 외국에 가서 따온 자격증 하나만 믿고 국내 임상 경험도 충분히 쌓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격증의 한국 지부를 설립하기 위해 세몰이를 하거나 관련 서적을 몇 권 번역하면서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치료기법을 국내에서 선점하기 위해 일단 워크샵부터 개설해서 그렇습니다(전 개인적으로 자신의 임상 분야에서 5년 이상 적용하지 않은 걸 어설프게 들고 나오는 걸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상담 및 심리치료 기법에 대한 수련을 받은 적이 없는 임상가들이 자격을 취득하고 현장에 나왔을 때 불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심리치료 기법을 고액을 들여 수강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그저 경력을 쓸 때 줄줄이 쓰고 마는 겁니다(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이상한 워크샵 수강 기록과 자격증을 나열하는거 창피하지 않아요?)
치료 기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치료 기법을 적용할 장애와 문제 영역이 무엇이냐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동기강화상담은 병식이 없는 중독 문제를 가진 내담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냥 동기강화상담만 배워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치료 기법 수 백가지 알아서 뭐 합니까? 각각의 기법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니 항상 모든 치료 기법은 적용해야 할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배워야 하고 그걸 모르는 치료자로부터는 배워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자칫하면 만병통치약처럼 이거 하나면 다 끝난다는 식으로 맹신하게 됩니다. 세상에 모든 장애를 치료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치료 기법이란 없습니다.
굳이 기법을 익히고자 한다면 오히려 다양한 문제 영역에 일반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법부터 익히세요. 예를 들어 심리평가보고서에 임상심리학자들이 맨날 사회 기술 훈련을 하라, 부모 교육을 하라고 하지만 정작 사회 기술 훈련이나 부모 교육의 최고 전문가가 없습니다. 대충 흉내만 내거나 그마저도 못하는 기관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니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센터에서는 그냥 놀이치료나 시키고 맙니다. 놀이치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치료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치료자를 구하기 쉽고 만만하니까 놀이치료에만 매달릴 뿐 다른 건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 교육만 해도 ADHD를 위한 부모교육, 강압적 훈육 방식을 고집하는 부모 교육, 헬리콥터 부모를 위한 부모 교육 등 세분화하면 얼마나 다양한 variation이 가능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개입조차도 제대로 하는 전문가가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 social skill training 하나만 제대로 파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되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박 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본적인 치료 기법 하나 제대로 하는 고수가 없고 내노라하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 하나 없으니까요. 그러니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프로그램에서부터 현장 경험을 통해 가감해서 노하우를 축적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프로그램을 만들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든 제대로 된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짧게 요약합니다.
* 세부적인 치료 기법을 익히는 것보다 적용할 장애나 문제 영역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에 맞춰 해당되는 치료 기법을 익혀야 함.* 자신의 관심 분야에 정확하게 fit한 세부적인 치료 기법이 없는 경우 적용 영역이 넓은 기본적인 프로그램이나 치료 기법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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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마음챙김 명상이 좋은 점은 아무 것도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마음챙김 명상의 기본 전제와 맞지 않기 때문에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그저 '지금,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서 흘러가는 자신의 마음과 신체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마음의 문제들은 현상 그 자체를 그대로 관찰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자연스럽지 않게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도박 중독을 치료할 때 가족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돕고 싶은 마음의 크기만큼 물러서서 기다려라". 돕지 않는 것이 곧 도박 중독자를 돕게 된다는 역설적인 대처 방법입니다. 어설프게 도박자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 오히려 도박자가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죠.
마음챙김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을 빼기 위해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챙겨서 지켜보고 싶어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챙길 때 저마다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이 변화합니다.
이 책은 앞서 소개한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 上’의 다음 편으로 일종의 응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통증, 불안, 시간, 잠의 문제 뿐 아니라 사람, 역할, 일, 음식, 세상과 관련된 스트레스와 마음챙김 명상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죠.
깊이가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상편만 읽어도 충분하고 관심 분야만 뽑아서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만 '5부 자각의 길'은 빼놓지 말고 읽으세요.
중요한 건 꾸준히 생활 속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공식 명상이든 비공식 명상이든지요. 그냥 책만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책만 읽고 넘어간다면 이미 세상에 수없이 깔린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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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MBSR 체험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8주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수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 과정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늘어놓은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챙김 명상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편입니다. 바디 스캔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의 효용을 체험하게 된 계기도 있었고요. 다만 항상 그렇지만 작금의 MBSR 유행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계를 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뭐든지 차근차근 진행되지 않으면 날림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니까요. 특히 치유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모든 심리학 기법들은 매우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이 책에 대해 소개를 드리면 MBSR(우리나라에서는 마음챙김 명상이라고 부르죠)의 바이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MBSR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Jon Kabat-Zinn이 직접 쓴 책으로 1990년에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90년대 말에 1차로 번역이 되어 들어왔고요.
이 책은 2004년 10월에 발행된 15주년 기념판을 번역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마음챙김 명상의 전파를 위해 애쓰는 장현갑 선생님이 역자 대표를 맡으셔서 그런지 번역은 깔끔하게 잘 되었습니다. 심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읽어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마음챙김 명상만 하면 무슨 병이든지 고칠 수 있다는 식으로 약장수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순간순간을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 찰나주의와 달리 순간 속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이라든가 호흡과 같은 어느 특정 대상 하나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보다는, 떠오르는 것을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한다는 유연한 사고를 개발하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의 가치라는 것을 강조하는 등 마음챙김 명상의 기본적인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너무 혹세무민하는 세상을 살고 있잖아요.
마음챙김 명상은 누구처럼 되기 위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처럼 되기 위해서,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을 초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장과 변화, 그리고 치유력을 가져오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치유라는 것도 치료가 아닌 관점의 변화를 낳는 것이죠. 마음챙김 명상의 치유는 우리가 내면에 이미 갖고 있는 완전성을 인식하고 동시에 우리가 모든 세상 만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평화를 느끼는 것이죠.
'상편'에서는 마음챙김 명상에 대한 핵심 내용 소개가 주로 이뤄지고 있으니 제가 지금 읽고 있는 '하편'에서는 실질적인 내용이 소개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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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본래 약력이 긴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더 말 할 것도 없고요. 학계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제대로 된 전문가일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족함과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걸 보상하려고 자격증에 집착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작년 10월에 전문가 보수 교육의 일환으로
8주짜리 MBSR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중간에 휴가가 겹치는 바람에 4주 밖에 참석을 못 했지만요.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냥 8주 코스를 수료한 것으로 해 줄테니 MBSR 학회에 가입하고 전문가 과정에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만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MBSR 수련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게 편법으로 이수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대충해도 수료하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수련했던 8주 코스는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기초 과정인데 MBSR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이 객원멤버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전문가이면서도 기초 과정을 한번도 끝까지 이수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더군요. 그야말로 깜놀했습니다. 대체 뭡니까? 기초 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증이 현장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그래도 3년 동안 혹독한 임상 수련을 거치고 엄격한 심사와 시험 등의 선발 과정을 거쳐 전문가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몇 십 시간의 워크샵이나 수련만을 요구하는 자격증은 상대적으로 더욱 엄격하게 quality 관리를 해야 합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개나 고양이나 돈과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으로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SR이 판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수를 늘리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제가 경험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결국은 현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이 일로 인해 MBSR 전문가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소비자는 어떨 것 같습니까? 과연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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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R 8주 프로그램의 네 번째 회기는 '정좌 명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호흡 수련을 통해 마음챙김 능력이 증가하게 되면 호흡을 하면서 감정이나 생각의 변화를 순간순간 챙기는 호흡 확장훈련 단계를 거쳐 전신의 감각 느끼기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음챙김 호흡의 기본 자세는 바른 몸가짐(조신), 바른 호흡(조식), 바른 마음(조심)입니다.
호흡 확장훈련은 기본적인 것은 호흡 훈련과 같아서 감정을 알아차리기, 하복부에 마음 모으기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주의를 전신으로 확장하는 것이 달라서 복부 주변의 감각으로부터 얼굴을 비롯한 전신으로 의식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죠.
호흡할 때의 영역을 확장하면 자동 조정 상태에 빼앗겼던 마음을 현재 이 순간으로 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지속적으로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호흡 수련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정좌 명상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릴 때 다친 발목 때문에 말 그대로 정좌를 할 수가 없고 명상 시간이 길어지니 왼쪽 다리가 저리면서 의식이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명상을 끝내고 나서도 마음이 산란하여 평정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꼭 정좌 명상을 통해서만 호흡 수련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답니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판단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잘 맞는, 그래서 호흡하기 편안한 방법을 찾으면 그것으로 하면 된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바디 스캔을 하듯이 누워서 호흡 확장훈련을 했습니다 바디 스캔보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의식을 머무르도록 했습니다.
정좌 명상보다 훨씬 더 쉽게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10분 정도 한 것 같은데 온 몸이 편안하면서도 머리가 맑아집니다. 명상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벌써 30분이나 지나있네요. 항상 명상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제게 정좌 명상은 신체적인 제약 상 어려울 것 같고 누운 상태에서 바디 스캔과 호흡 명상을 모두 하는 방식으로 수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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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R 8주 프로그램의 세 번째 회기는 마음챙김 명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호흡 명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호흡은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죠.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호흡이 짧아지고 얕아집니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빨라지고, 두려워지면 호흡이 멈추기도 합니다. 이완되고 행복감을 느끼면 호흡이 느려지기 때문에 천천히 호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흡 명상이 왜 중요하냐 하면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인데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호흡을 배를 바다에 정박시키는 닻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호흡에 마음을 챙기는 훈련이 MBSR의 핵심과제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호흡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어렸을 때 잠시 접해본 단전 호흡에서는 억지로 호흡을 통제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냥 지켜만 보는 것으로 족하다고 합니다. 다만 흉식 호흡이 아닌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호흡 명상을 하기 위해서 정좌를 했습니다. 정좌가 불편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됩니다. 입식 생활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바닥에 정좌하는 것이 어려우니까요. 저도 어렸을 때 왼쪽 발목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 가부좌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반 가부좌를 취하다가 나중에는 평좌로 바꾸었습니다. 대신 양쪽 무릎이 모두 바닥에 닿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매트를 말아서 엉덩이의 꼬리뼈 부분으로 깔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두 무릎이 바닥에 닿게 됩니다. 손은 자연스럽게 무릎에 올려놓는데 보통은 손바닥을 위로 두지만 이것도 본인이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허리와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을 합니다. 처음에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감촉에서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할 때의 몸의 움직임 특히 아랫배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따라가는 것이죠.
첫 호흡 명상은 20분 정도 했는데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물 속에 들어간 것처럼 외부의 소리가 안 들리는 대신 제 숨소리가 크게 들리더군요. 세상에 호흡과 저만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모태의 자궁에 들어간 것처럼 안온하고 따뜻한 그런 느낌도 들었고요.
호흡 명상을 오래 하면 손이 따뜻해지고 입에 침이 고인다고 하는데 저는 손은 따뜻해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침은 많이 고이더군요.
평상시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무래도 조용한 곳에서 정좌 상태에서 하는 명상이 더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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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R 8주 프로그램의 두 번째 회기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바디 스캔'과 '걷기 명상'이었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의 목표는 보다 오랜 시간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서 순간순간 산란하는 마음상태를 의식적으로 붙잡아 신체로 데려오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디 스캔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Doing Mode'를 'Being Mode'로 바꾸는 것이죠.
앞서 수련했던 먹기 명상과 마찬가지로 바디 스캔도 특별한 목표가 없습니다. 그저 지시문에 따라 신체 부위 이곳저곳에 의식을 모으기만 하면 됩니다. 각 신체 부위에서 올라오는 감각과 느낌만 충실하게 느끼면 되는 것이죠.
특히 느낌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고 특별한 이완 상태나 편안한 상태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바디 스캔은 누워서 하는데 딱딱한 바닥에 누워서 하는 것이 좋지만 찬 바닥에서 하지 말고 요가 매트 등을 깔고 하면 좋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누워서 손, 발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습니다.
눈을 감고 지시문에 따라 주의를 기울이는데 왼발 발가락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을 차례차례 훑어나갑니다. 지시문의 내용은 대체로 의식이 머무르는 신체 부위로 호흡을 하듯 하라고 합니다. 만약 왼쪽 발가락이면 왼쪽 발가락으로 호흡이 들어와 몸을 관통한 후 다시 되돌아 나간다고 느끼는 것이죠. 이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느끼는 것입니다.
이게 참 쉽지가 않아요. 잡념이 자꾸 생기거든요. 게다가 조명을 어둡게 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나즈막하게 들리는 지시문에 따르자니 의식이 흐려지면서 자꾸 졸립니다. 처음에는 제 코고는 소리에 놀라서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계속 수련을 하니까 바디 스캔을 다 하고 나면 숙면을 취한 것처럼 호흡이 고르게 되고 안정이 되는 느낌입니다. 몸은 아주 편안한데 그러면서도 머리는 맑아서 깨어있는 느낌이죠.
두 번째 바디 스캔을 할 때 보니 바디 스캔을 시작하면 의식을 집중하는 부위 말고 다른 부위가 가렵거나 따끔거리는 등 아주 몸 여기저기에서 난리도 아닌데 바디 스캔을 하면서 그 부분을 지나가면 보습 크림을 발라준 것처럼 진정이 되면서 편안해지더군요.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3회기에서 경험한 것이지만 호흡 명상을 하면서 다리에 쥐가 났는데 즉시 바디 스캔을 하니 자연스럽게 쥐가 풀리기도 했습니다.
먹기 명상보다는 바디 스캔이 저에게 아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걷기 명상을 했습니다.
걷기 명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명상이란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걸으면서 명상을 한다라...
그런데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걷게 됩니다. 실제로 해 보니 처음에는 아주 어색하고 뒤뚱거리고 일시적으로 균형을 잃기도 하더군요. 발과 다리의 감각, 걸음 동작과 몸무게의 이동에 하나하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까요. 눈을 뜨고 있어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초조할 때에는 조금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데도 걷기 명상은 제게 딱 맞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걷기 명상에 집중하다보니 일단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 느껴졌고 또 발과 다리에 집중하다보니 어느 순간 허리 위쪽의 상체가 잠시동안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꼭 제 몸이 발과 다리만 남아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걷기 명상도 아무래도 명상이니만큼 다른 사람과 산책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걸을 때에는 하기가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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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은 우리 말로 하면 '마음챙김'을 기반으로 하는 스트레스 감소 훈련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1970년대 말 Kabat-Zinn(이 사람은 특이하게도 직업이 분자생물학자입니다. @.@)이라는 'Yogi'가 환자들의 스트레스 감소와 이완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1990년대에는 스트레스에 의한 심인성 질환의 치료를 위해 개칭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MBCT(Mindful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등의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습니다.
마음챙김이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저곳으로 방황하는 우리의 마음을 지금-여기에 집중하여 깨어있게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삶을 훈련하는 것이 바로 마음챙김 명상이고요. 게슈탈트 치료의 기본 개념과 비슷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의 7가지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판단하지 말라2. 인내심을 가져라3. 초심의 마음을 간직하라(마음을 열라)4. 믿음을 가져라(자신을 믿으라)5.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6. 수용하라7. 내려놓으라
마음챙김 명상이 좋은 점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특별한 규칙이 없어서 자기만의 명상법을 찾아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 취지가 참 마음에 듭니다.
고맙게도 제가 다니는 기관에서 전문가 보수교육을 위한 지원을 해서 전북대의 정애자 선생님이 이끄는 8주짜리 MBSR 수련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8주 동안 매주 하루는 새벽 6시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좀 괴롭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이니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중간에 휴가가 있어 2주나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만... ㅠ.ㅠ
판단하면 안되는 마음챙김 명상을 배우면서 첫 시간부터 판단하면 안 되지만 정애자 선생님은 저랑 스타일이 딱 맞는 분은 아닙니다. 뭐라고 콕 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마음에 탁 걸립니다. 그러든 말든 소중한 기회이니 열심히 해 봐야겠지요.
오늘은 첫 시간입니다. 간단히 MBSR에 대해 강의를 듣고 '먹기 명상'이라는 비공식 명상을 했습니다. 먹기 명상은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MBSR에서는 주로 건포도를 이용합니다. 왜 하필 건포도인가 궁금했는데 해 보니 알겠더군요.
약 20분에 걸쳐 지시문에 따라 건포도를 관찰하고, 손가락으로 집어서 촉감을 느끼고, 귀에 대고 비벼서 소리를 듣고,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입에 넣어 감촉을 느끼고, 씹어서 질감을 느끼고 맛을 봤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요?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
이 광경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봤다면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지시문에 따르자 신기하게도 세상에 나와 건포도만 있는 듯 진공 속과 같은 적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김새, 촉감, 소리, 냄새, 질감, 다양한 맛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먹을거리로 건포도 말고 다른 것을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본질 그대로 경험하려고 애써 온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마음챙김 명상이 수준이 훨씬 더 높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직접 해 봐야만 이해하실 듯 합니다.
6시에 나와서 8시 30분까지 2시간 30분이나 수련을 하는 것에 비해 프로그램이 다소 느슨한 것이 좀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건포도 먹기 명상 하나 경험한 것으로도 그만큼의 보상은 충분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덧. 먹기 명상을 자주 하게 되면 먹는 양이 줄어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먹기 명상을 하게 되면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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