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평가를 해야 하는 임상가라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심리검사도구를 사용해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겁니다.
그러자면 수많은 심리검사도구의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러한 도구 중 적절한 것을 선별해서 사용할 줄 아는 법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런데 매뉴얼을 열심히 외운다고 해서, 또는 무조건 검사만 많이 한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절로 생기는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심리평가가 상시화된 병원 장면을 중심으로 어떤 순서로 심리검사도구를 활용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심리평가를 숙달할 수 있는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심리평가를 익히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장애 판정 -> 소아 발달 장애 평가 -> 소아 관련 장애 평가 -> 보호 병동 평가 -> 낮 병동 평가 -> 개방 병동 평가 -> 성인 외래 평가
1. 지적 장애 판정
: 지능 검사 도구는 평가자의 시간과 노력은 많이 요구하면서도 수가가 낮아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검사 중 하나지만 종합심리평가의 메인 검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검사죠. MMPI-2/A나 로샤와 달리 지능 검사는 따로 익히기가 쉽지 않은 검사이기 때문에 지적 장애 판정을 많이 하게 되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익숙해 질 수 있습니다. 대개는 지능 검사 도구를 중심으로 사회 성숙도 검사까지만 하기도 하고 거기에 BGT 정도가 추가되거나 표준화된 지능 검사를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 지능 추정 검사인 그림 어휘력 검사와 VMI를 대신 실시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 않죠. 지적 장애 판정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오는 수검자들은 대개 Mental Retardation인 경우가 많아 검사 결과를 실시하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 소아 발달 장애 평가
: 지능 검사 도구에 익숙해지고 Mental Retardation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그 다음은 말이 늦다고 방문하는 소아와 관련있는 장애를 변별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Communication Disorder, 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 NOS, Mental Retardation을 변별하게 되는데 가능하면 지능 검사 뿐 아니라 Bayley-2와 같은 발달 검사 도구를 집중적으로 익히는 기회로 삼으면 좋습니다.
3. 소아 관련 장애 평가
: 발달 장애와 지적 장애의 변별에 익숙해지고 나면 영역을 조금 더 넓혀서 소아 Full Battery를 기본으로 해서 ADHD, Learning Disorder 등 다양한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훈련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Continuous Performance Test처럼 주의력 전문 검사 도구나 기초 학습 기능 검사 등 특수 검사 등을 추가하는 연습을 하게 되죠. 이 때는 PCRP, Family Problem, Sibling Rivalry, Peer Relationship Problem 등 가정 및 학교에서 아동의 부적응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변인들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욕심을 낸 김에 청소년 영역까지 넓혀서 Conduct Disorder, Adolescent Depression, Anxiety Disorder 계열의 장애까지 경험하면 더욱 좋겠지요.
4. 보호 병동 평가
: 소아/청소년 영역의 심리평가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보호 병동 입원이 필요한 환자군의 평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된 장애군은 SPR Spectrum 장애와 Mood Disorder 군입니다. 보호 병동은 그야말로 외부의 사소한 스트레스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방어가 약해져 보호가 필요한 급성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두 영역에 속한 다양한 장애들의 주 증상들을 충분히 관찰하고 그것이 심리검사 sign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숙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훈련장이죠.
5. 낮 병동 평가
: 조현병과 기분 장애 군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중에서도 조현병 만성 장애 환자들을 볼 수 있는 낮 병동에서 수련을 받으면 좋습니다만 낮 병동까지 보유한 수련 기관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은 skip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증상이 완전 관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성 증상보다 음성 증상이 주 증상일 경우 심리검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익히는데는 꼭 필요한 환경이니 정신보건증진센터 등 만성 조현병 환자를 볼 수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실 생각이라면 가능한 한 경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6. 개방 병동 평가
: 보호 병동 수련까지 마치고 나면 심리평가가 주 업무인 병원 세팅에서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은 마련된 셈입니다. 하지만 특정 장애만 다루는 클리닉이나 상담 센터에서 일하려면 이 정도의 수련 배경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왜냐하면 다양한 Neurosis 환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개방 병동은 자해, 타해 위험이 크지 않은 다양한 Neurosis 환자가 입원하는 병동인데 주로 화병, Pain Disorder, Conversion Disorder, Somatoform Disorder 등으로 진단되는 성인들이 많습니다. 보호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만큼 증상이 dramatic하지 않기 때문에 심리검사 profile이 전형적이지 않으며 통합 해석이 상당히 어렵죠. 심리검사 결과 뿐 아니라 신체검사결과, 간호기록지, 이전 병력 등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설정한 가설을 검증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세팅입니다.
7. 성인 외래 평가
: 성인 외래 환경은 초진 환자를 비롯해 퇴원 후 재진 환자, 거기에 성격 장애 환자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환자군이 존재하는 곳이며 요새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갈등 해결이나 스트레스 문제 때문에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진단 뿐 아니라 case formulation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담이나 심리치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특히 중요한 환경이죠. 게다가 재진 환자의 재평가와 다른 기관에서 치료받던 환자의 변별 평가까지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평가 환경의 총 집결판이자 '끝판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성인 외래에서 심리평가를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면 신경심리평가와 같은 특수 평가를 제외한 Full Battery 평가에는 고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순서는 제 나름의 경험과 생각에 따른 심리평가를 익히는 최적의 순서일 뿐입니다. 그러니 심리평가 숙련에 관심있는 임상가 선생님들은 자기 나름의 순서를 찾아내는 별도의 노력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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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평가는 흔히 이야기하는 Full Battery의 6개 심리검사도구 중 지능을 측정하는 검사를 제외한 약식 Battery를 이야기합니다. 실시하는 기관에 따라 BGT를 더 빼기도 하고 몇 가지 자기 보고형 질문지를 추가하기도 하죠.
어쨌거나 핵심은 지능검사를 제외하는 것입니다.
지능검사를 제외하는 이유는 모든 심리검사 도구 중 지능검사가 실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실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지능검사를 제외할까요? 그건 검사 시간을 줄이게 되면 남는 시간에 검사실과 평가자를 활용해 더 많은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말이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있는데 굳이 지능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과도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환자/피검자를 괴롭히는 일이다", "환자/피검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성격평가는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인도적인 차원에서 환자/피검자의 경제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성격평가를 실시하는 기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진단에 반드시 필요한 MRI가 비싸다고 X-ray로 대치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있는데 굳이 지능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임상가는 지능검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묻겠습니다. 지능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장애가 대체 무엇인가요? 제게 알려주세요. 저도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굳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지능검사를 꼭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했던 적도 있습니다. Neurosis 계열의 환자는 빼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검사 비용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피검자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에만 치중하면 되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고 supervision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능검사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병전 인지 기능을 추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이며 장애로 인한 인지 기능 장해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중요하게 활용되는 검사 도구입니다.
단순히 IQ가 얼마인지만 확인하는 임상가에게는 돼지 발톱의 진주 격이지만 지능 검사는 언어성, 동작성 지능의 차이, 소검사 profile 분석, 그리고 (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분석을 통해 다른 검사들에게서 알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검사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성격평가를 실시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대체 성격평가는 무엇을 위한 Battery인가요? 정말 성격만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인가요? 인지가 빠진 성격과 정서만 갖고 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요? 과연 그것이 환자/피검자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제가 장담컨대 성격평가는 한정된 자원(검사실과 평가자,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평가 기관의 business friendly한 사고가 낳은 산물입니다. 거기에서 환자/피검자는 배제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지능검사가 절.대.로. 불필요한 장애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성격평가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임상심리학자가 환자/피검자가 소외되는 시장 자본주의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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