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I(Post Drawing Inquiry)는 그림 검사에서 수검자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을 통해 수검자가 투사한 심리적 내용을 탐색 또는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검사 시간이 촉박한 종합병원 급에서는 질문지가 인쇄된 그림 검사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죠 그 이유는
'그림 검사 할 때 질문지로 PDI하지 마세요' 포스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간략히 결론만 말씀드리면 질문지를 사용하지 마시고 개방형 질문을 이용해 상담처럼 실시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PDI는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그림을 모두 그리고 난 뒤 처음으로 돌아와 한 번에 몰아서 PDI를 하는 방법
: 보통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배우는 방법입니다. 로르샤하 inquiry도 마찬가지로 모든 카드의 반응을 확인한 뒤 1번 카드로 돌아와 inquiry를 한꺼번에 진행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입니다. HTP에서 집 그림의 PDI를 진행하는데 수검자가 말이 많아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면 그 다음 검사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평가자가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같은 원리로 충분한 검사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한 번에 몰아서 PDI를 진행할 때도 수검자의 반응을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없게 됩니다. PDI가 요식 행위로 전락하는거지요.
가끔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곧바로 PDI를 하게 되면 수검자에게 영향을 미쳐서 두 번째 그림이 오염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데 그건 PDI를 기계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예를 들어 나무 그림을 그리고 난 뒤 PDI에서 '이 나무는 몇 살이냐', '이 나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 '이 나무는 지금 감정이 어떨 것 같냐'처럼 틀에 박힌 질문을 질문지 순서에 맞춰 질문하면 당연히 수검자가 사람 그림을 그릴 때 앞서 나무 그림의 PDI에 답변했던 내용이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개방형 질문을 이용해 상담처럼 하게 되면 그런 오염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2. 그림을 하나 그릴 때마다 PDI를 하는 방법
: 그림을 하나 그리고 PDI를 하고, 다음 그림을 그리고 다시 PDI를 하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한꺼번에 PDI를 하는 방법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방법입니다. 시간에 쫓기는 병원 장면에서는 사용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모든 그림을 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수검자가 앞부분에 그렸던 그림의 투사 내용을 잊어버렸거나 기억이 희미해져서 손실되는 정보가 극히 적기 때문에 풍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르샤하 검사의 inquiry도 마찬가지인데 모든 카드 반응을 다 한 뒤 1번 카드로 돌아와 inquiry를 진행하다보면 1번 카드의 응답 내용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내용은 기억하지만 왜 그렇게 보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수검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어려운 채점을 더 곤란하게 만들죠. 그림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르샤하 검사와는 달리 그림 검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앞에 두고 inquiry를 하기 때문에 내용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지만 '이 집은 무엇으로 지은 집이냐', '이 집에는 누가 사냐',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이가 어떠하냐'같은 질문에 답을 할만큼 생생한 심리적 투사 내용이 이미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경우가 많고 이럴 때 수검자는 평가자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하기 위해 대충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림 검사의 구조적 해석과 inquiry 내용에 큰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추천합니다.
* 가능하면 충분한 검사 시간을 확보하고 그림을 하나 그릴 때마다 PDI를 하는 방법을 권장함
* 한번에 몰아서 PDI하는 방법은 시간에 쫓기는 임상 장면(예; 종합병원급의 수련 장면)에서만 할 것
-> 병원 장면에서도 각 그림마다 PDI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검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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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심리평가와 관련해 항상 드리는 말씀은 심리평가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시행하라는 겁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가설이 없을 때 습관적으로 심리평가를 하는 건 수검자를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 검사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수검자의 심리 상태가 궁금해서'와 같은 모호한 내용이 아니라 가능하면 구체적인 가설을 세우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두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동이 있고 이것이 파괴적 관심 끌기로 의심된다면 가족 역동(아동-어머니 관계, 아동-아버지 관계)을 알아보기 위해 운동성 가족화(KFD)를 실시할 수 있겠죠.
물론 그림 검사와 같은 투사법 검사는 PDI(Post Drawing Inquiry)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가설이 생성될 수 있으니 융통성 있게 시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 검사를 사용할 때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행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inquiry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1. 새로운 그림을 다시 그리게 하는 방법
2. PDI 때 필요한 질문을 수검자에게 직접 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만약 부부 상담을 받으러 온 성인 남성 내담자를 대상으로 현재 가족 역동을 살펴보기 위해 KFD를 실시했더니 자신의 어릴 적 원 가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물론 현 가정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원 가족을 그렸다는 것도 중요한 정보(분리-개별화 과제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거나)지만 현 가정 역동을 알고 싶은 게 원래의 목적이었으므로 현재 가정의 모습을 다시 한번 그려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검사 시간이 충분하고 수검자가 협조적이며 피로하지 않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새로운 그림을 추가로 그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하나 더 들면, HTP에서 집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그린 아동이 있다고 해 보죠. 우리가 원하는 건 아동이 사는 아파트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가 아니라 아동의 심리 상태가 투사된 모습이기 때문에 단독 주택을 다시 한번 그려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검자가 용인하는 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그림을 추가로 그리게 할 수 있습니다. 단, 그러자면 검증하려는 가설이 분명하게 있어야겠죠.
두 번째 방법은 평가자의 노하우가 조금 더 필요한데 역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나무 그림에서 수검자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렸다고 해 보죠. 나무 그림은 수검자의 자아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그림이니 수검자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자신의 모습을 투사했는지 아니면 그냥 그리고 싶어서 혹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추억 때문에 그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수검자가 그림을 완성한 이후 그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개방형 질문을 먼저 한 뒤에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느낌은 어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추가해서 그리고 싶은 부분은 없는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기계적으로 정해진 질문을 읽는 게 아니라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에 따라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정리해보자면, 그림 검사도 결국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니 어떤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는지 평가자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두어야 하며 검사 중에도 새로 추가되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1) 그림을 추가로 그리게 해서, 2) PDI에서 추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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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검사(HTP, KFD 등) 할 때 수검자가 반응을 마치고 나면 통상적으로 PDI(Post Drawing Inquiry)라는 걸 하게 됩니다. 수검자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을 통해 수검자가 투사한 심리적 내용을 탐색(또는 확인)하는 절차이죠. 그런데 많은 임상가들이 이미 작성되어 있는 일종의 질문지를 사용합니다. 기관에 따라 간략한 몇 개의 질문으로 된 것도 있고 굉장히 많은 질문 목록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 상 절반 이상이 누군가 발로 만든 쓰레기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림 검사의 PDI를 할 때 절대로 질문지 사용하지 마세요.
상담에 계신 선생님들은 병원을 포함한 임상 장면에서 그런 질문지를 사용하는 걸 보고 표준화된 실시 절차라고 오판하시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 그런 질문지를 사용하는 건 그게 옳은 방법이어서가 아니라 개방형 질문으로 inquiry를 할 시간이 없을 만큼 검사가 많고 바빠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수련을 받은 병원은 그마저도 할 시간이 없어서 꼭 물어봐야 하는 질문 몇 개를 아예 그림 검사지에 인쇄해서 수검자가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질문에 답을 적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딴 식으로 그림 검사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 바뀌었을겁니다. 종합심리평가가 쓸 데 없으니 없애자고 주장하는 병원이니까요;;;; 근데 그걸 베껴서 쓰는 상담기관도 있더군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inquity를 제대로 하려면 개방형 질문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그리신 집이 어떤 집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겠어요?' 정도의 open question으로 시작합니다. 수검자가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거기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있는 집이냐, 근처에는 뭐가 있냐, 집에는 누가 사느냐처럼 수검자의 반응 내용에 따라 질문을 구체화하면서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림 검사는 사실 상담처럼 진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검사자가 능숙할수록 훨씬 정교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거죠. 그런데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폐쇄형 질문지로 망쳐놓으면 되겠습니까?
질문지는 대부분 폐쇄형 질문(closed question)으로 되어 있어 수검자의 투사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하고 반응을 유도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자칫하면 수검자가 뭔가 정답이 있을 지 모른다는 오해를 하게 되어 응답 내용이 왜곡될 수도 있죠.
게다가 질문지에 포함된 질문 중 reference가 있는 질문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꼭 물어봐야 하는 핵심 질문 위주로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의 개인적 호기심이 더해져서 이도 저도 아닌 괴물 같은 이상한 돌연변이 질문지가 만들어져서 나중에 쓰는 후학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림 검사 결과를 스캔하여 심리평가보고서에 붙이고 질문과 수검자의 응답도 따로 타이핑을 해서 첨부하라고 요구하는 상담 supervisor에 이르면 그냥 그 인간의 귀싸대기를 갈겨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밉니다. 이건 새디스트인건지 멍청한건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흥분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림 검사에서 사용하는 질문지는 거의 대부분 reference가 없고, 정석도 아니며, 효율적이지도 않고, 결과를 왜곡시킬 위험성만 높이고, 선생님들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백해무익한 놈이니 이 글을 보는 이후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생님들의 시간은 좀 더 유익하고 소중한 곳에 쓰여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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