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TCI와 MMPI-2로 살펴본 반사회성 성격장애 양상'이라는 포스팅에서 TCI로 반사회성 성격장애 가능성을 확인하는 걸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격 장애 진단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심리검사도구 TCI' 포스팅에서도 TCI를 이용해 성격 장애 진단을 위한 단계적 접근법을 설명드린 적이 있고요.
오늘은 이해하기 쉽게 좀 더 쉬운 비유를 활용해 보겠습니다.
* 기질 : 음식의 종류
* 성격 : 냉장고의 온도 조절 기능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주 호소가 대인관계회피, 사회적 철회, 무기력이라고 해 보죠. 대인 관계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고 사회 적응도 잘 못하기 때문에 Social Anxiety Disorder, Social Phobia, Adjustment Disorder, Depressive Disorder의 진단 가설을 변별하던 중에 이 내담자가 혹시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혹은 Problem)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 TCI로 검증을 해 보기로 합니다.
1단계. 성격의 성숙도 체크(자율성,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 사용)
: 자율성 및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가 모두 30점 미만이거나 자율성+연대감의 합산 백분위 점수가 30점 미만인 경우 성격 발달의 정도가 기질유형에 미치는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위 내담자의 경우 자율성의 백분위 점수는 80점, 연대감의 백분위 점수는 1점이라서 모두 30점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충족하지 않지만 자율성+연대감 합산 백분위 점수가 21점이라서 조건을 충족함. 성격장애(또는 문제) 가능성이 있어 보임.
그야말로 냉장고의 온도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냉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라면 안에 보관한 음식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음식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2단계. 기질유형의 확인(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 척도의 T점수 3분 분할점 사용)
: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T점수가 45미만, 45이상 55이하, 55초과인지에 따라 L, M, H로 명명하고 3 X 3 X 3 조합의 기질 유형 확인.
위 내담자의 경우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T점수가 각각 39, 38, 35이므로 모두 Low이며 LLL기질 유형을 갖고 있습니다. 해석집의 LLL 기질유형을 찾아보면 Schizoid(분열성) 기질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내담자는 DSM 분류 방식을 따르자면 Cluster A의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Problem)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추가적인 평가나 치유적 개입을 해야 합니다.
냉장고 안을 살펴보니 아쉽게도 가공된 통조림이 아닌 부패되기 쉬운 해산물이 들어 있었네요. 냉장고의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꽤 오랜 기간동안 보관할 수 있었겠지만 냉장고가 고장난 상태(성격의 조절 기능이 성숙하지 않음)이므로 금방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취약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성격의 조절 기능이 양호하거나, 반대로 성장하면서 조절 기능이 고장난 경우에도 건강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테지만 취약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성격의 조절 기능까지 고장난다면 성격 장애로 발현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그래서 성격 문제가 있어 보이는 내담자를 상담할 때는 TCI를 활용해 비교적 간편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를 변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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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병원 급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어합니다. 적절한 금전적 보상과 복리 혜택이 주어지는 유급 수련 과정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경험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종합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이라는 수련 현장의 장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업무량에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종합병원이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희귀한(?) 장애는 별로 못 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병원에서 Sleep Walking Disorder, Fugue,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환자 등을 평가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애는 몸에 밸 정도로 많이 봅니다.
제가 수련받은 병원의 경우 1년차 레지던트는 1/4분기 동안 지적 장애 판정에 투입되는데 다양한 심각도의 Mental Retardation 환자를 지겹도록 평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발달 장애 클리닉에 투입되어 몇 달동안 Communication Disorder, MR, PDD NOS, Autistic Disorder를 변별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보호 병동에서 SPR, MDD 환자를 실컷 평가하고, 다시 외래에서 ADHD, Anxiety Disorder 아동을 평가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 장애를 일정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쌓이는 노하우와 지식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특정 장애에 대한 검사 sign과 case formulation의 감을 잡을 수가 있고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는 다른 장애와 변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의 장애에 대한 감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무조건 다양하고 특이한 환자를 본다고 전문성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얄팍한 잔수만 늘게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앞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심리평가 부문에서도 최종적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증 클리닉의 집중 훈련 과정을 통해 Pain Disorder 환자에 대한 대가가 되든지, 재활 병원에서 뇌손상 환자의 손상 부위를 아주 detail하게 잡아내는 전문가가 되든지, 섭식 장애 센터에서 Eating Disorder 환자를 평가, 치료, 예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든지 말이죠.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평가하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집중'적인 훈련과 전문성의 배양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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