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크게 나누어 볼 때 '일' 아니면 '사랑(대인 관계)'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관계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죠. 이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매일 만나다보면 일 대 일 관계 이상을 맺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다면,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직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은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게끔 강제하는게 가능하다면 어떨까, 거의 대부분의 관계 갈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여간 많은 내담자들이 관계가 힘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상담자를 찾습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상담자들은 대인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상담자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혹은 강하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들이 분명히 있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schizoid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schizoid한 사람들은 관계 욕구는 분명히 있지만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상이 동물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추상적인 object일 수 도 있습니다. 즉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죠. 관계 욕구의 대상이 동물이라면 동물을 좋아라하고 동물에게 애틋한 감정도 느끼지만 사람에게는 아닌 겁니다.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때로는 싫어하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관계 욕구의 대상이 자연이라면 이 사람은 오지에서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고 믿는 상담자는 이런 schizoid한 내담자에게 반치유적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schizoid한 내담자를 꽤나 자주 만나는데 이 사람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히키코모리나 사회 부적응자, 아스퍼거, 게임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저 관계 욕구의 대상이 인간, 인간 조직, 인간 사회가 아닐 뿐입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감은 사실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이들을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는 인간 사회가 유발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방법은 이들을 억지로 인간 사회에 편입시켜 강제 연애를 주선하고, 커뮤니티에 집어넣고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질적 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인간 사회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schizoid한 사람들에게는 이 거리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담자에게는 대인 관계 욕구가 있고 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도 있다는 걸 상담자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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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상담자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능력으로 간주됩니다.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담 및 심리치료적 접근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죠. 그만큼 상담에서는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수련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애도 많이 쓰고 공감을 잘 하는 상담자는 실제 상담에서 유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감이 잘 안되는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편이지만 제가 처음 상담을 하던 당시에도 저는 내담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내담자가 갈등을 겪은 상황이 정확하게 머리에 그려지고 왜 힘이 든건지 감이 오지만 공감만큼은 도무지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공감이 잘 안 되니 아무래도 내담자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서툴게 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내담자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한번도 안 해 주시더라는 불평 아닌 불평을 듣게 되기도 하고, 2년 이상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가 오늘은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되기도 합니다(사실은 아직도 좀 당혹스러워요;;;).
내담자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건 상담자에게 큰 결함이라고 배웠기에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예술을 자주 접하면 마음이 좀 열릴까(실제로 이건 효과가 좀 있습니다~) 등등.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 습관, 대인 관계 기술, 외모 등을 고치려고 집착하는 것처럼 저 또한 공감을 못하는 제 자신만을 탓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죠.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공감이 그렇게 안 되는데 왜 나는 내담자의 입장과 갈등의 이유, 의사 결정의 중요도와 우선 순위가 도표를 그리듯이 자동적으로 번호가 매겨지면서 정리가 되는건지.... 왜 어떤 내담자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혼란이 가라앉아서 좋아요 라고 말한 건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
상담에는 머리와 마음이 모두 필요하지만 머리가 더 발달한 상담자가 있고, 마음이 더 발달한 상담자도 있는거지요. 머리가 발달했다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그랬다면 상담자가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제 TCI 결과표를 보고 나서 왜 공감이 잘 안 되는지, 그런데도 왜 상담자의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TCI 기질 유형은 LLL유형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chizoid 유형이죠. 점수대가 39-38-35T이니 점수도 꽤 극단적인 편입니다. LLL 유형의 특성 상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으니 그 사람에게 진정한 공감을 하는 게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어떻게 상담이란 걸 하고 있느냐 하면 제 성격 유형이 HMH 유형이거든요. 연대감 차원의 백분위 점수가 65.4 정도 되니 관계 맺기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이죠. 게다가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Schizoid 기질이 병리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되지도 않고 잘 통제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머리 80, 마음 20 정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담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예 공감이 안 되지는 않으니 부족한 공감 능력은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그보다 특화된 분석 능력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인정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머리와 마음을 자유자재로 잘 사용하는 균형잡힌 상담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본인이 공감을 잘 못하는 상담자라며 자책만 마시고 강점 영역을 잘 찾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저처럼 공감에 서투른 상담자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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