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PI-2/A에서 1번(Hs) 임상 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을 때 임상 장면에서는 Somatic Symptom Disorder 진단을 떠올리겠지만 상담 장면에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가설을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체화 방어 기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수검자의 미성숙성(정확하게는 내면 아이의 미성숙성)'
MMPI-2를 사용하는 만 18세 이상 수검자의 경우에는 재구성 임상 척도를 통해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RC1 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는지 확인해보면 간단합니다. 1번 임상 척도와 RC1 재구성 임상 척도가 모두 유의미하게 상승했다면 이 수검자는 미성숙한 방어 기제인 '신체화'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그 정도가 심할수록 1번 척도의 상승 정도에 비해 RC1 척도 점수가 월등히 높습니다. 이건 1번 임상 척도와 RC1 재구성 임상 척도가 일대일 대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비교입니다.
하지만 MMPI-A를 사용하는 청소년의 경우는 재구성 임상 척도가 없기 때문에 RC1 척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는 Hy4 임상 소척도와 비교해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HEA 내용 척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HEA 내용 척도와 Hy4 내용 소척도를 비교하자면,
* HEA : 전반적인 신체 증상 호소
* Hy4 :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인 증상을 강조
물론 HEA 내용 척도에도 3개의 소척도가 있기 때문에 어떤 소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MMPI-A에서 1번 임상 척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을 때 HEA 내용 척도만 상승했다면 다소 막연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고 Hy4 임상 소척도만 상승했다면 구체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개는 HEA 내용 척도와 Hy4 내용 소척도가 함께 상승하기 때문에 결국은 HEA 내용 척도의 소척도 양상을 분석해야 합니다. HEA 내용 소척도는 다음을 측정합니다.
* HEA1(A-hea1) 소화기 증상
: 배가 아픈 등의 소화기 관련 증상을 측정합니다. HEA 내용 소척도 중 미성숙한 신체화 방어 기제와 가장 관련성이 높습니다. 다만 실제로 소화기계 질환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내과 질환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HEA2(A-hea2) 신경학적 증상
: 전환 장애 환자들이 호소하는 것과 같은 dramatic한 증상(예를 들어, 실신, 마비, 발작 등)을 호소함으로써 관심을 끌거나 이차 이득을 얻으려는 무의식적 동기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Hy2(애정 욕구) 소척도 점수와 함께 해석하는 게 좋습니다.
* HEA3(A-hea3) 일반적인 건강 염려
: Illness Anxiety Disorder 진단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증상들을 측정합니다. 다만 본인이나 가족 구성원 중에서 실제로 투병 중인 사람이 있는 경우 합리적인 건강 염려일 수 있으므로 문장완성검사의 내용이나 면담을 통해 실제 병력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정리해 보자면,
* MMPI-2에서 1번 임상 척도가 유의미할 때 때 RC1 재구성 임상 척도도 유의미하다면 신체화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미성숙한 수검자일 가능성이 있음. -> TCI의 성격 미발달 여부 확인 필요
* MMPI-A에는 재구성 임상 척도가 없으므로 HEA 내용 척도와 Hy4 임상 소척도 상승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HEA 척도가 상승한 경우 전반적인 신체 증상 호소, Hy4 임상 소척도가 상승한 경우 비교적 구체적인 증상을 호소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 HEA 임상 모척도가 상승했는데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HEA 내용 소척도 중 유의미하게 상승한 소척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검자의 신체화 증상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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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Hypochondriasis라는 어려운 용어로 불리던 건강 염려증은 DSM-5로 넘어 오면서 Illness Anxiety Disorder라는 보다 직관적인 용어로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예전의 신체화 장애 진단은 DSM-5에서 Somatic Symptom Disorder로 바뀌었는데요. 이 두 장애는 건강에 대한 염려는 둘 다 있으나 구체적인 신체 증상 호소가 있느냐의 여부(Somatic Symptom Disorder가 있음)로 구분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에 대한 염려는 둘 다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죠.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거나 신체화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 직접적인 신체 증상 호소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는지를 미처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잊지 말고 체크하셔야 합니다.
서론이 길었고요.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건강 염려가 심한 경우, 즉 Illness Anxiety Disorder로 진단할 수 있는 정도의 내담자도 굉장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경우는 관심이나 지원을 받기 위해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하는 내담자입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함으로써 주변 사람의 우려와 걱정을 유발시키고 이렇게 끌어들인 관심을 통해 자신이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는 사람이죠. 주변에 이 내담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특징적이고(특히 희생 정신이 강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의심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주변 사람 누구도 나를 챙겨줄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몸이 중요하고 그러니 큰 병이 걸리거나 하지 않도록 평소에도 조심하고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고 믿는 내담자입니다. 앞의 경우와 반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으며 가족 친지들마저도 냉담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내담자를 챙기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임상적으로 더 흔히 볼 수 있으며 신체화 증상 호소를 동반하는 일이 많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신체화 증상 호소가 드뭅니다. MMPI-2에서 신체증상호소, 신체화 장애 척도가 상승하지 않으며 SCT에서도 건강에 대한 염려는 보고되는 반면 통증을 비롯한 신체 증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로샤 검사에서도 AN 반응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히려 TCI에서 위험회피기질이 상승하거나 MMPI-2에서도 불안 수준이 높은데 비해(특성 불안, 상태 불안 모두 상승) 일반적인 건강 염려 소척도만 단독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장완성검사의 내용도 미래에 대한 불안, 혼자 외롭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고하는 빈도가 높고요.
상담 장면에서도 첫 번째 경우는 끊임없이 상담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는 신체 증상을 그다지 호소하지 않으며 설사 신체 증상이 있다고 해도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trust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 확실한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testing하려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경우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신체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신체 증상으로 얻게 되는 이차적 이득을 탐색하고 이를 건강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낫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경우는 내담자의 건강 염려에 일부러라도 초점을 맞추고 무조건적인 수용과 공감적인 경청,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 경우의 내담자는 아무도 자신의 걱정과 염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상담자 또한 그럴 것으로 생각하기에 초기에는 상담자의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동일한 Illness Anxiety Disorder 내담자라고 해도 양상에 따라 초기 접근법이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양상의 내담자인지 심리평가 결과를 통해 어느 정도 규명하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달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후자의 경우는 드문 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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