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쯤 시드니로 돌아와 업무 모드로 전환한 뒤 시내에 있는 벤치마킹하기 위해 몇 군데 TAB을 더 들렀습니다. TAB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거의 복권방 수준으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더군요. 규모가 큰 TAB은 슬럿머신까지 갖추고 있고 아주 작은 곳은 그야말로 발매 창구 하나만 달랑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bar나 pub과 연결되어 있어서 도박을 즐기다가 언제든 술을 마시러 갈 수 있는 편이성이 있습니다.
특이한 건 발매 창구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호호 할머니들이라는 거. 노년층 일자리로 많이 활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시내 어느 TAB에서든 실내는 촬영 금지입니다. 벽에 붙은 포스터를 찍으려고 했는데도 제지하더군요.
도박 중독 치료와 관련된 리플릿은 어디나 있기는 하지만 꼼꼼히 리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간혹 무슬림, 베트남 등 다양한 민족 사람들을 위한 치료 서비스 전화 번호를 적어놓은 맞춤형 리플릿도 봤는데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도 미리 대비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5시에 떠나는 선셋 크루즈 시간에 맞춰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시드니는 정말 공기가 맑아요. 가이드는 호주가 물부족 국가로 분류될 만큼 건조하다고 하지만 그건 진짜 건조한 나라에 안 가봐서 그렇죠. 진짜 건조한 나라에서는 코를 풀다 상처가 날 수도 있거든요. 코딱지가 뭉쳐서 딱딱해지기 때문에 너무 센 압력으로 코를 풀면 점막에 상처가 나 코피를 흘릴 수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거든요;;;;;
부녀가 산책 중에 선착장의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흐뭇한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갈매기들이 우악스럽게 서로 다투지 않고 나름 질서를 지키는 게 인상적이네요.
겉에서 볼 때는 나름 고풍스럽게 보이는 크루즈 쉽입니다만 내부는 제가 기대하는 것과 좀 달랐습니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죠.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들어갔더니 가장 안쪽에 세팅된 자리로 안내받았습니다. 사이드 출입구가 가까워서 갑판으로 나가기 쉽더군요. 편리하게 들락날락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손님은 거의 중국인과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인데 나중에 보니 선주가 동양인인 것 같더군요.
이즈음의 시드니는 해가 저녁 7시 쯤 지는데 저희가 이용한 선셋 크루즈 코스는 5시에 출항해서 1시간 동안 둘러보고 6시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거라서 근사한 일몰을 볼 수는 없습니다. 예약한 사람 말로는 그래서 티켓값이 좀 싸다고(그래봤자 1인 당 5만 원;;;). 이 다음인 6시에 출발해서 7시에 돌아오는 코스가 제일 비싸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은 하버 브릿지입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철제 다리의 육중함이 멋지네요.
곧바로 오페라 하우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다에서 보는 오페라 하우스는 또 다른 멋이 있네요. 각도가 달라지니 보이는 면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절정 우아미를 자랑하는 오페라 하우스도 정면에서 보니 영 볼품이 없네요. 매드맥스 시리즈의 폭주족이나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가 쓴 투구를 연상케합니다;;;;
시드니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평범해 보이지만 균형미가 있어서 해가 진 뒤의 야경도 근사할 것 같습니다.
등대인지 초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매하게 생긴 구조물이네요. 저 뒤쪽에 정박한 군함이 더 인상적입니다.
저녁 식사로 먹은 건 처음에 세팅되어 있던 샐러드, 스테이크, 케잌 순으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로 커피는 셀프 서비스였습니다. 음식은 아주 별로였고 특히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는 너무 질겨서 다 먹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야 통과했지만 먹어본 동료들은 다들 맛이 없었다고 하네요. 그냥 배고파서 먹었을 뿐이라고.....
30분 정도 가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올라갑니다. 오페라 하우스 반대편은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걸로 보아 주거지역인 것 같습니다.
물길이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갈 때와 올 때 모두 배의 오른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풍광을 볼 수 있으니까요. 갈 때는 시드니 도심의 스카이 라인과 오페라 하우스를, 올 때는 주거 지역과 하버 브릿지를 집중적으로 감상합니다.
1시간 남짓의 짧은 코스지만 항구에서 출발하여 하버 브릿지를 통과한 뒤 오페라 하우스 앞을 지나 돌아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예전에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혔던 시드니 항구의 아름다움을 가감없이 맛볼 수 있는 코스이죠.
가격도 만만치 않고 음식도 별로지만 풍광만으로도 한번 정도는 해 볼 가치가 있는 크루즈 투어입니다.
오페라 하우스 반대편의 모습인데요. 공공 건물인지 어느 부호의 개인 저택인지 모르겠지만 멋지네요. 자체 선착장도 보유하고 있더라고요. 저기서 산다면 매일 아침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오페라 하우스를 감상하는 맛이 각별하겠는데요.
하버 브릿지는 가까이서 보니 콘크리트 교각이 철제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인데 독특함이 좋습니다.
해가 슬슬 지평선에 걸리는 것 같은데 저녁놀을 배경으로 다리를 보면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버 브릿지를 지나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저녁 햇볕을 맞으며 크루즈 쉽의 상갑판에서 보낸 행복한 1시간이 아쉽게 끝나갑니다.
저는 참 좋았는데 역시나 이심전심이었는지 함께 간 동료도 돈값했다고 극찬하네요.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거의 6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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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려 나중에 합류한 일행을 기다렸는데 7시가 넘자마자 곧바로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더군요.
호주에서의 첫 날 저녁 식사를 한 Nick's라는 식당입니다. 달링 하버에 있고요. 노보텔이 하버에 면한 숙박시설이라서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일정 내내 저녁은 대체로 하버의 레스토랑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식비가 만만치 않게 듭니다.
뭘 먹어도 1인 당 3만 원은 각오해야 하더군요. ㅠ.ㅠ
식전주로 마신 호주산 'Wild Yak Pacific Ale'입니다. 일행은 모두 맛있다고 하던데 저는 별로였습니다. 일반 라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에일 특유의 향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님 여행하면서 워낙 맛있는 맥주를 많이 마셔봐서 그랬을까요. 어쨌거나 따로 여행와도 다시 마셔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장 많이 먹는 메뉴인 해산물 모듬 platter를 주문했고 저는 비건용 버섯 리조또를 시켰는데 비주얼도 정갈한 편이고 맛도 괜찮았지만 역시나 가격이 32불(우리 돈 2만 8천 원 상당)이나 합니다.
시드니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외식을 하는 경우 음식 가격만 놓고 보면 노르웨이 뺨칩니다. 대신 quality는 어디에서 먹어도 후회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맥주가 남았기에 안주 대신으로 주문한 Tempura입니다. 말 그대로 튀김인데 일본식 간장과 소스가 같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주로 새우 같은 해산물 튀김을 먹었고 저는 채소 튀김을 주로 먹었고요. 이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튀김옷도 얇고 신선한 기름에 튀겼는지 아주 바삭하고 신선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더군요.
달링 하버를 비롯해 시드니 항의 모든 하버 사이드에는 레스토랑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분위기도 비슷, 음식도 비슷합니다. 대신 귀청을 찢을 듯한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에요.
저녁을 먹은 후에는 다시 일 모드로 돌아가 시드니 유일의 카지노인 스타 카지노를 벤치 마킹하러 들렀습니다. 출입 시 시큐리티에게 여권을 보여줘야 해서 호텔로 돌아가 안전 금고에 보관했던 여권까지 들고 나왔죠.
원칙적으로 실내 촬영 금지(입니다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장 찍었습니다)입니다. 규모가 우리나라 하이원 카지노와는 비교 불가 수준이네요. 넓이도 그렇고 일단 없는 도박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도박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생전 처음 보는 도박이 많더군요.
제가 방문했을 때 폴크스바겐 21대를 사은품으로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으니 화려함이 말 다 했죠.
고객의 50%가 중국인으로 이들을 상대하기 위한 중국인 직원을 별도로 고용할 정도로 성업중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에도 그 넓은 객장이 꽉 차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건 카지노 내에 있는 TAB인데 TAB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말하면 세계의 모든 스포츠 베팅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토토방 같은 겁니다. 나중에 보게 되지만 이런 TAB은 시드니 뿐만 아니라 호주 어느 동네를 가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의 편의점 수준으로 널려 있더군요.
이건 TAB과 연동되어 있는 스포츠 바 입니다. 주류를 마시면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경기를 보다가 베팅을 하고 싶으면 바로 옆의 TAB으로 가면 됩니다.
도박 중독 경고문은 어디에나 눈에 띄는 곳에 비치되어 있지만 문구가 공격적이지는 않습니다. '필요하면 가져가든지'의 느낌입니다;;;;;;
첫 날인데도 아침부터 너무 부지런히 돌아다닌 탓인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찍 숙소로 철수했습니다. 많이 걸어다녀서 피곤했는지 저도 씻자마자 여행 일지도 정리 못하고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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