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서북부 끝에 있는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10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터키 중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Kappadokya)로 들어갔습니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앙부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기암지대로 화산의 분화와 오랜 풍화 및 침식으로 인해 형성된 특이한 자연 경관이 장관인 곳입니다. 터키 여행자라면 반드시 돌아봐야 하는 필수코스죠.
카파도키아에서는 숙소가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배낭 여행자들은 대체로 저렴한 펜션이 밀집되어 있는 괴레메(Goreme)에 많이 묵습니다. 특히 한국인 배낭 여행자들은 '트래블러스 팬션'에 많이 묵는데 해외로 나가면 항상 한국인을 피해 다니는 저희는 위르굽(Urgup)에 있는 Elkep Evi(
www.elkepevi.com)라는 동굴 펜션에 묵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이동하면 대개 네브세히르에서 버스를 갈아타게 되는데 이 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저희도 여기에서 사기당할 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아찔하네요.
네브세히르에 도착하면 보통 버스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버스인 세르비스(Servis)로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이 때 삐끼들이 달라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제복을 입지 않고 절대로 버스회사 직원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안심하기 쉬운데 터키에서는 오히려 영어나 한국어를 지나치게 잘하는 사람은 일단 사기꾼으로 간주하고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저희도 네브세히르에 도착한 직후 웬 허름한 옷차림의 청년이 버스에 올라타더니(버스회사 직원이 특별히 제지하지 않기 때문에 버스회사직원으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직원인 척하면서 버스타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짐을 들고 따라오라고 합니다. 간단한 우리말도 할 줄 알고 넉살이 아주 장난이 아니더군요. 멋도 모르고 쭐래쭐래 따라갔는데 갑자기 허름한 여행사(Rock Town)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Rock Town이라는 간판(터키 여행자 카페에서도 요주의 여행사로 유명한 곳입니다)을 보는 순간 아차 싶더군요. 두 말 없이 뒤로 돌아 뭐라고 하던 말던 달려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METRO라는 로고가 찍힌 작은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있더군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 세 줄 요약
1. 네브세히르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면 절대로 자리를 떠나면 안됨.2. 허름한 옷차림에 능수능란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특히 조심할 것.3. 자신이 타고 온 버스회사의 로고가 찍힌 버스만 탈 것.
20분 정도를 더 달려 괴레메의 Otgar에 도착했습니다. 아침부터 여행자로 부산한 모습입니다. 위르굽으로 가는 돌무쉬 정류장을 물어보러 Information booth에 들렀는데 제가 영어가 짧아서 그런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지도에 의지해 찾아보려고 돌아다니는데 다행히도 도와주겠다는 현지인을 금방 만나서 쉽게 찾았습니다. 정류장 표시도 변변히 없어서 현지인의 도움이 없었으면 상당히 헤맬 뻔 했습니다. 그 고마운 사람에게 휴대폰 고리를 하나 선물로 주고 돌무쉬를 기다렸습니다.
돌무쉬 정류장에서 본 괴레메의 모습입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Otgar가 있고 왼쪽의 블럭으로 포장된 길이 위르굽으로 가는 길입니다.
꽤 오래 기다렸는데 배차 간격이 긴 지 돌무쉬가 올 생각을 안 하더군요. 정류장 바로 옆의 가게에 있는 나이 지긋한 분에게 말을 걸었는데 택시로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얼씨구나하고 10불에 흥정하고 탔습니다. 이 분은 Elkep Evi의 위치를 잘 몰랐지만 중간중간에 물어보면서 데려다주더군요. 역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친절합니다. ^^
Elkep Evi로 올라가는 진입로입니다. 첫 인상은 조금 황량해 보이지만 뭐랄까요... 공기까지 자유롭다고 할까요? 첫 느낌부터 좋았습니다.
저기 꼭대기에 보이는 것이 Elkep Evi의 테라스 식당입니다. 괴레메와 위르굽에는 많은 동굴 펜션이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는데 Elkep Evi는 그 중에서도 터키 여행으로 유명한 엔조이 터키(
www.enjoyturkey.net)의 주인장이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비장의 동굴 펜션입니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니죠. 저희도 아주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Elkep Evi에서 한국인을 만났다면 대개 엔조이 터키를 통해 온 사람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에 엔조이 터키를 통해 여행 온 단체 관광객과 주인장도 만났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찾아냈는지 조금 놀라는 눈치더군요. 하하하
Elkep Evi의 reception desk가 있는 건물 입구입니다. Elkep Evi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장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하나씩 동굴을 개조해서 건물을 늘렸다고 합니다. 터키의 다른 호텔도 그렇지만 홈페이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의 인프라가 부족해 인터넷을 이용한 예약은 쉽지가 않습니다. 메일을 보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고. 가장 빠른 예약 방법은 Fax를 보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Elkep Evi에 예약을 할 때 Fax를 이용했는데 빠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더군요.
Elkep Evi는 정말 별 다섯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인 카파도키아 최고의 동굴 팬션입니다. 깨끗하고, 음식 정갈하고, 직원들도 무지하게 친절합니다. 게다가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할인도 됩니다. 물론 트래블러스 펜션처럼 숙박료가 저렴하지는 않지만 한번쯤 묵을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신혼 여행을 여기로 와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카파도키아로 가시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아직 저희가 묵을 방이 준비되지 않아 아침도 먹을 겸 테라스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Elkep Evi는 주변의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테라스 식당에서 보면 카파도키아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선선한 날씨에 싱그러운 바람, 따사로운 햇볕이 정말 예술입니다.
낮에도 멋지지만 Elkep Evi의 테라스 식당은 밤에 진가를 발휘합니다. 밤하늘의 별을 벗삼아 멋진 음악을 들으며 테라스에 앉아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앞에 앉은 이성에게 프로포즈를 할지도 모릅니다. ^^ 정말 멋지죠.
어디에 앉을까 둘러보다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습니다.
터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입니다. 참 정갈하게 세팅을 해 놓았죠? ^^ 에크멕에 다양한 종류의 쨈과 꿀을 발라서 먹고 취향에 따라 올리브 열매나 치즈, 오이, 토마토를 얹어서 먹어도 됩니다. 마실 것으로는 과일 쥬스나 터키 홍차인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는 터키 사람들이 물처럼 많이 마시는데 저도 많이 마시다보니 나중에는 중독된 것처럼 차이만 찾게 되더군요. 과일은 부페식으로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습니다.
오믈렛이 있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달걀 팬케잌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따끈한게 맛이 괜찮았습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새소리를 들으면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니 방이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짐을 풀러 내려갔습니다.
저희가 묵은 펜션 입구입니다.
보시다시피 동굴을 개조하여 객실로 꾸민 곳입니다. 저희는 뒷모습이 보이는 여직원이 들어가는 1층 방에 묵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 한여름인데도 냉방 장치없이 시원합니다. 서늘해서 한기를 느낄 정도이더군요.
내부 공간은 상당히 넓습니다. 독특한 것은 쇼파가 있을 법한 자리에 단을 만들어서 상을 가져다 놓은 것인데 여러가지 잡지와 여행 정보지가 놓여 있습니다.
광량이 부족해서 사진이 죄다 흔들렸네요. ^^;;; 보조 싱글 침대도 있어서 3사람이 묵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욕실은 적당한 크기에 정갈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깨끗한 슬리퍼와 수건이 충분히 비치되어 있고 헤어 드라이어도 있더군요.
안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디오도 있더군요. 문 옆의 냉장고에는 생수가 들어있는데 뜻밖에도 무한리필이 됩니다. 터키에서는 생수 한 병도 모두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말이죠.
짐을 풀고 나니 야간 버스 여행의 피로가 몰려오더군요. check in을 늦게 해 오전 투어는 이미 물 건너 갔기 때문에(오전 투어를 하려면 9시 전에는 도착했어야 합니다) 늦은 김에 쉬어간다고 잠도 조금 자고 체력을 회복한 후 reception desk에 가서 정보를 얻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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