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치료자들은 도박중독을 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도박자가 스스로 부적절한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도박자의 성격 문제나 도덕적인 죄의 차원에서 도박중독을 바라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박중독을 암이나 당뇨와 같은 난치병으로 치환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에 걸린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암에 걸린 환자를 왜 암에 걸렸느냐고 나무라지 않듯이 도박중독에 걸린 도박자도 왜 도박중독에 걸렸느냐고 나무라지 말고 힘을 합쳐 병을 치료하고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을 위해서 제가 사용하는 비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도박중독은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는 병이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도박자가 수영을 못하니까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고 극구 만류하는데 정작 본인은 수영을 할 수 있는데 왜 말리는지 모르겠다면서 극구 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거지요.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물에 들어가는 도박자를 미리 건져내게 되고(도박 채무의 대리 변제) 도박자는 자신이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계속 모르고 계속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해야 할 일은 도박자가 스스로 물에 들어간 책임을 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조요원(치료자)을 대기시키고 가족들은 먼 발치로 물러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기다립니다.
거침없이 물에 들어간 도박자는 곧 자신이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었지요. 그래서 물을 꼴깍꼴깍 들이키면서(책임을 통감하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구급요원이 도박자를 건져내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똥고집에 대한 뼈저린 깨달음을 얻고 나면 물에 들어가기 위해 제대로 수영을 배우거나(Responsive Gambling) 물과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Abstinence)하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도박중독이 어떤 병인지 확실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967
간혹 도박자가 도박을 적절히 통제, 조절하면서 즐길 수 있는 정도는 허용하면 어떨까에 대해 치료자와 상의하고 싶어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소위 통제된 도박(controlled gambling)을 도박자에게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요.
특히 도박자가 치료를 받게 되면서 당당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의기소침, 위축되어 가족들이 안쓰러움을 느끼거나 가족들이 ‘간수 역할’을 거두면서 도박자가 도박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됨으로써 궁금함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도박자가 도박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경우에 이런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우선 가족들이 ‘간수 역할’을 그만두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감시를 참아야만 하는 가족의 어려움과 동시에 불끈불끈 올라오는 호기심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초 치료 목표가 도박을 전혀 하지 않는 것(abstinence)이라면 왜 통제된 도박이라는 새로운 치료 목표가 갑자기 대두되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치료적인 측면에서 봐도 가족이 단지 도박자의 도박 여부에 대해 알고 싶어서 통제된 도박을 인정하는 거라면 가족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만큼만 도박자가 공개하고 나머지는 어차피 감출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도박자의 도박에 대해 아주 제한된 정보만 갖게 됩니다.
따라서 가족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치료에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도박자에 대한 수용과 지지는 통제된 도박을 인정함으로써 도박자가 도박을 할 수 있게끔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