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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포함한 couple therapy를 할 때 가만히 지켜보면 현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는 건 대화의 패턴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계속 겉돌고 있다고 서로가 느끼고 있다면 상담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하는데 하나는 가치관의 차이고 다른 하나는 접점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가치관은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고 싶다면 가치관 탐색을 하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담자가 자신의 선택과 결과의 현실적 괴리를 이해하는데도 필수적이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인 관계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만 이는 대인 관계 영역에서 다루기보다는 개인 수준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필요하다면 원가족 관계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깊이 내려갈 수도 있거든요.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2자 관계의 각 구성원을 개별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것이 가치관에 대한 접근이라면 이와 달리 접점의 여부는 두 사람의 상호작용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고집이 세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있다고 해 보죠.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욕구에 최대한 귀를 기울임으로써 현실적인 요구에 맞추려고 아이를 닥달하지 않는 여유로운 양육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체벌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행동 변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또래나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아빠는 내 자식이 그렇게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도 못마땅하고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정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곧바로 따르지 않고 떼를 부려 집안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체벌의 도입 여부로 항상 부부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남편은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으니 체벌을 가해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남편이 아이의 말을 귀 기울일 생각은 안 하고 자기 편하자고 손쉬운 체벌을 고집한다고 맞섭니다. 그리고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라도 찾아보고 그러는거냐며 남편을 몰아세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부부는 대화의 접점이 없습니다. 남편은 체벌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체벌 무용론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설사 남편이 때로는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찾아내 들이민다고 해도 아내는 절대로 체벌을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접점이 없으면 대화가 계속 제자리를 맴돌며 감정만 격화시키다가 누구 하나가 말실수를 하는 순간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접점이 없는 무익한 대화를 계속하는 부부나 couple을 상담하는 상담자는 전형적인 episode를 찾아 최소한의 접점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위에서 예를 든 부부의 경우 접점은 체벌의 도입 여부가 아닙니다. 아이가 떼를 써서 일이 지연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의 행동 전략이 하나의 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침에 옷을 입는 것을 거부해 유치원에 가는 게 늦어질 것 같고 남편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회사에 지각하고 싶지 않은 남편을 배려해 먼저 출근시키고 비용이 들더라도 아내가 택시를 이용해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거지요.
물론 모든 갈등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작은 접점이라도 먼저 만드는 겁니다. 접점이 없다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일단 접점이 만들어지면 그 접점 영역을 넓혀가는 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상담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 갈등에서도 가능한 접점이 없는 대화는 피하고 소통하고 싶다면 작은 접점부터 만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나중에 다시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접점이 없는 이유는 쌍방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경우도 있으니 상담자는 처음부터 가치관 문제도 함께 고려하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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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로서의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심리평가나 상담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투명하게 모든 것을 내담자와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심리평가와 관련해서는 관련글을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도 있고요.
*
'심리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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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겠다는데(혹은 갖겠다는데) 그걸 왜 막나'
그런데 부부 상담이 실패하여 이혼 소송으로 귀결된 상황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의 내담자였던 부부 중 한 쪽 배우자가 이혼 소송에 사용하겠다며 상담 기록을 달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담 기록은 내담자의 것이니 그냥 줘도 될까요? 아니면 소송 상대인 배우자의 동의가 없는 한 요청한 내담자의 상담 기록만 추려서 제공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걸린 경우에는 가능하면 상담과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담자로서의 중립 위반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담 기록을 요약하거나 확인서를 쓰려고 노력해도 이미 진행된 상담 내용을 통째로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부 상담자로서의 중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큽니다. 상담자의 중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라든가, 중립을 지키는 것이 100%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couple therapy의 경우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거지요.
2. 상담 내용의 오용 문제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지만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과 반대로 법은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내담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법은 사실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치유를 위해 내담자가 힘겹게 털어놓은 본인의 치부와 비밀이 악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상담 기록을 요청하는 배우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걸 활용하려고 요구하는 것이죠).
3. 이중 관계
제가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상담 기록 공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이중 관계를 맺는 것이고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상담 기록을 넘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법적인 조력자 또는 지지자의 관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추가되는 겁니다. 그 뿐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한 때 내담자였던)와 맺었던 치유 관계가 훼손되는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상담자들이 법적인 문제로 상담 기록을 요구받을 때 법적 한계와 상담자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의 무게만 고려하기 쉬운데 치유적인 관계 안에서만 생각해도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적 소송 때문에 상담 기록을 요청받으면 상담 중이든 이미 종결한 상태이든 반드시 요청한 내담자와 다시 약속을 잡아서 전후 사정을 듣고 이를 상담의 틀 안에서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상담 기록의 요구가 냉철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의 충동적 표출이나 수치심의 배출 경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상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담자의 역할을 고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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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출범하기 이전에 사행사업체에서 운영하던 도박중독 치료기관만 존재하던 시절에는 이 문제를 염려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상당 수 기관에서 각자 알아서 국가 공인 자격증이나 엄격한 수련 과정을 통해 배출된 전문가만을 채용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그런지 도박중독 회복자가 치료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요(제가 아는 한 전국적으로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단도박 모임이야 치료자가 아닌 협심자들에 의해 유지되는 수평 모임이기 때문에 오랜 단도박 기간을 유지하는 협심자가 치료자 행세를 하는 극소수의 잘못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웠고요.
그런데 사감위가 출범한 이후 도박중독전문가 양성과정을 개설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지 수십 시간의 교육만 받으면 자격증을 주기 시작했고 이 자격을 가진 도박중독 회복자가 실제로 치료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무런 현장 적응 훈련도 없이 곧바로요. 몇 명을 제외하고는 강사의 대부분이 도박 중독 현장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다 알코올 중독 전문가 양성 과정을 벤치마킹해서 급조한 나머지 도박 중독 현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강의만 받은 사람들이 도박중독자를 치료하게 된 것이죠.
혹자는 말합니다. 도박에 중독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지 않겠느냐고.
맞습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장점입니다. 대부분의 치료자는 도박에 중독된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도박중독 치료라는 것이 그런 공감 능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도박중독 치료는 도박중독의 다양한 기전과 원인 분석, 도박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있어야 하고 다양한 심리치료적 기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부부 갈등이나 가족 갈등 해결을 위한 couple therapy, group therapy 경험도 있어야 하고 특히 우울, 불안, 성격 장애 등 정신병리적 지식과 함께 이러한 공존 장애를 평가할 수 있는 심리평가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임상심리학자들은 중독 분야, 특히 그 중에서도 도박 중독을 심리치료 분야의 막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한 힘든 분야라는 뜻입니다. 그냥 도박 중독에 대한 얄팍한 지식만 갖고 뛰어들어서는 안 되는 분야라는 말이죠.
그런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암 회복자가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박중독 회복자는 치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갖춘 이후에 하라는 겁니다. 내가 걸려봤으니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안이한 생각만으로 다른 내담자의 회복과 치유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우울증에 걸려봤다는 것만으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종합병원에서 3년 동안 치열한 수련을 마치고 전문가가 되어 도박중독 분야에 입문하였을 때 적어도 3년 동안은 막중한 책임감에 상담을 할 때마다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박중독 치료는 사명감과 각오만 갖고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전문 지식과 제대로 된 치료 기술, 사명감을 모두 갖춰야 하는 분야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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