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수검자를 이러저러하다고 기술한 뒤에는 두 가지 방법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검사 sign을 근거로 대지 않고 그냥 마무리하는 방법이죠. 보통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에게 보여주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이런 방식으로 작성합니다. 즉, 관련 근거는 보고서를 작성한 평가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겁니다. 물론 나중에 어떤 경로로든 보고서의 내용에 대한 근거를 요구받으면 원자료에서 찾아서 제시할 수 있어야겠죠.
심리평가보고서가 수검자에게 노출되었을 때 보고서에 기록된 검사 sign을 기초로 추후 평가에서 수검자가 반응 조작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때문에 일부러 검사 sign을 감추는 식으로 작성하는 평가자도 있습니다. 특히 이차적인 이득이 평가에 중요한 고려 사항인 장면(병역 문제,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상황 등)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이 민감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저는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평가자들이 기술 근거에 해당하는 검사 sign을 모조리 제시하는 것이 아닌데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full battery에 포함된 모든 심리검사도구의 검사 sign들의 복잡한 역동 관계를 심리검사도구의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심리평가에 익숙하고 경험이 풍부한 평가자라고 해도 심한 우울증 환자처럼 보이게끔 검사 sign을 편향적으로 왜곡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완전히 정상처럼 보이게끔 조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만큼 심리평가 결과를 조작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항상 매 문구마다 이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을 함께 쓰는 두 번째 마무리 방식을 권고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째, evidence-based approach에 입각한 보고서 작성법 연습이 절로 되며, 둘째, 제대로 된 formulation이 되었는지 추후 점검해 볼 수 있으며, 셋째, 재평가를 실시하는 다른 평가자에게 중요한 근거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수검자에게 득이 됩니다.
이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각 문구마다 해당 문구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을 괄호 안에 넣거나 문장에 자연스럽게 넣어서 기술하면 됩니다. 다만 여러 검사에서 다양한 검사 sign을 찾았다 치더라도 이를 모두 나열하기 보다는 핵심적인 몇 개의 검사 sign만 선별해서 제시하는 것이 좋은데 이 때 가능하면 구조화된 검사(예, MMPI-2)에서 한 개, 비구조화된 검사(예, HTP)에서 한 개씩 찾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문장을 완성한 뒤 검사 sign들을 한꺼번에 나열하지 말고 조금 지저분하게 보이더라도 각 문구마다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나열하면 어떤 검사 sign을 어떤 문구를 쓰는 근거로 사용하였는지 알아보기 어렵거든요. 게다가 한꺼번에 나열하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써 버릇하면 정확한 근거를 찾기보다는 뭉뚱그려 대충 넘어가려는 나쁜 습관이 들 위험성도 있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검사 sign을 제시하는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보고서의 각 문구마다 대응하는 정확한 검사 sign을 찾아서 함께 제시할 것
2. 많은 sign들을 찾았어도 구조화된 검사와 비구조화된 검사에서 각기 한 개 정도의 핵심 sign만 제시할 것
3. 문장 끝에 한꺼번에 나열하지 말고 각 문구마다 일 대일 대응이 되도록 제시하도록 연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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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의 핵심은 Case Formulation이고 Case Formulation의 핵심은 가설 설정(
'심리평가에서 가설 설정이 중요한 실질적인 이유')입니다.
심리검사의 결과가 설정된 가설을 지지한다면 case formulation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심리검사의 결과가 설정된 가설을 지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사실 이 문제도 가설을 제대로 설정하게 되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가설을 하나만 설정하는 것이 아니고 대안 가설도 세우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검사 결과가 가설 중 하나를 지지하게 마련이니까요.
정작 문제는 가설이 아니라 배경 정보나 주 호소 문제와 검사 sign이 일치하지 않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호소하는 증상이나 의사의 문진 상 Schziphrenia, prodromal stage가 의심되는 피검자를 검사해보니 검사 sign이 하나같이 너무나 멀쩡하게 나오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많은 평가자들이 자신감을 잃고 자신이 검사를 잘못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다가 검사 결과와 전혀 상반된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중에 후회하곤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심리평가는 evidence-based approach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검사 sign이 지지하는 결과만 보고해야 합니다.
앞에서 든 예에서 지각의 왜곡이나 현실 검증력의 손상 등 사고 장애를 시사할 만한 아무런 검사 sign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차후에 SPR로 이환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평가 시점에서 그 피검자는 SPR이 아닌 겁니다.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어설픈 예언을 하게 되면 점쟁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절충점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evidence-based approach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평가에서 case formulation이 잘 되지 않고 혼동되는 이유는 evidence-based approach를 철저히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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