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에 한국심리주식회사에서 Beck 관련 척도의 판권을 산 뒤 임상심리학회 정회원들에게
협조협박 문건을 발송한 내용을 포스팅한 적(
'한국심리주식회사가 Beck 척도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만' 포스팅 참조)이 있습니다.
그 때의 제 논조는 Beck 척도를 사용하는 관련자를 그렇게 잠재적 범죄자 취급까지 했어야 했냐는 감정적인 질타에 가까운 것이었는데요.
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척도들이 사용된 심리평가 케이스를 다수 supervision하면서 문제가 제가 생각하던 수준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봤던 건 BDI와 BAI인데요.
가장 큰 문제는 증상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 수검자에게 MMPI-2/A와 BDI를 동시에 실시하면(기관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검사 수가를 맞추기 위해서 둘 다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수검자에게 떠넘기는 불합리한 관행입니다만)
전혀 우울하지 않은 타당한 MMPI-2/A 프로파일을 보이는 수검자의 경우에도 대부분 BDI 결과에서는 우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BDI 결과에서 우울하지 않은 정상 수준으로 나타나려면 MMPI-2/A에서는 정상 수준이 아닌 S나 K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상승한 방어적 프로파일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BDI, BAI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해서 의미 그대로 해석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우울, 불안하지도 않은 수검자를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잘못 진단할 수 있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다는 말입니다.
물론 MMPI-2/A와 BDI, BAI가 함께 상승한 수검자의 경우는 BDI, BAI의 문항 내용 분석을 통해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이 또한 MMPI-2/A의 문항 분석(결정적 문항 등)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불필요한 비용과 심리적인 부담을 수검자에게 전가하는 BDI, BAI를 굳이 실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나마 MMPI-2/A를 함께 실시하는 경우라면 그래도 해결책이 있는데 선별평가에서 BDI, BAI만 사용하는 경우는 정말 큰일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없거나 파트 타임 임상가로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local NP에서 여전히 BDI, BAI만 사용해서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진단하고 약물치료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저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게 나타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BDI, BAI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덧. BDI의 경우 높은 수준으로 측정된 사례의 문항 내용을 살펴보면 endogenous depression에서 흔히 나타나는 vegetative symptom 관련 문항보다는 guilty feeling, punishment, internal attribution 관련 문항이 높게 평정된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역기능적인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 교정, 대인 관계 역동 분석을 해야 하는 수검자를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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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평가를 통해 성격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입니다.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임상가는 병원 장면, 그것도 대학병원급의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을 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진단을 내리는 것이 상례이고 진단을 내리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false positive error가 상당히 높은 편이죠. 저도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몰랐는데 supervision을 하면서 학생생활상담소, local NP, 종합병원 급의 정신건강의학과, 개업 상담 센터, 국가 기관 등 다양한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거나 수련받는 분들의 사례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니 대형 병원에서 얼마나 과잉 진단을 많이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일부 대형 병원에서는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DSM의 Axis I 진단이 이미 내려진 환자에게도 반드시 성격 장애 진단을 내리거나 성격 문제를 찾아내도록 교육시킵니다. BIG 5 병원 중 하나입니다. 반성하세요.
성격 문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폭넓게 피검자를 살펴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마는 그걸 이론적 근거도 없이 무조건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게다가
심리평가에 포함된 심리검사 도구의 본질적인 제한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격 장애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성격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그렇기 때문에 기질이나 특성까지 염두에 두고 종단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를 진단하는 심리검사 도구는 대부분 횡단적인 도구입니다. Full Battery에 포함된 검사 도구 중 성격 문제를 잡아내는 종단적인 검사 도구는 사실 상 없습니다. 그나마 TAT가 가능성이 가장 큰 도구이지만 정작 Full Battery에는 빠져 있기 때문에 결국 남는 후보는 로샤 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에서 질문입니다. 로샤 검사가 정말 성격 문제를 명징하게 드러냅니까? 로샤 검사로 찾아낸 것이 정말 성격 문제 맞습니까? A, B, C군의 성격 장애를 로샤로 정확하게 변별할 수 있나요?
성격 장애는 충분한 상담을 통해 발달력을 포함한 개인력을 포괄적으로,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살펴봐야지만, 그것도 어림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성격이라는 것은 다면적인데다 DSM의 Axis I에 속한 장애와도 관련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칼로 무우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왜 DSM-5에서 DSM-IV의 성격 장애가 4개나 빠지는지(40%의 탈락율)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심리평가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 의사들의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면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진단하지 마세요. 성격 장애가 약물만으로 치료 됩니까? 그런데 왜 자기가 치료하지도 않으면서 정확하지도 않은 진단을 함부로 내립니까? 본인이 성격 장애 진단을 내린 근거를 명확하게 심리검사 sign으로 교차 입증하지 못한다면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리평가에 사용되는 심리검사도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데 있어 기존의 Full Battery는 무용지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설쓰기의 위험성을 상당 부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취약한 도구들입니다.
잘려나가는 것이 내 살이 아니라고 그런 무딘 칼 함부로 휘두르지 마세요. 우리가 다루는 건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부끄러운 줄을 좀 아세요.
심리평가만으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기존의 Full Battery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덧. 정신병리연구회 사례회의에 참석했을 때 병원에서 수련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과 수련 감독자가 이구동성으로 피검자가 histrionic 하다느니, narcissistic 하다느니 하는 걸 듣고 기가 차서 하는 포스팅입니다(DSM-5에서는 histrionic PD가 빠지죠. 훗). 정작 어이없는 것은 그 사례는 Full Battery 검사도 안 했다는 거. 치료도 안 하면서 소설 그만 쓰세요. 병원에서 성격 장애로 함부로 진단내리면 정작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상담센터 등의 현장 임상가들이 뒷수습하느라고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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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
'아동에게 지능 검사가 과연 도움이 되는가'라는 글에서 인지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정신 장애가 아닌 이상 인지 발달이 완료되지 않은 초등학교 이하 아동들에게 지능 검사를 실시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반대하며 중, 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실시하는 지능 검사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는 이야기는 그 글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지는 정확한 문제 파악을 위해 필요한 검사를 제대로 선별해서 실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중, 고등학교 청소년이 호소하는 문제 중 상당수는 학교 적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등교 거부처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문제 뿐 아니라 부모-자녀 관계 갈등, 가출, 각종 일탈 행위 등이 학교 부적응과 연관되어 있죠
흔히 local NP에서 Adjustment Disorder로 진단을 받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또래 관계가 좋지 않은 이유를 많은 평가자들이 선생님으로 대변되는 권위 불화, 사춘기, 또래의 부정적 영향, 따돌림 등에서 찾지만 정작 많은 경우가 지적 제한으로 인한 학습에 대한 관심 및 동기 저하에서 비롯됩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습지나 학원 수강 등의 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지만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선행 학습이 요구되는 중학교에서는 지적 제한이 있는 청소년의 경우 수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학교에 가기가 싫고 수업 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등 수업 태도를 지적받게 되면 선생님과의 관계 역시 악화됩니다. 친구들 또한 수업이 끝나면 사교육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도 못하므로 학교에 가는 것 자체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 청소년 심리평가 영역에서도 검사 케이스를 늘리고 수가를 다양화 한다는 미명 하에 검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능 검사를 빼고 성격 및 정서만 평가하는 곳이 생기고 있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칫 평가자가 학교 부적응과 관련하여 성적이나 생활기록부의 내용 챙기는 것을 놓치게 되면 인지 기능 제한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을 빠뜨림으로써 심리평가 결과를 엉뚱하게 해석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학교 이상 청소년의 심리평가에서 학교 성적이 좋지 않다는 보고가 있으면 지적 제한 문제를 변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능 검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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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학자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심리치료와 상담이라고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봐도 아직까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물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임상 심리학자에게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숨을 쉬는 것과도 같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죽게 되는(이거 중요한 말입니다. 밑줄~) 그런 것이죠.
그런데 매일 하는 일이 되어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보고서가 틀에 박힌 것 같고 사용하는 문구도 매번 똑같아서 정체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Somatization Disorder와 Conversion Disorder, Dysthymic Disorder 등 Neurosis 계열의 장애를 진단하는 각각의 보고서를 진단 명만 바꾸어 내도 별 무리가 없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아무런 고민 없이 공부도 안 하고 그냥 항상 쓰던대로 보고서를 쓰는 전문가는 어차피 제 발로 무덤을 파는거니까 신경쓰지 말도록 하고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이 되실까 해서 제가 사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 드립니다.
첫째, 다양한 문구를 사용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영어를 배울 때 미국인들은 똑같은 단어를 다시 사용하지 않고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바꾸어 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실 겁니다. 이걸 보고서 작성에 적용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인다'는 흔히 사용되는 종결 문구입니다. 이걸 동일 보고서에서 '~생각된다', '~나타났다', '~드러났다', '~시사한다' 등으로 다양하게 바꾸어 보는 겁니다. 물론 앞뒤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문구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상된다'도 '~가능성이 있겠다'로 바꾸어서 사용할 수 있고 '~가능성이 커 보인다'와 같은 변형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방법만으로 보고서 작성의 매너리즘에서 곧장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보고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읽는 사람의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여주고 본인에게는 문장력을 높여주는 연습이 되기 때문에 적극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다른 평가자의 보고서를 탐독한다.
: 다양한 문구를 사용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는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든 전문가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럴 때에는 다른 전문가가 쓴 보고서를 읽는 것이 도움이됩니다. local NP에서 프리랜서로 평가를 하는 선생님이라면 다른 선생님이 쓴 보고서를, 수련 레지던트라면 윗년차가 쓴 보고서를 자꾸 읽는 겁니다. 이 때 매너리즘에 자주 빠지는 특정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에 대해 다른 선생님이 쓴 보고서를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어떻게 formulation을 하는 지 눈여겨 보는 겁니다.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보고서를 매일 읽으니까 저도 모르게 표현력이 늘게 되더군요. 이것도 모르고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안 하는 supervisor들은 어리석은 바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supervision을 귀찮은 일이라고만 생각하겠지요. 그런 썩어빠진 정신의 supervisor는 뭘 해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합니다.
셋째, 다양한 표현을 수집하고 변형해 내 것으로 만든다.
: 다른 평가자의 보고서를 읽는 것과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법인데 보고서를 읽으면서 인상깊은 표현이나 구절을 적어서 나름의 관용어구 사전을 만들어 두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소개한
'글쓰기의 공중 부양'에서 이외수옹이 추천했던 방법이지요(참고로 말씀드리면 외국에는 이미 심리평가 보고서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모아 놓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걸 그대로 베껴쓰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체화시켜 사용하는 겁니다.
지겹다~ 지겹다고만 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지겨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를 쓰는 일이 지겹다고 느껴질 땐 나름의 재미를 찾아보세요.
제가 설명드린 방법 말고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분들은 제보를 해 주시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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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썼지만 제목 한번 참 유치합니다. 이건 무슨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도 아니고... -_-;;;;
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지방의 일부 몰지각한 supervisor들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따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며 수련 레지던트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이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이 supervisor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지만, 아마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의 유무와 상관 없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감독을 할 수 없는 사람일 겁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지정 기관에 있는 supervisor였다면 이런 엄한 소리를 할리가 없으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 없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갖춘 supervisor거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갖고 있더라도 어차피 수련 감독을 할 수 없는 교수들이 틀림없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모두 갖춘 supervisor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국 승패(?)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능력과 그보다 더 중요한 심리치료 능력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만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 비해 임상심리전문가가 여러모로 불리해보입니다.
첫째, 제가 수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의 quality가 더 높았고 requirement도 더 세세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에 현장에 나오면 정신보건임상심리사보다는 임상심리전문가를 더 인정해주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만 두 가지 자격을 모두 갖춘 supervisor들이 수련 기관에 자리를 잡으면서 수련 과정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현재도 격차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둘째, 첫째 조건과 연결되는데 연구 논문과 치료 사례 발표 조건(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대학원에서 지도 교수가 횡포를 부리듯이 이 조건을 갖고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supervisor가 꽤 많습니다)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포기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만 취득하려고 하거나 아예 심리학 베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포기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임상심리전문가는 그야말로 쪽수에서 밀리고 있습니다(매년 현장에 나오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수를 비교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학회에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협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마도 심리학 베이스가 아닌 순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들을 포섭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잘못된 생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셋째,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심리평가 영역이 더 이상 강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들의 심리평가실력이 나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반대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들의 실력이 저하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향 평준화되었다는 겁니다. 이건 제가 6년 동안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면서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문제인데 저는 이걸 현장의 supervisor들이 제대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이것도 조만간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심리평가 supervision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supervision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하다 못해 social skill training이나 집단 프로그램이라도 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 비해 점차 치료 영역에서도 밀리게 될 겁니다.
넷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데 국가 기관에서 전문가를 채용할 때에는 국가 공인 자격이 우선시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당장 저만 해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없었다면 지금 일하는 직장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에 속한 전문가 전원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군, 법원 등 전문가가 진출할 수 있는 국가 관리 영역은 점차 넓어지겠지만 이미 국가 공인 자격을 요구하고 있고 아직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국가 공인 자격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수련 과정 없이 소급해서 받은 교수급 전문가들은 그 당시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거나 설사 알고 있더라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이고 지금도 현장에서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몇 년 뒤에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갖춘 사람과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만 갖춘 사람이 국가 기관에 apply하면 누가 채용될 것 같습니까? 저랑 내기라도 해 볼까요?
내년부터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1급 자격자도 현장에 나오게 될텐데 임상심리전문가는 임상심리사 1급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따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local NP에서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보다 임상심리전문가를 더 쳐준다고 합니다만 실상을 알면 어깨 으쓱할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대부분 개업 10년이 되지 않은 의사들로 수련받을 때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와 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를 선호하는 것일 뿐 제가 이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와 자신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다양한 심리치료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굳이 임상심리전문가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결론을 맺겠습니다.
저는 수련 당시에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의 고마움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장에서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무엇을 하더라도 큰 힘이 됩니다.
'임상심리학 관련 자격증' 포스팅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저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보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실질적으로 더 쓸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수련을 받아야 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과정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선택할거라고 자신있게 말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레벨이 있는 모든 자격증은 최상위 자격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있는한 2급은 절대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최상위 레벨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2급 자격을 가진 선생님들 중 심리학 베이스가 아닌 분들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기 위해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 아니라 정신보건 1급 승급을 위해 지정 기관에 들어가서 5년의 경력을 쌓으면서 평가든, 치료든 자신만의 영역과 노하우를 쌓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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