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MMPI-2 척도(임상, 내용, 보충)의 직관적 이해' 포스팅을 통해 메뉴얼의 해석 기준대로 유의미한 척도만 골라내서 조합하는 것보다 수검자의 심리 구조를 집에 비유하여 임상, 내용, 보충 척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formulation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임상 척도와 내용 척도만 콕 집어서 의미 차이를 통해 수검자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상 척도 : 수검자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사용
내용 척도 : 수검자가 문제를 주관적으로 호소하는데 사용
그러니까 임상 척도는 수검자의 문제가 객관적인 기준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수준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며 내용 척도는 수검자가 주관적으로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답을 말씀드리면 RC2 재구성 임상 척도와 DEP2 기분 부전 소척도가 동시에 유의미한, 드문 경우(이 때 기분 부전 장애 진단 고려)를 제외하고는 우울 장애로 진단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2번 임상 척도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우울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데 데 비해 DEP 내용 척도는 수검자가 우울과 관련하여 호소하는 내용들만 반영하기 때문에 진단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2번 척도가 유의미하고 DEP 척도가 유의미하지 않을 때는 우울 장애 진단이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거의(앞에서 말씀드린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우울 장애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0번 척도는 임상 척도군에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상 성격 척도라고 할 수 있는데 0번 척도의 Si2 소척도(사회적 회피)가 상승할 경우 내향적인 성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SOD1 내용 소척도(내향성)입니다. 이 척도는 수검자가 자신을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측정합니다. 그래서 Si2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고 SOD1 소척도만 유의미하다면 사실은 내향적인 성격이 아닌데 수검자가 자신을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착각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로 Si2 소척도가 유의미하고 SOD1 소척도가 유의미하지 않다면 수검자는 자신이 사실은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쉬운 용어로 다시 정리해보자면,
임상 척도 : 수검자에게 진단이 필요한 병리적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때 사용
내용 척도 :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며 진단과는 (거의) 상관없음
내용 척도가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며 진단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거의'라는 단서를 달았냐하면 예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ANX 내용 척도인데 이 척도는 신체화를 동반한 상태 불안을 측정합니다. 문제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불안 관련 임상 척도가 7(Pt)번 척도인데 이건 상태가 아닌 특성 불안(일종의 기질 불안)을 측정하기 때문에 7번 척도 상승만으로 불안 장애 진단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내용 척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 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ANX 척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MMPI-2/A가 불안 장애 척도군이 부실하기 때문에 생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특이 경우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임상 척도 : 진단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
내용 척도 : 수검자의 주관적 고통 호소
정도로 이해하시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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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2/A가 현존하는 자기보고형 검사 중 의식적인 수준에서 다양한 심리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심리검사 도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특히 심리 상태의 다양성과 반응 신뢰도까지 측정한다는 면에서 비교 불허의 검사도구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MMPI-2/A에도 단점은 있는데 현장 임상가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건 불안 관련 척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MMPI-2를 기준으로 불안 관련 척도는 7(Pt), RC7, NEGE, ANX, A, 이렇게 5개입니다(MMPI-A는 RC7이 빠져서 4개). 이 중 7, RC7, NEGE는 기질/특성 불안을 측정하고 ANX, A척도는 상태 불안을 측정하죠.
문제는 임상 척도인 Pt척도도 그렇고, 내용 척도인 ANX도 그렇고 소척도가 없어서 연결 분석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Pt, ANX 척도가 상승했을 때 상승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소척도 내용을 살펴볼 수가 없는거지요.
전체 정신장애군 중 불안장애 spectrum이 가장 넓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상당히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검자의 불안 수준이 높다는 건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 의해, 어떤 증상을 경험하는지 알려면 예상되는 장애를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불안 관련 자기보고형검사를 추가 실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은 상태 불안을 측정하는 ANX(A-anx) 내용 척도와 A 보충 척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불안(ANX, A-anx)
: 걱정, 근심, 주의집중 곤란, 수면 곤란, 의사결정의 어려움, 강박 증상, 신체 증상, 불안정감 호소
* 불안(A)
: 마음이 편치 않음. 전반적인 심리적 부적응, 불행, 비관, 자신감 결여 호소
명칭이 동일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척도 공히 '불안' 관련 내용을 측정합니다. 하지만 두 척도가 측정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안(ANX, A-anx) 내용 척도는 주의 집중 및 수면 곤란 등 신체적 증상이 주를 이루는 불안 증상을 측정합니다. 높은 점수는 'stressed out' 상태를 평가하기 때문에 'panic state'와 가장 가까운 척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척도가 높게 상승하면 소위 '멘붕' 상태에 빠진 건 아닌지 고려해야 합니다. ANX(A-anx) 척도가 높게 상승하는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얼어붙게(freezing) 됩니다.
불안(A) 보충 척도는 'situational distress'와 'maladjustment' 상태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외부의 위협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스트레서 요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할 때에 느끼는 불안을 측정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A 척도가 높게 상승하는 사람은 수동적인 자세로 뒤로 숨고, 피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위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ANX(A-anx) 내용 척도 : 신체적 불안 증상 측정, panic 관련(멘붕 상태), freezing
* A 보충 척도 : 자신의 대처 무능력을 감지 했을 때 느끼는 불안 측정, 뒤로 물러나 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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