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 나름의 원칙을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아동/청소년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단계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라포를 형성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단계인데 이걸 알 수 있어야 더 깊은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가끔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상담에 꼬박꼬박 잘 오고, 말이 잘 통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착각하는 분이 계신데 그거 라포가 형성된 거 아닙니다. 자신의 진짜 문제를 감추려고,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이차 이득 때문에 등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호의적인 태도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 상 보통 아동/청소년 내담자와 라포 형성하는 과정은 대개 두 단계를 거치더군요.
1단계는 '부모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입니다. 부모는 밉든 곱든 자신의 혈육이고 현재 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 인생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람들(significant others)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자신에게 애착 외상을 입힌 가해자라고 해도 부모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수준(상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질이죠)이라서 안전 동기가 중요하다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상담자가 부모에게 '고자질'을 할 것을 예상해서 상담자를 통해 부모를 통제 또는 조종하려고 시도하는 일부 예외 경우를 제외하면 최소한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부모에게 옮기지 않을 것(비밀 보장)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2단계는 '상담자에게 전이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을 때'입니다. 1단계는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상담 장면 밖으로 옮기지 않을 것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만 형성되면 가능하지만 2단계는 더 깊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상담자가 '자신의 편'이라는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폭발시켜도 상담자가 이를 holding할 것을 믿고, 반격하지 않으며, 자신을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가능한데 이는 어쩔 수 없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아동/청소년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라포의 굳건함은 상담 중 갈등을 겪어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 상담자용' 포스팅에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순서대로 각 단계를 거치는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 제 경우는 대체로 그런 편이었습니다.
아동/청소년 내담자를 상담하는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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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Rapport)가 상담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건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없거나 약하다면 그 상담의 결과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는거지요. 상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만큼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신뢰 관계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공고한 라포를 맺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전체 상담 회기의 절반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라포를 중요시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라포가 잘 형성되었는지, 튼튼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전의 저도 한 때 그런 착각을 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가 화기애애하면, 내담자가 저항을 그치고 상담에 몰입하게 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치료적 조언을 그대로 따르면 라포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포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닙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해진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고, 가끔은 재애착을 해야 할 정도로 무너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 장면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전적으로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 것을 재경험하는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공고해 질 수 있을까요?
바로 갈등 상황을 통과해봐야 비로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갈등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바로 라포의 시험대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상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역설적으로 상담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자의 언행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인 상담자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겉보기에 좋은 가면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라포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검증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고, 역전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담자가 자신의 편에 설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탄탄한 라포가 형성되었구나 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꽤 많은 회기를 거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상담이 기대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한번 들으면 척 아는 수준까지 진행이 되었어도 회기를 돌이켜 보면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이건 상담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라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라포의 강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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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2에서 과장된 자기제시 척도로 번역되는 S(Superlative Self-Presentation)척도는 1995년에 Butcher & Han이 개발했으니 사실은 이미 2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래된 척도입니다.
이 척도를 개발할 때 극단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취업 응시자 집단(항공사 파일럿 응시자들)과 MMPI-2의 규준 집단 반응을 비교하여 반응율의 차이를 보이는 문항을 선별하여 예비 척도를 구성했더랬죠.
보통은 방어적인 응답 경향을 점검할 때 K척도를 많이 해석하지만
제 경험 상 진짜 방어 척도의 갑은 바로 이 S척도입니다. 왜냐하면 K척도의 문항들은 370번 문항 앞쪽에 포진되어 있지만 S척도의 경우는 검사 전반에 걸쳐 퍼져 있기 때문에 S척도가 상승했다는 건 문항에 응답하는 내내 시종일관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말이거든요.
S척도가 70T에 근접하거나 over하는 경우(임상 장면에서 S척도가 70T를 넘어서면 무효 프로파일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70T에 근접하는 경우만 고려해도 충분합니다) 거의 모든 임상, 재구성 임상, 내용 척도가 50T 아래로 주저 앉기 때문에 해석 불가능해집니다.
특히
임상 소척도에서 다음의 척도들이 65T 이상으로 상승할 때는 내용 소척도의 TRT1(낮은 동기), TRT2(낮은 자기 개방) 척도의 상승과 상관없이 심리치료/상담 장면에서 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각오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 Hy1(사회적 불안의 부인)
* Pd3(사회적 침착성)
* Pa3(순진성) : 이건 항상 상승하지는 않으니 참고만 하세요.
* Ma3(냉정함)
마지막으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께 tip을 하나 드리자면,
S척도가 70T에 근접할 만큼 상승한 남자 중에 보충 척도에서 ES, GM 척도가 70가 넘어서는 분들은 가부장적이고 완고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특성을 보이는데 정작 상담자 앞에서는 매우 협조적이고 예의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이런 profile을 보이는 분을 상담할 때는 어줍잖은 설명, 해석, 직면, 교육 등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다른 내담자들보다 더 한층 공감에 신경써야 하는 내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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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가의 학문적 베이스가 상담 심리학인 경우는 그래도 덜한데 임상 심리학인 경우 조심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심리평가 결과 등을 바탕으로 내담자의 주관적 고통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해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으나 정상 소견이 나와 정신건강의학과 내지는 통증 클리닉으로 의뢰된 사람이 있다고 해 보죠. 심리평가를 실시해보니 신체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왔을 때 이 사람을 꾀병 취급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이 사람의 신체화 증상이 분명 이차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일수도 있고 어찌 보면 상담이나 심리치료적 개입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내담자가 임상가에게 기대하는 건 판사(judge)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죠.
내담자는 그게 진짜 고통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 달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고 싶고 이런 고통이 없어지게끔 도와달라는 것이죠.
또한 마음대로 내담자의 주관적 고통을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내담자가 느끼는 고통은 내담자 만의 것입니다. 상담자가 섣불리 별 거 아니라고 판단하면 상담 중 어떤 경로로든 그런 생각이나 느낌이 내담자에게 전달되고 그렇게 되면 애초에 rapport를 형성하기도 어렵거니와 힘들게 형성한 rapport도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니 내담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지 못하겠으면 그냥 옆에 함께 있어라도 주세요. 그게 상담자의 기본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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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할 때 부인과 남편이 상담을 받기 위해 함께 나오면 참 좋겠지만 배우자 중 어느 한 쪽만 먼저 상담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부부를 동시에 상담할 때의 장점보다 문제가 더 많을 때도 있어 일부러 따로 상담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부부가 함께 나오더라도 초기에는 따로 상담을 하고 어느 정도 개인 상담이 진행된 이후에 양쪽 모두의 동의를 받아 부부 상담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부부를 각각 상담할 때 꽤 많은 내담자가 부부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해결하고자 자신의 입장을 상담자가 잘 정리하여 상대방 배우자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때로는 그런 교통정리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교통경찰의 역할이 부부 상담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 상담자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상담자가 부부 사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 쪽 배우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담자의 견해나 주관이 개입되어 왜곡된 내용이 전달됨으로써 오해가 더 커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특히 상담자는 내담자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담자가 한 명인 개인 상담과 달리 부부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부부 관계이자 갈등 상태인 배우자 2명이므로 어느 한 쪽의 편만 들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한 배우자가 상담자가 중립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갔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렵게 생성한 rapport가 깨질 위험성이 큽니다.
게다가 부부 상담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배우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지각한 주관적인 두 현실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알 수도 없는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하다가는 정작 부부 상담의 상담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상담자는 해결사나 전략가가 아닙니다. 부부 스스로 부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어설픈 메신저나 중재역을 자처해 상담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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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할 때 내담자에게 질문하는 빈도를 최소로 줄이라고 기술한 교재도 있고 내담자에게 질문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가르치는 supervisor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건 강박적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담도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대화입니다. 대화란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인데 모든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치유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상담은 더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대화에 비해서도 당연히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잦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건 자칫하면 준비되지 않은 내담자를 취조하듯이 몰아붙임으로서 rapport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담자가 상처를 받을 위험성이 있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또는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모두 담당하는 임상 심리학자의 경우 상담을 하면서도 심리평가를 하듯이 특정 진단을 염두에 두고 진단 기준을 확인하는 질문만 해서 closed question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상담자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넘겨짚지 않으려고 상식 선에서 내담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빈도가 다소 잦다고 해도 상담에 그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상담자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질문을 안 하는 것에만 애쓴 나머지 상담자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보이거나, 자신감이 없어 보이게 되면 오히려 내담자와 rapport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상담도 결국은 대화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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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치료적 접근법을 사용하든 간에
상담자가 매 회기 상담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멘트는 아마도 "지난 주에는 어떠셨나요?"일 것입니다.
가장 무난하게 사용하는 멘트입니다만 이 멘트는 두 가지 제한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멘트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내담자가 지난 주 상담 회기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일주일을 생활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주일을 지냈던 내담자라면 매 상담 회기 때 상담자가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자신이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매 상담 때마다 단순히 상기해서 상담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이 멘트를 사용하는 상담자는 지난 번 상담 회기 때 다루었던 내용을 일상 생활에서 한번쯤 곰씹어 보거나 적용해 볼 의지와 에너지가 있는 내담자에게 주로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제한점은 내담자라면 누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자를 찾아왔기 때문에 상담 초반에는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다소 상투적으로 들리는 "지난 주에는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고민하는 문제가 표면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해결되거나 stable한 상태가 되면 실제로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담자가 "이번 주는 별다른 일이 없었네요", "평범한 한 주였어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상담을 시작하는 멘트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 때
제가 선호하는 멘트는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볼까요?"입니다.
이 멘트는 문제 해결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상담에서 특히 효과적인데 자칫 매 상담 회기의 초반이 신변잡기나 근황에 대한 수다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고 동시에 지난 주 상담 내용과 연결성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물론 상담자가 이 멘트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면 상담할 내용을 미리 생각해와야 한다는 내담자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충분한 rapport가 형성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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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에
'첫째도 라포, 둘째도 라포, 라포가 사실 상 상담의 모든 것이다'라는 글에서 라포가 사실 상 상담의 시작이자 끝이며 상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의 생각이 바뀐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상담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조금 다른 측면에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Rapport가 상담에서 중요하다는 걸 최소한 머리로라도 모르는 상담자는 없습니다. 그걸 모르는 상담자가 있다면 상담자가 아니거나 상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상담에서 왜 라포가 중요할까요? 그리고 상담에서 라포를 제대로 형성하지 않으면 왜 문제가 될까요?
라포를 상담자와 내담자의 좋은 관계맺기내지는 상담의 워밍업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상담자도 있습니다만 제 경험으로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라포를 제대로 형성하면 당연히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그런 신뢰와 좋은 관계는 라포 형성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이걸 혼동하면 안 됩니다.
내담자가 생면부지의 상담자를 찾아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어려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때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심정일까요? 아니면 즉석복권을 긁는 사람의 심정일까요?
그럴리가 없지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고 동시에 이 방법도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절박한 마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담을 받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앞에 앉은 상담자만이 나를 도와줄, 나를 위해 함께 싸워줄 응원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상담의 라포 형성은 내담자가 안전 공간(secure base)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참호파기에 가깝습니다. 군 복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아시겠지만 참호를 팔 때 대충 파게 되면 전투에서 날아온 총알에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온몸을 완전히 숨길 수 있을 정도로 깊이, 그리고 총포탄의 유탄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히 참호벽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에는 전우의 참호를 함께 파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라포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삐딱하니 다리 꼬고 앉아서 '내 도움을 받고 싶으면 어디 한번 네 문제를 까발려봐라' 따위의 느슨한 마음가짐으로는 내담자의 마음에 더 큰 상처만 주게 됩니다.
라포를 형성할 때에는 나와 내담자의 목숨을 구해줄 참호를 판다고 생각하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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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supervision을 하다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답답해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는 비교적 상담 경험이 많고 능숙한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근무하는 기관이나 시설에서 정해준 회기만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 단기간에 어떤 치료 효과나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다 보니 더 더욱 구체적인 기술과 기법에만 치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단기 상담에서 오히려 장기 상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라포(Rapport) 형성입니다. 왜냐하면 장기 상담의 경우에는 내담자와 라포가 공고히 형성되지 않은 것을 모르고 진행하다가도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고 관계를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상담자에게 그래도 기회가 있지만 단기 상담에는 그런 기회를 허용하는 시간 자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포만 제대로 형성되면 주어진 회기가 얼마 되지 않은 단기 상담이라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 경험 상, 단기 상담이든, 장기 상담이든 라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기의 상담 목적을 달성하고 종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technique을 연습하기보다는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힘을 쏟기 바랍니다.
굳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상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포는 상담의 시작이자 끝이며 사실 상 상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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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내담자의 자아 존중감(self esteem)과 상담자의 feedback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자아 존중감이 높은 내담자가 상담자로부터 부정적인 feedback을 받게 되면(평가가 낮은 경우)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하는 방법은 상담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상담자와 충분한 rapport가 형성되기 이전에 탈락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involvement가 된 상태라면 그 다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담자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rapport가 충분히 형성되고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하게 되면 상담자를 폄하하는 것으로 불일치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 시점이 되면 내담자는 상담자의 feedback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봄으로써 변화의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사실은 상담 현장에서는 이와 반대의 경우가 더 흔한데,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이 상담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내담자는 상담자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을 때 보통 자신을 폄하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겸손함(?)은 또 다른 긍정적인 평가를 더하게 됩니다. 물론 집단 상담처럼 다른 내담자들을 통해 positive feedback을 받게 되는 상황이 더 바람직하지만 개인 상담에서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자신의 일상 문제를 'here & now'의 원칙에 의거 상담 상황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상담이 진행되면서 상담에서 느낀 자신의 장점을 차츰 일상 생활에 일반화함으로써 자아 존중감이 높아질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상담자와 충분한 신뢰 관계를 쌓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확한 feedback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담자의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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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시간에 상담자가 노트와 필기구를 들고 기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수준은 내담자가 하는 말과 행동 묘사까지 최대한 옮기는 것에서부터 상담자가 다음 상담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적인 내용만 요약 정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상담 시간에 기록하는 것은 내담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상담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통 상담이 50분 이상 진행되므로 그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다양한 역동과 상호작용을 모두 머릿속에 정리해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조 수단을 이용한 기록의 필요성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록을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내담자와 시선 접촉이 끊길 뿐 아니라 다양한 비언어적 신호를 놓치게 됩니다. 또한 상담자가 자신보다 기록을 중요시하다고 내담자가 생각할 수 있어 rapport를 유지하는데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기록 원본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상담을 하는 동안의 기록은 최소화 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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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할 때 상담자는 내담자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을 좋아하고 상담자를 편안하게 느낀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지만 상담이 신체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질환을 치료하는 것 만큼이나 심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내담자가 하소연을 하고 상담자가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수준에서 상담이 계속 진행된다면 별다른 심적 타격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내담자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치부를 건드리게 되거나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을 털어놓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은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지만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고통과 도박자와 갈등을 겪었던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느낌을 받으면 꼭 이야기를 해 달라고 내담자에게 일러 둡니다.
이를 미리 이야기 해두지 않으면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상담자에게 미안해서, 또는 그런 불편감을 느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함으로써 상담자에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담이 겉돌게 되거나 무의식적인 저항으로 인해 답보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치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을 분명히 알지만 치과에 가는 날이 되면 왠지 가기 싫은 것처럼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올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담자는 꼭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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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보 상담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제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개인적인 견해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저도 그랬지만 상담 초보는 상담 회기를 오래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담을 길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상담자의 능력을 재는 척도인 양 상담 기간에 무지하게 집착합니다. 10회기 이상은 끌고 가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기도 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내담자의 지각 왜곡인지 확인하지도 않으며,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의존, 또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상호 의존(codependence)을 라포(rapport) 형성으로 착각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계를 제대로 설정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길게 끌고 가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특히 유료 상담인 경우는 그런 압력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반면에 상담 고수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명징하게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면의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상담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미 상담을 얼마나 길게 끌고 가느냐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단 3회의 상담만으로도 내담자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상담 고수는 아니지만 상당히 다양한 내담자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100회기를 넘긴 내담자가 있는가 하면 3회기를 넘기지 못하고 drop out되는 내담자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100회기를 넘겼다고 제 상담 실력을 자랑할 정도의 어리석음에서는 충분히 자유로워졌고 3회기를 넘기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단계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생각해보면 상담은 상담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내담자의 마음가짐, 상담의 타이밍, 상담자와 내담자의 환경적인 요소, 그리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코드가 맞느냐의 여부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상담자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 그저 맡은 상담에 최선을 다하고 내담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다음 내담자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 이상의 방법이 있을까요?
상담자가 모든 내담자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내게로 오는 모든 내담자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는 자신이 '구원자의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부터 점검을 해 봐야 합니다.
상담자들은 상담 기간에 너무 구애받지 않도록 하세요. 중요한 것은 상담 기간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적, 영적 성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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