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치료 supervision을 하다보면 상담 회기에 자신이 내담자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상담자를 굉장히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볼 땐 충분히 공감하고 경청한 것 같은데 말이죠.
많은 상담자들이 자신이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에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담은 오히려 상담자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내담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혹은 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곤 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상담을 받고자 하는 내담자는 무언가를 잘못 먹어서 탈이 난 사람과 비슷합니다. 과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어 배탈이 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영양가 풍부한 다른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아닙니다. 속을 게워내고 비운 뒤 금식을 통해 독소를 해독하고 속을 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나치게 기름지고 영양이 넘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더 큰 탈이 날 수 있습니다.
상담도 이와 비슷해서 내담자가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충분히 토로해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금 회복의 기운을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상담자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겉으로만 보이는 내담자의 증상에 집착해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 worksheet, 과제를 부여하는 건 내담자에게 도리어 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내담자의 마음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충분히 털어낼 수 있도록 들어주세요.
특히 마음이 조급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빠른 처방과 조언을 요구할 때가 더더욱 들어야 할 때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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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worksheet라고 썼지만 특정 심리치료 기법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worksheet의 보기를 든 것 뿐입니다.
가끔 상담 supervision을 할 때 상담을 잘 해나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내담자에게 뭔가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때로는 죄책감까지 느끼는 상담자를 봅니다.
상담과 심리치료 기법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입니다.
저는 상담과 심리치료 기법을 개념적으로 조금 다르게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상담은 암 치료이고 심리치료 기법은 화학 요법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박 중독을 치료한다면 필요에 따라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는 인지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 CBT 중의 일부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CBT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저처럼 절충-통합적 접근을 선호하는 상담자에게 심리치료 기법은 타이밍의 문제이지 무엇이 우선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어떤 특정 심리치료 접근법을 주로 따르는 상담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로 게슈탈트 기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더라도 상담의 틀을 게슈탈트적으로 짜는 것이지 온통 게슈탈트 기법만 내담자에게 폭격하듯이 쏟아붓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상담자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하려는 것이 내담자의 문제를 큰 치유의 틀로 보고 상담하는 것인지, 일부 증상이나 표면적인 문제만 특정 기법으로 완화 또는 제거하려는 것은 아닌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worksheet의 문제도 이런 구분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저는 대체로
내담자와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기 전에는 worksheet 사용을 자제하는 편인데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내담자가 확실히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worksheet를 섣불리 사용하면 상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내담자에게 어설프게 노출하게 되어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라면 저항, 포기 또는 반대로 심하게 의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그 다음에 함께 해결할 문제를 구체화 하는 것이 다음이며, 목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의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 기술적으로 worksheet를 사용할 지를 내담자와 상의해도 충분합니다.
뭔가를 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부랴부랴 준비한 worksheet로는 절대로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예전에
'상담의 원칙 : 열심히 들어라'에서 이미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뭔가를 자꾸 주려고 하지 말고 그보다 먼저 온몸과 마음을 다해 내담자가 주는 걸 받아 안아야 합니다.
내담자를 치료하려고 하지 말고 내담자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어 주세요.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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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새 가장 우려하는 상담 현장의 분위기는 단기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겁니다.
개업 상담 센터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는 그 정도가 덜하지만 국가의 직, 간접적 지원을 받거나 voucher 사업을 하는 센터를 중심으로 단기 상담의 압박이 강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공급에 비해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좀 더 많은 내담자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고려 없이 임의로 12회기, 16회기, 6개월과 같은 근거없는 주먹구구식의 기준으로 상담 회기를 정하는 건 정말 곤란합니다.
문제의 경중을 따지지도 않고 모든 내담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란 것 자체가 웃기거든요. 그래도 흐름이 단기 상담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은 다가오는 단기 상담 체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초기에 라포를 형성할 회기 수도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자칫하면 상담자와 내담자 간 충분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저런 치료적 기법이나 worksheet를 사용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날 겁니다.
그렇다면 단기 상담을 할 때에는 초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상담자와 내담자의 cognitive frame 차이를 줄이는데 주력하는 겁니다.
뭔가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 많은 상담자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흔한 예를 하나 들자면, 상담자가 부모의 간섭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방문하는 청소년 내담자와 강압적인 훈육 방법을 사용하게끔 부모를 자신도 모르게 provoking하지 않도록 내담자의 의사소통 패턴을 교정하려는 상담자가 있습니다.
이 때 상담에 대한 상담자와 내담자의 cognitive frame이 다르기 때문에 상담 목표를 합의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상담 초기부터 이 차이를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단기 상담일수록 상담의 치료적 한계 설정, 치료 동맹을 맺기 위한 상담 과정 설명, 사전 동의 부분에 대해 내담자와 이야기를 빨리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cognitive frame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증상 탐색이나 clinical history taking은 좀 더 뒤에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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