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심리평가와 관련해 항상 드리는 말씀은 심리평가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시행하라는 겁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가설이 없을 때 습관적으로 심리평가를 하는 건 수검자를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 검사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수검자의 심리 상태가 궁금해서'와 같은 모호한 내용이 아니라 가능하면 구체적인 가설을 세우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두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동이 있고 이것이 파괴적 관심 끌기로 의심된다면 가족 역동(아동-어머니 관계, 아동-아버지 관계)을 알아보기 위해 운동성 가족화(KFD)를 실시할 수 있겠죠.
물론 그림 검사와 같은 투사법 검사는 PDI(Post Drawing Inquiry)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가설이 생성될 수 있으니 융통성 있게 시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 검사를 사용할 때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행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inquiry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1. 새로운 그림을 다시 그리게 하는 방법
2. PDI 때 필요한 질문을 수검자에게 직접 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만약 부부 상담을 받으러 온 성인 남성 내담자를 대상으로 현재 가족 역동을 살펴보기 위해 KFD를 실시했더니 자신의 어릴 적 원 가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물론 현 가정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원 가족을 그렸다는 것도 중요한 정보(분리-개별화 과제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거나)지만 현 가정 역동을 알고 싶은 게 원래의 목적이었으므로 현재 가정의 모습을 다시 한번 그려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검사 시간이 충분하고 수검자가 협조적이며 피로하지 않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새로운 그림을 추가로 그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하나 더 들면, HTP에서 집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그린 아동이 있다고 해 보죠. 우리가 원하는 건 아동이 사는 아파트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가 아니라 아동의 심리 상태가 투사된 모습이기 때문에 단독 주택을 다시 한번 그려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검자가 용인하는 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그림을 추가로 그리게 할 수 있습니다. 단, 그러자면 검증하려는 가설이 분명하게 있어야겠죠.
두 번째 방법은 평가자의 노하우가 조금 더 필요한데 역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나무 그림에서 수검자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렸다고 해 보죠. 나무 그림은 수검자의 자아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그림이니 수검자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자신의 모습을 투사했는지 아니면 그냥 그리고 싶어서 혹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추억 때문에 그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수검자가 그림을 완성한 이후 그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개방형 질문을 먼저 한 뒤에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느낌은 어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추가해서 그리고 싶은 부분은 없는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기계적으로 정해진 질문을 읽는 게 아니라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에 따라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정리해보자면, 그림 검사도 결국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니 어떤 가설을 검증하고자 하는지 평가자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두어야 하며 검사 중에도 새로 추가되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1) 그림을 추가로 그리게 해서, 2) PDI에서 추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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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검자에게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모두 받았습니다. 각 검사 결과의 해석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통합하는 게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임상가들이 많습니다. 제가 supervision point를 물어볼 때도 이 통합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렇다면 심리평가 결과 통합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선생님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검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검사 별로 검사 sign을 해석할 수 있는 실력을 더 열심히 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심리검사 워크샵도 꾸준히 참석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실력이 생긴다고 믿는거지요.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가 빠져도 통합이 안 되고, 불필요한 검사가 너무 많이 포함되어도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때문에) 통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심리검사에 대한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정리가 안 되고 통합의 어려움을 느끼는 선생님이라면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routine하게 심리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리평가를 위한 가설 설정과 관련해서는 아래의 관련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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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의 여건 상 장기 상담 대신 20회기 미만의 단기 상담이 주력 접근 방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라서 심리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번 되지도 않는 상담 회기를 심리평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낭비할 수가 없으니까요.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건 당위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모호하기도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냐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는 임상가들 중 상당수는 대체 내담자의 문제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심리평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보다 더 심하게는 내담자에 대한 감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일종의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심리평가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일단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되기도 하고 의미있게 나온 결과에 따라 어떻게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거니까요.
가설을 설정하려고 심리평가에 의존하는 게 몸에 익으면 내담자에 대한 고민이 멈추게 됩니다. 내담자를 궁금해 하지도 않게 되고 내담자를 분석해야 할 기계처럼 생각하게 되어 나중에는 공감도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심리검사 도구부터 들이미는 버릇을 들이면 안 됩니다. 자신이 속한 기관의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끊임없이 건의하고 문제 제기를 해서 바꿔야 합니다.
내담자의 호소 문제를 경청하고, 충분히 공감하고, 깊이 고민하고, 가설을 설정한 뒤에야 그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심리검사 도구를 선정해서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실시해야 합니다. 가설을 검증한 뒤에는 그 결과에 따라 상담 목표와 방향을 수정하고 이를 내담자와 공유하고 상의해야 합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겁니다.
그러니 심리평가의 도움 없이 가설을 세울 수 있도록 실력을 배양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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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심리평가 시 심리검사 도구를 선택하는 방법'에 이어지는 포스팅입니다.
심리평가를 할 때 가설을 잘 검증할 수 있는 심리검사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어제 포스팅의 요지였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심리평가를 위한 가설을 잘 세울 수 있을까요?
대단한 묘안은 제게도 없지만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첫째, 검사 sign에 대한 공부는 분명 필요하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제게 어떤 정신과적 장애, 어떤 심리적 문제를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검사 sign, 검사 결과 profile을 물어보시는 분이 생각 외로 많은데 딱 들어맞는 그런 profile이 있지도 않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그걸 달달 외우는 식으로 익혀서는 나중에 큰 코 다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거든요. 심하면 오진을 할 수도 있어요. 같은 이유로 심리평가 사례집도 참고만 하셔야지 자신의 심리평가 사례와 비슷한 걸 뒤져서 똑같은 검사 sign을 발견하면 기뻐하며 그대로 심리평가보고서에 옮기는 식으로 작업하시면 안 됩니다.
둘째, 바로 위의 내용과 상반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검사 도구에 대한 숙지는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검사 sign에 대한 해석은 검사 도구의 정확한 활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검사 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산출되는지 모르면 당연히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어떠한 검사 도구이든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보고 그 안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셔야 합니다. 수퍼비전을 할 때도 그렇고 강의를 할 때도 그렇고 심리검사도구의 매뉴얼을 읽지 않는 분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에 매번 놀랍니다.
셋째, 임상이 아닌 상담 심리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특히 정신 병리학에 대한 지식을 별도로 습득하셔야 합니다.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사람은 병원으로 가고, 증상이 심하지 않고 mild한 사람은 상담 현장으로 가는 식으로 더 이상 나눠지지 않습니다. 상담 장면에서 이미 변별 진단이 필요한 사례가 많이 늘었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겁니다. DSM 체계에 대한 공부는 필수이고 정신병리학에 대한 공부도 꽤 깊은 수준으로 하셔야 합니다. 정신병리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진단 가설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상담 센터를 방문한 대학교 2학년 남학생으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될까봐 두려우며, 최근에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갑자기 눈물이 나고 악몽을 반복해서 꾸는 등 수면 장해를 경험하고 있는 수검자를 평가한다면 변별을 위한 진단 가설을 몇 개나 설정해야 할까요?
정보가 부족해 자세한 내용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탐색해 봐야 하겠지만 위의 사례의 경우 최소한 5~6가지의 1차 진단 가설을 당장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병리학과 DSM 진단 체계에 익숙하지 않으면 검사 전에 이런 진단 가설을 떠올리는 게 어렵고 진단 가설을 설정하지 못한다면 실시한 검사 결과를 펼쳐놓고 짜맞추면서 골머리를 썩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넷째,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을 익히는 것보다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사례 중심의 서적을 많이 읽는 것이 낫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의 기본 양식은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요소만 익히고 나면 결국 어떻게 내용을 전개하느냐가 관건인데 소설을 잘 쓰려면(심리평가보고서를 소설 쓰듯이 쓰라는 말이 아니라) 소설 작법에 대한 공부만 파고 들 것이 아니라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많이 읽고 어떤 문체, 어떤 시점,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느냐를 살펴봐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 역사, 건축, 예술, 철학, 정치, 사회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습득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의 내용은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공부를 통해 풍부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대가의 심리치료 이론, 심리치료 사례집 등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개인의 내적 역동을 다루는 이론이나 사례라면 더욱 좋겠죠.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전형적인 검사 sign이나 검사 profile에 집착하고 모으지 말 것
2. 검사 도구를 숙지할 것. manual은 반드시 꼼꼼히 살펴볼 것
3. DSM 진단체계와 정신병리학에 대해 깊이 공부할 것
4. 상담, 심리치료의 이론, 사례 중심의 책(대가의 고전을 중심으로)을 많이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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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할 때 초기부터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나중에 결과만 갖고 살펴보겠다고 무턱대고 심리검사부터 실시하면 나중에 훨씬 많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물론 원했던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길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검자는 수검자대로, 검사자는 검사자대로 힘들게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실시한 검사 결과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평가 과정에서 검증이 가능하도록 압축된 핵심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상담을 해오던 내담자를 평가하거나 이전 치료력이 풍부한 내담자를 재평가 하게 되는 경우에는 배경 정보가 많기 때문에 초기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배경 정보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배경 정보로 인한 오염을 우려해 blinded-interpretation을 선호하는 평가자(초심자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평가자들만 이 방식으로 하세요)의 경우에는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검사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평가 내내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검사를 실시한 뒤에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이 때 중요한 건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순서입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평가자들이 종합심리평가의 경우 구조화된 검사를 먼저 실시하고 비구조화된 투사법 검사를 나중에 실시하는데 이 때 먼저 실시한 구조화된 검사(대표적으로 MMPI-2/A)로 가설을 설정하고 뒤에 실시한 비구조화 검사(대표적인 것으로 로샤) 결과로 이를 검증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MMPI-2에서 D, RC2, DEP 척도를 비롯해 모든 임상, 내용 소척도만 상승했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할 가설은 Depressive Disorder 계열의 진단이죠. 아마도 Double Depression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겁니다. 자, 그렇다면 비구조화 검사에서는 어떤 검사 sign들을 기대해야 할까요? depressive mood와 low positive affect가 동시에 나와야 하겠지요. 로샤라면 C', Y 등과 함께 8, 9, 10번 카드를 비롯한 유채색 카드에서 밋밋한 F반응으로 일관하는 양상을 동시에 보였을 때 가설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반대 방향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구조화된 검사로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죠.
언뜻 생각하면 그래도 될 것 같지만 반대 방향으로 하면 대안 가설(alternative hypothesis)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에요.
그러니 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 포스팅 두 줄 요약
- 심리평가에서 가설을 설정/검증하는 시점은 심리검사 실시 전/후의 두 가지로 나뉨
- 후자의 경우 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검증하는 방법을 추천
태그 -
D,
DEP,
Depressive Disorder,
depressive mood,
Double Depression,
low positive affect,
MMPI-2/A,
RC2,
가설,
검사자,
구조화된 검사,
내담자,
로샤,
비구조화된 검사,
수검자,
심리검사,
심리평가,
종합심리평가,
초기 가설,
치료력,
투사법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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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심리평가를 할 때
평가자가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불안한 마음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정보의 홍수에 빠지는 바람에 오히려 길을 잃는 것입니다.
정보가 많으면 어떻게든 수검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case formulation을 방해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핵심적인 정보를 골라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의뢰 사유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뢰 사유를 명확하게 해야만 가설을 정확하게 세울 수 있게 되고, 가설을 정확하게 세울 수 있어야만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또 다른 방법은 정확한 근거가 없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료력을 조사하던 중 과거에 다른 병원에서 특정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받았던 내용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죠. 이 때 평가자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건 그 진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려졌느냐는 겁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문진에 의한 것인지, 약식으로 실시된 자기보고형검사 결과에 기초한 것인지,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한 것인지, 실시했다면 심리평가보고서를 구할 수 있는지, 어떤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실시한 것인지 등등을 확인해봐야 하는 거죠. 진단 근거와 관련된 아무런 정보를 구할 수 없다면 이런 정보는 아예 처음부터 없는 셈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배경 정보의 유효 시한(?)인데
배경 정보는 가설을 세울 때 사용한 뒤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제 방식을 따르자면
대면 검사를 실시하기 전에 없애는 것이죠.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까지 배경 정보를 남겨두면 검사 결과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거나 자료가 불충분한 경우 배경 정보를 동원해 그 간극을 메우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설 쓰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배경 정보는 사실 굉장히 불완전한 정보입니다. 심리적 고통이 큰 경우 수검자의 주관적 보고는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보호자가 수검자에 대해 잘 아는 signicificant others가 아닌 경우 불완전하거나 편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의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의 오랜 과거 자료로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배경 정보는 심리검사 의뢰를 받고 chart 확인 후, 혹은 심리검사를 위한 면접 후 가설을 설정할 때 사용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정확한 case formulation을 위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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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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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원자료를 raw material이라고 쓰거나 제목의 reading을 다른 용어로 바꾸거나 해야 하는데 적절한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네요. 너무 습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업계 용어는 막상 바꿔쓰고 싶어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심리검사의 원자료를 잘 엮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물론 각 검사들의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당연히 필요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문제죠.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각 검사 sign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부분만 찾으려고 애쓰는 것인데 그렇게 딱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런 전형적인 profile보다는 반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원자료 리딩을 잘 하기 위해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 중 하나는 '의외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한 검사에서 발견되는 의외성을 눈여겨 보고 그 검사 sign으로부터 가설을 설정한 뒤 그 의외성을 다른 검사의 sign들과 교차 검증해 보면 그때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역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등교 거부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할머니와 함께 심리평가를 받으러 왔고 부모가 바빠서 동행하지 못해 발달력 등의 개인 정보가 거의 없는데다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살지 않아 자기보고형 평가 도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한번 보죠. 문장 완성 검사에서도 아이가 부모나 가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술로만 일관하고 지능 검사 결과도 평이해서 별로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KFD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을 그렸는데 자신만 안 그렸다면 밖에 나가서 놀고 있어 안 그렸다는 아동의 보고만 믿고 넘어가지 말고 그 의외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자아중심성이 강하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이인데 가족화에서 자신만 안 그렸다면 가족 내 갈등이 있거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등교 거부도 학교에서 또래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관심끌기나 알 수 없는 이차 이득이 있을 수도 있죠. 이런 의외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투사법 검사의 sign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보고형 검사 등 구조화된 검사 결과와 궤를 달리하는 투사법 검사 결과가 새로운 가설을 입증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니 원자료 리딩을 할 때에는 공통된 부분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뜻밖의 모습을 보이는 검사 sign을 눈여겨 보고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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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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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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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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