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나름의 이유로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것이 승진을 위한 전진이든, 마음의 평안을 위한 후퇴이든 간에 말이죠.
EAP 상담을 하다보면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내담자를 꽤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도 불사하고, 눈도장을 찍느라고 퇴근한 후에도 다시 회식 자리에 나가 얼굴을 비추기도 하고요. 웃기지도 않는 상사의 농담에 맞장구도 쳐야하고 일이 돌아가게 하려고 옆 부서의 동기나 후배에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순한 정치 논리, 라인 논리로 승진에서 밀리고 엉뚱한 부서로 발령이라도 나면 이놈의 직장은 왜 내 충성심을 알아주지 않는거냐고 분통을 터뜨리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면 자상한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을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상한 아빠는 기본이니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재워야 합니다. 휴일에는 가족과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하고 그런 가운데 짬짬이 자기 계발을 위해 운동도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지요. 그런데도 가사 분담에 적극적이지 않고 여전히 수동적이라는 배우자의 볼멘 소리를 듣거나 조금만 비위를 못 맞추면 쪼르르 엄마 품으로 달려가 버리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인정을 받는 수퍼맨, 수퍼우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력과 시간에는 한계란 것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은 아니지만 EAP 상담에서는 이런 역할 갈등 해결을 위해 내담자와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 때 자칫하면 포인트를 잘못 잡기 쉬운데 대표적인 것이 회사와 가정 둘 다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만 택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조절해서 양쪽 모두 적당히 하라는 뻔한 조언을 하는 것이죠.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느 정도로 조절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내담자의 몫이고 상담자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내담자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 볼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나는 왜 외부의 인정에 이렇게까지 목을 매고 있는가'
자신의 진가에 대해 스스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아무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EAP 상담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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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문제로 뒤통수를 얻어맞기 전까지 도박과 도박 중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대처 방법은 사실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헤어지는 것과 참고 사는 것.
주변 사람들도 가족들만큼이나 도박 중독에 대해 모르는 건 마찬가지 상황인데 가족들 입장에서 헤어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차라리 속는 셈 치고 빚을 갚아주거나 도박자의 말을 믿어보는 것이 오히려 해 볼만한 도박일 겁니다.
특히 시댁, 친정 따질 것 없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어른들이 종용하는 경우 많은 배우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박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이 상황을 수용(accept)하는 것과 자신을 희생(sacrifice)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수용한다는 건 도박 중독의 문제가 도박자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일차적인 책임도 도박자에게 있다는 것,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유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면서 도박자 역시 그 원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희생은 수용과 달리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도박 중독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그저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이 창피한 일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박자가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없도록, 필요하다면 도박자의 공범이 되거나, 변명과 거짓말을 하거나, 빚을 대신 갚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뒤집어 쓸 수 있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죠. 당연히 그 결과로 희생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인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합니다.
수용은 희생이 아닙니다. 수용은 치유의 원칙을 지켜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희생은 그저 자신을 던져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입니다. 하지만 수용 없는 희생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잊으세요. 도박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아닌 수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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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좌파 정치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한 울리히 벡과 유명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부부가 함께 쓴 '사랑은 지독한 혼란 :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Das ganz normale Chaos der Liebe, 1990)'을 북 크로싱합니다.
20년도 넘은 1990년에 나온 책인데 현재의 가족 제도, 결혼, 아이 양육 문제 등을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한 혜안을 보여주는 책입니다만 난도가 좀 있습니다. 신중하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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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뮌헨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울리히 벡과 에어랑엔 사회학과 교수인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부부가 함께 쓴 책입니다.
울리히 벡은 유럽 좌파 정치 이론가의 한 사람으로 '위험 사회'의 저자로 유명하고 부인인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도 유명 저널리스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랑'이라는 어찌보면 구태의연하고 고색창연한 주제를 탐구한 책입니다. 사실 사랑이 핵심 주제이기는 하지만 자유, 평등, 성차, 결혼과 이혼, 가정, 아이 양육 등을 그 당시 핵심 이슈였던 개인화와 핵가족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1990년이라면 20년이 넘은 과거인데도 현재의 모습을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짚어내는 혜안이 돋보입니다만 영역판을 바탕으로 번역한 것이라서 독일 원판에는 있었을 듯 싶은 촌철살인의 유머와 위트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번역의 문제인지 제 독해력의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내용이 상당히 난해해서 독서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책입니다.
제가 힘들게 읽은 책이라서 추천드리기는 좀 어렵겠네요.
덧. 그래도 일단 북 크로싱은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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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남자들이 여성들이 겪는 고용상의 차별을 열등한 훈련 수준에 입각해 설명했었다. 최근 교육의 확대에 따라 더 이상 이러한 주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 역할이라는 새로운 방어벽이 세워지고 있는 중이다. *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성의 권리가 위협으로 변할 때면 언제나 자연의 이치에 호소하는 오래된 노선을 따라 생물학적 근거를 동원해 심각한 불평등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행동간의 모순을 은폐하려 한다. * 결국 가족과 결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물질적 안정과 재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온갖 위기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아마 결혼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것. 즉 고독의 위협이야말로 결혼의 가장 믿을만한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중년의 위기는 세 가지 요인 - 일반적인 추세로서의 개인화, 특히 여성의 개인화, 기대수명의 연장이 함께 발생하는 곳에서만 대량으로 발견된다. *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결혼은 참을 수 없을 정도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하겠지만 자유롭게 선택한 결혼은 모든 가능성 중에서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 선택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각자의 기준들을 자꾸 높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 가족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가족 구성원들이 홀로 있기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 이와 동시에 정체성 위기와 결혼의 소용돌이보다 오래 갈 수 있는 우정의 망을 키우는 것은 기대가 지나치게 부푼 결혼을 구제하고 이혼의 공황을 가라앉힐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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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마음 한뜻으로 사는 건 참 좋은데 일심동체라는 말을 부부는 항상 붙어다녀야 한다는 말로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십 년을 각기 다른 가족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사는 것인데 당연히 다른 취향과 기호, 생활 방식을 갖고 있을텐데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어디든 함께 가고, 꼭 함께 밥을 먹어야 하고 쉬는 날에 서로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서로에게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둘이 항상 붙어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서로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느끼게 되면(그럴 수 밖에 없겠죠. 맨날 붙어 있으니) 괜시리 날이 서게 되어 예민하게 반응하는겁니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물어봐도 될 일도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마음 읽기'를 하게 되는데 이게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무리한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반대로 상대방과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체념하고 자포자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부부 관계는 잘못된 일심동체의 신화를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건강한 부부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리 두기'를 잘 합니다.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여집합'에 해당하는 일정 부분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활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죠.
둘 다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는 함께 보지만 수영은 남편만 좋아하거나 기타 배우는 건 아내만 좋아한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강요하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마찬가지로 배우자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렇게 부부 생활을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눠서 할 수 있느냐, 한쪽이 적당히 참고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맞추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단호히 말씀드리지만 희생은 암묵적인 강요가 수반되어 있고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내가 지난 번에 참고 당신이 하자는 거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걸 당신이 해 줘야지라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방이 나처럼 희생하지 않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모든 부부 갈등의 근원 중 하나이기도 하죠.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잘못된 일심동체와 희생의 신화를 깨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덧. 저는 개인적으로 배우자나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70%, 자신만의 시간 30% 정도의 비율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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