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도발적인 점 미리 양해 말씀 드립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 가족 상담처럼 아예 처음부터 한 상담자가 한 명 이상의 내담자를 봐야 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동/청소년 상담인데요. 상담의 시작은 아동/청소년이지만 단순히 부모 교육 차원이 아니라 부모도 개인 상담을 받아야 하는 수준으로 판명되는 게 부지기수거든요.
이 때 현재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위시한 대부부의 상담 기관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여 각기 다른 상담자에게 배정합니다. 제가 알기로 표면적인 이유는 상담자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런 방식의 접근에 반대합니다. 물론 저는 상담자가 자신의 비전문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관련 내담자의 상담을 본인이 책임지고 심리평가(검사 도구의 선정, 실시 타이밍 선택 등) 일체도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소 극단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최소한 부모, 자녀가 함께 상담을 받게 된다면 한 명의 상담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관계가 연결된 내담자들을 다른 상담자에게 배정하는 건 기계적인 중립성에 대한 집착이고 심하게 말하자면 상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다분히 기관 방어 위주의 정책입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수검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죠. 저는 그런 방어 위주의 정책이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건 내담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담이 아니에요.
사실 상담자의 중립성만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개념도 많지 않습니다. 상담자의 중립성은 노력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이 아닙니다. 심하게 말하면 저는 상담자의 중립성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설사 그렇게 지켜진 중립성이 내담자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상담자의 중립성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다면 우리는 전이-역전이 분석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일까요? 상담자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켜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도 복수의 상담자를 두는 건 현실적인 면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외부 상담자라면 아예 정보가 차단될 것이고 기관 내 다른 상담자라고 해도 상담자 간 긴밀한 의사소통체계가 없으면 중요 정보가 누락되거나 타이밍을 놓치기 쉽습니다. 게다가 상담자의 치료적 배경이나 접근법이 상이하다면 엇박자가 나기 쉽습니다. 문제 해결 중심 상담자가 부인을, 이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목회 상담자가 남편을 맡아 개인 상담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죠. 이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상담자가 다루기 어려운 전문적인 문제가 분명 있을 수 있죠. 성폭력 외상이나 도박 중독, 혹은 종교적 문제 등의 문제라면 관련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한 명의 상담자가 최소한의 개인 상담을 담당해야 전체 상담 과정을 조망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간혹 부모-자녀 관계를 한 명의 상담자가 다룰 때 자녀와 부모가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상담자를 끌어들이면 어떻게 하냐, 중립을 지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이 계신데 그 건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아닙니다. 약자의 편(이 때는 아동/청소년 자녀)을 들어야 하는 경우죠. 부모가 자신의 가치 기준을 강요하면서 자녀를 억압, 또는 학대할 때 중립을 고집하는 건 내담자의 고통을 방기하는 직무 유기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자들께 한 말씀 드리면, 엮여 있는 갈등이 심하고 도저히 다룰 수 없을 것처럼 역동이 복잡할 때 그 틈바구니에서 버티는 게 힘들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내담자만(대개는 다루기 쉽다고 판단되는) 상담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신감을 잃고 무력감에 빠질 겁니다. 왜냐하면 '아웃소싱'한 내담자에 대한 통제력과 정보를 잃게 되거든요. 이건 눈가리고 수술하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휘몰아치는 갈등의 폭풍 속에서 버텨야 합니다. 그게 내담자를 위한 선택이니까요. 모든 상담은 내담자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기관의 안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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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중독된 도박자와 가족들에게 가장 무서운 말 중 하나가 바로 '재발'입니다. 그 말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로 두렵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무서운 재발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도박자 개개인에게 재발을 가져올 수 있는 나름의 위험 요인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 싸우더라도 위태롭지 않은 법이니까요(지피지기 백전불태).
재발을 야기하는 위험 요소는 도박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중독자에게 공통되는 위험 요소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위험한 3가지 요소를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입니다. 예전에 이미 한번 소개드린 적이 있는데 HALT라는 약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HALT는 각각 '배고픔', '분노감', '외로움', '피곤함'의 영문 앞글자입니다.
배고픔, 분노감, 외로움, 피곤함은 모두 부정적인 정서 자체이거나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선행 요인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고자 하는 후속 행동을 야기하는데 도박 중독자의 경우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행동이 바로 도박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따라서 HALT 상태인 도박자는 도박 행동으로 연결되기 전에 각각의 문제를 건강한 방법으로 즉시 해결해야 합니다. 첫 번째 요소인 부정적인 정서 상태는 도박자 내면에 있습니다.
둘째는 대인 갈등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HALT 중 절반에 해당하는 외로움과 분노감이 관련되어 있을 정도로 대인 갈등이 도박의 재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대인 관계는 도박을 계속하려는 이유와 그만두려는 이유 모두에 대해 도박자가 가장 많이 보고하는 이유 중 하나인만큼 대인 관계에 갈등이 생길 경우 단도박 의지가 약화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데도 내가 단도박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주범 또한 대인 갈등입니다. 그러니 대인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그대로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가족 상담이나 부부 상담이 도박 중독 치유에 필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인 관계는 도박자의 바깥에 있지만 비교적 근거리에 있는 요소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사회적 압력입니다. 대인 갈등과 마찬가지로 도박자의 바깥에 있으며 약간 떨어진 원거리에 있는 요소입니다. 사회적 압력은 함께 도박을 했던 도박 동료, 친구를 비롯해 도박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모든 외부 영향을 의미합니다. 명절 때 내기 윷놀이를 하는 친척들이나 게임비 내기 당구를 하자는 친구들도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압력 요소가 무서운 이유는 두 번째 요소인 대인 갈등을 피하려다 촉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인 갈등을 피하면서 사회적 압력을 무마하려면 상당히 정교한 대인 관계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상담과 연습을 통해 이 기술을 습득할 수 있지만 그 때까지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원칙 준수가 생명입니다.
다시 한번 도박 중독 재발의 최대 위험 요소 3가지를 정리합니다.
1) 부정적인 정서 상태(HALT)
2) 대인 갈등
3) 사회적 압력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명심하고 매사에 주의해야 합니다. 세 가지 위험 요소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도박 중독에서 치유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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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험프리스의 책은 월덴 3에서만 이미 몇 차례 소개를 드린 바 있습니다.
'부부의 사생활(1997)',
'투덜이의 심리학(1996)',
'심리학에서 육아의 답을 찾다(2004)'가 바로 그것입니다.
네 번째로 소개드리는 토니 험프리스의 책은 2004년에 나온 'Leaving the Nest : What Families Are All About'입니다. 토니 험프리스를 제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현장에 있는 임상가들에게 추천하기에는 그동안 뭔가 2% 부족했는데(그래서 항상 평가는 별 세개~) 이 책은 제가 읽은 험프리스의 책 중 최고입니다. 가히 흡족한 수준이에요.
제목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문제 있는 가족의 모습을 조명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유하고 특별한 나를 발견하는 방법, 경제적, 정서적 독립의 문제, 그리고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통의 모습, 조건없는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감정 표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책임과 권리의 문제 등 가족이라는 체계에서 살펴봐야 할 중요한 주제들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평소 가족 상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 책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딱 제 스타일의 책입니다. 제가 가족 상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한 분들은 바로 이 책을 보시면 됩니다. ^^;;;
역기능적인 가족을 다루는 임상가, 특히 어른 아이의 독립 문제와 헬리콥터 부모, 결혼과 자녀 양육의 준비가 되지 않은 미성숙한 초보 부부나 부모를 상담하는 임상가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토니 험프리스가 워낙 글을 쉽게 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누가 읽어도 괜찮은 책입니다.
닫기
* 성공한 건축가가 되려면 부모는 먼저 자기 내면의 건물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부모는 자신이 도달한 깨달음의 수준까지만 아이를 이끌어 줄 수 있다.* 남을 위해 지나치게 헌신해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주고, 주고, 또 준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이 무의식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단지 자신의 불안을 달래려는 것 뿐이다. * 지나친 헌신은 가족의 자아인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나치게 헌신하는 부모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이다. 그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 헌신적인 사랑은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극도로 이기적인 것이다. 헌신하는 관계는 그냥 베푸는 것이 아니라 '돌려받기 위해' 베푸는 것이다. 이는 받는 사람이 지극히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우는 관계다. * 배우자의 외도는 사실 부부 사이에 늘 존재해 온 불만족스런 관계, 또 방어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한 증상일 뿐이다. 아내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진 원인을 '남편을 꾄 여자'에게 모두 뒤집어씌운다. 아내는 그 희생양을 씹어댐으로써 자기 책임을 회피한다. 외도는 남편에게도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아내에게 늘 끌려다니는 무능한 인간이라는 비난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게다가 한번의 외도로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는 사실까지 증명한 것이다. *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아인식이다. 자아에 대한 믿음이 낮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변화 요구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분리하고 독립하라는 말은 욕구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주체적으로 알리라'는 의미이다. 다만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다고 거부당한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다. * 부부가 서로 평온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부부관계에 깊은 불안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평온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부부를 더욱 깊고 안정적인 관계로 만들고 개개인의 자아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킨다. * 상대방의 감정이 전적으로 상대방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는 첫걸음이다. 그런 사람의 자아에 대한 안정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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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치료자인 버트 헬링거(Bert Hellinger)가 개발한 '가족 세우기(Family Constellations)'란 치료 기법이 있습니다. 정신분석, 게슈탈트 이론, 교류 분석과 가족 치료를 통합한 방법이라고 하죠.
세계 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는데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5년 정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법이라고 합니다. 역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독일에서 개발된 치료 기법이기 때문에 미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소개가 덜 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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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개인이 관계에서 겪는 문제, 혹은 삶이나 질병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부정적인 삶의 패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족체 내의 얽힘 관계를 살펴봐야 함.
* 가족 세우기는 사건 중심의 작업인 까닭에 의뢰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내용이라든지 아무래도 자기 편에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사적인 견해나 스토리 등은 중요시하지 않음.
* 가족 세우기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부분은 누가 가족체에 속해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사실임.
* 가족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들
- 부모나 조부모의 이른 죽음
- 유산, 사산, 낙태
- 살해, 비극적 죽음과 사고로 인한 죽음
- 배우자 혹은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 입양
- 파혼과 이혼
- 전쟁의 경험
- 범죄와 부당한 사건의 희생자와 가해자
- 가족적 비밀
- 가족으로부터 소속될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함
* 가족 세우기 과정
: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치료자는 의뢰인에게 가족 구성원들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물으면서 위에 열거된 것처럼 가족에게 발생한 특별한 사건에 대해 질문함. 일단 사건 중심의 정보가 수집되고 나면 치료자는 현재 가족을 세울 지 아니면 원래 가족을 세울 지 결정한 뒤 의뢰인에게 워크샵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 가족을 대신할 대리인을 선택하라고 요청함. 의뢰인은 생각이 아닌 직관에 따라서 그들을 한 사람씩 방 안에 세움. 의뢰인이 세운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그의 내면에 새겨져 있던 가족 그림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게 됨.
* 가족 세우기는 사이코드라마나 역할극과 다름. 가족 세우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심리 치료와 확연한 차이점을 보임. 첫째, 가족 세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지성을 이용함. 둘째, 영혼의 언어로 불리는 치유의 문구를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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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자신의 그릇된 행위를 사과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죄책감을 거두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되고 이는 주고받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 결국 계속적인 불균형이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될 수 밖에 없다.
*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때 혼돈에 빠진다. 그런 까닭에 마음은 언제나 앎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 논리와 합리의 잣대로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마음은 이성적인 분석을 시작하고 심지어 진실도 담겨 있지 않으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 영혼의 언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하지만'과 같은 낱말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는 언제나 진실과 책임감이 결여된 스토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가족 세우기의 방법은 너무 단편적이고 개략적이어서 실제 현장에서 이를 적용하기 원하는 치료자의 욕구를 충족하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이 책은 대부분 드라마틱한 사례를 소개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의뢰인의 문제만 다양할 뿐 접근 방법은 상당히 비슷하죠.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라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대리인들이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 관해 마치 족집게로 집어내듯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가족적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리인은 자신이 대리하는 가족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느낀다고 합니다. 이건 거의 빙의나 점장이를 연상케합니다.
또한 가족 세우기가 성공하면 그 자리에 없었던 가족들에게도 변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의뢰인에게 나타난 변화에 의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염력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작용한다는 것인데 역시나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중독 문제를 다루는 가족 세우기에서는 어떤 종류의 약물 중독이든 가족 안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고 그들로 인해 중독자가 죽은 자들의 영역을 배회하고 죽으려고 하는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가계 내 누군가가 배제되었고 그 가족 성원의 고통을 내가 짊어지기 때문에 약물 복용으로 나를 죽인다는 것이죠.
가족 세우기를 제가 직접 경험해 본 것이 아니라서 속단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 되면 거의 소설을 쓰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상담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상식 수준에서 생각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치료 기법은 대개 자아강도가 취약한 사람을 조종하기 위해 개발된 사이비 기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족 세우기가 그 영역에 속한 것인지 일단 판단을 보류합니다만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접한 치료 기법 중 가장 황당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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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을 아시죠? 정말 부모를 완전히 탈진시키는 떼쟁이 망나니들이 나와서 보는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프로그램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저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자위하거나 또는 우리 아이와 똑같다고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곤 합니다.
관계 전문가이자 가족 상담 전문가인 제프리 번스타인 박사의 이 책(정말 출판사에서 제목 하나는 확실하게 지었네요. 만선을 보장하는 낚시 제목이네요. ^^)은 바로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self-help workbook입니다.
'반항하는 아이 열흘만에 끝내기' 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이 그런 것은 아니고 번스타인 박사가 딱 열흘만 하면 된다고 장담하지도 않습니다.
'반항하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10단계 기적 프로젝트'라고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지만 현장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치료자/상담자에게 그렇게 기적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그리고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을 짜임새있게 모아놓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저는 별 세 개로 평가했고요. 그렇더라도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뒤져보기에는 좋습니다. 저도 일단 보관하고 나중에 써 먹으려고요.
다만 책을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적용하고 싶은 부모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입니다.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지도 않으면서 이해하기 쉽게 씌여졌거든요.
각 장의 핵심을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날. 아이가 왜 말을 안 듣는 걸까?
: 아이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날. 아이는 이해받고 싶어한다
: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다 해도 부모가 이해를 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쉽다. 따라서 부모가 이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줄수록 아이의 반항은 줄어든다.
셋째 날. 고함치지 않고 해결하기
: 고함을 지른다는 것은 결국 아이의 의도대로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뿐이다. 화가 났을 때는 머릿속으로는 물론이고 입 밖으로도 "지금은 내가 정말 화가 났으니까 나중에 좀 진정되면 그 때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넷째 날. 싸우지 않고 해결하기
: 반항적인 아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력감과 열등감때문이다. 권력 싸움은 아이가 무력감을 상쇄하려는 시도의 산물인 셈이다. 권력 싸움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부모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침착하고 단호하면서도 위압적이지 않은 태도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즉시 물러나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다섯째 날. 긍정적인 변화에 주목하라
: 반항적인 아이일수록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기 때문에 이를 상쇄해 줄 긍정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을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날. 제대로 가르치기
: 말 안 듣는 아이의 훈육과 관련해 부모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보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처벌로는 아이를 가르치지도, 아이가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뒷받침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훈육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먼저 아이와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는다고 느낄 때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크게 줄어든다.
일곱째 날. 가족은 한팀이다
: 형제 자매는 반항적인 아이의 문제 행동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반항적인 아이가 함부로 굴수록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누려왔다. 따라서 아이들은 반항적인 아이가 나아질 경우 기존의 우월한 지위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할 수도 있다.
여덟째 날. 학교에서의 우리 아이
: 반항적인 아이일수록 상황이 갑자기 반전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빨리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과 협력하라.
아홉째 날. 의학적 장애 극복하기
: ADHD, LD, Depression, Bipolar Disorder, Anxiety Disorder, Drug Abuse, Asperger's Syndrome, Tourette Syndrome 등의 정신과적 장애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열째 날. 달라진 아이, 달라진 부모
: 언제든 문제는 다시 나타날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일관성을 갖고 원칙을 지켜나갈 것. 대부분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부모가 너무 빨리 포기하기 때문이다.
어떠세요?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별로 없죠? 그래도 현장에서 반항적인 아이를 다루는 치료자/상담자들께서는 한번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책입니다.
부록으로 반항적인 아이들을 다루는 교사를 위한 지침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도 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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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좌충우돌, 우왕좌왕 정책 혼선과 각종 실기를 거쳐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몇 군데의 치료 센터가 설립되고 향후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현재 현장에서 일하는 치료자의 수가 태부족인지라 전문가를 교육, 양성, 충원하는 문제가 당연히 대두되었죠. 그런데 일각에서 관련 학부에서 일정 과목을 수강한 후 졸업한 학부 출신을 대상으로 수십 시간의 교육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주고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시험을 보든 말든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거의 쓸모가 없으니까요)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탁상공론의 전형이거나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시장(이 말 참 마음에 안 들지만)을 선점하려는 파렴치한 짓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도박 중독 치료를 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수련 과정이 엄격하고 치열한 수련 병원에서 3년을 수련한 전문가였는데도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도박 중독자를 대하게 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마 현장에서 일을 하는 치료자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다들 이해하실 겁니다.
그만큼 도박 중독 치료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도박자가 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재발이 잦아서가 아니라 온갖 다양한 문제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박 중독은 대부분 집중적인 대면 상담을 기반으로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인 상담 기술에 익숙해야 하고 병식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동기 강화 상담을 자유자재로 해야 하며, 인지적 오류 교정을 위한 인지행동치료에 능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재정 파탄으로 인해 나타나는 부부 갈등, 가족 갈등 해결을 위해 부부 상담과 가족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기본적인 재정 관리와 채무 변제, 법적 문제를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전문 지식을 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알코올 중독, 우울증, 불안 장애, 자살 위험성 등의 공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진단,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과 함께 적절한 시점에서 약물 치료를 포함한 정신과적 치료를 의뢰, 관리할 수 있는 판단력과 전문 지식이 필수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학부 수준의 상담자가 다룰 수 있다고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해서는 최소한 3년 이상의 정신과 수련을 기본(이것도 제대로 된 수련 기관에서 받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으로 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 1급 또는 임상심리전문가 수준의 자격을 갖추고 거기에 집중적인 교육을 통한 재훈련을 해야만 현장 투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도 기관 자체적으로 상당히 intensive한 보수 교육과 사례 관리를 실시해야만 됩니다. 미안하지만 석사 수준의 인력도 도박 중독 치료 현장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철부지나 다름 없습니다. 저 같아도 제 내담자를 못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하는 기관은 모든 전문가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과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모두 갖추고 있고 2년 이상의 현장 상담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모집합니다. 그러고도 매우 엄격한 면접 절차를 거쳐 전문가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박사, 교수라도 충분한 상담 경험이 없는 사람은 뽑지 않습니다.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도박 중독 치료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내 밥그릇을 위해서? 학회를 위해서? 도박 중독 치료자는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얼렁뚱땅 엉터리 자격증이나 따서 엉덩이 들이밀려는 수작 부리지 말기 바랍니다. 충분한 실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거기에 사명감까지 기본으로 장착한 뒤 도전하기 바랍니다.
덧. 전에도 이야기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급수가 나누어지는 자격증이 있다면 하급 자격을 가진 사람을 모두 포괄해도 모자랄 정도로 현장의 수요가 정말 많지 않은 이상 일을 할 때 업무의 기준은 대체로 하급 자격이 아니라 상급 자격에 맞추어지게 되고 하급 자격자는 거의 단순 사무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한된 인건비를 갖고 현장의 수요에 대처해야 하니 싼맛에 하급 자격자로 자리를 채우게 되고 제대로 된 치료는 요원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심리학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독심리전문가 자격의 하급 자격인 중독 심리사나 중독전문가협회의 중독전문가 2급 자격은 잘못된 정책 판단입니다. 임상심리학회에서 왜 임상심리사 자격을 폐지하고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하나로 통일했는지 그 과정을 benchmarking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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