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는 부부용이라고 했지만 갈등이 일어나는 2자 관계라면 상대방이 배우자가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부모 형제가 되었든 간에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소위 대화 기술을 가르치는 많은 책들이, 때로는 상담에서도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감적 경청을 해야 한다, 입을 열지 말고 귀를 열어라고 강조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더 중요하다고요. 경청을 하려면 말을 하는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둘 다 똑같이 경청만 하려고 한다면 무슨 소통이 일어나겠습니까?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서로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격화되는 게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첫째.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 억압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말하는 비율의 압도적 차이가 생기므로(그 압도적 차이를 일시에 좁히려고 상대방이 감정을 실어 말하는 등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 둘째.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잘못된 말하기 방법(비아냥, 냉소, 과잉 일반화, 허수아비 공격, 논리적 비약 등). 즉, 둘 다 말하기 방법의 문제입니다.
결코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하기가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말하기는 생각하기를 전제하고 있고(아무런 생각없이 말한다는 통념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마세요. 그런 무뇌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감정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말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말을 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대화와 마음의 창을 닫은 문제는 말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말하기 위해 제가 경험적으로 터득한 몇 가지 원칙 또는 팁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내가 말을 해야 상대방이 듣는다. 일단 말을 시작해야 한다.
: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나서 그 다음에 이야기해야지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미 전례가 있지 않나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꼬투리를 잡을 준비를 하고 듣게 됩니다. 반대로 꼬투리를 잡히기 싫어서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보세요.
둘째. 내가 다 말하기 전에는 대화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말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말을 듣자.
: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의 말을 듣는 이유는 공감적 경청 따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공감적 경청은 전문적인 상담자나 대화 기술을 충분히 훈련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 위해서입니다. 돌려서 말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하지 않았다면 대화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말을 들으세요. 그 다음에 내가 말할 순서가 올 겁니다. 남자에게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후퇴할 동굴이 필요하다는 말 따위도 믿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동굴은 필요합니다. 단지 감정적으로 폭발할 것 같을 때 열을 잠시 식히기 위해서 필요한거죠. 감정이 가라앉으면 곧 다시 돌아와 말하기를 재개해야 합니다.
셋째. 말할 때 상대방이 나를 알아줄거라 기대하지 말고 내 말만 하자.
: 이게 가장 중요한 팁인데 보통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말할 때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데 그 기대가 당연히 좌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상대방이 하는 말은 듣지 않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게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자꾸 이야기하지만 공감적 경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과 훈련을 해야 해요. 좀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이렇게 저렇게 반응했으면 하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아무리 해도 그런 기대를 내려놓을 수 없다면 당신은 상대방과 대화를 할 게 아니라 전문 상담자와 상담을 먼저 해야 합니다.
넷째. 절대적인 대화의 양을 늘려라. 그게 꼭 양질의 대화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쓸데없는 내용이 더 낫다.
: 말을 줄이는 이유 중 하나는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하려고 머릿속에서 걸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필터를 작동시키면 점점 말 수가 줄어들 뿐입니다. 좋은 말이 10%에 불과하더라도 10개 중 1개보다는 100개 중 10개가 훨씬 낫다는 걸 기억하세요. 일단은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의 연결 고리가 생기게 됩니다. 나머지 90개의 말 실수는 어떡하냐고요?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감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지만 그런 실수는 말을 할수록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고 어차피 말을 계속 해야 말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깁니다. 그러니 10%의 비율을 좀 더 늘리고 내용의 quality를 높이는데 주력하는게 더 효과적입니다.
다섯째. 갈등을 두려워하지 마라.
: 이 글을 주의깊게 읽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어서일테고 그 사람과 관계 개선을 하고 싶어서일겁니다. 평생 꼴보기 싫은 사람이라면 모든 부담을 무릅쓰고 일부러 말을 꺼내려는 시도 자체를 할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말싸움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런 두려움을 누르고 자꾸 말해야 다름과 차이를 줄일 수 있고 갈등을 해결할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싸움이나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는 방법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여섯째. 말하기에도 기술과 연습이 필요하다. 제대로 말하는 법을 익히자.
: 앞서 말씀드린 다섯가지 원칙과 팁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데도 뭔가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 들고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드디어 말하기 기술을 익힐 시간입니다. 비폭력 대화법, I message로 말하기 등등 말하기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이 블로그에 소개한 책만 몇 권 참고해도 충분합니다. 다만 모든 기술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을때까지 반복 훈련해서 체화해야 한다는 것만 명심하세요. 머리로만 아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스텝을 계산하면서 춤을 추는 건 춤을 추는 게 아니듯이 어떤 기술을 사용할 지 머릿속으로 고르고 있다면 제대로 된 말하기가 아닙니다. 음악을 들으면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많은 말씀을 드렸지만 결국은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일단 말하세요. 나머지는 그 다음입니다. 입을 닫지 마세요. 그럼 마음이 닫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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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담자가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를 확인하려고 상담자를 찾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이 문제인가를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무턱대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막연하기는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왠지 끌리지만 겁이 나서 저지르지를 못하겠다'라는 정도의 느낌은 갖고 있죠.
내담자가 갖고 오는 모든 문제는 그것이 '일'에 대한 것이든, '관계'에 대한 것이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고 보면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마음을 따를 수 없거나 반대로 현실적인 이득을 따르고 싶으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기도 하고, 정답을 모르지만 그 정답으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고 이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다면 언제 열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내담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현명한 선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건 선택 결과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이해득실에 따라 결정토록 돕는 겁니다. 그런 도움을 원했다면 내담자는 상담자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이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장점이 있는 대신, 이런 단점이 있고, 저 선택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있지만 이런 좋은 점도 있다는 식의 결정 저울(decisional balance)을 암만 정교하게 만들고 양쪽 저울에 심리적인 무게추를 열심히 달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그 저울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가치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제도화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 세뇌, 강요, 설득된 전형적인 가치관을 대충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을 따름이지요.
물론 그런 가치관으로도 사회 생활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가치관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갈등이 발생하고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막연히 그동안 존재감을 몰랐던 자신만의 가치관의 존재나 필요성을 느끼고 탐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비건(vegan)입니다. 비건이 되기 바로 전까지 고기를 잘도 먹다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완전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경우이죠. 평소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저항이 별로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가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고기를 먹을 때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 모르는 찝찝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몰랐지만요. 환경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도 많았기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동물 권리에 대한 책까지 읽게 되었고 그 때서야 마음 한 구석에 스물거리던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죠. 동물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어요. 우연이었지만 제가 몰랐던 제 가치관 하나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건이 되었고 지금은 비건이 되기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제 가치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죠.
가치관은 그런 겁니다. 원래부터 꼭 맞는 맞춤옷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야 행복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 가치관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담자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찾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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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Rapport)가 상담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건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없거나 약하다면 그 상담의 결과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는거지요. 상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만큼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신뢰 관계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공고한 라포를 맺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전체 상담 회기의 절반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라포를 중요시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라포가 잘 형성되었는지, 튼튼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전의 저도 한 때 그런 착각을 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가 화기애애하면, 내담자가 저항을 그치고 상담에 몰입하게 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치료적 조언을 그대로 따르면 라포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포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닙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해진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고, 가끔은 재애착을 해야 할 정도로 무너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 장면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전적으로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 것을 재경험하는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공고해 질 수 있을까요?
바로 갈등 상황을 통과해봐야 비로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갈등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바로 라포의 시험대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상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역설적으로 상담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자의 언행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인 상담자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겉보기에 좋은 가면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라포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검증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고, 역전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담자가 자신의 편에 설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탄탄한 라포가 형성되었구나 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꽤 많은 회기를 거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상담이 기대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한번 들으면 척 아는 수준까지 진행이 되었어도 회기를 돌이켜 보면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이건 상담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라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라포의 강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태그 -
rapport,
갈등,
경청,
기본적인 신뢰감,
내담자,
라포,
상담,
상담자,
신뢰감,
애착,
역전이,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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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갈등 때문에 상담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이 대충 두 가지 중 하나로 나뉘어지더군요.
첫번째는 상대방이 (객관적이든 또는 주관적이든) 잘못된 행동을 해서 그것 때문에 직접적으로 감정이 폭발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시댁 식구들 앞에서 배우자가 자신의 흉을 본 것을 알게 되었다든지, 자녀가 게임을 하다 걸렸는데 훈계를 듣던 도중 적반하장격으로 나에게 욕을 했다든지 등등
이런 경우는 내담자가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받은 상처를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면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작업을 통해 재발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담자를 더 괴롭히는 문제는 두 번째 경우입니다.
바로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폭발한 경우이죠.
예를 들어, 결혼 10주년 기념일인데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편이 잊었다든지, 가족과 함께 하려고 어렵게 휴가를 냈는데 각자 일정이 있다고 가족 여행을 못 간다고 했다든지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하기 쉽지만 다음의 예는 과연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살짝 미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 놓고는 그냥 놔두고 출근하는 남편, 학원 다녀오는 길에 신신당부한 심부름을 까맣게 잊고 털레털레 집에 돌아온 아들, 약속에 늦지 않겠다고는 또 다시 늦은 친구 등등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놓고는 결국 지키지 않은 것이니 뭔가 나에게 나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도 모두 하지 않은(일어나지 않은) 행동입니다.
하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하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는 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된 내 기대 때문에 생긴 괴로움을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표현 방법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결코 효과적이지 않으며 문제를 개선하지도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반발만 초래해 상황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화가 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왜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면에는 좌절된 욕구와 기대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걸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욕구와 기대는 근본적으로 스스로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 의해 충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하지 않은 행동, 일어나지 않은 현상을 비난하는 걸 그만두세요. 스스로를 상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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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임상, 상담 현장에서 청소년을 상담하는 임상가라면 우리나라의 '왕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들 절감하고 계실 겁니다. 저도 친구 문제로 힘들어 하는 청소년을 거의 매일 만나고 있고요.
작년에 상담을 시작한 한 여학생을 통해 또래 집단 속에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를 간접적이지만 적나라하게 접하게 되면서 제가 그동안 소녀들의 집단 역동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도움을 받으려고 관련 서적을 뒤지다가 찾은 책이 이겁니다.
저자인 레이첼 시먼스는 본인이 따돌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자신의 과거 경험과 관련하여 자료를 찾다가 소녀들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연구나 문헌이 거의 없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듭니다. 그 이후 3년 간 수많은 여성 피해자, 희생자, 가해자, 방관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놨습니다.
이 책은 소녀들의 비신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책입니다. 저자는 이를 대체 공격(alternative aggression)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소년들이 주로 조금 아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하는 것과 달리 문화적인 특성 상 소녀들의 세계에서는 갈등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어렵고, 흉보기, 따돌리기, 소문내기, 욕하기, 조종하기 등을 통해 친구들로 구성된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은밀하게 심리적 고통을 주기 때문에 알아내기가 훨씬 더 어렵고 희생자가 입는 상처도 훨씬 깊죠.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를 풍부한 인터뷰와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책입니다. 소녀들의 왕따 문제를 이 책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책을 저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소녀들의 갈등 문화에 관심있는 임상가라면 꼭 한번 읽기를 권하는 명저입니다. 사례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은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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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아동은 삶에서 세 가지를 원한다(Michael Thompson)
: 관계, 인정, 권력
* 공격적인 행동의 세 가지 범주
1. 관계적 공격
: 관계나 수용, 우정, 소속감의 느낌을 훼손(혹은 훼손하겠다고 위협)하여 타인을 해치는 행동. 이 때 가해자는 피해자의 우정을 무기로 사용.
2. 간접적 공격
: 표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장치로 타인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문내기가 있음.
3. 사회적 공격
: 자존감이나 집단 내의 사회적 지위를 훼손하는 것이 목적으로 소문내기나 사회적 배제 등 간접적 공격을 일부 포함함.
* 은밀히 공격하는 소녀들이 모인 교실에서는 교사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도 희생자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 소녀들에게 삶의 위험은 고립, 특히 무리에서 눈에 띄면 버려질 거라고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다. 한편 소년들은 위험을 함정에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 공격하지 않도록 사회화되고 '완벽한 관계'를 맺는 착한 여자로 키워지므로, 소녀들은 갈등이 있을 때 타협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 결과 사소한 다툼 때문에 관계 자체가 의문에 빠진다. 두 소녀 중 어느 쪽도 '착하지 않은 소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문제는 관계 자체로 확장된다. 갈등에서 사용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관계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소녀들에게 갈등은 곧 상실이다.
* 소녀들에게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적인 것이다. 실제로 따돌림의 희생자들은 외로움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 소녀들 사이의 대체공격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 소녀들의 따돌림은 통과의례이며 이겨내야 하는 단계라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관점이 따돌림을 방지하는 전략의 개발을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 학교에는 대체공격을 다루는 일관된 전략이 없다. 일과의 구조로 볼 때 교사의 개입은 더 어렵다. 예컨대 쉬는 시간에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 대체공격은 일반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왔다. 예컨대 많은 학교에서 "이렇게 하면 너랑 안 놀아"라는 식의 위협을 관계적 공격이 아니라 또래의 압력으로 여긴다. 연구자들은 학술지에서 소녀들의 관계 조종을 조숙함의 한 형태, 혹은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의 경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설명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조롱과 심술궂은 농담을 발달상 건강한 경험으로 분류한다. 소문내기와 험담하기는 '경계 유지'라고 부른다.
* 여성 따돌림의 대다수는 주모자의 지시에 따라 일어난다. 주모자의 힘은 지속적이고 은밀한 학대가 진행되는 동안 표면적으로 여성적인 차분함을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또한 주모자는 집단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 관계적 공격은 유치원에서 시작되고, 성별의 차이도 이때 처음 보인다. 이 공격 행위는 아동이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가 되면 곧 시작되는데 관계적 공격은 '관계나 수용, 우정, 소속감의 느낌을 훼손(혹은 훼손하겠다고 위협)하여 타인을 해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종을 포함하여 관계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무엇이든 포함된다. 관계적 공격은 간접적인 공격(예컨대 침묵으로 대하는 것)과 일부 사회적 공격(예컨대 소문내기)을 포함한다.
* 소녀들의 사회에서 가장 지독한 공격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격이고, 그것이 감정의 독처럼 퍼지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 화내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희생자는 이렇게 된 이유를 자기 잘못으로 여기기 쉽다.
*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나기 위해 소녀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의심하는 법과, 위장된 모습 아래에 있는 진짜 감정을 탐색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소녀들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속성이다.
* 싸늘한 표정과 침묵은 위장된 공격의 궁극적인 형태다.
* 가해자들 또한 '소유욕'과 '지배욕'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 관계의 조건을 통제하는 것은 관계적 공격의 신호다.
* 따돌림의 희생자들이 공통으로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믿기가 두려워요"
* 따돌리는 소녀들이 흔히 무리에서 가장 사회적 기술이 발달한 아이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 안타까운 사실은 문제가 심각할수록 태연한 척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는 것이다.
* '미안하다'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갈등을 끝내는 건 소녀들의 신기한 능력이다. 소녀들은 갈등을 거의 동화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강렬한 고통과 분노의 감정은 이 마지막 소모적인 행위로 느닷없이 끝이 난다.
*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소녀들에게 기본 명제 같은 것이다.
* 여자애들은 늘 지난번에 상대방이 어떻게 했는지 돌이켜 생각한다.
* 인기란 대체로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 친구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능력에 따라 정의된다. 소녀들에게 고립이 정신적 외상이라면 관계는 힘을 주는 것이다.
* 동맹 결성이 소녀들에게 더없이 매혹적인 것은 공격의 경험이 정당화되는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일대일 공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편이 없는 쪽이 잘못한 사람이 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무작위에 가깝다.
* 연구에 의하면 소녀들이 공격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죄의식은 다른 사람들과 책임을 공유할 때 현저히 감소한다고 한다.
* 중재자의 중요성은 갈등 공개가 금지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더욱 커진다.
* 소녀들의 분노는 가슴속에 깊이 박힌 악의 뿌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분노는 오히려 친절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비롯된다. 소녀들은 일상의 분노와 상처와 배반과 질투를 다룰 도구가 부족하다. 따라서 그런 감정들은 넘치거나 방출되기 전에 곪아터진다.
* 소녀들의 사회적 자본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으므로 고립은 그들의 정체성에 직결된 문제다. 대부분의 소녀들에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
* 소녀들의 자존감 상실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 이상적인 소녀의 진정한 완벽함은 억제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에 있다.
* 가장 힘든 부분은 잘못된 우정을 학대라는 진짜 이름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될 것이다.
* 진실 말하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알아서 그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까닭은 적대적인 문화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이 비밀을 나누는 것과 비밀을 나눈다는 사실 자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 구분은 소녀들끼리의 공격이 얼마나 미묘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다.
* 소녀들이 가담하는 대체공격은 의사소통의 만족스럽지 앟은 형태이며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소녀들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표현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 가장 좋은 부모는 경청하는 부모
* 인정하기 싶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 추방된 아이에게 새로운 활동은 새로운 세상이나 다름없다.
* 담당자나 다른 학부모와 상의하여 미리 그 활동의 사회적 체온을 재라. 아이가 성공할 수 있거나, 적어도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하라.
* 아이가 몹시 힘들어한다면 숨쉴 장소를 찾아주어야 한다.
* 일반적으로 가해자의 부모에게는 전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자신들의 양육 기술, 더 나쁘게는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학교에서 대체공격이 폭력의 실제로 인식될 때까지 부모는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 잘못된 반응의 예
- "다 지나갈거야"
- "누구나 다 겪는 일이란다" -> "너 같은 실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란다"라고 들림
*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는 침묵과 고립 위에서 지속된다. 메리 파이퍼가 썼듯이 "우리는 가족을 병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화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으로 이 말은 집 밖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힘과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의문과 두려움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대체공격과 갈등회피가 소녀들의 삶의 세 가지 영역에서 교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리더십, 관계 폭력,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자존감 상실
* 소녀들의 경우 공격의 사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격의 부재다. 소녀들은 공격을 표출할 올바른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표출하지 않는 법을 배울 뿐이다.
* 소녀들에게 건강한 관계를 선택하도록 가르칠 때에는, 소녀들의 관계에서 복종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인식하게 해야 한다.
* 그렇다면 소녀들에게 공격적이 되라고 가르치라는 말인가? 그렇다. 소녀들의 자존감 상실에 대해 다시 살펴보면, 그 주요 증상은 이상화되고 갈등 없는 관계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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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오래 하다보면 부부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가 눈에 잘 띄입니다.
그 중 하나가
'척 보면 안다는 착각'입니다.
이건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된 부부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들은 눈빛만 봐도, 한 마디만 들어도 배우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니 배우자의 습관, 성격,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요.
아마도 상대방에 대해 90%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통하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잘 알고 있는데 왜 부부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싸움이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맹점에 해당하는 10% 부분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더 문제는 각자 90%에 의존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나머지 10%도 잘 알고 있고, 그런데도 악의를 갖고 그걸 무시하고 내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부부 상담을 해 보면 배우자에게 직접 말하면 오해와 갈등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은데 상담자에게만 털어놔서 상담자가 답답하게 느끼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 고통을, 내 서글픈 마음을, 내 외로움을 상대방이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 속단하지 마세요. 그건 상대방이 모르는 10%에 해당하는 영역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확인 또 확인하세요.
모든 부부 문제는 서로가 모르는 10%의 영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잊지 마세요. 무엇보다 사각 지대부터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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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치료나 상담을 하는 임상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갈등 속에 빠져 균형을 잃은 부부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물론 중재자 역할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자가 처음부터 중재자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상담에 임하면 부부 각자가 하는 말의 옳고 그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판단, 조언을 하고 싶은 욕구와 싸우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장인 어른과 만나기로 먼저 한 약속을 미루고 친형네 식구와 먼저 만나자고 고집을 부리면서 장인 어른은 신혼 여행 후 한번 뵌 적이 있지만 친형네 식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장인 어른을 또 만나뵙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편다고 가정해보죠.
이 때 먼저 한 약속이 우선이다, 친형보다는 손윗 사람인 장인 어른을 우선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적인 접근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한 쪽 식구만 두 번 만나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형평성의 논리를 들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부부 상담을 오래한 상담자는 대부분 절감하는 내용이지만 부부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거의 대부분 합리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감정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죠. 상대방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섭섭함,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껴져서 생기는 거리감,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튀어나온 분노 등.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안전하게 수용되고 나서야 비로서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과 방법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배우자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합리적인지를 따지기보다는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부부 치료나 상담에서 훨씬 더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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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 싸움이 자녀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인데다 정서적인 어려움을 감당할 정도의 지적, 정서적 발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 싸움이 아이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 게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최소한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데 과연 그게 옳은 걸까요?
우선 아이들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기술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부부가 돈 문제로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한참을 싸우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일단 싸움을 중지하고 휴전합니다. 마침 학원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돌아옵니다. 현관에 들어선 아이는 본능적으로 무거운 집안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왠지 모를 답답함, 숨막힐 것 같은 이 느낌은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게 합니다. 심하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 아무래도 부모님이 싸움을 하신 것 같다 -> 혹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싸우신건가? ->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나를 야단치셨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싸우지 않으면 아이들이 모를거라고 가정하는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분위기나 느낌을 알아차리는 직감이 예민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를 뿐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부부간의 갈등을 감추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아이에게 막연한 불안감만 심어주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부부 싸움을 감추는 것의 또 다른 문제는 갈등은 감추어야만 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을 감추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함으로써 부모로부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갈등은 감추고 다루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수가 다가오는데도 고개만 땅에 묻고 포수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꿩처럼 문제에 당면해서도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없는 양 행동하게 됩니다.
부부 싸움은 문제가 아닙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죠. 아이들 앞에서 싸우더라도 나름의 규칙을 준수하고 문제의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관찰하게함으로써 부부 싸움도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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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욕구, 기회 혹은 목표에 당면했을 때 일어납니다. 즉, 원하는 것을 동시에 달성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갈등은 그것이 지닌 힘의 방향에 따라 4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는 갈등이 지니고 있는 유인가에 따르는 것인데 긍정적 가치를 갖는 것에 이끌리는 힘을 접근 경향이라고 하고 부정적 가치를 갖는 것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힘을 회피 경향이라고 합니다.
○ 접근-접근 갈등
동등한 가치를 가진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겪게 되는 갈등입니다. 학교를 졸업했을 때, 괜찮은 두 직장으로부터 입사 통보를 받은 경우, 괜찮은 두 명의 이성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고 그 중 어느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 회피-회피 갈등
회피-회피 갈등은 두 가지 이상의 부정적 결과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겪게 되는 갈등입니다. 치통을 앓고 있는 사람이 치통과 치과 치료과정의 고통 및 비용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나, 부서 간 체육대회에 참석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기도 싫은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하는 예입니다.
○ 접근-회피 갈등
접근-회피 갈등은 긍정적 목표 달성이 부정적 결과를 수반할 때 생깁니다. 예컨대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싶으나 다음날 수업시간의 보고서 제출이 걱정되는 남학생은 이러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 이중 접근-회피 갈등
때때로 우리가 직면하는 갈등은 접근과 회피 갈등의 복잡한 조합입니다. 이중 접근-회피 갈등은 개인에게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 양자를 포함하는 대안들 중에서 한가지만을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유망한 한 고교 운동선수가 두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학교는 지난 시즌에서 농구를 우승한 학교이지만 선수들과 코치가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학교는 최근에 저조한 기록을 남기긴 하였으나 코치와 선수들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어느 학교를 선택해야 할까요? 두 선택 모두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를 수반하기 때문에 이를 이중 접근-회피 갈등이라고 합니다.
* 출처 : http://www.psyche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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