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제 책을 읽었다면서 단도박 모임을 다니는 어떤 여자분이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도박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본인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예전에 도박 중독자였나 봅니다.
이 분 말씀은 제 책의 내용 중 대부분을 수긍하지만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것과 도박 중독이 치유되어도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은 틀렸다면서 제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혹시나 여쭈어 보니 역시나 제 책을 다 읽지 않으셨더군요. 제대로 읽으셨다면 제가 도박 중독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고 한 적이 없다는 걸 아셨을텐데요(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은 과연 불치병인가'). 더구나 제 책의 홍보 문구 중 하나가 앞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는 '도박 중독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다'이니 겉표지도 제대로 안 보신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하여간 도박 중독은 완전히 치유된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과연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가에 대한 것인데요.
제게 연락하신 분의 주장으로는 본인이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고 보니 갈망이 사라지고 생각조차 전혀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도박에 중독된 적이 없으니 갈망이 사라지는 완전한 치유 상태를 경험하지 못해 그런 틀린 이야기를 썼다는거지요.
과연 그럴까요?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면 갈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요? 그렇다면 더 이상 도박을 겁낼 필요가 없어지는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에서 치유되어도 갈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평생 주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1년에 포스팅한 글이 있습니다(관련 포스팅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도박 충동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격한 운동을 하다가 인대를 다치면 몸이 완전히 나은 뒤에도 인대가 손상된 부위의 기능이 예전처럼 100% 발휘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취약점이 생긴 것이죠. 취약점이 생긴 부위는 또 다시 다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에 한번이라도 중독되었던 사람은 완전히 치유된다고 해도 도박에 한번도 중독된 적이 없는 사람과 달리 중독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갈망을 느끼지 못하는 건 왜 그럴까요? 그건 갈망이 의식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무의식 수준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망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죠. 정말 무의식 수준에서는 갈망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치료자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습니다만).
예전에 본인이 하던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조심스럽게 접해 보는 겁니다. 경마를 하던 분들은 경마공원에 가 보거나, 고스톱을 하던 분들은 화투패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려 보는 것이죠. 그러면 있는지도 몰랐던 갈망이 어느새 불끈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철저히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피하고 열심히 치유의 길을 걸어온 사람일수록 갈망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명심하세요. 도박에 대한 갈망은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오판과 자만심이 재발의 재앙을 불러온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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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도박 문제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박자도 다행히 꽤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박자들은 활력이 넘치고 의욕도 강해 심사숙고없이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요구되는 꽤 힘든 활동을 덜컥 결정해서 시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영어 회화 새벽반 수강을 하겠다고 주 5일 동안 새벽 6시에 집을 나선다든가, 퇴근 후 매일 2시간씩 운동을 하겠다고 거액의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다지겠다면서 새벽 3시 30분에 신문을 돌리겠다고 하는 도박자도 있습니다.
물론 도박을 그만두고 새롭게 인생을 설계하겠다는 변화에 대한 갈망은 높이 삽니다.
하지만 금단 증상이 심하든, 심하지 않든 간에 탈도박 초기에는 충동성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도박을 그만두고 뭔가를 하겠다는 결정의 이면에 도박 때문에 한껏 높아진 충동성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여서 욕심만 앞선 나머지 무리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도박 중독에 대한 치유가 진행되면서 충동성도 서서히 가라앉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결정한 활동은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건 자신의 회복 의지를 꺾기 때문에 좋지 않고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으므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탈도박 초기에는 오히려 일상 생활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해서 그것에 적응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을 한다면 퇴근 후 저녁 식사 이후에 30분 씩 가벼운 산책을 3개월 정도 해본다든가, 영어 공부를 한다면 일단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두 달만 들어보고 학원 수강을 결정한다든가, 취미 활동을 선택할 때에도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 조기 축구회나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시작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탈도박은 마라톤입니다. 100미터 전력 질주로 초반에 기운을 빼지 않도록 모쪼록 체력 안배를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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