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지 못해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많습니다.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자신을 옥죄는 심리적인 고통감으로 괴로운 것이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감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예민해지고 불안 수준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죠.
감정을 충분히 다루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싫다고 억지로 내려놓으려고 하면 잘 될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우선 감정을 충분히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을 뜸들일 때 마음이 급하다고 뚜껑을 열게 되면 밥이 설익게 되듯이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충분히 뜸을 들여야 다룰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에는 생각을 따르지 말고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은 감정에 비해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미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의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생각으로 감정을 다루려고 하다보면 서둘러서 감정을 덮거나 합리화 과정을 통해 문제를 축소하려고 애쓰기 쉽습니다. 이래서는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생각의 힘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따르기 때문에 생각이 하는 말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어렵죠. 이럴 때에는
신체의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남편과 싸우고 난 뒤 분노가 치밀어 올라올 때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야지', 또는 '아이들 등교 준비도 해야 하는데' 등의 생각으로 문제를 축소하고 감정을 닫으려고 하지 말고 잠시라도 조용히 앉아서 '가슴이 심하게 뛰는구나', '얼굴도 상기되었네', '뒷목이 뻣뻣한 것 같은데'와 같이 신체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서 어떤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금 & 여기'에 머무르면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보통 감정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파도에 몸을 맡기는 surfer에 비유합니다. 파도를 거슬러 서핑을 할 수 없듯이 감정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함께 굴러야 합니다.
억지로 감정의 흐름을 바꾸려고 시도하면 신체가 저항하게 됩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뒷골이 땡기거나 하는 신체적인 증상은 감정의 흐름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시도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입니다.
감정의 파도와 함께 구르다보면 흙탕물같던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사금'과 같은 핵심 감정만 남게 됩니다. 이때가 되어야만 핵심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 일기 쓰기'와 같은 ventilation 기법을 사용해 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스스로 감정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핵심 감정'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편해지기 위해 감정을 내려놓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이미 내려놓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547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 경험하는 심리적인 문제는 그야말로 모든 부정적 정서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를 만 합니다.
분노, 적개심, 죄책감, 우울감, 불안감, 슬픔 등 처한 단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시간의 차이일 뿐 대부분 상당히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단계와 상관없이 가장 오랫동안 가족을 괴롭히는 부정적 정서는 '분노'입니다. 분노의 대상은 외현화되어 도박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숨겨 문제를 키운 가족이기도 하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분노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치료 목표 중 하나가 되는데 물론 대개는 집중적인 상담을 통해 해결하지만 스스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감정 일기'(제가 만든 용어입니다만 무엇이라고 부르던 상관 없습니다)를 쓰라고 권유합니다. 말 그대로 감정에 대한 일기를 쓰는 것인데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일기를 규칙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감정 일기를 쓰는 특별한 방법은 없으며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간단한 규칙만 몇 가지 지키면 되는데 규칙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직할 것 :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보안을 유지할 것
* 붓 가는대로 쓸 것
* 수정하지 말 것
: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고 종이와 펜을 사용해야 합니다. 필기구도 지울 수 있는 연필보다 볼펜이나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감정 일기를 쓴 다음에 다시 읽어보지 말 것
* 꾸준히 정기적으로 쓸 것
감정 일기는 인지적인 통제 없이 자신의 마음을 격렬하게 흘러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쓰기' 과정을 통해 쏟아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씁니다.
따라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 것이며(어느 누구도 못 보게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세요) 쓰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하다 못해 쌍욕이라도) 억제하지 말고 씁니다. 수정하지 말고 날 것으로 그냥 놔 두고 쓴 다음에는 다시 읽어보지 말고 덮어 둡니다(필요에 따라 나중에 볼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 일입니다. 지금은 신경쓰지 마세요).
그리고 힘들 때에만 쓰지 말고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꾸준히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험 상 감정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은 도박자의 가족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리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