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을 방문하는 내담자 중에 주로 호소하는 문제가 우울인데 상담을 하다보면 우울치고는 에너지 수준도 높고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불안정하고 초조해 보이는데다 때로는 분노 폭발을 하기도 해서 도무지 우울 같지 않은 느낌인데 그나마 청소년이라면 청소년 우울은 그럴수도 있겠지 하고 우겨 보겠지만 내담자가 성인인 경우도 이도 저도 아니고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면 여지없이 우울 장애로 진단받고 약물 처방을 받게 되고 그나마 경험이 많고 예민한 의사에게 걸리면 Mixed Anxiety and Depressive Disorder 진단 하에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함께 먹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는 대체 무엇일까요? 우울 장애가 맞는데 비전형적인 우울 장애라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요 아님 우울이 아닌 다른 문제일까요?
저는 이 경우 Delayed PTSD를 변별 가설로 검증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elayed PTSD는 trauma가 생긴 시점이 기본적으로 아주 오랜 과거이고 보통 부모-자녀 관계에서 애착 외상을 입었거나 심하게는 유아/아동 성폭력의 생존자일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입은 trauma이기 때문에 강하게 억압하여 의식 수준에서 기억하지 못하다가 청소년 또는 성인이 되면 특정 경험 등에 의해 trigger되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인데 우울, 강박, 중독, 환청 등 일반적인 acute PTSD와는 다른 매우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지만 가장 많은 경우가 우울입니다.
우울하다며 상담 센터를 방문하는 내담자 중 상당 수가 바로 이 Delayed PTSD입니다.
그렇다면 이 Delayed PTSD를 어떻게 변별하는지 MMPI-2/A D척도의 소척도 연결 분석 결과를 갖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부분의 수검자는 당연히 D척도가 70T 이상으로 상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 소척도인 D1, D2, D3, D4, D5가 모두 70T 이상으로 상승했다면(그리고 다른 임상 척도의 상승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 별로 고민할 필요 없이 주요 우울 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를 의심하면 됩니다. 아마 진단 기준도 무리없이 충족할 것이고 약물 치료에도 잘 반응할 겁니다.
하지만 Delayed PTSD가 의심되는 수검자의 D 소척도들이 보이는 대표적 양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D척도 : 70T 이상
- D1 소척도 : 70T 이상
- D2 소척도 : 65T 이하(대부분 60T 이하)
- D3 소척도 : 65T 이하 또는 70T 이상(신체화 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짐)
- D4 소척도 : 70T 이상(많은 경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며 D1보다도 높은 경우가 많음)
- D5 소척도 : 70T 이상(많은 경우 D4 척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상승)
D1(주관적 우울감) 척도는 당연히 우울하다는 수검자의 보고에 따라 상승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D1 척도는 우울 정서보다는 우울 사고를 측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D1 척도가 상승했어도 로르샤하와 같은 투사법 검사 결과를 보면 내면에 우울이 없는 수검자가 많습니다. 어쨌거나 D1 척도가 높게 상승했다고 섣불리 우울 정서로 확신하지 말고 신중하게 다른 검사 결과 등도 살펴보시는 게 안전합니다.
D2(정신운동지체) 척도는 우울 장애일 때 약물 치료가 효과적일 것인가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즉 D2 척도가 70T 이상으로 상승했다면 우울 장애이면서 약물 치료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셔야 합니다. 반대로 D2 척도가 65T 이하 수준이라면 약물 치료를 추가하는데 있어 신중하셔야 합니다. 제 경험 상 D2 척도가 상승하지 않았는데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는 내담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D3(신체적 기능 장애) 척도는 우울과 관련된 신체화 증상을 얼마나 호소하느냐를 측정하는데 Hy4(신체증상 호소) 척도가 70T 이상으로 동반 상승한 경우 이차적 이득을 위한 미성숙한 신체화 방어 기제를 의심해봐야 하고 거기에 HEA2/A-hea2(신경학적 증상) 척도까지 상승한 경우는 기질적 취약성과 함께 강력한 관심 끌기 행동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Delayed PTSD인 경우 그나마 신체 증상 호소를 통해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한 수검자라면 상승, 그마저 효과가 없었다면 오히려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D4(둔감성) 척도가 70T 이상으로 상승하는 수검자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멍때리거나 정신을 놓고 있어서 주의 집중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심하게는 PTSD의 해리(dissociation)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D4 척도가 D 소척도 중 가장 높게 상승하는 이유는 수검자가 trigger되어 재경험하고 있는 과거 trauma 때문일 수 있는 것이죠.
D5(깊은 근심) 척도까지 70T 이상으로 상승하는 수검자는 근심 걱정이 많고 뭔가(대개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를 반추하고 이러한 사고 과정에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느낍니다(침투적 사고).
D4, D5는 우울 척도이면서 일정 부분 불안 관련 증상, 특히 PTSD 관련 증상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상승하기 때문에 예민한 임상가는 내담자가 입으로는 우울하다고 말하지만 보이는 행동은 불안한 사람같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거지요.
위에서 설명드린
D 관련 소척도의 양상과 일치하는데다 거기에 Hy2(애정 욕구) 소척도까지 40T 이하로 낮은 상태(애정 결핍 또는 고갈)로 측정된다면 부모-자녀 관계 역동과 함께 성장기의 애착, 욕구 좌절 상황에 대한 추가 탐색을 해 보셔야 합니다. 애착 외상에 의한 Delayed PTSD 가능성이 있습니다. Delayed PTSD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상담에서 다루어야 할 정도의 부모-자녀 관계 갈등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애착 외상에 의한 Delayed PTSD에 대한 치료적 접근을 위해서는 다음의 참고 서적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실 겁니다.
*
트라우마의 치유(Coping with Trauma : Hope through Understanding, 2005)
*
애착과 심리치료(Attachment in Psychotherap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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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사회학자인) 앨리스 밀러가 쓴 고전입니다. 앨리스 밀러는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의 뿌리가 어린 시절 매를 맞는 것에 있다고 볼 정도로 체벌에 극단적으로 반대(체벌에 대해서는 저도 극단적인 반대론자에 가까운데 관련된 글은
'체벌은 전혀 효과 없다' 참조하세요)하는 임상가로 약 30년 전에 일대 열풍을 일으켰던 '성인 아이' 운동의 출발점이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평생 동안 약 13권의 저서를 발표했는데 주로 어린 시절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내용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학대 경험과 20년 간의 임상 경험을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저작 중 대표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동안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예전에 구매해 두었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번역된 제목만 봤을 때에는 고기능 자폐나 아스퍼거 아동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사실 굉장히 단순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을 천재처럼 감추고 거짓 자아를 발달시킨다.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연출한 드라마의 역할 연기 속에서 강박과 중독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을 경멸하며 우울한 삶을 살아간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상담하면서 애착 외상을 입고 힘들게 살아가는 내담자를 많이 만나봤기에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자기 파괴적인 중독 행동으로 자신을 처벌하는 사람도 많고, 그 밖의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이 이러한 애착 외상으로부터 유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시대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저자가 모든 정신 병리적 문제의 원인을 부모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인 것으로 몰고 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면서 읽을수록 묘하게 거부감이 들더군요.
게다가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면 그 때의 욕구 불만을 대리 만족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외상은 계속 대물림된다는 대목에 이르면 저자가 과연 건강한 애착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 싶고 저자 자신이 이러한 외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듯 다분히 감정적인 글쓰기를 노출해서 자주 위태위태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처는 억압되고 가해자인 부모는 이상화된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에 심리상담을 받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단언하듯이 말하고 있거든요. 이거야말로 저자가 그렇게나 열심히 경고하고 있는 과대성 아닌가요?
결정적으로 가장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대목은 다음입니다.
"마음을 잘 공감해 주고 받아주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면, 아래와 같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1. 자라서 심리 상담을 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
2.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지 능력이 실제로 심리적으로 이용당했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수준까지 발달하는 것
후략~ (52p)
그러니까 조금 과장하자면 심리 상담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모두 마음을 온전히 공감해주고 받아주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통제, 조종 당한 사람이라는거죠. 저는 이런 극단적인 일반화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용 중에는 강박, 중독, 우울, 경멸, 과대성 정도만을 제시하고 있지만 논조는 거의 모든 정신적,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바로 애착 외상인 것처럼 몰고 있습니다. 애착 외상과 관련없는 심리적 문제가 없는 듯이 쓰고 있거든요. 이것도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무의식 속에 숨어 있어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학대 기억을 깨우라는 말도, 아이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라는 식의 이상화도, 자식의 감정을 온전히 잘 공감하고 받아주는 부모들은 거의 없다는 식의 논조도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억압된 학대 경험을 깨운답시고 어설프게 시도한 경험들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미국의 사례가 방증하고 있죠(관련 서적 소개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 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1994)').
그래서 솔직히 애착 외상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는 읽지 마시라고 말리고 픈 책입니다. 너무 단정적인 책입니다. 훈련받은 임상가들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애착 외상의 이해와 치유를 위해서는 차라리 수잔 포워드가 쓴
'독이 되는 부모(2002)'와 Wallin의
'애착과 심리치료(2007)'를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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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담 초기에 불평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문제를 논의하는데 주저하는지, 상담자의 자질을 지나치게 궁금하게 여기는지, 확실히 치유된다는 것을 자꾸만 확인하려고 하는지,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해 회의적인지, 자조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왜냐하면 상담자에 대한 전이가 내담자가 갖고 있는 스키마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전이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내담자의 스키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무능력(회피적)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어려운 주제와 감정을 회피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상담자가 자신을 거부할 것이라는 기미를 찾습니다. 과제를 올바로 하지 않으면 상담자가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행동을 직면하는 과제를 하기 싫어합니다.
* 무력감(의존)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끊임없이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이들은 '느낌'에 대해서 자주 불평합니다. 회기 사이에 상담자에게 자주 전화를 하며 계획에 없던 회기를 연장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과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과제가 소용이 없다고 믿으며 상담자가 휴가를 가면 당황해합니다.
* 통제에 취약(수동 공격적)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회기에 지각하거나 자주 결석합니다. 인지 '수정'을 상담자의 통제로 간주합니다. 그러면서도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를 꺼립니다. 이들의 목표, 느낌, 생각은 전반적으로 모호한데 특히 상담에 대한 입장이 그렇습니다. 과제를 하거나 상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깜빡하기도 합니다.
* 책임감(강박적)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이 '지저분'하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비이성적이고 비구조적이라고 비난합니다. 상담 중에는 즉시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과제를 완벽하게 해야 하는 시험으로 간주합니다.
* 우월성(자기애적)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회기에 자주 지각하거나 결석합니다. 상담 비용 지불을 자주 깜빡합니다. 상담자와 상담을 얕보곤 합니다. 자신에 대한 특별한 대접을 기대하며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모욕적이라고 느낍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이 소용없다고 믿습니다.
* 매력(연극적) 스키마
: 이 전이 스키마를 갖고 있는 내담자는 울다가 웃고 화내는 등 급격히 변하는 감정 표현에 몰두합니다. 외모, 느낌 혹은 자신의 주 문제로 상담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 합니다. 이성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타당성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출처 : '인지치료에서 저항의 극복'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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