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P 상담은 생각보다 포괄하는 영역이 넓어서 단순히 노동자 본인의 직무 스트레스만 다루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 예를 들어 부부 갈등, 자녀 양육 문제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일반 상담 영역에서 다루는 문제는 모두 다루면서도 조직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과 그로 인한 문제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한층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상담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 상담 현장이나 전통적인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수련을 받은 임상가들은 상담/임상 뿐 아니라 조직 심리학이나 집단 역학 등의 공부를 추가로 더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EAP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건 어느 상담/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최우선되지만 EAP 상담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개인 정보의 노출이 단순한 명예 훼손이나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직업적인 피해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생산성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인적 자원은 가장 손쉽게 손대고 싶은 영역입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내담자의 인적 사항과 상담 내용을 요구하는 가장 노골적인 수준에서부터 상담자와 안면이 있는 직원을 통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은밀한 접근에 이르기까지 EAP 상담을 받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특히 EAP 상담을 진행하는 부서가 독립되어 있지 않아 특정 부서의 감독, 감사를 받을 수 있고 상담 실적 보고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EAP 상담 부서의 독립적 운용이고 그게 어렵다면
실적 보고 시 실적만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로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담 내용 입력을 전산화했다면 별도 서버 운용, 접근 권한의 철저한 관리, 이중 시건 장치를 통한 문서 보관은 기본입니다. 특히
상담자 간에도 담당하는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공석 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다중 관계 문제
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언제나 해롭다'라는 글에서도 다중 관계의 문제에 대해 강조했지만 EAP 상담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바로 다중 관계입니다.
EAP 상담자는 상담자이면서 동시에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자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담하는 내담자의 인사 고과 평가를 받는 직원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조직이 작거나 혹은 크더라도 자신이 속한 EAP 상담센터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지원부서의 직원과는 안면을 틀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죠. 이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EAP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잠재적인 내담자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내담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다중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니 가능하면 조직 내의 구성원들과 사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조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조회, 회식, 워크샵, 집체 교육 등)는 가능하면 불참하는 것이 낫고 이런 조치가 조직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요.
3.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문제
조직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상담자의 개인 정보 노출 가능성은 급격히 커집니다. 인트라넷을 운용하는 회사에서 상담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일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담자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지 몰라도 EAP 상담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자녀 상담을 진행하는데 갑작스레 예약을 바꾸려고 할 때 직원을 통해 상담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직접 연락하는 걸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라면 사소한 불편함 정도일 수 있으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직원을 상담할 때 시시때때로 상담자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으니 의존 문제도 그렇고 상담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
인트라넷에서도 휴대폰 번호나 개인 이메일 주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꼭 필요한 인원에게만 알리는 식으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EAP 전문 상담자가 상담자이자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이런 예상 문제들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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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담자의 가족이라고 하면서 외부에서 전화로 상담 일정을 변경하거나 연기하는 전화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물론 현장에 따라 상담자/치료자가 아니라 접수 직원이 전화를 받는 곳도 있습니다만 대처 방법은 동일합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처리해주는 상담센터나 병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건 의외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정말로 내담자와 관련있는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건을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내담자가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엄밀히 말하면 내담자의 동의없는 개인정보 노출에 해당되는 윤리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의 개인 정보 보호는 상담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신뢰가 깨지게 되면 더 이상 상담을 진행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 개인 정보 노출에 예민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사람을 시켜 아내가 도박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용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다소 번거롭더라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1. 내담자의 담당 선생님이 누구인지 전화를 건 사람에게 물어본다. 상담 일정을 내담자 대신 변경할 정도로 가까운 가족이라면 대개 담당 상담자의 이름을 알고 있을테니까요.2. 내담자의 이름과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내담자와 어떤 관계인지를 물어본 뒤 확인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일단 전화를 끊습니다. 3. 내담자에게 연락을 해서 전화를 건 사람의 인적 사항과 용무를 확인합니다. 4. 내담자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전화를 받을 수 없거나 상담 센터의 접촉을 꺼려하는 내담자의 경우)이라면 내담자의 상담 파일을 찾아서 확인합니다. 5. 가족이 맞는 경우 남겨둔 연락처로 곧바로 전화를 걸어 해당 용건을 처리합니다. 6. 만약 내담자의 가족임을 확인할 수 없다면 절대로 내담자가 상담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시인하면 안 되며 "확인해 드릴 수가 없다"고 해야 합니다. 당연히 상담 일정 확인이나 연기, 변경 등을 해 주면 안 되고 죄송하지만 내담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처리하셔야 한다고 안내해야 합니다.
접수 데스크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문제는 있겠지만 내담자 정보 보호의 중요성과 견주어 볼 때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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