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마음 한뜻으로 사는 건 참 좋은데 일심동체라는 말을 부부는 항상 붙어다녀야 한다는 말로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십 년을 각기 다른 가족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사는 것인데 당연히 다른 취향과 기호, 생활 방식을 갖고 있을텐데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어디든 함께 가고, 꼭 함께 밥을 먹어야 하고 쉬는 날에 서로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서로에게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둘이 항상 붙어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서로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느끼게 되면(그럴 수 밖에 없겠죠. 맨날 붙어 있으니) 괜시리 날이 서게 되어 예민하게 반응하는겁니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물어봐도 될 일도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마음 읽기'를 하게 되는데 이게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무리한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반대로 상대방과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체념하고 자포자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부부 관계는 잘못된 일심동체의 신화를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건강한 부부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리 두기'를 잘 합니다.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여집합'에 해당하는 일정 부분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활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죠.
둘 다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는 함께 보지만 수영은 남편만 좋아하거나 기타 배우는 건 아내만 좋아한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강요하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마찬가지로 배우자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렇게 부부 생활을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눠서 할 수 있느냐, 한쪽이 적당히 참고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맞추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단호히 말씀드리지만 희생은 암묵적인 강요가 수반되어 있고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내가 지난 번에 참고 당신이 하자는 거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걸 당신이 해 줘야지라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방이 나처럼 희생하지 않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모든 부부 갈등의 근원 중 하나이기도 하죠.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잘못된 일심동체와 희생의 신화를 깨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덧. 저는 개인적으로 배우자나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70%, 자신만의 시간 30% 정도의 비율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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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도박 중독의 전형적인 특징이므로 도박 중독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고 치료기관을 찾아오는 경우는 사실 상 매우 드뭅니다. 게다가 도박 중독이라는 병이 강제로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아니기 때문에 현장의 치료자에게는 어려움이 더욱 많지요.
그런데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도박 중독자가 가족의 강요 또는 이혼 협박 등에 의해 치료 장면에 억지로 나오기는 하지만 자신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치료를 악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들은 치료의 내용은 잘 몰라도 어쨌거나 도박자가 꾸준히 전문치료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있기 때문에 치료가 되고 있다고 안심하지만 실제로는 치료 효과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치료자가 도박자의 알리바이를 위해 이용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도박 중독자는 대개 바쁜 일 핑계를 대면서 상담 시간을 자주 연기하거나 예약 시간에 늦는 일이 많으며 과제를 게을리합니다. 상담 시간에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계속 화제를 돌리며(주로 부부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담자의 주의를 돌립니다), 도박 경험과 충동에 대해 상담자가 이야기를 꺼내면 매우 단호한 태도로 충동과 경험 유무를 부인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도박 중독자를 위해 동기강화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을 해 보면 소위 말하는 '바닥을 치지 않은' 도박 중독자에게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노골적으로든 수동-공격적으로든 자신의 문제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도박 중독자를,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점만 간단히 말하면 '바닥을 치게' 해야 합니다.
현재 상담이 상담자와 도박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시키고 스스로 자제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는지 확인하고 맞다면 치료를 종결해야 합니다. 이 때 도박 중독 치료에는 자가 치료를 비롯한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으며 도박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상담자의 의사가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내쫓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나중에 재발을 하더라도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가족에게 이런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가도록 설명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족을 계속 상담 장면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박자가 언제든 치료 장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심리적 끈을 연결해 두는 장치일 뿐 아니라 도박자가 바닥을 치고 스스로에 대해 숙고하는 기간동안 가족들을 충분히 훈련시켜 재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박자와 가족에게 분산되었던 치료자의 치료 역량을 가족의 정서적 고통과 아픔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치료자의 치료적 노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도박자와 달리 가족들은 훨씬 상담하기가 용이하며 효과도 좋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치료의 필요성을 끝까지 느끼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보내주세요(Let him go). 그리고 대신 '거리 두기'와 '선 긋기'를 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붙잡고 단련시키세요.
그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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